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4
123. 참교육과 시상식 >
시상식 참여 일정이 없는 태주는 턱시도를 맞추는 일도 인터뷰도 할 필요 없었다. 대신 그는 더 노블레스의 촬영에 힘을 쏟고 있었다. 10월부터 이어진 촬영이었다. 미리 찍어 둔 분량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촬영이 길어져 12월 안으로 촬영을 마치기 힘들어 보였다. 1월은 계획이 따로 있으니 힘을 내서 찍어야 했다.
“태주야. 너 이거 끝나면 뭐 할 거야?”
“제주도 여행 갈 거예요. 원래 여름에 여행 갈 생각이었는데, 못 갔어요.”
“아! 박창환 감독 영화 출연했었지?”
“네. 이제 후반 작업도 끝났을 것 같긴 한데, 개봉은 언제 할지 모르겠네요.”
“주제가 복수라고 했지? 확실히 연초에 개봉하긴 좀 그렇다.”
개봉 시기는 제작사에서 정할 것이다. 우정 출연한 태주야 나중에 시사회에나 참석하면 될 일이었다. 홍보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태주까지 나설 일은 아니었다.
“형은요? 드라마 끝나면 뭐 하실 거예요?”
“흐흐흐.’’
“왜 그렇게 웃어요? 음흉해 보이게.”
“음흉은. 나도 여행 가야지. 푹 쉬고 다음엔 영화 대본으로 골라 보려고.”
푹 쉬고 영화 대본을 고른다는 박지헌이 부러운 태주였다. 태주는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갈 생각으로 대본을 찾고 있었다. 내년에 군대에 갈 생각인 그는 가기 전에 최대한 여러 작품을 찍어 둘 생각이었다.
‘마땅한 게 없네. 너무 급하게 찾아서 그런가.’
신조선 사또전 일정이 틀어지면서 태주를 위해 세웠던 우 팀장의 계획은 많이 바뀌었다. 거기에 예상에 없던 더 노블레스 촬영으로 바로 차기작을 잡는 게 애매했다. 오디션도 필요 없다, 무조건 환영이라는 작품들이 있었지만, 딱히 끌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가 군대에 가기 전에 인지도를 끌어 올리길 바라는 우 팀장님이었지만, 휴식기가 너무 짧은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풀 시간으로 한 달은 너무 짧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태주야 정원이 있어서 상관없었지만, 그녀의 걱정은 타당했다.
3월부터 방영하는 작품에 들어가려면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더 노블레스가 1월 첫 주에 끝나면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지만, 미뤄 둔 화보와 광고를 찍어야 했다.
박지헌과 태주가 촬영 준비가 끝나길 기다리는 도중 이세하가 씩씩거리면서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화를 뿜어낼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다, 태주를 보고 흉신 악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태주! 너!”
“네?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지금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네?”
“내가 고양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까, 어? 네가 좀 전에 커피숍에서 여자 끼고 가면서? 어? 뭐지?”
이세하는 태산이가 들어가 있는 텐트를 한 번 본 후 텀블러를 들고 있는 태주를 한 번 봤다. 그리고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좀 전에 커피숍에서 태주를 봤는데, 지금 촬영장 안에 그가 있었다.
“너, 너, 너. 어떻게 했어?”
“뭘요?”
“좀 전에 커피숍에서 봤는데.”
“전 한참 전부터 촬영장에 있었는데요.”
“맞아. 얘 나랑 아까부터 계속 같이 있었어.”
이세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감이 잡혔다. 어떤 씹어 먹을 놈이 태주 행세를 하면서 자신을 무시한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충분했다. 최근에 그녀는 고양이를 보러 촬영장에 일찍 오는 편이었다.
“이 새끼! 죽었어.”
“네? 어?”
태주의 반문을 못 들었는지, 이세하가 다시 촬영장을 벗어났다. 그녀의 매니저가 어쩔 줄 몰라 하다 뒤를 따라가는 게 보였다. 청담동의 갤러리를 빌려서 세트를 차리고 있었다. 번화가와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유동인구가 꽤 되는 곳이었다. 그녀가 누굴 보고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지헌 형. 매니저님.”
“어휴. 따라가 보자.”
“냐앙.”
“너는 여기….”
“냥!”
“그래. 같이 가자. 같이 가.”
그는 자신을 데려가라고 날 선 울음소리를 내는 태산이를 안아 들었다. 최근에 태산이는 그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미나가 그런 태산이를 보고 우스갯소리지만 보디가드라고 부를 정도였다. 촬영장이든 마트든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켰다.
‘이레귤러가 나타난 후로 이러니,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지.’
이제 세 살인 녀석이었다. 아무리 맹수이고 애교와 분신이라는 기술이 있다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인과를 건드릴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이레귤러를 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지켜 주려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고 강했다.
“가자. 태산이가 지켜 줘서 형이 너무 든든해.”
“냐앙.”
“크흡.”
“진짜 너희 둘은 심심하진 않겠다. 둘이서도 잘 노네.”
“아하하. 어서 쫓아가요.”
이세하는 이미 촬영장을 나간 상태였다. 어서 쫓아가지 않으면 그녀의 행방을 놓칠지 몰랐다. 물론 그녀를 놓쳐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창 인기인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였다. 아마 사람들이 그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태주 일행은 촬영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사람이 잔뜩 몰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세하가 저곳에 있는 것 같았다. 일행이 인파를 가르려고 다가갈 때였다. 익숙한 이름과 함께 젊은 여성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커피숍에 이태주 와있대.”
“이태주? 더 노블레스 최민준?”
“응. 지금 커피숍 안에 있대.”
“어떡해. 나 사인받고 싶은데.”
일행은 저도 모르게 태산이를 안고 있는 태주에게 시선을 줬다. 태주는 그들과 지금까지 촬영장에 같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함께 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인 두 배우와 다르게 견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태주의 사칭남. 팬클럽에서 태주인 척하며 여자들과 어울린 남자를 추적, 제보한 일이 있었다. 주로 출몰하는 지역이 청담동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아마 그는 근처에서 더 노블레스 촬영이 있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만약 알았다면 오늘 이 근처에서 태주인 척은 못 했을 것이다.
“야! 이 짝퉁 새끼야! 어딜 고양이도 없는 주제에 이태주인 척을 해!”
커피숍 밖까지 들릴 정도로 이세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웅성거리던 주변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태주와 일행은 그 틈을 타서 사람들을 헤치고 재빠르게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이세하가 여자를 옆에 낀 남자의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들려오는 내용은 맞는 말이긴 했지만, 태주는 얼굴을 들기 힘든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네가 그 얼굴에 이태주 사칭이 가당키나 하냐?”
“멍게가 친구 하자고 하겠다. 이태주는 우리 아기 첫 로션을 쓰는 애기 피부야, 이 짝퉁아.”
“이태주 얼굴이 얼마나 작은 줄 알아? 여배우보다 더 작아, 이 대두 자식아!”
“눈깔은 또 왜 이래? 이태주 눈은 촉촉하고 반짝이는데, 이건 왜 이리 썩었어?”
“아니,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넌 고양이가 없잖아. 이태주는 고양이를 화장실까지 데리고 다니는 애야.”
태주는 그 이상 듣고 있기 민망했다. 그는 태산이를 안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감췄다. 자신인 척하는 사람과 비교하는 건 좋은데, 그 내용이 참 맨정신으로 듣고 있기 너무 부끄러운 내용이었다.
“크크윽. 태주야, 너 이세하한테 선물이라도 해야겠다.”
“놀리지 마세요. 지헌 형.”
태주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커피숍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동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당장 어딘가 조용한 곳에 가서 녹화된 영상을 지우고 싶었다. 아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이세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화가 풀려서 그런 게 아니고, 계속 소리 지르는 게 힘든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볼륨을 낮춰서 다다다다 빠른 말로 사칭남을 까고 있었다.
“야. 이태주 머리카락이 얼마나 찰랑거리는 줄 알아? 어딜 빗자루를 달고서 이태주인 척을 해. 척을. 짝퉁 넌 애초에 턱선부터가 틀려먹었어. 턱을 깎든 양악을 하든. 그따위 턱으로 이태주 흉내를 내다니 양심은 있니? 거기다 옷 입은 꼬라지 하고는. 걔는 면티만 입어도 태가 틀려. 안 그래도 내가…”
“제발. 이세하 선배. 그만. 그 정도만 하세요. 제발요.”
태주는 도저히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서고 말았다. 하지만 이세하는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말리러 온 태주를 짝퉁 옆에 세우더니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보세요. 여긴 진짜 이태주. 이쪽은 짝퉁.”
“허억. 이세하 선배.”
“가만있어. 이런 건 확실하게 교육해야지.”
그녀는 짝퉁과 둘을 머리부터 찬찬히 비교하기 시작했다. 짝퉁은 태주가 나타나자 못 견디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좀 전까지 자신이 태주인 척 속였던 여자에게 막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한 여자가 그를 노려보면서 퇴로를 막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와서 짝퉁, 사칭남을 데려갈 때까지 민망한 상황이 이어졌다.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은 물론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폰을 손에 쥐고 그 상황을 찍고 있었다. 순식간에 태주와 사칭남의 사건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그런 사칭남을 참교육한 이세하에 대한 태주 팬들의 지지가 무섭게 솟았다.
*
11월 말. 어김없이 찾아오는 영화 시상식의 시기가 돌아왔다. 태주는 쿠첼루스와 태산이를 옆에 앉히고 소파에서 차를 우리고 있었다.
시상식을 보는 내내 긴장할 것 같아서 저녁은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일찌감치 먹었다.
“이레귤러가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 같아요.”
“천천히 보기로 하지요.”
“네. 와! 진짜 긴장되네요. 예전에 직접 참석했을 때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차를 좀 드십시오.”
그는 쿠첼루스의 말에 따라 차를 조금 마셨다. 진한 허브향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태주는 화면에 보이는 배우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어봤다. 예상대로였다. 작년에 물을 먹었던 배우와 감독은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여름 천만을 찍은 ‘신의 동행’ 관계자들은 모두 참석했다.
안타까웠다. 아마 저들은 작년에 파행에 가까운 짓을 저지른 심사위원들이 설마 올해도 그런 짓을 할까 하고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그대로인데 무얼 못할까. 그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저들끼리 상을 나눠 먹는 짓을 저지른다.
‘기왕 상 가져갈 거면. 이레귤러가 저런 것 좀 바로 잡아 줬으면 좋겠네.’
쿠첼루스도 아칸서스도 이레귤러가 위험하다고 얘기했다. 태주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앞의 시상식을 보는 그의 마음은 어쩐지 이레귤러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상을 받는 배우가 대체 왜 신인상을 받는 걸까? 그의 아버지가 모 국회 의원이라서일까? 아니면 그가 출연한 영화가 베이비붐 시대가 희생하며 경제를 일으킨 내용이어서인가? 저런 사람보단 차라리 이레귤러가 상을 싹 쓸어 가는 게 나을 뻔했다.
‘어차피 가져갈 거. 신인상에 남우주연상도 같이 가져가면 좋았잖아. 쳇.’
영화제의 1부가 끝났다. 태주는 영화 관계자들이 앉은 자리에서 이레귤러로 보이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어찌면 이번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배우를 하고 있었다. 태주는 그가 유명한 배우가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 시상식에 나타난다면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뀔 것이다.
길게 이어졌던 TV 광고도 2부의 오프닝 공연도 끝이 났다. 카메라의 화면이 천천히 관객석에서 관계자들이 앉은 자리로 이동했다. 태주는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려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했던 배우를 찾기 위해서였다.
있었다.
그를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한, 혼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던 그 배우가 어느샌가 무대 바로 아래, 카메라에 가장 자주 비추어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 바지에 흰색 재킷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채였다.
누구도 그의 등장을 의심하지 않았다. 태주는 혹시 쿠첼루스도 그런가 싶어서 옆을 돌아보다 놀랐다. 쿠첼루스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뜨고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쿠첼루스의 모습에 놀라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태산이도 마찬가지였다. 푸른 눈동자에 매서운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
“나타났네요.”
“저 남자군요.”
“전에 본 모습하고 달라요. 지금이 훨씬 잘생기고 존재감도 커요.”
“그래도 같은….”
“네?”
‘같은 영혼이겠지요. 겉모습이 바뀌었어도.’
이변은 없었다. 아니 모든 게 다 이변이었다.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한, 망한 영화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고 그 주연 배우가 신인상을 받았다. 천만 관객 수를 달성한 영화는 여우조연상 하나를 받았고, 아무 작품도 없는 이레귤러 배우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상식이 끝난 후,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씹을 게 많은 시상식이었으니, 아마 다른 영화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 끊임없이 씹힐 것이다. 물론 다른 영화 시상식이 열리면 비교당하면서 또 씹힐 게 분명했다.
태주가 기사를 확인하는 옆에서 태블릿을 보던 쿠첼루스가 기사 하나를 펼쳐서 태주에게 보여줬다. 이레귤러가 미디어와 한 인터뷰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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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전에도 바로 할리우드로 갔습니까?”
“어? 잘 모르겠어요. 할리우드로 갔는지 한국에 남아서 연기를 했는지. 정확한 건 그의 존재감이 지금보다 적었다는 거예요.”
“할리우드라…. 잘됐군요. 당분간은 안심입니다.”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인지, 단순히 개런티가 높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레귤러인 그가 회귀 전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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