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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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눈을 치우고 있던 태주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던 태주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웃는 얼굴로 마이크를 내미는 리포터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눈 내리는 도로변에서 볼 거란 생각은 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헙!”
“안녕하세요. 제주 방송국 이설화 리포터입니다. 제설 작업과 폭설 피해 관련 주민 취재 중입니다. 혹시, 어?”
“죄송해요. 저 제주 주민 아니에요. 관광객 A예요.”
“네? 관광객 A요? 이태주 씨?”
“으아!”
리포터를 본 태주는 당황해서 헛소리를 뱉고 말았다. 주민이 아니라 관광객이라고만 했으면 될 것을 뒤에 A를 붙이는 실수를 했다. 당황한 태주가, 다시 정정하고 인터뷰를 거절하려 했지만, 태주를 발견한 리포터가 그를 그냥 놔줄 리 없었다.
길에서 눈을 치우고 있던, 제주도에 여행 와서 폭설로 발이 묶인 배우라는 화제를 놓친다면, 아마 보도국에 들어가서 두고두고 까일 게 분명했다.
태주는 자신을 놔줄 의사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리포터의 모습에 한숨을 삼켰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시커먼 롱 패딩에 털모자와 장갑, 털 장화. 방송에 나오기엔 너무 자유로운 차림이었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으니 이 모습 그대로 방송에 나가게 생겼다.
매주 드라마에서 고급 슈트에 명품을 두른 재벌가 도련님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지금 그는 얼어서 빨간 볼에 눈삽을 들고 있었다. 게다가 좀 전에는 어리바리한 말실수까지 했다. 동네 주민1 같은 현실감이 팍팍 느껴지는 모습 때문에, 혹시라도 드라마의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풉! 관광객 A 씨? 아하하하.”
“읔. 하. 하. 하. 안녕하세요. 배우 이태주입니다.”
“뜻밖에 반가운 분을 뵙네요. 제주도엔 어쩐 일이세요?”
“드라마 촬영이 끝나서 가족 여행을 왔어요.”
결국, 태주는 맛있는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는 리포터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태주가 인터뷰를 짧게 해 달라는 눈빛을 리포터에게 보냈다. 다행히 연예 뉴스와는 다르게 인터뷰가 길지 않았다.
“제설 작업이 늦어져 수많은 관광객이 제주도에 발이 묶였는데요. 혹시 이태주 씨 가족분들도 늦은 제설 작업에 피해를 보셨나요?”
“사실 저흰 피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어요. 제주도에 며칠 더 머물면 되니까요. 저희보단 제설 작업이 늦어져 농작물의 피해가 클 것 같아 걱정이에요. 어제 겨울 무나 콜라비 같은 농작물 피해가 예상된다는 뉴스를 봤는데, 너무 안타까웠어요.”
“아, 네. 그렇죠.”
어젯밤, 자기 전에 본 겨울 농작물 피해 예상 뉴스가 하필 그 순간에 떠올랐다. 뉴스를 볼 때도 많이 안타까웠는데, 그게 기억에 강하 게 남은 것 같았다. 태주는 제가 말해 놓고도 아차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연기력을 발휘해 정말 농부들이 걱정되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안타까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듯한 촉촉한 눈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 후론 평범하게 인터뷰를 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서 가족들과 며칠 전에 제주에 도착했지만, 첫날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숙소 인근만 겨우 돌아봤다는 얘기 같은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리포터의 입이 귀에 걸렸다. 눈 치우는 주민인 줄 알고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대상이 운 좋게도 가족 여행을 온 배우였다. 그것도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에 나오는 화제의 배우였다. 그녀는 뜻밖의 횡재에 놀랐지만 착실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보도국에도 연락했다.
희희낙락한 표정의 리포터를 배웅한 태주는 팔뚝에 얼굴을 묻고 후회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인터뷰 내용이 엉망이었다.
그는 방송국 차량이 떠나자마자 폰을 꺼내 들었지만 바로 연락을 하진 못했다. 직장인들은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태주의 휴가로 오랜만에 아침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을 견우에게 연락하기 미안했다.
뉴스 인터뷰도 편집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조금 이따 연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침 8시라도 넘긴 후에, 정신이라도 좀 차릴 만한 시간에 연락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숙소에 돌아가면 잊지 말고 꼭 연락하자고 다짐한 태주가 버스 정류장의 눈을 마저 치웠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간 그는 견우에게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을 두고 혼자 나간 그에게 뿔이 난 태산이 부리는 투정을 받아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삐진 태산이를 품에 안고 달래느라 견우에게 연락하는 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날 오후부터 제주 공항의 운행이 재개됐다. 특별기가 편성되고 공항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태주 일행은 계획을 다시 세우고 제주도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실 눈이 아니더라도 다 같이 여행을 즐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쿠첼루스가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쿠첼루스는 감기로 하루를 통째로 침대에서 쉬어야 했다.
태주는 그제야 쿠첼루스가 겨울을 겪어 보고 싶어서 마법 아이템을 두고 나온 사실을 알았다. 의도는 좋았지만, 하필이면 한파와 기록적인 폭설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에서 시도한 게 문제였다.
사막 왕국 출신의 마법사는 처음 겪는 겨울을 대부분 아파트 안에서 보냈었다. 겨울도 한파도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무모할 수 있었다. 물론 무모함의 대가는 감기였다.
몇 가지 해프닝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재밌는 여행이었다. 태산이와 쿠첼루스가 처음 보는 겨울 바다에 감탄했던 얼굴은 제주도 경치만큼 보기 좋았다. 또 한파에 발이 묶여 숙소에서 꼼짝 못 하고 시간을 보낸 일도 괜찮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눈 때문에 꽤 고생했지만, 여행은 무척 즐거웠다. 가족들 모두 여행이 만족스러웠는지, 나중에 다시 오자는 태주의 의견을 반겼다.
*
설 연휴 전인데도 트리즈는 생각보다 분주하지 않았다. 아이돌이나 방송인이 많은 소속사라면 연휴 전에 녹화 방송을 하느라 굉장히 바쁠 테지만, 배우 전문인 이곳은 아니었다. 선물을 보내고 연락을 돌리는 일을 마치자 오히려 평소보다 조금 한가했다.
누군가 휴게실 TV를 뉴스로 돌렸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한파로 한강이 얼어붙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이어서 제주 소식이라며 공항 폐쇄 뉴스가 나왔다. 화면에 공항에서 항공편을 기다리면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나오자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혀를 찼다.
항공사에서 운항 재개 시간 고지를 제대로 안 해서 사람들이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뉴스는, 보는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어이없었다. 영하 십몇 도라는데 추위 속에서 마냥 기다리도록 두다니, 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다.
“태주 씨도 제주도 여행 가지 않았어?”
“아! 그렇지. 우 팀장님 태주 씨는 괜찮대요?”
“네. 이 배우님은 아예 제주도 체류 기간을 늘리셨더라고요.”
“잘하셨네요. 차라리 그게 낫죠. 그나저나 날씨가 저래선 구경도 제대로 못 하시겠어요.”
“구경은 나중에 해도 되죠. 그보단 사고 없이, 안전한 게 최고죠.”
뉴스를 보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뉴스의 내용이 바뀌었다. 아나운서와 취재 기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의 취재 주제는 늦어지는 제설 작업과 제주시의 허술한 대응책이었다.
[제주도 전역에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주로 제설 작업이 늦어져, 미끄러운 눈길 때문에 벌어진 사고인데요. 늦어지는 제설 작업에 관해 이설화 기자가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화면 함께 보시죠. 이설화 기자.네. 이설화입니다. 저는 어제 교통사고가 났던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인도를 덮친 현장이었습니다. 제주 시내에서….
이설화 기자 취재 도중 뜻밖의 상대를 인터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신가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요. 제주도에 여행 오신 배우 이태주 씨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 휴게실에서 뉴스를 보던 사람들 모두 입을 닫았다. 지금 뉴스에서 나오면 안 될 사람의 이름과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검은 패딩에 빨갛게 얼은 얼굴을 한 태주가 당황한 얼굴로 리포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관광객 A가 뭐야.”
“하하하. 아! 이거 그건가?”
“뭐요?”
“그거 있잖아.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이러는 거.”
“킥. 그럼 우린 ‘태주 씨가 거기서 왜 나와!’인가?”
너무 황당해서 말을 잊은 우 팀장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뉴스에서 들리면 안 될 이름이라 놀랐었는데, 인터뷰가 그저 폭설 피해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고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떠들던 사람들은 곧 다시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귓가로 우 팀장의 ‘허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허허허. 이 배우님도 참. 이런 일을 연락도 없이. 뿌드득!”
“아하하.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차도 다 마셨으니. 일을 좀 해 볼까.”
등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에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휴게실을 벗어났다. 아무리 나쁜 일이 아니더라도 뉴스에 나오는 일이었다. 소속사에 미리 알려 주면 좋았을 텐데. 배우들은 가끔 이런 연락을 잊곤 한다.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게 배려 좀 해 주면 좋으련만….
*
서울로 돌아온 태주는 바로 소속사로 향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다시 스케줄이 이어진다. 그 전에 제주도에서 사 온 선물들을 나눠 주고 우 팀장이 가져온 단막극의 시놉시스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이 배우님. 혹시 가족 여행 가서 뉴스 나오는 게 취미세요?”
“하하하.”
“전에도 가족 여행 가셨다가 멧돼지 잡고 뉴스에 나오시더니….”
“이번엔 정말 우연이었어요. 머물던 펜션 앞 눈을 치우다가 리포터를 만난 거예요.”
“알아요. 그건 아는데요. 관광객 A? 농작물 피해? 어휴. 정말이지.”
“하하하.”
뜬금없이 뉴스에 출연한 태주 덕분에 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지만, 소속사에선 당황했었다. 연예인이 연예 뉴스 외의 채널에 나오는 경우는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 팀장이 처음 뉴스가 보도될 때 바로 확인해서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뉴스가 태주 신상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안심하긴 했지만, 어설픈 인터뷰 내용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뉴스에 나온 일 자체에 놀라서 알아채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인터뷰 내용이 더 황당했다.
당황한 얼굴로 관광객 A라고 말하질 않나, 농작물을 걱정하고, 멋쩍은 얼굴로 인터뷰 좀 빨리 끝내 달라는 눈빛을 리포터에게 마구 쏘아 보냈다. 그런 태주의 모습이 뉴스에 편집 없이 그대로 나왔다. 미리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편집을 요구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속이 쓰렸다.
그래도 뉴스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엉뚱하다. 당황한 것도 귀엽다. 안 꾸며도 멋지다 같은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우 팀장을 비롯해 홍보팀은 이가 갈렸다. 더 노블레스 방송 후 거의 잊혀 가던 어설픈 모습이 또다시 방송을 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태주를 잠깐 흘겨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며칠이나 지난 뉴스로 그를 타박하긴 힘들었다. 그것도 제주도에서 돌아오자 마자 바로 회사로 온, 나름 착실한 배우에게는 더더욱 무리였다.
그녀는 기다리는 태주에게 단막극의 시놉시스 뭉치를 건네줬다. 먹이를 바라는 강아지처럼 순한 눈으로 그녀만 보는 태주를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은 못 할 짓이었다.
“여기요. 단막극 시놉시스.”
“하하하. 고마워요. 팀장님.”
“그렇게 좋으세요? 몇 개는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이 배우님도 한번 골라 보세요.”
“네, 그럴게요. 아! 진혁 형님 영화는요?”
“단막극 들어가기 전으로 잡을 거예요. 우선 시놉시스 먼저 확인하세요.”
작품 수가 많아서 그런지 단막극의 시놉시스도 한 뭉치였다. 태주는 그새를 못 참고 우 팀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시놉시스들을 뒤적거렸다. 작가 이름만 써진 것도 있고, 작가와 감독 이름이 모두 적힌 것도 있었다. 그렇게 뒤적이던 시놉시스 중에 그에게 익숙한 작가 이름이 적힌 게 보였다.
“어?”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선 전부 가져가서 보고 가져올게요.”
“그러세요.”
태주는 제주도에서 사 온 선물 박스를 우 팀장에게 넘기고 일어섰다. 시놉시스 뭉치를 챙기는 그의 얼굴이 흥분으로 상기됐다.
여랑. 예전에 펜션에서 만났던 작가의 이름이 단막극 공모전 작품에 적혀 있었다. 그녀가 공모전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인 줄은 몰랐다. 더 나중에 몇 년 뒤의 공모전에서 입상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은 강은진이네. 세상에! 예비 스타 작가와 PD의 조합이잖아.’
회귀 전 다수의 히트작을 써낸 작가와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작품을 연출한 PD였다. 아직은 둘 다 입봉을 준비 중인 초보 작가와 햇병아리 PD였다.
그는 다른 시놉시스보다 그녀들의 작품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그녀들의 작품을 제일 먼저 보고 나면 다른 작품들을 진지하게 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녀들의 작품은 마지막에 보는 게 옳았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시놉시스를 확인한 결과는 그의 예상 그대로였다. 우 팀장님 말대로 괜찮은 작품이 몇 개 있었지만, 그는 강은진 PD와 여랑 작가의 단막극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더는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카메오 나가고, 단막극 찍고 하면서 차기작을 찾아보자.”
태주는 우 팀장에게 여랑 작가와 강은진 PD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우 팀장님 역시 그 작품을 눈여겨봤었는지, 태주가 작품 이름을 말하자 바로 알겠다는 대답을 돌려줬다.
그녀는 통화를 마치기 전에 tvM의 작품을 선택한 태주를 칭찬했다.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작품을 제대로 골라냈기 때문이었다.
tvM, KBC 양쪽 모두 신인 작가와 감독이고 관련 정보가 많지 않은 점도 같았다. 단막극 제작에 편성된 예산이 tvM 쪽이 더 많았다. 전부 신인이라는 조건이라면 그나마 예산이 많은 쪽이 촬영 환경이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tvM은 태주가 얼마 전까지 더 노블레스를 찍은 곳이었다. 아마 그가 단막극 출연을 바란다고 알리면 여러모로 편의를 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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