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6
125. 가족 여행 >
태주의 신년은 광고 촬영과 같이 시작됐다. 작년 상반기 방영된 도깨비 무사의 인기에 힘입어 촬영했던 광고에서도 효과가 괜찮았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았다. 화장품, 의류, 식품 등 그가 출연했던 광고 중 몇 개의 재계약이 진행됐다.
정신없이 바쁜 몇 주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계획했던 가족 여행을 갈 수 있었다. 태주 자신이 먼저 여행 얘기를 꺼내놓고 이듬해가 될 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영화 촬영을 선택한 자신이 원인이었다. 태주는 쿠첼루스와의 약속을 이제라도 지킬 수 있어서 안도했다.
“주차장에서 차 찾아서 펜션으로 가자.”
“어, 형. 근데 하늘 봐 봐. 눈 올 거 같아.”
“일기 예보에서 눈 온다는 뉴스는 못 들었는데.”
“나도 일기 예보 보긴 했는데, 하늘이 시커메.”
태우의 말대로였다. 제주도로 출발하기 전에 뉴스를 확인했을 때는 분명 맑은 날씨 였는데, 하늘 한쪽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태주는 심상치 않은 날씨에 펜션이 아닌 마트부터 들리기로 했다. 3박 4일을 계획하고 온 여행이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먹거리를 많이 준비할 생각이었다.
“마트에서 물건 먼저 사자.”
“그러자. 비라도 오면 다시 나오기 귀찮을 것 같아.”
“쿠첼, 산이랑 어서 타세요. 연우도, 트렁크는 형이 닫을게. 어서 타.”
“네.”
벼르고 있던 가족 여행인데, 날씨가 도움 되질 않았다. 태주는 속으로 기상청을 욕하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찾아갔다. 예전에 비슷한 시기에 폭설로 제주 공항이 마비된 적이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장을 보고 펜션에 가면 날짜를 며칠 정도 연장하자고 생각했다.
뒷자리에서 태산이가 바라는 대로 젤리 포장을 벗겨 주던 쿠첼루스의 손에서 봉지를 뺏는 연우가 보였다. 태산이에게 한없이 약한 쿠첼루스 대신 연우가 태산이를 달래고 있었다.
산이 모습은 펜던트의 마법으로 변한 것이라 태주도 쿠첼루스도 아이 건강을 신경 쓰지 않고 바라는 대로 주는 편이었다. 과자나 아이스크림도 제한 없이 주고 있었는데, 연우는 그 모습이 걱정된 것 같았다.
“단 걸 너무 먹으면 나중에 밥을 안 먹으려고 해요.”
“산이 먹보야. 간식 배 따로, 고기 배 따로 있어.”
“그래도 안 돼요. 벌써 세 개나 먹었어요.”
“앙. 에쭈.”
‘큽. 미안하다. 태산아.’
태산인 든든한 지원군 태주에게 연우를 가리켰다. 아마 자신에게 젤리를 주라고 말해 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태주는 속으로 태산이에게 사과했다. 그는 한 번 시도했다가 연우에게 야단만 들은 후 고개를 돌리고 운전에 집중했다.
진짜 아이라면 연우의 말대로 하는 게 맞았다. 아마 제대로 된 보호자라면 간식을 태주와 쿠첼루스처럼 많이 주지 않을 것이다.
“다 왔다. 쿠첼, 산이랑 태산이 데리고 먼저 들어가세요. 너흰 형이랑 같이 장 본 거 나르자.”
“어? 눈 온다.”
“일기 예보, 참.”
“형, 고기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
“괜찮아. 산이랑 태산이 둘이 다 먹을 거야.”
날씨는 기상 예보와 다르게 눈이 내렸다. 태주는 마트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기, 야채, 과일, 탕 재료에 즉석밥 등 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게 충분히 사 왔다. 특히 고기는 태산이와 더미가 먹을 것까지 사 와서 양이 매우 많았다. 펜션 냉장고에 전부 들어갈지 걱정이었다.
펜션으로 짐을 모두 나른 후에 태주는 관리실을 찾았다. 숙박 기간을 연장해둘 생각이었다. 묵을 곳이 없어서 걱정하게 되는 것보다, 위약금을 내게 되는 상황이 차라리 나았다. 태주가 관리실에 들렀다 나온 잠깐 사이에 눈송이가 굵어졌다.
“하필 여행 온 첫날부터 날씨가 이러니.”
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해 볼 생각으로 왔던 태주는 아쉬움의 한숨을 삼켜야 했다. 내일도 날씨가 이러면 보트나 카트 체험은 나중으로 미루고 카페나 미술관 같은 곳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아쉬워하는 그와 다르게 동생들은 신이 난 상태였다. 산이와 태산이를 데리고 펜션 시설을 구경하고 있었다. 쏟아질 듯 내리는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담 안쪽에서 사진도 찍고 있었다. 태산이는 오랜만에 보는 눈이 좋은지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더미와 정원을 뛰어다녔다.
태주는 그런 동생들과 더미의 차림을 확인했다. 제대로 보온 마법이 걸린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한여름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이번엔 제때 보온 마법이 걸린 물건을 선물했다. 사실 쿠첼루스가 너무 추위를 타서 잊을 수도 없었다.
“쿠첼은 안에 있어?”
“응. 형 여기 완전 좋아.”
“하하하. 그래. 눈 더 맞지 말고 들어가자.”
“응. 산아 들어가자.”
“앙.”
태주는 그에게 와서 안아 달라 팔을 벌리는 태산이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태산인 산이로 변하면 어리광이 더 느는 것 같았다.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드는 일이라 그는 좋아했다.
*
[제주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한파에 더해 많은 눈까지 내려서 섬 전체가 고립되었습니다. 제주시 도심에 쉴새 없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걷기 힘들 정도입니다.눈이 잠시 그친 도로에는 차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이 눈이 쌓였습니다. 도로 위에는 비상등을 켠 차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고, 눈길에 고장 난 차들을 견인차들이 속속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한라산에는 1m가 넘는 눈이 내렸고, 해안인 제주시에는 11.5cm, 서귀포에는 9.5cm의 눈이 내렸습니다. 제주 전역에는 한파주의보가 내려졌고….]
심상치 않은 날씨에 예약해 둔 보트 관광 등을 취소한 태주가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공항 폐쇄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침 기상 예보에선 제주도에 10cm 안팎의 눈이 내릴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 9시인 지금 이미 10cm가량의 눈이 내린 상태였다.
“가까운 카페 같은 곳이라도 갈래?”
“아니. 지금 보니까 더 많이 내릴 것 같아. 숙소에 있자.”
뉴스 화면에 나오는 도로 여기저기에 차들이 멈춰 서 있었다. 사람들은 수십 년 만의 폭설이 쌓인 길 위를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이러다가 비행기 못 뜨면 어떡해?”
“운행 재개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헐. 형, 먹을 거 많이 사서 다행이다.”
“하하하. 그래. 안 그래도 숙박 기간 연장해 뒀어, 걱정하지 마.”
뉴스를 보는 동생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험한 날씨에 기분마저 우울해지는 듯했다. 물론 그런 것과 상관없는 태산이는 손에 쥔 인형을 괴롭히며 잘 놀고 있었다.
숙소는 해안가와 멀지 않은 곳이라 눈 내리는 겨울 바다가 그대로 보였다. 뉴스에 집중한 형들과 다르게 혼자 놀던 태산이 눈에 바다가 들어왔다.
“앙!”
“바다야. 바다.”
“빠아.”
“응. 가까이 가 보고 싶어?”
생각해보니 태산이는 바다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산과 계곡은 데려갔었지만, 바다에는 데려간 적이 없었다. 흥분해서 방방 뜨는 태산이에게 옷을 단단히 입혔다. 보온 마법이 걸린 팔찌를 채워 줬지만, 보이는 모습도 따뜻하게 입히고 싶었다.
다 같이 해변 산책로에 잠깐 나가기로 했다. 눈이 더 내려 숙소에서 두문불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해안가를 걷고 싶은 욕심도 조금 있었다. 숙소 이 층에서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겨울 바다를 직접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추, 춥습니다.”
“쿠첼 여기요. 핫팩 주머니에 넣으세요.”
“감사합니다.”
“쿠첼 형. 이거 입으세요.”
모자, 장갑, 목도리, 부츠, 롱 패딩까지 갖출 수 있는 방한 장비를 다 갖춘 쿠첼루스였지만,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마법 아이템도 착용하고 있는데도 너무 추워하고 있어서 태주가 핫팩을, 연우가 판초 우비를 챙겨 줬다.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쿠첼루스는 전생에서 본 적 없는 겨울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태주의 생각과 다르게 쿠첼루스는 보온 마법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마법이 아닌 자연 현상으로 한기를 느끼고, 눈을 맞아보고 싶어서 보온 마법 아이템을 두고 왔다.
“푸엣취!”
“이런. 쿠첼, 이만 들어가죠.”
떠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침에 콧물까지 흘리기 시작한 쿠첼루스의 등을 떠밀어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태산이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발도 파도도 너무 거세져서 이 이상 산책은 무리였다. 동생들도 짧은 산책을 아쉬워하는 눈빛이었다.
태주가 일행에게 내일은 눈이 멎을지 모르니, 내일 제대로 겨울 바다를 즐겨 보자고 얘기하면서 길을 재촉했다. 쿠첼루스는 눈길을 총총 걷는 더미를 안아 들었다. 더미지만 작은 녀석이 배까지 닿는 눈에 털을 적셔가며 걷는 게 신경 쓰여서였다. 더미를 판초 자락으로 덮어주느라 잠시 멈춘 사이였다.
-끼이익!
-쾅!
“쿠첼!”
“악!”
미끄러운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인도 쪽으로 덮쳐들었다. 태주가 멈춰 선 쿠첼루스의 판초 자락을 쥐고 자신 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쿠첼루스가 판초째로 딸려 왔다. 쿠첼루스를 받아 안은 태주의 신형이 뒤로 넘어갈 뻔한 걸 동생들이 받쳐 줬다.
“어우!”
“헉!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습니다.”
“으아! 놀라라. 형, 쿠첼 형 괜찮아요?”
“앙. 앙. 꾸체.”
태주 일행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바빴다. 많이 놀랐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쿠첼루스와 더미가 무사한 걸 확인한 그는 사고를 낸 차의 운전자를 살펴봤다. 차가 미끄러진 충격으로 에어백이 작동된 상태였다. 운전자는 시트와 에어백 사이에 껴있었다.
“여보세요. 119죠. 여기 교통사고가 났는데요.”
-….
“네. JJ 펜션 앞 도로고요. 운전자가 기절한 것 같아요.”
차 안을 살피면서 전화를 걸던 그가 손짓으로 숙소를 가리켰다. 동생들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였다. 기절한 운전자가 깨어날 때까지, 혹은 경찰이나 엠블런스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데 동생들까지 추위 속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동생들이 숙소 쪽으로 가고 있을 때 펜션 관리자 부부가 나왔다. 큰 소리에 놀랐는지 외투를 대충 걸친 채였다. 동생들은 어른들이 나오자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태산이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손님,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괜찮아요. 저도 일행도 다친 사람은 없어요.”
“다행이네요. 무슨 일이에요?”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인도를 덮쳤어요. 119에 신고는 이미 했어요.”
쿠첼루스가 사고를 당할 뻔했지만, 운전자도 고의는 아니었다. 이런 폭설에는 어쩔 수 없었다. 태주는 관리자 아저씨에게 받은 경고 표지판을 사고 차량 뒤쪽에 설치했다.
관리자 아저씨는 연예인이 이런 일에 관여하다 기사라도 나면 큰일이라면서 현장에 남으려는 태주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숙소로 들어온 태주는 거실에 모여 있는 동생과 쿠첼루스를 볼 수 있었다. 아직 진정이 안 됐는지 다들 놀란 얼굴이었다. 태주는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 사고의 처리를 관리인 아저씨한테 맡겼다는 얘기를 전했다.
쿠첼루스와 동생들에게 진정 효과가 있는 차를 타 주고 방으로 들여보냈다. 일행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모두 쉬러 간 것을 확인 하자마자 바로 TV를 켜서 날씨 관련 뉴스를 찾아봤다.
“역시 공항이 폐쇄됐네.”
-위이이잉.
창밖으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와 사고를 수습할 경찰차가 온 것 같았다.
*
제주도에 도착해서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원래라면 카트 체험장에서 신나게 트랙을 돌았을 텐데, 오늘도 숙소 주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태주는 품에 안겨서 자는 태산이에게 이불을 잘 덮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산이 녀석은 산이 모습이 좀 불편한 모양이었지만, 착하게도 호랑이로 바꾸진 않았다.
세수만 하고 나온 그는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관리실에 들렀다. 눈삽과 빗자루를 빌릴 생각이었다. 쿠첼루스나 동생들이 다니기 편하게 눈을 좀 치워 둘 생각이었다.
“손님이 이런 일을 해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요. 저 눈 엄청 잘 치워요.”
지긋한 연세인 관리인 아저씨 부부가 태주 일행이 지내는 곳까지 눈을 치우는 것은 무리였다. 아니 제설차가 다니는 도로 쪽을 제외하면 사실 길이 전부 방치된 상태였다. 태주가 빌린 차도 쌓인 눈이 얼어붙어 도로로 나가기 어려워 보였다.
겨울 패딩을 차려입은 태주가 눈삽을 들었다. 익숙한 자세로 눈을 퍼내서 길 한쪽으로 쌓았다. 눈을 퍼내고 걸리적거리지 않게 쌓는 모양새가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사실 그에겐 태산이 덕에 강제로 갖추게 된 제설 능력이 있었다.
-획! 퍽! 쓰으윽!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펜션에서 도로까지 열심히 눈을 치운 그의 눈에 눈이 쌓인 버스 정류장이 들어왔다. 태주는 어차피 땀을 흘린 김에 버스 정류장까지 길을 내기로 했다. 그는 그렇게 무아지경이 되어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는 리포터로 보이는 여성이 카메라맨과 어제의 사고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곳은 해안가로 이어지는 길목입니다. 어제 이 부근에선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인도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제설 차량의 부족으로 늦어지는 제설 작업에 제주 전역에서 사고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설 작업이 늦어지자 폭설 속에서 주민들이 나서서 눈을 치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리포터 뒤로 패딩을 입은 남성이 버스 정류장 근처의 눈을 길가로 쌓아서 다지는 모습이 잡혔다.
“지금도 제 뒤로는 새벽부터 도로로 이어진 길의 눈을 치우고 있는 주민이 계십니다. 제주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안가 도로 마저 그대로 방치된 상태라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라지만 제주시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설 작업에 관한 주민분의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는 주민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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