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1
120. 이레귤러의 목적 >
태주가 바로 뒤를 쫓아갔지만, 그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분장실들을 모두 돌아봐도 찾지 못해서, 단역들이 기다리는 곳에도 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포기하지 않고 주차장 쪽으로 그를 찾으러 가는 태주를 급하게 뒤따라온 견우가 말렸다.
“제가 제작진에게 그 사람 연락처를 물어보겠습니다. 태주 씨는 촬영장으로 돌아가십시오.”
“태주 씨.”
“…후우. 알겠어요. 매니저님 그 사람 연락처 꼭 알아봐 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태주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신 말고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또 있는 것은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득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이 회귀한 이유를 알 수 있을지 몰랐다.
회귀의 조건을 충족했다는 메시지는 항상 그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는 회귀를 위한 어떤 특별한 일도 한 기억이 없었다. 특이한 물건을 얻은 적도 없었고, 이상한 사람을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돌아온 이유를 어쩌면 좀 전의 남자는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회귀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번엔 반드시 거절해야 해.’
꿈의 정원, 정원 식구와 현실의 가족들. 그에겐 모두 절대로 일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희도 태산이도 다른 사람들도 다시 만날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만약 2년 전 돌아올 때와 같은 강제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태주는 오늘처럼 촬영이 힘들다고 느낀 것은 오랜만이었다. 긴장을 조금만 늦춰도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촬영장에서 벗어난 남자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대사를 나눠서 맡아야 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원인 제공을 한 격이 되었다. 박지헌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태주는 남에게 폐를 끼친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별일이네. 네가 이렇게 집중 못 하는 건 처음인데. 무슨 일이야?”
“네?”
“갑자기 대사 늘어나서 그래?”
“네?”
NG를 두 번이나 낸 태주가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굳은 몸을 가볍게 풀고 있을 때였다. 박지헌이 다가와서 그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태주는 지금 박지헌이 무얼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촬영 전에 태주와 말다툼을 하고 촬영장을 나가 버린 남자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그였다. 태주가 그 남자를 찾아다니다가 겨우 촬영 시간에 맞춰서 온 것도 모두 봤었다.
“아까 남자분 일이 자꾸 생각나서요.”
“뭐? 누구?”
“형도 봤잖아요. 촬영 전에 저쪽에서 저랑 얘기하다 뛰쳐나간 남자요.”
“누구? 모르겠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
박지헌이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의심스러웠다. 진심인가 캐묻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촬영이 바로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혼란스러웠지만, 의문을 묻어 두었다. 촬영이 우선이었다. 지금은 의문을 접어 두고 촬영에 집중해야 했다.
“지헌 형. 시간 좀 있어요?”
“30분.”
“그 정도면 충분해요. 차 타드릴게요. 제 분장실로 가요.”
“오야. 가자.”
겨우겨우 박지헌과 찍는 협상 신을 끝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태주는 박지헌을 자신의 분장실로 안내했다. NG가 났을 때, 그와 나눴던 대화를 이어서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다음 촬영까진 시간이 좀 있었다.
태주는 박지헌과 견우에게 내줄 차를 우리면서 물어볼 것을 정리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래도 가장 먼저 그에게 물어볼 것은 말다툼했던 남자를 기억하고 있는지였다.
“형, B 세트에서 촬영하기 전에요. 저랑 말싸움 한 남자 기억하세요?”
“응? 너 누구랑 말싸움했어?”
“네. 키는 평균에 서른 초반이고요. 지난 촬영에서 홍 전무 직속 후배로 나왔던 배우요.”
“홍 전무 직속 후배? 그런 배역이 있었나?”
“네?”
박지헌이 그를 놀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태주는 박지헌의 말이 끝나자 바로 지난 촬영에서 썼던 대본을 펼쳤다.
없었다.
작은아버지 라인인 홍 전무의 직속 후배. 기획조정실의 젊은 과장역이 대본에서 사라졌다. 특허 분쟁이 발생할 만한 사안을 보고하지 않고 숨겨서 박지헌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위기에 빠뜨리는 역이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태주는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는 이미 이런 현상을 겪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는 일을 산이를 데려오면서 이미 경험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매니저님 혹시 촬영 전에 저랑 말다툼한 남자를 보셨나요?”
“예? 말다툼한 남자요?”
“…아니에요.”
견우 역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연락처를 제작진에게 물어봐 주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었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눈치였다. 배우인 박지헌이라면 자신을 속일 수 있을 테지만, 견우는 아니었다. 자신을 속일 일도 없지만, 그럴 만큼의 연기력도 없었다.
태주는 그 남자에게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는 의심을 굳혔다. 능력이든 아이템이든 그 남자는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게 분명했다.
‘같은 회귀자일 수도 있고. 나처럼 정원의 주인이어서 특이한 물품을 가진 걸 수도 있지.’
그나마 이런 일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법이라는 신비한 학문을 익힌 쿠첼루스나 아칸서스에게 오늘 만난 남자의 일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
집으로 돌아온 후에, 태주는 쿠첼루스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서 얘기했다. 남자가 며칠간 자신을 적대했고, 그 때문에 얘기를 나눠 보려다가 남자가 자신이 회귀한 것을 아는 듯한 말을 하고 떠났다고 설명했다. 또 촬영하는 사이에 사람들의 기억이 조작한 것처럼 사라진 얘기도 했다.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진 자라. 시간 마법은 제 전공 분야가 아니라,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그런가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가 태주 씨를 적대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입니다.”
“음. 적대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무리 기억을 뒤져 봐도 그 남자와는 처음 본 사이였다. 회귀 전에도 후에도 그 남자와 만난 기억은 없었다. 이번 더 노블레스 촬영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태주는 그 남자에게 해를 끼친 적도 그 남자의 무언가를 뺏은 적도 없었다. 대체 처음 보는 자신을 그가 적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 없이 적의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 남자는 태주 씨의 일을 잘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보였어요. 제가 원래 데뷔하는 시기까지 알고 있었어요.”
“알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적대하는 중입니다. 대비가 필요합니다.”
“대비요?”
“태주 씨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마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태주는 쿠첼루스가 말하는 대비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쿠첼루스가 맡기라고 했으니, 맡기면 될 것이다.
대비는 쿠첼루스에게 맡기고 그는 사라진 남자를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태주 그 혼자만이 기억하는 남자였다. 혹시 나쁜 의도를 가지고 다가왔을 때 알아보려면 잘 기억해 둬야 했다.
*
그날 태주는 여전히 그의 꿈의 정원에 머무는 아칸서스에게도 그 남자의 일을 물어봤다.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닌 아칸서스이니 어쩌면 그 남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아칸서스는 태주의 설명만으로 그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레귤러야.”
“이레귤러? 저번에도 나왔었던 단어네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각 차원을 관리하는 영역과 시스템이 다른 것은 알지?”
“네, 정원사 협회 외에 용병 협회, 길잡이 협회 등이 있다고 들었어요.”
“잘 아네. 이곳은 정원사 협회의 시스템이 적용된 곳이야. 그리고 그 남자는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는 중이지. 그런 자를 이레귤러라고 불러.”
정원사인 그가 사는 차원은 정원사 협회의 시스템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그가 꿈을 통해 정원을 오갈 수 있는 것도 협회에서 쿠첼루스와 태산이의 신분을 만들기 위해 인과관계를 건드리는 것도 모두 정원 시스템의 허락과 관리를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태주가 만난 남자는 정원 시스템이 아닌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레귤러였다. 그의 능력은 정원 시스템의 직접적인 사용자인 태주와 그의 펫, 그리고 정원의 일꾼 쿠첼루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대로 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레귤러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이었거든.”
“어? 혹시 정원이 위험한가요?”
“아니. 정원은 괜찮아. 꿈의 정원은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야.”
“아! 다행이다.”
아칸서스는 이레귤러의 소행이라고 밝혀진 일들을 몇 가지 설명했다. 그중에는 태주가 직접 겪은 일도 있었다. 정원의 피라미드에 요정 숲의 생물과 시설이 넘어왔던 사건이었다.
그 외에도 이레귤러의 소행으로 보이는 일들이 꽤 많았다. 마법 물품의 소유주가 갑자기 변경되는 일도 있었고, 협회에서 허락하지 않은, 추적할 수 없는 이동문이 열린 일도 있었다. 또 협회 창고 물품이 도난당하기도 했고, 상점 시스템에 간섭하려던 시도도 있었다.
“협회에 이레귤러를 발견했다고 신고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대비가 필요해.”
“네?”
“아까 설명했잖아. 이레귤러의 능력은 정원사에게 통하지 않아. 그러니 시스템이 아닌 방법으로 공격해 올 거야.”
“네? 대체 왜요?”
자기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정원사를 보고 아칸서스는 답답해했다. 정원사가 욕심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설명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할 줄은 몰랐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 욕심에 쉬이 휘둘리는 존재였다면, 아마 정원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는 이레귤러야. 자기 능력을 멋대로 휘두르길 바란다고.”
“그렇죠.”
“그리고 그런 이레귤러에게 가장 방해가 되는 게 정원사고.”
“아!”
“능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야말로 욕심 많은 이레귤러의 제일 큰 방해꾼이라고.”
아칸서스는 이레귤러가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돈과 지위, 혹은 명예나 명성을 빼앗아 그를 고립시키려 들지도 모른다 경고했다. 또 물리적인 방법으로 그를 해치려 들 경우도 대비해 두라고 얘기했다.
쿠첼루스와 아칸서스에게 경고를 들었지만, 태주는 내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지구에는 수백 개의 나라가 있고, 수십억의 인구가 퍼져있었다. 그중의 한 명에 불과한 자신을 굳이 찾아내 해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레귤러가 무얼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면 자신을 신경도 안 쓸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을 적대하면서도 촬영장에 계속 남아 있었다. 며칠 동안 같이 촬영했지만,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말을 걸기 전까지 자기가 맡은 배역을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다.
“어?”
“왜?”
“아칸, 혹시 다른 시스템은 외모를 바꿀 수도 있나요?”
“아마도 가능할걸?”
“아! 어쩌면….”
태주는 회귀 전에 자신을 홀렸던,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 혼자 빛나서 부러움을 느끼게 했던, 배우에 관해서 설명했다. 무슨 영화에 출연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상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이어서 어제 그와 말다툼을 한 남자가 혹시 그 배우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애기했다.
“얼굴이 전혀 다르긴 한데, 바꿀 수 있다면 동일인물일 수도 있겠어요.”
“흠. 아마 정원사 말이 맞을 거야.”
“그럴까요?”
“이레귤러끼리는 서로를 꺼리거든. 그러니 정원사의 세상에 이레귤러는 그 혼자라고 봐도 돼.”
태주는 아칸서스에게 이레귤러가 유명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회귀 전에도 후에도 배우 일을 하고 있었다. 만약 어제의 남자가 회귀 전 상을 받은 배우와 동일인이라면 그는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 된다.
“드라마가 재밌긴 한데…. 굳이 이레귤러의 능력까지 사용해서 유명 배우가 되길 바랄까?”
“음. 배우가 유명해지는 건 정말 운이 필요해요. 대본, 연출, 배역, 시기까지 전부 맞아야 하거든요. 자본이 많으면 가능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죠.”
“흠.”
어제 만난 배우는 서른 초반에 케이블이지만 드라마에서 괜찮은 비중의 조연을 맡았다. 아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경력이었다. 만약 그 자신이 어제의 배우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떠올려 봤다.
‘나라도 시스템으로 빵 뜨고 싶을 것 같은데. 뜨고 나서 배역을 골라서 연기할 것 같아.’
그는 무명 시절을 겪지 않았지만,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말로 다 하기 힘든 괴로운 일일 것이다.
“이레귤러의 생각 따위 알 필요 없지. 정원사, 우선 협회에 신고부터 하라고.”
“네.”
“그리고 정원사는 그냥 몸조심이나 해. 솔직히 이레귤러랑 맞설 능력은 없잖아?”
“그렇긴 하죠. 아니. 잠깐만요, 아칸.”
무능력한 정원사라며 태주를 놀린 아칸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아직 못 본 드라마가 많다며 주섬주섬 간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태주는 아칸서스의 태연한 모습에 화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말대로 몸조심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는 옅은 패배감을 느끼며 정원사 협회에 신고하러 책 모양 조각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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