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3
122. 루머 >
쿠첼루스가 많이 걱정했지만, 이레귤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레귤러가 회귀 전 상을 받았던 배우라고 확신하고 있던 태주는 11월 말에 열리는 시상식을 눈여겨보자 생각했다.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이레귤러니까, 그가 원하지 않는 한 태주 쪽에서 찾기는 힘들었다. 우선 아칸서스의 말대로 몸조심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었다.
연말이 다가오자 시상식 관련한 기사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작년 말에는 수상을 노린 두 영화의 관계자들이 엄청난 숫자의 기사를 뿌렸었다. 태주가 독립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기사가 순식간에 묻힐 정도였다. 물론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상한 영화가 했었다.
‘그래도 멧돼지를 잡는 바람에 뉴스에도 나왔었지.’
더 노블레스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이야기가 늘어지는 구간 없이 대립과 긴장이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시상식이 없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방영되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게 지상파였으면 태주, 네가 신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었는데 아깝다.”
“SBC였으니까요.”
“선율 성적 좋았잖아. 혹시 선율로 신인상 못 받을까?”
“어려울 것 같은데요. 여름에 ‘신의 동행’이 천만을 찍었잖아요. 그쪽에서 받겠죠.”
말은 천만 영화가 받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태주는 속으로 그 이레귤러 배우가 받을 거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영화가 상을 받느니, 차라리 이레귤러가 능력을 사용해서 상을 받는 게 나았다.
“영화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SBC는 가능성 있는 거 아니야?”
“힘들걸요.”
“왜? 아무리 아스타가 돈을 많이 썼다지만, 도깨비 무사도 성적 좋았잖아. 지상파 미니에서 두 자릿수로 마친 게 어디니?”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면 남자 신인 연기상이나, 조연상 정도는 받아야 정상인데.’
사실 성적이 좋은 도깨비 무사에 상을 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만한 일이긴 했지만, 변명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반기에 방영된 드라마이기도 했고, 작가 오수현도 메인 감독 한민혁도 모두 케이블로 옮겨 간 상태였다.
도깨비 무사가 SBC 자체 제작 드라마였지만, 그 외에 자체 제작 드라마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도깨비 무사만은 못했지만, 7~8%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아스타 바로 전에 방영됐었다. 모두 그 드라마의 출연자 중에 수상자가 나오리라 예상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박지헌의 소속사에서 더 노블레스 촬영을 핑계로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다. 트리즈 쪽도 애초에 상을 받을 거란 기대가 없어서 태주와 상의한 후 촬영 스케줄을 조정하지 않았다. 트리즈는 촬영을 일찍 끝내고 쉬고 싶다는 태주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미 금•토 대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지만, 경쟁작 촬영 때문에 시상식 참석을 거절한 배우들에게 상을 줄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번 연말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집은 무슨. 내내 촬영하잖니.”
“킥. 그렇긴 하죠.”
“아! 태주야. 이거 좀 봐 봐.”
“뭔데요?”
미나가 내미는 종이에 써진 글을 읽는 태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녀가 내민 종이에는 읽기도 힘든 긴 이름의 해외 화장품과 향수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슈트와 구두, 시계, 액세서리 브랜드명도 적혀 있었다.
“우리 아기 첫 로션이 뭐니?”
“커흠.”
“네가 남자 화장품 광고를 안 하는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지. 차라리 네가 광고하는 보습 크림 이름을 대지 그랬어.”
“갑자기 물어봐서 당황해서 그랬어요. 그런데 저 이 화장품들 쓴다고 해도 되는 거예요?”
“그거 너 메이크업할 때 실제로 쓰는 거야.”
백스테이지 컨투어링 팔레트, 스태리 나이트 아이라이너 등 이름이 길긴 했지만, 특이해서 외우기는 편했다. 태주는 미나가 건넨 종이의 이름을 외우면서 솔직히 남자 배우인 자신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네가 피부가 좋아서 그래. 나한테도 다른 스타일리스트들이 꽤 많이 물어봐.”
“그, 그래요?”
“응. 기초부터 시작해서 네가 다니는 샵도 자주 물어봐.”
“잘 안 다니는데.”
“그러니까. 말해도 안 믿더라. 나만 거짓말쟁이 취급당했지 뭐니.”
그의 외모가 주목받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연기보다 외모가 화제가 될 걸 예상하기도 했었고, 이번에는 회귀 전보다 광고도 화보도 많이 찍었다. 더 빨리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우선은 더 노블레스에 집중하고, 나중에 연기력이 중요한 배역으로 하나 골라서 출연해야겠다.’
더 노블레스 방영이 시작되고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도 촬영은 한 달이 넘게 남아 있었다. 그런 태주의 스케줄을 업계의 사람들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그에게 대본과 시놉시스들이 줄지어 도착하고 있었다. 흥행작을 연이어 골라내고 이미지도 실력도 좋은 배우였다. 이십 대의 젊은 남자 배우를 바라는 작가와 제작사의 러브 콜이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주는 조연으로 두 번 출연한 것이 다였지만, 매번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연기와 놀라울 정도로 좋은 작품 성적을 받고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아무 때나 오디션을 진행하거나, 오디션 없이도 바로 출연 계약서를 쓰겠다는 곳도 있었다.
그는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시상식과는 그다지 연이 없었지만, 인지도와 실력을 무섭게 쌓아 나가고 있었다.
*
태주의 팬 카페와 SNS 등에 태주와 관련한 이상한 얘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태주가 클럽에서 여성 팬과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 목격담. 사진은커녕 사인도 해 주지 않는다는 얘기와 사진을 찍으려 하자 화를 냈다는 얘기였다.
그런 이상한 얘기만 올라왔다면 루머겠거니 했겠지만, 태주로 보이는 사람의 사진이 증거로 올라오고 있었다. 얼굴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입은 옷과 액세서리가 태주가 화보에서 착용했던 것들과 비슷했다.
헤어스타일도 지금 더 노블레스에서 하고 나오는 것과 비슷하고, 서 있는 모습이나 팔짱을 낀 모습도 같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기다란 팔다리가 얼핏 보면 태주와 비슷하게 보였다.
사무실의 한쪽 벽면을 화이트보드가 가득 채우고 정 가운데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용 테이블이 놓인 곳이었다. 다른 한 편에는 최신식 컴퓨터와 통신 장비, 여러 가지 장치들이 수사 기관의 사무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화이트보드가 설치된 벽 앞으로 정장을 입은 여성이 레이저 포인터를 들고 섰다. 그녀가 자리하자, 회의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입을 열고 조금 굳은 목소리로 신호를 줬다.
“전 실장. 보고해.”
“네. 처음 제보가 올라온 것은 수능이 끝난 며칠 후인 11월 17일이었습니다. 이태주 배우님에게 사인을 요청했던 팬이 매몰차게 거절을 당한 후 SNS에 적은 글이 팬 카페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그날 우리 배우님은 뭘 하고 계셨지?”
“W 호텔에서 단독 신 및 더 노블레스 6화에 나온 주식 위임 건으로 협박을 당하는 신을 촬영하고 계셨습니다. 조연의 계속된 실수에 새벽 1시까지 촬영하시고, 2시에 귀가하셨습니다.”
탁! 전 실장의 보고를 듣던 여성이 회의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쳤다.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와 같이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화가 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살벌하게 눈을 빛냈다.
“감히. 우리 배우님 가시는 길에 흙탕물을 뿌려! 전 실장.”
“네. 이사님.”
“목격담에 나온 남자를 추적하고 있겠지?”
“네. 지금부터 그 남자를 ‘사칭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칭남이 주로 출몰하는 지역은 압구정동의 카페와 강남의 클럽 S1입니다. SNS 제보를 기반으로 추정한 결과 압구정역에서 청담동 L 호텔 인근이 사칭남의 주 활동 지역으로 보입니다.”
“좋아. 다들 상황이 어떤지 이해했을 거로 생각해요. 지금부터 우리 배우님 사칭남을 추적하세요.”
“네. 여사님.”
회의 테이블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짧게 대답한 후에 자리로 향했다. 각자 최신형 컴퓨터가 설치된 책상으로 가더니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사칭남의 사진을 분석해서 어느 지역에서 찍힌 것인지, 시간과 위치를 특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칭남의 말투와 관심사를 분석해 나이와 취향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태주를 위해 모인 사칭남 검거 TF팀은 팬클럽의 정예 중의 정예였다. SKY 출신, 경찰 출신 그 외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팬들이 모였다. 이들을 불러 모아 사무실을 연 사람은 순식간에 열혈팬으로 등극한 논현동 성덕 여사님이었다.
*
최근 SNS에 태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트리즈에선 언제나처럼 태주의 연기나 외모를 찬양하는 얘기인 줄 알았다. 팬 카페나 배우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이 여전히 더 노블레스에 관한 것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기류가 퍼지고 있었다. 태주의 외모가 전부 화장발이라는 얘기부터 친절하기는커녕 오만하고 사람을 무시한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었다. 사인은커녕 사진도 찍어 주지 않고 사람을 밀치고 가 버렸다는 목격담도 올라왔다.
이상한 소문이 돌자 트리즈는 태주의 공식 SNS를 수시로 확인했다. 얼마 전부터 가끔 태주가 직접 사진을 올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식 SNS에는 태주가 산이나 태산이와 어울려 노는 사진만 한 장씩 올라올 뿐이었다.
매니저인 견우에게 확인해봐도 태주는 여전히 촬영장과 집을 왕복하고 있었다. 기껏 외출하는 것도 쿠첼루스나 동생들과 저녁 먹으러 음식점에 가는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그의 촬영 일정을 보면 거리나 카페 같은 곳에서 팬을 만날 여유가 전혀 없었다.
“어? 어? 실장님!”
“뭐야? 무슨 일이야?”
“여기요. 이것 좀 보세요.”
홍보실의 김 실장은 ‘에이.’라는 말버릇을 가져 A라고 부르는 직원이 놀란 목소리로 자신을 찾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갔다. A는 매번 자신과 맞먹으려 들지만, 일머리는 나쁘지 않아서 그와 합이 잘 맞는 부하 직원이었다. 그런 그의 놀란 목소리에 그도 궁금해져 바로 화면을 확인했다.
A가 화면에 띄운 것은 태주의 팬 카페 공지였다. 그곳엔 키는 태주보다 조금 작았지만, 팔다리가 긴, 얼핏 보면 비슷하게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얼굴은 화장이 진하고 잘 나오지 않았지만, 태주로 보이게끔 메이크업한 상태였다. 헤어스타일도 더 노블레스에서 태주가 한 스타일과 같았다.
“우리 배우님 사칭남. 뭐? 사칭남?”
“아! 역시 그렇구나.”
“뭐야? A, 너 알고 있었어?”
“에이. 제가 누군데요. 알고는 있었죠. 이런 짓을 할 거라 생각을 못 했었죠.”
말을 마친 직원 A가 자신이 찾은 SNS 계정을 모니터에 띄웠다. 그 안에는 태주의 코스프레가 잔뜩 있었다. 도깨비 왕은 의상 퀄리티가 낮았지만, 그 외에 우유 CF, 슈트, 시계, 화장품 등의 화보 촬영은 거의 똑같이 흉내 내고 있었다.
“뭐야? 왜 우리 태주 씨 흉내를 내고 다녀?”
“에이. 연예인 따라 하는 거야 다들 하는 거잖아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씁. 빨리 말 안 할래?”
“여기요. 팬 카페에서 추적한 결과요.”
문제는 태주의 코스프레 사칭남이 여성 팬과 클럽에서 노는 사진이었다. 교묘하게 자기 얼굴을 가려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마치 태주가 여성 팬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사진에는 사칭남이 태주 행세를 해서 받은 건지, 아니면 그냥 받은 건지 모를 명품 선물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캡처 아래쪽엔 ‘#이태주 #선물 인증 #팬’이라고 헷갈리기 쉬운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사칭남이 주로 사진을 찍은 장소는 클럽, 칵테일 바, 유명한 카페 등으로 사실 태주는 전혀 가지 않는 곳이었다.
“이 썩을 놈이 지금 매일 촬영장에서 사는 우리 태주 씨 흉내를 내면서 처놀고 다닌 거야?”
“헉. 실장님 바른 말, 바른 말.”
“아니. 그래 이 dog 아니지, 이 bug baby가 태주 씨인 척 여자들이랑 어울렸다는 거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여기 이 남자 조심하라고 팬 카페에 나와 있어요.”
팬 카페 공지에는 태주의 스케줄과 남자가 목격된 시기를 대조해 놓은 표도 있었다. 태주의 스케줄은 대부분이 촬영과 인터뷰 혹은 촬영과 화보였다. 개인적으로 팬을 만나거나 클럽 같은 곳에 갈 수 있는 여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김도진 실장은 태주의 사칭남이 여자 어깨를 감싸고 다정한 포즈로 찍은 사진을 보자 짜증이 났다. 솔직히 그가 보기에 태주는 그 얼굴로 왜 저러나 싶은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어 관리는 편했지만, 제 나이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스물하나, 이제 곧 스물둘이 되는 태주는 취미도 취향도 나이에 걸맞지 않았다. 그는 분재, 꽃꽂이 전시회를 다니거나 무슨 무슨 화가전, 사진전 같은 예술 전시회를 보러 다녔다. 그것도 매우 가끔이었다. 평소엔 주로 태산이 산책을 시키거나 동생과 장을 보는 게 그가 하는 외출 전부였다.
취미도 독서와 다도이고 수집하는 것도 그 나이 젊은이들과 달랐다. 명품 시계나 자동차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새로 나온 반려동물 용품이나 다기, 명차(名茶) 같은 것이었다.
“혼자 조선 시대처럼 사는 우리 태주 씨를 감히 욕 먹여?”
“에이. 실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왠지 돌려 까는 것 같잖아요.”
“칭찬이야. 칭찬.”
농담처럼 조선 시대 사람 같다 말했지만, 실제로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김 실장이었다. 여유 시간이 나면 친척 동생을 돌보는 게 일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클럽에 놀러 가고 여자랑 데이트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에이. 체포까지 하면 좋은데.”
“수사 기관도 아닌데, 무슨 체포야. 여기까지 추적한 것도 대단한 거지. 우선 DM 좀 날려봐.”
“사칭남한테요?”
“응. 코스프레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사칭에 금품갈취는 엄연히 범죄야.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바로 고소한다고 말해.”
“예이. 알겠슴다.”
직원 A는 김도진 실장의 말대로 사칭남에게 DM으로 먼저 경고를 했다. 만약 그래도 반성하지 않으면 정말로 고소를 진행할 것이다. 최근 태주 관련 이슈는 기본이 무관용인 것 같았다. 당한 것은 반드시 기억했다, 두고두고 갚아주는 게 신조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팬클럽 화력이 이래요?”
“…음. 부디 사칭남이 반성을 해야 할 텐데.”
‘신세 망치기 전에….’
김도진 실장은 사칭남이 날로 거세지는 태주의 팬클럽 화력에 신상이 탈탈 털리다 못해 사회생활도 불가능해지기 전에, 정신을 차리기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