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
11. 일상
무지개 씨앗에서 나온 작물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덕분에 욕심은 났지만,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묘목과 정원 장식들을 살 수 있었다.
초코체리 나무, 둥근 빵나무, 얼음수정 나무, 리본 나무 등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신기한 나무들을 심었다. 그 외에도 오렌지, 라임, 레몬, 올리브, 호두, 바나나 등 익숙한 나무도 심었다. 기후나 토질이 상관없는 정원이라 마음껏 심었다.
정원 장식은 종류가 다양해서 고르는 데 한참 걸렸다. 홍차 와인 분수와 공중 계단, 솜사탕 무지개 등을 골라 장식했다. 솜사탕 무지개는 베어먹어도 하루가 지나면 다시 생겨나는 것이라 가격이 아주 비쌌는데 고민 없이 지를 수 있었다. 방문자들이 아주 좋아한다는 설명이 붙어있어서 내심 새로운 방문자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태주, 이제 오두막을 확장할 수 있어.”
“나도 메시지 봤어. 지하실과 2층 중에 골라야 하지?”
“응! 하나만 골라야 해.”
“어디가 좋을까?”
제약기술을 제대로 쓰려면 공방이 필요했다. 지금은 재료를 전부 창고에 넣어 두었지만, 사실 약초별로 보관방법이 따로 있었다. 전용 보관함이나 건조대 등이 필요했다.
문제는 태주가 곧 영화 촬영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태주는 연습량이 많은 배우였다. 배역을 맡으면 촬영 전까지 다른 일들을 모두 물리고 연습실에서 살곤 했다. 만약 2층을 선택해 연습실로 꾸미면 마음껏 연습할 수 있었다.
“희, 2층에 스튜디오를 만들 수 있을까?”
“스튜디오?”
“응, 연기 연습 영상을 바로 모니터하거나, 연주나 노래를 녹음하는 곳.”
“태주가 말하는 스튜디오는 잘 모르겠어. 무대랑은 다른 거야?”
“무대?”
“응. 무대는 노래하고 연기하는 곳이잖아.”
“그렇지.”
희가 태주를 상점으로 데려가 레시피 하나를 짚어주었다.
[야외 공연장(소)] 2개의 테이블과 8개의 좌석이 준비된 작은 야외 공연장.희가 가리킨 것은 정원에 설치할 수 있는 소형 공연장이었다. 1 미터 정도 높이의 작은 무대와 테이블 두 개로 구성되어있었다. 조명과 음향도 쓸 수 있어서 작은 공연을 하는 데는 문제 없어 보였다. 어차피 태주 혼자 쓸 무대이니 이 정도로 충분했다.
“와! 희, 이건 정말 마음에 드는걸.”
“태주, 좋아? 마음에 들어?”
“아주 좋아. 정말 고마워.”
“응. 희 도움되었어?”
“희는 항상 도움이 되는걸.”
빈말이 아니었다. 희가 알려준 공연장 덕분에 고민 없이 지하실을 공방으로 꾸밀 수 있게 되었다. 무대도 생겼으니 연습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냐앙.”
“큭. 그래 너도 고마워.”
오랜만에 정원에 온 태산이는 많이 바뀐 모습에 흥미가 돋았는지 이곳저곳 쑤시고 다녔다. 덕분에 희가 바빠졌다. 태산이 뒤를 따라다니면서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희를 경계하는 듯했던 태산이는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는 희가 마음에 들었는지 희를 곧잘 따랐다.
“태주, 태산이 배고프대.”
“응? 좀 전에 우유 먹었는데. 벌써 배가 고프다고?”
“태산이는 이제 이유식을 할 때야. 우유만으론 부족해.”
“벌써? 호랑이는 6개월 정도 젖을 먹는다던데.”
“태주, 태산이는 보통 호랑이가 아니야. 엄청 예쁜 호랑이라고.”
“어, 그렇지. 예쁘지.”
예쁜 것과 이유식 시기가 빠른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이유식을 할 때가 되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태산이가 정상적으로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원에는 태산이가 먹을 만한 게 없었다. 육식 동물인 호랑이에게 과일이나 빵을 먹일 수 없어서 상점에서 고기를 구매했다. 고기를 다져서 작은 그릇에 담아 주자, 처음에는 멀뚱히 보고만 있던 태산이 입에 맞는지 금세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냐아웅.”
“이힛. 태산이가 맛있대.”
“희, 태산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응. 태주는 몰라?”
“응. 난 태산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으응. 그럼 희가 알려줄게.”
“고마워.”
요정이라서 그런지 희는 태산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부러웠다.
*
식사자리가 잡혔다. 정한선과 김윤선 두 배우가 태주를 만나고 싶다며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을 매니저를 통해 전해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바로 승낙하고 나갈 채비를 갖췄다. 두 사람 모두 이십 년이 훌쩍 넘는 경력의 배우였다. 회귀 전에는 접점이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정한선은 주조연을 주로 하는 중견 배우고, 김윤선은 주연을 주로 맡는 배우였다. 회귀 전 같은 연기파 배우로 불렸지만, 태주와는 조금 다른 성향이었다. 상업성도 확실하게 따지는 태주와 달리 이 두 사람, 특히 김윤선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면 다른 조건은 따지지 않고 선택하곤 했었다.
이 두 사람과 태주는 나이 차가 많이 나고 배역을 선택하는 취향이 전혀 달라, 같은 작품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는 빼놓지 않고 거의 모두 챙겨 봤다. 정한선이 연출한 독립 영화가 극장에 걸렸을 때는 몰래 찾아가서 보고 오기도 했다.
“태산이를 어쩐다. 큰일이네.”
태우가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 가버렸다. 세탁소집 도연이랑 몇몇이 모여서 강원도로 놀러 간다고 했다. 예전에는 먼저 나서서 여행을 가겠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해 여자 친구를 사귄 후에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예전 모습과 비교되어서 더 반가웠다. 새 옷도 사주고 용돈도 두둑이 챙겨서 보냈는데 약속이 생겼다.
“어쩔 수 없지.”
태주는 약속 한 시간보다 이르게 집을 나섰다. 커다란 케이지에 태산이를 넣고 선물용 초코체리와 태산이 이유식, 장난감 등을 모두 챙겨서 택시를 탔다. 식사자리에 태산이를 데려갈 수 없으니 급한 대로 사무실에 잠시 부탁할 생각이었다.
“어머어머. 세상에 너무 귀엽다.”
“어떻게 해. 사진 찍어도 돼요?”
“귀여워.”
태주가 사무실에 태산이를 데려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다. 처음 커다란 짐을 들고 들어오는 태주를 이상하게 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너도나도 서로 짐을 들어주겠다며 나섰다.
“이태주 배우님?”
우 팀장이었다. 그 뒤에는 오디션에서 봤던 김 이사와 김도진 실장도 있었다. 회의실 쪽에서 다가오는 걸 보니 아마 회의 도중 소란스러워서 나와 본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무슨 일이신가요? 아직 쉬고 계셔야 할 분이?”
“그게, 저녁에 김윤선 선배님이랑 정한선 선배님이랑 식사 약속이 있는데, 얘를 맡길 곳이 없어서요.”
“네?”
“아직 너무 새끼라 혼자 둘 수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소란스럽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매니저님이 연락이 안 돼서요.”
“아아. 아깽이.”
우 팀장이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태주를 회의실로 들였다. 회의는 이미 끝난 것 같았다. 태주가 물건들을 내려놓자, 김도진 실장과 김 이사가 빠르게 다가왔다.
“냐아앙.”
“헙.”
태산이는 낯선 곳이라 잠시 경계하는 듯하더니, 금세 울음소리를 내며 내려달라 뒤챘다. 태주는 어쩔 수 없이 태산이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우 팀장, 김 실장 그리고 김 이사와 처음 보는 직원까지 네 명의 시선이 태산이에게 쏠렸다.
“김견우 매니저님 어디 계신지 아세요?”
“견우 씨 외부 미팅 나갔어요. 서너 시간은 있어야 들어올 텐데.”
“이런.”
“흠흠. 곤란하신 것 같으니, 제가 맡아 드리죠.”
김견우 매니저와 연락이 안 돼서 큰일이다 싶었는데 다행히 우 팀장님이 태산이를 돌봐주실 것 같았다. 태주는 혹시라도 우 팀장님이 마음을 바꿀세라 선물로 가져온 초코체리 상자를 넘겨주었다.
“잠깐. 이건 이상한데.”
“네?”
“왜 고양이도 보는데 선물까지 받는 거야?”
“그러게요. 우 팀장님이 선물을 드리면 몰라도 이건 아니죠.”
주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우 팀장을 몰아갔다. 태주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견우가 가져왔던 초코체리는 사무실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태주는 몰랐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초코체리를 맛본 후, 판매자를 알아오라고 견우를 들들 볶았었다.
그런 초코체리를 사랑스럽고 귀여운 고양이와 놀아주는 대가로 받는 우 팀장을 가만두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큼. 이태주 배우님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 저는 이만 약속장소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태산이 잘 부탁드립니다.”
태주가 나간 회의실 안에서 조용한 합의가 이뤄졌다. 네 사람은 초코체리를 사이좋게 나누기로 했다.
*
약속한 음식점은 어린 나이인 태주를 배려해서인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화덕 피자로 유명한 곳이라 태주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곳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태주입니다.”
“어서 와. 추운데 오느라 고생했어.”
김윤선과 정한선은 이미 약속장소에 나와 있었다.
“큭큭큭.”
“왜?”
“아니, 그게 웃기잖아. 태주, 내가 편하게 불러도 되지?”
“네, 선배님. 편하게 부르세요.”
“태주 너 오기 전까지 우리 둘이 얼마나 뻘쭘해 한 줄 아냐? 중늙은이 둘이서 파스타 가게에 마주 앉아있는데 뭐 할 말이 있어야지. 주변엔 다 데이트하는 어린애들이고.”
“큼. 어색하긴 했지. 우린 백날 가봐야 횟집 아님 고깃집이잖아. 이런 델 언제 오겠어.”
“다음엔 편한 데로 부르세요. 저도 그런 곳이 더 편해요.”
한차례 웃음이 지나고 날카로운 시선이 태주에게 떨어졌다. 정한선이 정색을 하고 태주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쯧. 얘가 개연성을 말아먹네.”
“네?”
“사람 앞에 두고 무슨 소리야? 제대로 얘기 안 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태주를 보면서 혀를 차는 정한선을 김윤선이 나무랐다.
“아니, 얘 얼굴을 봐봐. 이 얼굴에 가난한 가수 지망생이 가당키나 해? 붕어빵만 팔아도 빌딩을 세우겠구만. 얘가 살살 웃기만 해도 밥부터 커피까지 사다 바칠 사람이 한 다스는 될걸?”
“그런 얘기야?”
“그래. 이 얼굴을 데뷔 안 시키면 그게 똥멍청이지.”
“그래서 안 쓰게?”
“미쳤어? 당연히 써야지.”
너무 잘 생겨서 타박을 들은 태주였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꽤 있었다. 데뷔 초기에는 외모에 연기력이 묻혀서 욕 아닌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기분 나쁜 건 아니지?”
“네, 괜찮습니다. 전에도 많이 들었던 얘기라.”
“응? 경험 없다고 하지 않았어?”
“하하하.”
“어디서 들었는지 알아서 뭐하게. 외모 때문에 저평가되는 배우는 항상 있었어. 잘생겼든 못생겼든, 결국 연기를 잘해야 살아남는 거지.”
“야야. 그래도 못생긴 것보단 잘생긴 게 나아. 잘생겨서 잘리면 그래도 낫지, 못생겨서 잘려봐라,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낸다.”
정한선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모습이 실생활에서도 보였다. 생활연기, 생활연기 하더니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촬영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고, 웃으니까 그냥 주변이 다 환하네.”
“큭큭.”
“고만 웃어. 그런데 너 가요는 잘 부르냐?”
“네? 가요요?”
“그래, 프로필도 오디션도 팝송만 부르더만. 가요 부를 줄 알아?”
“네. 가요도 많이 불렀어요.”
영화 관련해서 가볍게 얘기를 나눈 후에 헤어졌다. 어차피 같은 소속사라 일정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태주는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상태라 더 쉬웠다. 태주는 정한선이 직접 건네준 대본을 잘 챙긴 후에 회사로 돌아왔다.
*
사무실에 도착하자 아홉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두 선배 배우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즐거워 시간이 이렇게 늦은 줄 몰랐다. 태주는 속도를 높여 사무실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태산아?”
회의실 안에 있을 거라 여긴 태산이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안에 있었다. 사람들은 한쪽 편에 몰려서 저마다 폰을 손에 들고 태산이를 촬영하고 있었다.
태산은 어디서 났는지 푹신한 쿠션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주변엔 처음 보는 고양이 장난감이 가득했다. 우 팀장님이 챙겨둔 이유식을 먹였는지 배가 볼록하니 올라와 있었다.
“우 팀장님?”
“흠흠. 이태주 배우님. 식사는 잘하셨나요?”
“네, 좋았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태산이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감사할 것까지야.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래다 드릴게요.”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
“택시라니요, 태산이를 어떻게···. 늦었으니 태워드리겠습니다.”
잔말 말고 타고 가라는 눈빛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태산이가 이곳에서도 추종자를 만든 것 같았다. 태우에 이어 우 팀장님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든 태산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귀여운 표정으로 다리에 엉겼다.
돌아오는 차 안.
“영화는 일러도 6월에나 촬영이 들어갈 거예요. 야외 신도 많고, 정한선 배우님도 아직 작품이 끝나신 게 아니라서요. 지금이 2월이니 그 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들 오디션 먼저 보세요. 김견우 매니저 하고 상의하시고요.”
“네.”
“그리고 김견우 매니저에게도 주의 주겠지만, 건강에 주의하세요. 회복 기간인데 돌아다니지 마시고요.”
“저 다 회복되었는데요.”
“뭐라고 했죠?”
눈을 치켜뜨는 모습에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얌전하게 알았다고 대답하자 그제야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흠흠. 태산이 맡길 일 있으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맡기시고요. 배우님을 돕는 건 저희 직원들의 당연한 일이니까요.”
“네? 네, 감사합니다.”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건 업무 외의 일이 분명했지만, 태산이를 예뻐해서 건네는 말 같았다. 좋은 의도로 건넨 말을 굳이 트집 잡을 필요는 없었다.
트리즈의 사람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아직 오랜 시간을 본 건 아니지만 친절하고 생각보다 더 자신을 위해주고 있었다. 신인배우팀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빨리 만나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