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9
118. 정원 지형 변경 >
정원의 아침이 밝았다. 태주는 품 안의 온기를 한 번 꼭 안았다가 놔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냐앙.’ 그가 일어난 자리에서 귀여운 울음소리가 들리자, 침대 아래 쿠션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태산이 울음소리에 깬 그렘린들이 내는 소리였다.
그렘린들이 볼일을 보러 갈 수 있게 침실 문을 열어 준 후, 그 역시 세수를 하고 나왔다. 오늘은 좀 일찍 깼는지, 아직 주방에 인기척이 없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실 생각으로 주방으로 향할 때였다.
“헉! 아칸? 거기서 뭐 하세요?”
“정, 원사. 잘, 잘 왔어. 어서.”
“어서?”
“큽. 어서 모린이 좀 안아 봐.”
“네? 네. 주세요.”
거실 소파에서 정자세로 앉아 있는 아칸서스에 놀란 것도 잠시, 흙색 얼굴에 딱딱하게 몸에 힘주고 있는 그에게서 모린을 받아 들었다. 모린은 팔이 하나 담요에서 나온 채로 잘 자고 있었다. 태주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모린의 팔을 담요 안에 넣어 주었다.
“큽.”
-쿵쿵쿵쿵.
-철컥!
“아!”
모린을 태주의 품에 안겨 준 아칸서스는 급한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는 아칸서스가 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 피식 웃고 말았다. 흙색의 얼굴이 괜한 게 아니었나 보다. 아마 아칸서스는 꼭 닫힌 문 안에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큭큭. 모린, 네 아빠가 엄청 급했나 보다.”
“냐앙.”
“태산이 왔어? 모린이야.”
“냥.”
“자식. 모린이 엄청 좋은가 보네.”
태산이는 가끔 태주가 그렘린을 안고 있을 때면 그렘린과 그의 사이로 끼어들어서 밀어내기 바빴다. 앞발로 쳐서 태주 무릎에서 내려 보내거나 몸으로 밀어서 떨쳐 냈다.
그런데 모린에게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태주의 어깨에 앞발을 짚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꼬리는 살랑대는 채였다.
“휴우.”
“하하하.”
“웃지 말라고. 오늘은 진짜 힘들었어.”
“하하하. 그런데 왜 거실에 계세요? 혹시 어제 여기서 주무셨어요?”
“들어봐, 정원사. 다나가 해나랑 드라마인지 뭔지를 본다고 날 내쫓았어. 이게 말이 돼? 난 남편인데.”
자기는 뺴놓고 둘이서만 봤다면서, 남편인 자신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어떻게 담요 한 장만 주느냐고 투덜댔다. 태주는 지친 얼굴에 동정심이 들어 그의 투정을 잠시 들어 주었다.
하지만 투정 부리는 아칸서스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는지, 잘 자던 모린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헉!”
“쉬이. 모린. 착하지. 더 자자.”
“아웅….”
“휴우.”
자는 아기를 깨울뻔한 아칸서스는 다시 얌전히 잠든 걸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파에 몸을 깊게 묻고 피곤한 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은데, 피로가 짙은 모습에 태주가 이유를 묻자, 그가 작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모린은 가끔 한밤중에 잠에서 깰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절대 침대에서 다시 잠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꼭 품에 안고 있어야 했다. 다시 깊이 잠들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안은 채 작게 흔들어 주어야 했다. 그는 어젯밤에도 모린이 깨서 밤새 안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했지만, 아이가 다시 깰까 봐 참아야 했다.
그의 설명에 태주는 새삼스럽다는 듯 그를 봤다. 철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보기보다 아이를 위하는 모습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니 굳이 쓸데없는 말로 신뢰도를 낮출 필욘 없었다.
“모린이 울리면, 다나한테 혼나.”
“…네.”
“진짜야. 다나 화나면 무서워.”
“아, 예.”
*
아칸서스와 태주는 다른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에 정원의 지형을 변경하기로 했다. 아칸서스가 지형만 바꿔 주면 꾸미는 것은 그가 천천히 하면 됐다.
태주는 아칸서스가 바꿔 줄 지형을 어떻게 꾸밀지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나무나 꽃은 정해 두지 않았지만, 산책로는 조각 공원처럼 꾸밀 생각이었다. 산책로 옆을 따라서 조각과 공예품을 장식해서 감상하며 걸을 생각이었다.
아칸서스는 모린을 안은 태주 주위로 정원의 동물들이 모인 것을 확인하더니, 곧 몸을 하늘로 띄웠다. 대규모 마법을 쓸 때는 인간 모습보다 드래곤의 모습이 편해서 바꿀 생각이었다.
하늘로 올라서자 정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원사는 발끈했지만, 실제로 정원은 꽤 빈 곳이 많았다. 텅텅 빈 것까진 과장이었지만,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곳이 꽤 있었다.
정원의 입구에서 가운데의 큰 나무까지는 보기 좋게 관리되어 있었다. 또 큰 나무를 중심으로 넷으로 나눈 구역들 일부는 돌길도, 울타리도 망가진 곳 없이 깨끗했다. 확실하게 정원사의 손길이 닿고 있었다.
하지만 피라미드 뒤편이나, 열기구를 세워둔 공터 뒤쪽은 황무지로 보일 정도로 비어 있었다. 과실수를 모아 놓은 뒤쪽도, 바위 무더기가 놓인 뒤쪽도 군데군데 자란 잡초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뭐 인간이 정원사니 어쩔 수 없겠지.’
드래곤의 거대한 몸 주위로 수많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흰색, 푸른색, 녹색, 붉은색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마법진이 마치 기계의 작동음 같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화려하다. 그치, 모린.”
“꺄아.”
“깼는데 울지도 않고. 모린이 아주 착하네.”
“냐앙.”
“하하. 태산이 모린 보고 싶구나.”
모린을 안은 태주가 무릎을 굽혀 태산이 볼 수 있게 몸을 낮춰 주었다. 태산이에게 모린을 보여 주며 시간을 보내는 태주의 머리 위에서 드래곤은 열심히 마법진을 배치하고 있었다.
정원사가 바라는 것은 폭포와 그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흐르는 시내였다. 아칸서스는 자신이 그려 준 훌륭한 설계 도안을 거절한 그가 못마땅했다. 놀 거리 하나 없는 정원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지, 참 이해할 수 없는 고루한 취향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마법진을 가동하기 전에 정원사를 돌아봤다. 잠에서 깬 모린의 손을 잡고 말을 걸고 있었다. 취향은 별로인 정원사지만 자기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정원사와 그가 걱정하던 동물들까지 한꺼번에 들어갈 정도의 단단한 보호막을 시전했다.
-슈아앙.
-끼릭끼릭.
‘우리 모린이 먼지 먹으면 안 되지.’
“와! 모린, 모린이 아빠가 이제 시작하나 봐.”
태주는 자신과 주변까지 감싸는 보호막을 확인하고 바로 아칸서스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칸서스의 하얀 몸 주위로 마법진이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죽어 가던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질 정도로 장엄한 모습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3D로 지형 변화를 재현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태주는 그때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아칸서스의 마법이 발현된 후 눈에 들어온 현상은 그가 상상하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훨씬 더 난폭하고 훨씬 더 거친 모습이었다. 지진, 산사태,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땅이 솟아오르고 갈라졌다. 땅속에 묻혀 있던 돌 조각과 자갈들이 후두두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조금만 더 길게 이어졌다면, 꽤 무서웠을 것 같았다.
‘포클레인 같은 기계로 땅을 파고 언덕을 쌓는 거랑은 질적으로 다르구나.’
아칸서스의 장담대로 붉은 흙이 솟아올라 산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태주가 예상보다 더 폭력적인 모습에 모린이 그 상황을 보지 못하게 고쳐 안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꽤 높은 흙산이 생겨났다.
그 흙산 위로 어디서 소환한 건지 알 수 없는 바위가 퍽퍽 소리를 내며 틀어박혔다. 바위가 흙산을 단단하게 다지듯이 누르며 자리를 잡자, 아칸서스가 몸을 돌렸다. 정원사가 바라던 물길을 만들 방향이었다.
태주는 강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어 그렇게 불렀지만, 정원에 바란 것은 강보다 규모가 작은 개천이나 시내에 가까웠다. 폭포에서 시작해서 정원의 경계까지 흐르게 만들 계획이었다.
“캉. 캉캉.”
“쉬이. 괜찮아. 이리 와.”
“냐앙.”
“아이고. 안 되겠다.”
흙이 솟아오르고 바위가 날아다니자, 그렘린도 태산이도 겁을 먹었다. 태주는 모린을 한쪽 팔로 안고 다른 팔론 태산이를 안았다. 거기에 겁먹은 그렘린 네 마리가 그의 머리와 어깨, 등에 매달렸다. 따가운 것도 따가웠지만, 애들이 너무 겁을 먹어서 이 이상 보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아칸!’’
“정원사, 왜?”
“잠시 멈춰 주세요. 저흰 오두막으로 갈게요.”
“알았어.”
그는 아이를 안고 동물을 몸에 매달고 있는 정원사를 보고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어린 새끼들이 보기엔 무서운 광경이긴 했다. 새끼 들에겐 퍽퍽 소리도 무서울 테고, 바위와 흙이 날아다니는 것도 겁나는 장면일 게 분명했다.
보호막을 해제하자, 정원사가 조심스럽게 오두막 쪽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몸에 매달린 동물들을 내려 주면 될 일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걸었다. 게다가 가만히 들어 보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품에 안은 모린과 동물을 다정하게 다독이고 있었다.
‘저래서 모린이 좋아하나? 하여튼 정원사는 참 이상한 존재야.’
이 정원사뿐 아니었다. 그가 만나 본 다른 정원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생명을 아꼈다. 그는 공중에 뜬 상태로 정원사와 동물들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뒤에야 다시 마법진을 가동했다.
*
오두막 안에는 해나와 다나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린은 다나를 보자 가고 싶었는지 손을 그쪽으로 뻗었다. 태주는 바로 모린을 다나에게 안겨 줬다.
“모린, 잘 잤니?”
“꺄아.”
“호호호. 배고프지, 맘마 먹을까?”
두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는 모습 뒤로 해나가 음식 접시를 담을 쟁반을 챙기는 게 보였다. 그녀의 다리 옆에는 언제 몸에서 내려갔는지, 그렘린들이 두 발로 서서 콩콩거리고 있었다. 해나는 그런 그렘린이 귀여운지 웃으면서 샐러드의 과일 조각을 하나씩 나눠 주고 있었다.
아칸서스의 마법은 대단했다. 그가 정원의 한 곳을 뒤엎고 있는데도 오두막에는 먼지도 소음도 없었다. 사실 동물들이 겁을 먹은 것을 보고 그가 마법의 여파가 오두막 쪽으로 닿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태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날 때쯤에 정원 공사를 마친 아칸서스가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북적북적. 평소보다 북적거리는 식탁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호기심이 왕성한 그렘린에, 모린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진 태산이 까지, 작은 녀석들이 혼이 빠질 정도로 활발했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 식구들은 모두 아칸서스가 작업해 둔 결과물을 보러 갔다. 그렘린들은 다른 곳으로 몰려갔다. 밥을 먹기 전에 본 모습이 어린 그렘린에겐 너무 자극적이었던 같았다. 태주는 태산이를 품에 안고 해나 자매를 뒤따라가며 그녀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
“세상에. 그럼 딸은 누가 맡아?”
“아버지가 형제한테 부탁해. 그런데 이 형제가 정말 못됐어. 딸을 하녀처럼 부려.”
“그걸 그냥 둔단 말이야?”
해나와 다나가 애기하는 드라마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가 살인 누명을 대신 쓰고, 작은아버지가 조카를 괄시했다. 이어지는 설명에선 주인공이 살인자 아버지 때문에, 연인의 어머니에게 헤어지라 욕을 먹고 물벼락을 맞았다.
“그게 대체 누구 얘기야? 무슨 그런 일이 다 있어?”
‘그러니까요. 쿠첼, 대체 무슨 드라마를 넣어 준 거예요.’
아칸서스가 심각한 내용에 궁금증을 표하자, 해나가 드라마에 관해 설명해 줬다. 옆에서 다나가 나중에 같이 보자고 그에게 애기하는 걸 보고 태주는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래도 쿠첼루스에게 영화와 드라마를 담아 달라 부탁한 건 실수 같았다.
눈앞엔 태주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아칸서스는 그가 바라던 그대로 산과 강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의 설명대로 바위산 위쪽에 물이 솟아나는 마법 도구를 설치해서 폭포를 가동하면 꽤 볼 만할 것 같았다.
“아칸. 대단해요.”
“흐흐. 이 정도는 나한테 식은 죽 먹기지.”
“나중에 이곳 조경을 마치고 나면 꼭 보러 오세요.”
“알았어. 정원사도 약속대로 가끔 우리 모린을 봐줘.”
“네. 그럴게요.”
아직 풀이 없어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지만, 나중에 꽃과 나무가 가득할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왔다. 태주는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옆으로 아름다운 조각상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곳에 무슨 나무와 꽃을 심으면 좋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
태주는 품 안의 모린이 먹기 편하게 젖병을 기울여 주며 오두막 이 층에 눈길을 주었다. 해나와 다나 자매는 물론이고 아칸서스와 희까지 모두 이 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모린이 알아챌라 웃고 있었지만, 내심 위층의 폐인들을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네 명은 새로 생긴 폭포 산을 보고 온 후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에 푹 빠져 버렸다. 넷은 점심도 가볍게 샌드위치로 때운 후 계속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좀 전에 다나가 내려와 모린의 젖병을 건네주고 간 걸 뺴곤 이 층에서 한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막장 드라마가 중독성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 하긴 간식을 잔뜩 챙겨 갔지.’
“냐앙.”
“응? 아! 모린이 우유를 다 마셨구나. 모린 트림할까?”
“꺼억!”
모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트림까지 하게 한 태주는 우유를 잘 먹은 모린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곁을, 정확히는 모린의 곁을 떠나지 않는 태산이를 보고 미소 지었다.
정원에선 오두막에 머무는 것보다, 이곳저곳 쏘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태산이가 어제부터 줄곧 오두막에 머물렀다. 그렘린이 건드리지 못하게 모린의 주변을 맴돌며 지켜 주고 있었다. 좀 전에는 그가 트림시키는 걸 잊을까 봐 알려 주기도 했다.
아마도 태산이에게 봄이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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