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4
113. 수능 응원의 후폭풍 >
용좌의 제작 발표회 당일 태주는 결국 초대받지 못했다. 초대는커녕 제작 발표회와 관련된 소식조차 전해 받지 못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오후 촬영을 빼 뒀는데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일은 우 팀장을 비롯한 태주의 스태프 모두를 화나게 했다.
“이 배우님 미안해요. 내가 정말 할 말이 없어요.”
“고개 드세요, 팀장님. 팀장님 잘못 아닌 거 알아요.”
“아니요. 이건 분명하게 제 잘못이에요.”
도깨비 무사도 용좌도 우 팀장이 추천한 작품이었다. 작품 자체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태주가 받은 대우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미안했다.
독립 영화, 상업 영화, 우정 출연한 영화까지 영화에선 어떤 문제도 없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작업을 했다. 예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사 예능인 ‘진품 감정 TV쇼’조차도 평이 좋았는데, 유독 드라마만 문제가 생겼다.
“더 노블레스는 괜찮아요. 지금까지 문제없었어요.”
“휴우. 다음 작품은 영화로 해야겠어요.”
“네, 팀장님.”
“괜히 인지도 때문에 드라마로 선회했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에요.”
“에이. 아니에요, 팀장님.”
우 팀장은 태주가 인지도 때문에 드라마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었다. 태주가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인지도뿐 아니라, 올해 시상식에서 불거지는 공정성 논란에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귀의 이점인 미래 정보로 흥행이 확실한 영화를 찍어도 시상식에서 물을 먹을 게 분명했다. 물론 남의 기회를 가로채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기억 속의 훌륭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덕분에 연초부터 이번 연도는 드라마만 할 생각을 굳힌 상태였다.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한 건 저였어요. 우 팀장님 용좌 건은 그만 잊으세요.”
“못 잊죠. 두고두고 기억해 뒀다가 되돌려 줄 겁니다. 쪼잔하다고 욕하셔도 좋아요. 하나도 남김없이 갚아 줄 거예요.”
“아하하. 그, 그러세요.”
커뮤니티에 미끼를 던지고 기자들에게도 슬쩍 학연으로 차별하더라는 얘기를 흘린 건 그녀의 기억에 없었다. 자기 배우인 태주가 받은 부당한 대우만 뇌리에 남았다. 그녀는 태주에게 장담한 대로 이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용좌의 제작사와 제작진을 엿 먹일 생각이었다.
태주는 자신에겐 미안한 얼굴을 하는 한편, 제작사와 모 배우를 떠올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우 팀장에게 인사하고 일어났다. 모처럼 오후에 촬영이 없는 날이었다. 오늘은 동생들 집에 들를 생각이었다.
*
한 달이 지났지만, 태산이 흉내 내기 대상은 여전히 태주였다. 여전히 그를 닮은 모습으로 변했다. 다행히 똑똑한 녀석이라 그와 쿠첼루스 앞에서만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 불편한 데도 호랑이로 변하지 않고, 얌전히 아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집이었으면 벌써 변해서 폴짝폴짝 물건 위로 뛰었을 텐데.’
“산이 형한테 안길래?”
“노.”
“그, 그래.”
태주는 ‘노.’를 가르친 걸 후회하고 있었다. 싫다, 좋다를 가르치다 발음을 잘 못 하길래 ‘노.’를 가르쳤는데, 거절당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아이 모습에 익숙해지고, 말을 배울수록 자기 의사 표현이 더 많아졌다. 커 가는 모습은 기꺼웠지만, 스스로 하려는 것이 많아질 수록 서운함도 커졌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이런데, 자기 아이를 키우면 어떨지 상상도 안 가네. 지금이랑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어쩐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아이 뒤를 따라다닐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이를 앞세워 목표한 곳에 도착했다. 하얀색의 찹쌀떡이 곱게 포장된 박스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두 사람은 이제 열흘도 남지 않은 수능을 치를 태우를 위한 물건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 떡과 엿이 쌓여있는 가판 주변엔 재밌는 상품이 여러 가지 있었다. ‘대박’ 두 글자가 붙은 머리띠도 있었고, 담요와 보온병 세트도 있었다. 태주는 눈에 띄는 상품을 전부 바구니에 담았다.
“에쭈. 앙.”
“아니, 네가 먹을 걸 사러 온 게 아니라. 태우 형, 작은 형아 거 사러 온 거잖아.”
“노. 에쭈, 노.”
“그놈의 노는. 에휴. 골라라, 골라.”
매장을 지나다 좋아하는 간식을 보자 사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이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태주는 여느 보호자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아이가 고르는 물건을 꺼내서 바구니에 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훔쳐보던 몇몇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민낯이라 어떻게 찍힐지 몰랐지만, 쿠첼루스의 마법을 받지 않고 나와서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산이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라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도 했었다. 그는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것이 아닌 시선은 무시하기로 하고 아이를 챙겼다.
옮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집 안이 그가 있을 때와 달라졌다. 아래층 공방에 있던 물건이 조금씩 위층까지 침범하는 것 같았다.
“앙!”
“와아. 산이 이거 형 주는 거야? 잘 골랐네. 잘 먹을게.”
“앙.”
“아우, 요런 귀요미가 어디서 왔지, 응?”
‘자식. 계산은 내가 했는데 생색은 저가 내네.’
태주가 들고 온 봉지를 태우를 보자마자 통째로 건넨 산이가 칭찬을 받고 좋아하고 있었다. 더 올라갈 어깨가 남지 않았을 때까지 칭찬을 들었는지 산이 표정이 만족스러웠다. 두 동생은 그런 아이가 귀여웠는지 그새 떡을 입에 물려주고 있었다.
-찰칵.
“사진?”
“응. 형 SNS에 사진 너무 없더라. 얼마 전에 산이 사진 올린 것까지 해도 별로 없어서.”
“맞아요, 태주 형. 사진도 올리고 인사도 남기고 해야죠.”
“난 그런 게 좀 어색해서.”
“그래도 해야죠.”
얌전한 연우가 드물게 엄격한 얼굴을 하고 태주를 나무랐다. 그다지 뜨지 못한 전직 아이돌이었던 연우가 팬의 소중함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 옆에서 태우가 부추기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형 팬카페도 그래. 인사말 하고 가끔 사진만 한 장 올리는 게 전부지?”
“그, 그렇지.”
“팬들은 큰 거 바라는 거 아니야. 잘 지내고 있다. 지금 뭐 하고 있다. 이런 것만 제때 알려줘도 충분해.”
“맞아요. 형은 팬서비스가 정말 엉망이에요.”
‘얘들아, 형은 수능 떡 주러 왔어.’
태산인 태주를 나무라는 두 작은 형 사이에 앉아서 떡을 물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태주가 곤란해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들의 말에 반박하지 않자, 동생들이 눈을 마주치더니 호들갑스럽게 무언갈 챙겼다. 키득거리면서 상자에서 물건을 고르느라 부산스러웠다. 한참을 고르던 동생들이 한 손에 하나씩 물건을 들고 돌아왔다.
“형 이거 입고 영상 하나 찍자.”
“무슨 영상?”
“수능 잘 보라는 응원 같은 거. 형 팬 중에도 수능 보는 사람 있을 거 아니야.”
“그럴까? 그런데 이 티셔츠 문구가….”
“킥. 요샌 그런 게 유행이야.”
정말 이런 게 유행인가 싶었다. 태우가 건넨 티셔츠는 평범한 맨투맨 티셔츠였다. 단지 티셔츠 위에 검은색 궁서체로 ‘날 가져’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이거 쓰고요.”
“이건 내가 태우한테 사 준 건데.”
“형 빌려줄게. 쓰고 찍어.”
“…그래.”
‘대박’이라는 글자가 붙은 머리띠까지 하자 보기만 해도 우스운 모습이 되었다. 그는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며칠 뒤에 수능을 볼 동생이 바라는 일이었다. 팬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후다닥 해치우면 괜찮을 것이다.
“형 노래도 한 곡 할래?”
“참아줘라.”
“아니에요, 형. 그냥 인사만 하는 것보다 노래도 한 곡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앙.”
어쩐지 재밌어하며 자신에게 여러 가지를 들이미는 두 동생보다 그사이에 앉아서 앙앙거리고 있는 태산이 더 얄밉게 느껴졌다. 태주는 태산이를 들어서 무릎에 앉혔다. 살짝 볼을 꼬집으며 왜 형 편 안 들어 주냐며 투정을 부렸다.
“앙.”
“하하하. 산아. 산이는 이거 안고 있자.”
“뭐야? 찹쌀떡 인형?”
“응. 수능 대박 응원 영상이잖아. 찹쌀떡도 나와야지.”
“큼. 아니, 찹쌀떡 여기 있잖아.”
‘볼록.’
태주가 태산이 양 볼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댔다. ‘볼록’하고 하얀 볼살이 동그랗게 튀어 올랐다. 방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태산인 이유도 모르고 형들이 다 웃으니 ‘꺄하하’ 하고 같이 웃었다. 그 모습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태주가 부를 노래로 뭐가 좋을까 의견이 분분했다. 네가 좋아, 너는 최고야 등. 여러 노래가 후보에 올랐다. 그중에서 선택된 것은 Jason Mraz의 I’m yours였다. 워낙 유명한 곡이기도 했고 태주가 예전에도 가끔 불렀던 곡이었다. 무엇보다 티셔츠의 문구, 날 가져와 가장 잘 어울렸다.
가볍게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태주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었다. 달콤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노래는 그 가사처럼 고백으로 들릴 정도였다
노래를 끝내고 기타를 옆에 내려놓은 태주가 태산이를 안아 들었다. 찹쌀떡 인형을 든 태산이를 무릎에 앉힌 그가 카메라를 향해 웃는 얼굴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수능 잘 볼 거예요. 믿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앙.”
“하하하. 산아 손 흔들자. 여러분 다음에 또 봐요. 안녕.”
3분 남짓의 인사말과 노래 그리고 수능 잘 보라는 응원이 담긴 영상이었다. 태우는 이 영상을 바로 태주의 SNS와 팬카페에 올리고 태산이 미튜브 채널과 파랑새에도 올렸다. 태주가 민망함에 산이를 끌어안고 소파를 뒹구는 몇 분 사이에 전부 업로드를 끝냈다.
그 후엔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먹으면서 근황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태주는 찍고 있는 드라마와 마무리 작업 중인 박창환 감독의 영화 소식을 들려줬다.
태우는 수능 준비 중이었고, 연우는 중식 조리사 자격증과 조주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했다.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에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는데, 또 다른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었다.
“1월에, 드라마 끝나면 좀 여유가 생길 거야. 그때 같이 여행 가자. 제주도 갈까?”
“좋아. 형 나 제주도 못 가 봄.”
“저도요. 제주도 못 가 봤어요.”
“쿠첼, 제주도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
태주와 동생들이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며 좋아하는 곳과 반대로 불편한 공기가 흐르는 곳이 있었다. 용좌의 제작 발표회 현장이었다. 단상 위에 앉은 감독과 주연 배우는 한 기자가 건넨 질문에 답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1화, 2화에 출연한 이태주 배우는 오늘 참석하지 않으셨네요. 이태주 배우는 이성계의 십 대 시절을 연기하셨는데요. 현장에서 본 이태주 배우의 연기는 어땠습니까?”
“그 연령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이고 완숙한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태주 배우가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원래 호위무사역이었던 김지혁과 트러블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혹시 그것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호위무사역은 다른 배우가 맡았고, 이태주 배우는 문제 없이 촬영을 마쳤습니다.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겹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촬영 스케줄이요? 거 참. 신기하네요.”
“예?”
질문했던 기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가 들고 있는 폰 화면에는 태주가 산이라는 친척 동생과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이 떠 있었다. 실시간으로 태주와 동생을 마트에서 봤다는 목격담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황석준에 대한 제보를 받은 기자였다. 용좌제작진에서 황석준과 몇몇이 주도해서 비대예종 출신인 이태주를 무시하고 따돌린다는 얘기에 설마 하고 의심했었지만, 이제는 확신했다.
‘전에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대예종 출신 아니면 배우 취급도 못 받는다는 얘기.’
기자는 돌아가서 쓸 기사의 타이틀을 생각하느라 그 이상 용좌 제작 발표회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이 기자 한 명이 아니었다. 다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태주의 사진을 보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들은 얘기, 업계에 도는 찌라시를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잘 만든 드라마보다 이런 가십거리가 더 좋은 먹잇감이었다.
용좌의 제작 발표회일 저녁, 태주의 이름이 검색어 상단을 차지했다. 대박 날 가져. 이태주 수능 응원. I’m yours 이태주. 태우와 연우, 두 동생의 닦달에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영상을 올린 태주는 동생들과 웃고 떠드느라 몰랐지만, 회사는 영상의 노래 저작권도 처리하고, 이곳저곳 미디어에서 오는 확인 연락을 받느라 바빴다.
그렇게 태주의 이름이 차지한 상단에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다시 태주의 이름이 올랐다. 이번에는 연관 검색어가 바뀌어 있었다. 이성계 이태주, 제작 발표회 불참 사유. 비대예종 이태주 등이었다.
대부분이 스케줄을 비우고 제작 발표회에 참석할 준비를 한 이태주가 왜 스케줄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게 되었는지 의문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우 팀장은 처음 태주가 영상 속에서 부른 곡의 저작권 처리를 하면서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다며 살짝 원망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좋게 돌아갔다.
태주는 대예종 출신이 아니라서 무시를 당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수능을 보는 팬들을 위해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태주와의 통화로 수능 보는 친동생이 바라서 한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호호호. 아무래도 노이즈에서 끝날 것 같네. 잘해 봐요, 황석준 씨.”
만족스러운 우 팀장의 웃음소리가 트리즈 사무실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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