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9
128. 카메오 출연 >
이나타와 요원 S는 태주의 바람을 들은 것처럼 좀 전에 있었던 엉뚱한 도주극을 화제로 삼지 않았다. 대신 둘은 원래 방문 목적인 이레귤러의 얘기를 꺼내 들었다.
“이레귤러의 존재를 알아차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레귤러가 저희 세상의 유명인이 되어서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 점은 다행입니다. 숨은 적보단 드러난 적이 더 상대하기 수월하니까요.”
‘적. 하긴, 타 시스템을 악용하는 이레귤러이니 적이 맞지.’
이나타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눈앞의 정원사를 살펴봤다. 그녀의 감각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신체를 단련했다거나 이능력을 익혔다면 무언가 감지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원사는 여전히 무력과 관계없는 모습이었다. 정원사 대부분이 평화적인 성향이었다.
이 정원사 역시 마찬가지 같았다.
“두 가지 물건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이레귤러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원사님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물건입니다.”
“아! 능력 제한.”
“물건을 사용하면 이레귤러가 더는 타인의 기억을 조작할 수 없게 됩니다. 대신 자신의 능력을 금제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죠.”
“만약 그 사람이 저라는 걸 알게 되면 위협을 가해 올 수도 있겠네요.”
“맞습니다. 그때를 위해서 다른 물건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물건은 태주 그리고 그의 펫과 일꾼인 쿠첼루스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물건을 사용하면 만약 이레귤러가 직접 태주를 만나고 얘기를 나눠도 기억하지 못한다. 태주가 무력을 갖춘 정원사였다면, 이레귤러 제압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받았을 테지만, 무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서 안전을 위한 물건을 받았다.
“물건을 사용하면 지금까지 조작한 기억을 되돌린 순 없지만, 앞으로 이레귤러가 멋대로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해요.”
“큼. 충분하진 않지요. 정원사님, 최선은 정원사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이레귤러의 능력을 없애는 겁니다.”
“요원 S의 말이 맞습니다. 정원사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네. 그럴게요.”
조심하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강직한 눈으로 두 사람이 쳐다봤다. 태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 대답했다. 자신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정원과 현실의 가족들 모두에게 좋지 않았다. 꼭 그러겠다 한번 더 대답했다.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정원사 협회의 영역에 가끔 나타나는 이레귤러는 골칫거리였다. 이나타와 요원 S는 지구 외에, 꿈의 세계에도 이레귤러가 나타나서 현재 체포하기 위한 일들을 여러 가지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꿈의 세계에서 분탕질을 치는 이레귤러가 사용하는 시스템은 용병 협회의 것입니다. 용병 협회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 저희쪽으로 넘어와서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지요.”
“혹시 정원은?”
“정원은 안전합니다. 위치를 감추는 데 특화된 이레귤러라 추적이 힘든 것일 뿐입니다. 위치만 밝혀진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아!”
요원 S는 지구에 나타난 이레귤러가 만약 꿈의 세계에서 능력을 썼다면 바로 협회에서 추적, 체포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 말에는 이나타도 동의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 세계로 직접 건너가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쉽다며,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물건을 전해 주고 그대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순간까지 태주를 안심시키려는지 그렘린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부분은 그도 고맙게 생각했다.
*
현실로 돌아온 태주는 이나타에게 받은 두 개의 물건을 가지고 쿠첼루스에게 갔다. 마법 아이템이니 그가 먼저 확인하도록 하는 게 나아 보여서였다. 스크롤 형태인 물건들이라 쓰고 나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전에 마법사인 그가 연구하게 할 생각이었다.
“이 물건은 제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의 것입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건가요?”
“네. 이 정도의 강제력이 깃든 물건은 쉽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레귤러의 능력에 금제를 걸 수 있는 물건은 예상보다 대단한 물건인 것 같았다. 호기심 짙은 표정이 된 쿠첼루스가 손에서 놓지 못 했다. 한참 동안 살펴보던 그는 아쉬움이 역력한 얼굴로 태주에게 바로 사용하라고 말했다.
“바로요?”
“네. 이건 복사나 분해하려는 시도만 해도 페널티를 받는 물건입니다.”
‘그 사용하게 손을 좀 놔주셨으면….’
태주에게 바로 사용하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미련이 남는 것 같았다. 쿠첼루스는 그에게 건네는 스크롤의 끝을 잡은 채 놓지 못했다.
스크롤의 다른 한쪽 끝을 잡은 그가 쿠첼루스를 마주 봤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이었다.
“큼. 사, 사용하시는 것 봐도 되겠습니까?”
“네.”
사용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생각인 듯했다. 태주는 그가 솔직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 봤다. 웃음을 참으면서 그가 보는 앞에서 바로 스크롤을 찢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영화처럼 무언가 빛이 보이거나 정원에서 봤던 마법 문자가 떠오르는 효과는 없었다. 무언갈 사용했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그와 다르게 쿠첼루스는 느껴지는 게 있는 것 같았다.
“헉. 대, 대단하군요.”
“아, 네.”
뭘 알아야 맞장구를 쳐 줄 텐데, 마법에 관한 것만 나오면 할 말이 없는 태주였다. 그는 황홀하다는 듯이 허공을 보면서 중얼거리는 쿠첼루스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두 번째 스크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한 번 쓱 훑어보는 게 전부였다. 스크롤은 그가 전공한 환상 마법 계열의 마법과 뭐가 섞인 것으로, 그 역시 도구만 갖춰지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조건을 거는 게 까다로울 뿐 저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진짜요? 대단해요, 쿠첼.”
“하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니요. 솔직히 전 이게 무슨 원리인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멋쩍게 웃는 쿠첼루스였지만, 태주는 그 와중에도 꽤 뿌듯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원사 협회에서 받은 물건을 사용하는 사이, 외출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은 진혁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야 했다.
*
지하 주차장에서 견우가 기다리는 밴에 올라탄 태주는 새삼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달이면 전원주택이 완공된다. 인테리어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테지만 두 달 정도 후엔 입주해도 괜찮을 것이다.
태주는 운전석에 앉은 견우를 보고 있었다. 태주를 맡은 2년까지 하면 경력이 꽤 길었다. 그런 그를 자신의 집과 촬영장을 오가게 하기는 미안했다. 물론 태주는 견우가 마음에 들기 때문에 바꿔 달라는 요청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곧 군대에 가니, 그전까진 계속 견우와 같이하고 싶었다.
촬영장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태산이 텐트와 가방을 들고 견우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자, 미리 와있던 미나가 의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엔 더 노블레스를 덕에 슈트를 자주 입었는데, 오늘은 위아래 한 벌짜리 운동복이었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던 스팽글로 가득한 상의가 조명으로 반짝였다. 그 옆엔 분홍색 한 벌도 있었고, 노란색 브루스 리 운동복도 있었다.
“누나 저 오늘 이거 입어요?”
“응. 내 추천은 이거, 이거.”
“음.”
보라색 스팽글이 가득 장식된 운동복과 핑크 로고가 박힌 운동복을 가리키는 그녀가 진심인지 돌아봤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그는 분홍색보다는 보라색이 낫겠다 싶어서 바로 갈아입고 나왔다.
“와! 무슨 운동복이 이렇게 화려해요? 이대로 클럽 가도 되겠어요.”
“킥. 그게 되겠니.”
“이거 봐 봐요. 미러볼 같지 않아요?”
조명 밑에서 팔을 흔들어 반짝이는 걸 보여 주고 있을 때, 분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미나가 분장실 안과 태주를 한번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분장실 밖엔 감독과 진혁이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가 예정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는 얘기에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뭐야? 벌써 의상도 갈아입었어?”
“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의상 이걸로 괜찮아요?”
“아! 보라색. 사이즈도 딱 맞고 잘 어울리네요. 제가 생각한 모습 그대로예요.”
‘이 모습이 말인가요?’
태주는 미나가 실수로 너무 몸에 붙는 운동복을 준비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감독님이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붙는 운동복을 요구한 것이었다. 아마 옷걸이에 걸린 형형색색의 운동복도 감독의 요구인 것 같았다.
“분홍색이랑 아이보리색도 상의만 좀 입어 보실래요?”
“네.”
어차피 매일 찾아오는 진상 손님 역할이기 때문에 여러 벌의 운동복을 입어야 했다. 운동복을 갈아입는 태주의 모습은 거침없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었는지 미나의 얼굴에 아쉬움이 보였다. 태주가 그런 그녀에게 한쪽 눈썹을 올리면서 비웃음을 날렸다. 물론 바로 웃어 버렸지만, 이미 그녀의 의욕에 불을 질러 버린 후였다.
‘헐. 놀리려고 한 건데. 불이 붙어 버렸네.’
“하. 하. 하. 감독님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웨이브 좀 세게 넣어 볼까요?”
“딱 좋아요. 뭘 좀 아시네요. 저랑 취향이 딱 맞아요. 제가 또 B급 개그 코드를 사랑하거든요. 흐흐.”
감독과 미나 두 사람이 호의적인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옆에서 진혁이 이마를 짚었다. 아마 저 개그 코드의 최대 희생자가 그인 것 같았다. 미나의 기세로 보아 자신 역시 일정 부분 감당해야 할 테지만, 그보단 진혁을 곤란하게 하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의욕에 불타는 감독과 미나의 의견 교환이 이뤄진 후 태주의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웨이브를 넣은 머리에 쇼트 비니, 분홍색 운동복 세트에 스파이크가 박힌 하이탑을 신고, 스파이크 파우치를 들고 있었다. 촌스러우리라 예상하고 매치시켰지만,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훗! 어울려요?”
“어떻게 여자들도 소화하기 힘든 분홍색 운동복 세트를….”
“하하하.”
촬영이 아니라면 절대 입을 리 없는 분홍색 운동복 상하의 세트였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태주는 그 차림으로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대본을 확인했다.
*
노란 배경에 붉은 글씨로 ‘또또 치킨’이라고 써진 간판이 붙여진 세트 안으로 태주가 들어섰다. 눈에 확 띄는 밝은 분홍색 옷차림에 상큼한 미소를 지은 채 이곳저곳을 향해 인사했다. 마주 인사하는 사람들은 혼자만 영화 장르가 다른 듯한 태주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왔어요? 진짜 잘 어울리네요.”
“왔나? 대본은 외웠지?”
“네.”
“감독님, 리허설 갈까요?”
“좋아요. 감독님들 리허설 갈 거예요.”
각 파트를 맡은 감독들이 위치로 향했다. 영화판에서 태주의 평은 꽤 좋았다. 김윤선과 찍으면서도 전혀 눌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연기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 줬었다. 괜히 데뷔를 영화로 그것도 주연으로 한 게 아니라는 평이었다.
기대하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주가 태연한 얼굴로 지시 사항을 듣고 있었다. 서야 할 위치, 카메라의 위치, 시선 방향 등을 꼼꼼하게 듣고 확인했다.
건들건들.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건들대는 걸음으로 다가온 청년이 치킨집 문을 활짝 열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연 상대를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전혀 신경 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냄새. 냄새. 아유. 기름 전 내.”
“야!”
“왜!”
“아오. 씨. 오늘은 왜 왔어?”
“닭집에 닭 먹으러 오지 왜 와? 아저씨 벌써 치매야?”
소리치는 상대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는 큰 소리로 대답한 청년이 문을 크게 열어 둔 채 안으로 들어왔다. 매장 안을 확인하더니, 검지로 여기저기를 가리킨 후 쏠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러. 아저씨. 이래서 밥은 먹고 살겠어?”
친근함을 가장해서 걱정하는 척하지만, 명백히 무시하고 조롱하는 태도였다. 그런 청년을 보는 사장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주문할 거 아니면 가라.”
“주문했어.”
“네가? 언제?”
이를 악물고 주문하라는 사장에게 청년이 얄미운 얼굴로 주문했다고 알렸다. 입꼬리 한쪽이 올라간 것이 또 무슨 진상을 부릴 생각인 것 같았다. 매일 찾아와서 진상을 부리는 건물주 아들내미를 딱 한 대, 딱 한 대만 때리고 싶은 게 요새 사장의 가장 큰 바람이었다.
-부우웅. 끽.
“두리두리 치킨 배달 왔습니다.”
“여기. 이리 가져와.”
“야!”
“왜!”
“지금 뭐 하는 거야!”
“닭 먹잖아.”
치킨집으로 뻔뻔하게 다른 치킨집 치킨을 시켜서 먹는 건물주 아들 때문에 위장 수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화가 치밀었다. 사장은 으스러질 듯 이를 악물고 청년을 타일렀다.
“네 집 가서 먹어라.”
“싫어. 집에서 닭 내나.”
붉으락푸르락한 사장의 얼굴이 안 보이는지, 청년이 우아한 동작으로 치킨을 입에 넣었다. 그 즉시 사르르 풀린 눈매로 사장을 보며 우물거렸다.
-꿀꺽!
“아저씨. 내가 아저씨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아저씨 치킨 조~~온나 맛없어. 차라리 떡볶이를 파는 게 어때?”
“이 새끼가 진짜.”
청년의 말을 듣던 사장이 앞치마를 벗으며 위협하듯 거칠게 말을 뱉었다.
“스탑. 거기까지.”
리허설 종료를 알리는 감독의 말에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전까지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던 시건방진 태도는 버리고 해맑게 웃으면서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어땠어요?”
“조~온나 한 대 때리고 싶었어요.”
“네? 아! 하하하.”
맑게 웃으며 감독과 얘기하는 태주의 모습을 보는 진혁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반갑다며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하던 태주가 리허설이 시작되자 바뀌었다. 태주가 대사를 치자마자 기가 막힐 정도로 재수가 없어서 자기 대사를 잊을 뻔했다.
진혁은 좀 전의 리허설이 연기인지 진심인지 혼란스러웠다. 만약 연기라면 대본 그대로 반응하도록 상대의 연기를 끌어낸 명연기였다. 그게 아니라면 상쾌하게 웃고 있는 태주의 명치를 세게 한 대 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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