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8
127. 걱정꾼 >
tvM 드라마국. 단막극을 준비 중이던 여랑 작가와 강은진 PD는 CP에게 이태주가 섭외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어였다. 신인 배우나 고만고만한 아이돌 정도를 생각했던 두 사람의 얼굴이 밝아졌다.
“진짜요? 우리 배우님이 내 작품에?”
“여랑 작가.”
“어, 어떡해요. 아! 너무 좋아.”
“여랑 작가!”
“헉. 네!”
여랑 작가는 평소 어려워하던 CP를 앞에 두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이 뜻하지 않은 행운에 정신이 나갈 것처럼 기뻐했다. 이태주. 그녀가 꿈꿨던 남자 주인공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그 배우가 자신의 작품에 나올지도 모른다니, 이게 정말 현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옆구리를 강은진 PD가 팔꿈치로 찔렀다. CP의 눈썹이 점점 산을 그려 가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면, 이태주를 출연시키기 전에 머리에 날벼락을 맞고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후우. 우리 방송국 개국하고 처음 진행한 단막극 공모전에, 첫 번째로 제작되는 단막극이야. 알지?”
“네.”
“이태주뿐 아니야. 지금 중견 배우들도 단막극에 출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
“진짜요?”
“어. KBC 아닌 곳에서 단막극 제작하는 게 오랜만이니까. 다들 관심이 많아.”
KBC를 제외한 다른 방송국들은 단막극 제작을 그만둔 지 오래였다. 그런 시기에 작가 지원책으로 tvM에서 단막극 공모전을 진행했다. 입봉을 바라는 PD, 데뷔를 바라는 배우. 너나 할 것 없이 단막극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그중 이태주만큼 화제를 몰고 다니는 배우는 없었다.
“이태주가 출연하는 단막극이라고 하면 화제성은 이미 충분해. 문제는 작품을 어떻게 만드느냐지.”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 많이 했어요.”
“알아.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그래.”
“네.”
“설 연휴 끝나고 미팅 잡아. 알지? 이태주한테 대본 끊임없이 들어가는 중인 거?”
평소처럼 성질부리지 말고 미팅에서 잘하라는 얘기였다.
연기력 좋은 스물 초반 남자 배우를 원하는 PD가 얼마나 많을지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태주는 연기력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단막극에 출연만 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흐흐흐.”
“어휴. 그렇게 좋아?”
“그럼 감독님은 안 좋아요? 무려! 무려! 우리 배우님이 작품에 나와 주시는 거라고요.”
“나야 연기 잘하는 배우라 당연히 좋지. 거기에 성격도 괜찮으면 더 좋고.”
“성격 완전 좋아요. 엄청 착하고 친절해요. 배려심도 좋고. 내가 직접 봤다니까요.”
여랑 작가는 펜션에서 태주를 만났던 얘기를 다시 풀어놨다. 바로 옆 동에서 묵었었다는 얘기에, 태주가 먼저 강아지들 주라고 음식을 나눠 줬던 얘기까지. 이미 강 PD의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했던 얘기였다.
벌써 이 년 전의 일인데도, 여랑 작가는 바로 어제처럼 또렷하게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펜션에서 태주를 만난 후에, 그를 주인공으로 글을 썼었다. 그리고 그 글을 공모전에 냈고, 당선되어 그 글로 지금 단막극 제작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 작품에 당사자가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을 줬다. 그녀에겐 이 모든 게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펜션에서 처음 태주를 봤을 당시엔 그가 출연한 게 독립 장편 영화 버스킹뿐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독립 영화 상영관까지 가서 자신이 본 게 꿈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녀가 본 그는 어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물론 실제로도 그는 영화에 나오는 배우였다. 그 정도로 잊기 힘든 인상을 받았었다.
“정신 좀 차려. 여랑 작가.”
“어떡하지?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좀 해야 하나. 아니면 샵에서 관리라도 받아야 하나.”
“여랑 작가 그럴 돈이 어딨어? 이번 달도 카드값 간당간당하다며?”
“후우. 참치! 이 똥개 자식. 으아! 병원비가 대체 얼마야!”
여랑 작가의 반려견 참치가 이상한 걸 삼켰다. 자연스러운 배설을 바라고 내과 처치를 받았지만, 실패해서 개복 수술을 했다. 덕분에 병원비 폭탄을 직격으로 맞은 여랑 작가는 겨우 생활비만 남은 상황이었다. 샵에서 관리 받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시간이 없었다.
“쯧쯧쯧.”
“감독님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건 맞아. 에효. 딴 얘기 그만하고 가서 일 얘기나 하자고.”
“으히히. 세상에. 우리 배우님이 내 작품에.”
여랑 작가는 아직 계약은커녕 미팅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태주의 출연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강 PD는 벌써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촬영하는 내내 얼마나 우리 배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눈에 선했다.
이태주의 출연에 정신이 꽃밭으로 가 있는 여랑 작가와 달리 강은진 PD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소속사 트리즈가 이태주를 애지중지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트리즈가 깐깐하게 구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출연 배우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무례한 대접을 받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배우가 작품에 출연 중일 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나중에라도 반드시 보복했다. 게다가 최근 업계에 이태주를 잘못 건드리면 엿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촬영장 컨트롤만 잘하면 걱정할 필요 없는 일이긴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부분은 확실하게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부터 매니저까지 싸고돈다니, 그만큼 괜찮은 구석이 있겠지. 선배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으니.’
그녀가 딴생각에 빠진 중에도 여랑 작가의 이태주 찬양은 계속됐다. 그녀도 여랑 작가가 늘어놓는 칭찬과는 별개로 이태주라는 배우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망할 거라던 드라마 두 개에서 모두 좋은 평을 받았다. 특히 더 노블레스는 말만 금·토 대전이었지, 방송국 내부에서도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이태주가 합류한 후 수렁에서 건져 냈다. 촬영장 분위기를 바꾸고, 온갖 화제로 시선을 끌어오고. 같이 촬영한 선배 PD의 칭찬이 자자할 수밖에 없었다.
강은진 PD는 좀 전 CP님 말대로 평소 성질을 죽이고 미팅에서 잘 대해 주자고 다짐했다.
*
정원 한구석에는 그렘린을 맡을 때 심어 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태주는 손에 쥔 리본 뭉치와 나무를 번갈아 보자, 가슴이 저리는 것 같았다. 리본 뭉치의 크기가 줄수록 그렘린을 돌려보내야 할 때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꿈의 정원은 현실보다 시간이 빠르게 간다. 그래서일까, 그렘린이 벌써 꽤 많이 자라 있었다. 키도 컸고 무게도 제법 늘었다. 먹는 것도 우유에서 과일을 주로 먹게 되었다. 우유가 주식에서 간식으로 내려왔다. 최근엔 먹는 양도 늘어서 한 마리가 예전 네 마리가 먹던 양 만큼 먹고 있었다.
최근 태주는 게시판을 지날 때마다 의식적으로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게시판에 녹색 종이가 붙으면 아무도 보지 못하게 떼어 버릴 생각도 가끔 했다. 물론 그가 종이를 떼어도 협회에서 데려갈 사람이 오는 걸 막진 못할 테지만, 마음은 그랬다.
“캉캉. 캉캉.”
“그래, 리본 따위 물어뜯어 버려. 잘한다.”
“태주, 뭐 해?”
“큼. 아무것도 아니야, 희.”
그는 다 자란 나무에 묶어 주려고 가져온 리본 뭉치를 그렘린에게 장난감처럼 내주고 있었다. 리본이 망가져서 나무를 회수하지 못하면 그렘린을 보내야 하는 날이 늦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이었다.
“이 녀석들 많이 컸지?”
“응, 컸어.”
“얘네를 정원에서 계속 키울 수 없나? 이대로 얘네끼리 숲으로 돌아가도 괜찮을까?”
“우응. 그렘린만 돌아가는 건 아닌걸.”
“응?”
길잡이 협회에서 협조를 부탁했던 임시 보호 목록의 모든 생물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다른 그렘린도 많았다. 아마 태주가 보호하던 아이들도 그 그렘린들과 같이 지내게 될 것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그렘린이니, 새끼들을 무리의 성체 그렘린들이 돌봐 줄 것이었다.
희의 설명을 들었지만, 보내기 아쉬운 건 여전했다. 살던 숲이 회복되고 무리로 돌아가는 게 그렘린에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정원에서 계속 돌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처음보다 말썽도 안 부리고 말도 잘 듣는데. 과일도 안 가리고 잘 먹고 목욕도 잘하고.”
중얼중얼. 태주가 그렘린을 정원에서 키워도 좋은 이유를 찾았다. 사실 그렘린이 돌아갈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리본 뭉치를 보고 그렘린을 언젠가는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우울해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태주가 혼자 그렘린을 안쓰러워할 때였다. 정원에 게이트가 열리고 협회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머릿속에 온통 그렘린의 귀향 생각만 가득하던 그는 낯익은 협회 인물이 나타나자, 그렘린을 보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주는 근처에서 놀던 그렘린들을 다급하게 끌어안았다. 조금 무거웠지만, 아직은 네 마리 모두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희, 데리러 왔나 봐. 숨기자.”
“태주?”
“왜 벌써 왔지? 아직 나무도 다 안 자랐는데?”
“태주!”
“에잇!”
태주는 그렘린을 안고 바로 태산이 굴 쪽으로 뛰었다. 태산이 굴 안에 그렘린을 숨긴 다음 굴 앞을 막아서서 제일 마지막에 숲으로 보내게 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이나타와 요원 S는 자신들을 보자마자 그렘린을 안고 뛰는 정원사가 걱정됐다. 정원에 무슨 큰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인사도 없이 그렘린만 챙겨서 내달리는 다급한 모습에 그들도 덩달아 달렸다.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정원사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요원 S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요원 S는 혹시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 정원사를 앞질러 갈 생각이었다. 갑자기 정원사가 왜 저러는지 이나타가 달려가면서 희에게 이유를 물었다. 희는 두 사람이 그렘린을 데려가려고 하는 줄 알고 태주가 그렘린을 숨기러 가는 중이라고 알려줬다.
“괜찮으십니까?”
“허억! 왜,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그, 그만 따라오세요. 헉헉!”
“혹시 적이 나타났습니까?”
“헉헉! 우리 아이들은 안 돼요.”
“네?”
최대한 빠르게 달렸는데, 금세 따라잡힌 태주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렘린 네 마리를 안고 전력 질주를 한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래도 네 마리 그렘린을 안을 힘은 충분했다.
태주는 적이 나타났는지 묻는 요원 S를 피해서 슬금슬금 움직였다. 나무 뒤로 몸을 숨길 요량이었다. 그렘린은 여전히 꼭 끌어안은 채였다. 무게가 있어 꽤 힘이 들었지만, 데려갈까 봐 바닥에 내려 줄 수 없었다.
“우리 그렘린은 아직 더 자라야 해요.”
“네. 확실히 덩치가 아직 작군요.”
“과일도 잘라 줘야 먹을 수 있어요.”
“그렇습니까? 이갈이가 아직인가 보군요.”
“어?”
“왜 그러십니까?”
태주는 너무 평이하게 이어지는 대화에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협회의 방문을 오해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조심성을 버리지 않았다. 나무 뒤에 숨은 채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서 요원 S에게 그렘린을 데리러 온 게 아니냐고 물었다. 요원 S는 그제야 정원사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았다.
“저희는 이레귤러 일 때문에 방문한 겁니다. 그렘린을 데려갈 예정은 아직 없습니다.”
“진짜죠? 우리 애들 안 데려갈 거죠?”
“안 데려갑니다.”
“다, 다행이다.”
쭈뼛쭈뼛. 태주는 단어 그대로 좀 전에 도망치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머뭇거리면서 나무 뒤에서 나왔다. 그런 그와 다르게 그렘린들은 품에 안긴 채 뛰어다닌 게 재밌었는지 꼬리를 빠르게 휘두르고 있었다.
요원 S가 장담했지만, 여전히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잘 먹여서 통통한 그렘린을 보면 바로 데려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할지 몰랐다. 태주는 그렘린을 바닥에 내려 준 후 바로 엉덩이를 두드려 다른 곳으로 가게 했다.
“가서 놀아. 태산이 오빠하고 놀고 있어. 알았지? 어서 가 봐.”
“카앙. 캉캉.”
“하하하. 그, 이레귤러 일로 오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정원사님. 정원사님 세상에 나타난 이레귤러 때문에 왔습니다.”
이나타가 희와 함께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뛰어가는 그렘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렘린에게 관심을 보이면 정원사가 울지도 모른다고 희에게 미리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도중 요원 S와 나누는 대화도 들었다. 그녀는 그렘린을 아끼는 정원사를 걱정시킬 생각은 없었다.
태주는 언제나처럼 오두막 앞 테이블로 손님을 안내했다. 차를 준비하겠다는 핑계로 오두막 주방에 들어오자,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혼자 오해하고 도망가고 나무 뒤에 숨고. 다시 생각해도 창피했다. 당장 침대에 뛰어들어 이불을 차고 싶었다.
“아아. 쪽팔려서 진짜.”
엉뚱한 오해로 괜한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손이 바빠졌다.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지만, 물을 끓이고 찻주전자를 데우는 솜씨는 훌륭했다.
태주는 이를 악물고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창피한 모습을 실컷 보였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미지였지만, 다과 접대라도 잘해서 조금이라도 되돌릴 생각이었다.
평온을 가장한 표정으로 유려하게 차를 따랐다. 케이크 역시 장식이 흐트러지지 않게 깔끔하게 접시에 담았다. 다과 세트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티스푼과 포크까지 정갈하게 내려놨다. 그는 둘이 좀 전의 도망치던 모습은 잊고, 지금 이 모습만 기억해 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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