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6
135. 신부님과 어린 연인 >
우 팀장은 예능에 출연하겠다는 확답을 얻길 바랐지만, 태주가 대본을 먼저 확인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오성호 PD의 예능은 물론 아주 좋은 기회였지만, 대본을 먼저 보고 싶다는 배우를 말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쉬웠지만, 억지로 일의 순서를 바꿀 마음은 없었다.
“산이랑 찍는 로션 광고 일정 잡혔어요.”
“아! 언제예요?”
“다음 주요. 견우 씨가 미팅하러 갔으니, 자세한 건 견우 씨한테 들으세요.”
“네. 그럴게요.”
태주는 대본 상자를 들고 대표실로 향했다. 아직도 치킨을 먹고 있는지 태산이 대표실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태산이는 바라던 꼬꼬를 먹었으니, 쿠첼루스의 아이스크림만 사 가면 될 것 같았다. 그는 어서 집에 돌아가서 대본을 확인하고 싶었다.
*
태주가 누운 소파 아래로 상자가 놓여 있었다. 회사에서 대본을 담아서 가져온 상자였다. 그는 티 테이블 위에 대본을 전부 올려 두고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다시 돌려보낼 대본은 상자에 넣고 있었다.
“이것도 꽝이네.”
“냐앙.”
“그래. 꽝이야.”
배가 불러 늘어진 태산이 등을 쓰다듬으면서 태주가 대답했다. 그는 대표가 사준 치킨을 배불리 먹고도 또 꼬꼬를 외쳐 대는 태산이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야 했다. 마트에서 고른 것들로 배부르게 먹은 태산이는 바로 호랑이 모습이 되어서 뒹굴고 있었다.
대본을 확인하는 태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괜히 주인을 찾지 못한 게 아니라는 듯 과도한 설정과 유치한 클리세로 범벅된 대본이 수두룩했다. 정말로 이런 대본을 몸값 비싼 트리즈의 배우에게 보낸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용?”
한참 뒤적거리다 본 대본의 주인공이 용이었다. 인간으로 변신해서 사람들 사이에 숨어 사는 용이라는 설정이었다. 대본을 보자마자 태주 머릿속에, 아칸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행동은 가볍고 말은 함부로 하는 철없는, ‘초딩’이라는 단어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대본을 읽어 나갈수록 태주는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이 작가가 혹시 아칸서스의 지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용을 유치하게 잘 적어놨다.
“어후. 돈 많은 백수 덕후 용이라니. 너무 똑같잖아.”
태주는 바닥에 놓아둔 상자에 대본을 넣으려다 말았다. 그냥 사무실에 돌려주기엔 짧은 내용이었지만, 재밌었다.
좋아하는 걸 그룹의 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창고를 빌려야 할 정도로 CD를 사기도 하고,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 카드를 교환하려다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평소엔 용의 권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최애 멤버의 스토커와 싸우기 위해서 권능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치하지만 재밌었다. 그의 기억에 없는 드라마인 걸 보니 회귀 전에도 제작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해도 웹툰으로 보는 게 더 재밌어 보였다. 물론 드라마화가 되어도 출연은 고민해 볼 것 같았다.
“아빠는 외계인?”
중년이지만 20대 초반의 얼굴을 한 아빠 때문에 벌어지는 가족 드라마였다. 아빠가 동안이라 밖에선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가족들과 갈등을 빚다 결국엔 화해하고 잘 지내는 내용이었다.
태주가 연기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대본을 상자로 넣어 버렸다. 그의 기억에 있는 작품이었다. 부인 역할로 나오는 여배우가 음주 운전 사고를 낸다. 상대 차량의 운전자가 즉사하는 큰 사고였다. 그 때문에 드라마는 회생 불가의 타격을 받고 조기에 종영한다.
“어쩌면 아는 게 많아서 못 고르는 지도.”
테이블 위에 남은 대본이 별로 없었다. 상자가 채워질수록 태주의 얼굴에 피로가 짙어졌다. 차기작을 못 고른지도 벌써 3개월째였다. 더 노블레스 촬영 중에도 조금씩 보고 있었으니 실제론 더 긴 시간이었다.
“어? 이건 나한테 들어온 게 아닌데.”
40대의 사제 역할을 캐스팅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었다. 아마 이성군이나 진혁에게 들어온 대본이 잘못 온 것 같았다. 태주는 호기심에 대본을 펼쳐봤다. 작품의 배역은 가장 어린 나이도 삼십 대 초반이었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 신부님이 신도의 자살 사건에 의문을 품고 알아보다, 자살이 실은 살해당한 후 조작된 것이란 사실을 밝혀낸다.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담당 형사에게 알린 그 날, 목숨의 위협을 당한다.
“와! 재밌다. 그런데 들어갈 만한 배역이 전혀 없네.”
부패 형사라고 오해받는 형사 역도, 신부를 도와주는 사제도 모두 나이가 있었다. 태주는 자신이 맡을 배역이 없는 작품인데도 대본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그의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전에도 만들어지지 않은 드라마였다. 개성 있는 배역에, 벌어지는 사건도 꽤 재밌었다. 대체 이런 작품을 왜 만들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대본을 한쪽으로 빼놓고 나머지를 확인했다. 그는 다른 대본을 보는 내내 ‘가제: 신부님’의 대본과 비교했다. 저도 모르게 그것보다 재밌는 작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본을 보고 있었다.
상자 안의 대본을 전부 다 살펴본 후에 태주의 손에는 두 개의 대본이 남아있었다. 과 이라는 대본이었다.
어린 연인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뒤쪽으로 남겨 두었던 대본이었다. 혹시라도 미성년의 연인이 나오는 대본이라면 그대로 파기해 버릴 생각이었다. 다행히 대본은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였다.
30대의 사업가 여주와 신입사원 남주가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알콩달콩 연애하는 내용이었다.
“두 대본 모두 괜찮아.”
“냐앙.”
“아니야. 계속 자. 착하지.”
태주는 차기작으로 두 가지 대본을 모두 후보로 올렸다. 드라마 ‘신부님’에 나오는 배역 중 나이를 바꿀 수 있는 배역이 있다면 가장 좋고, 아니라면 ‘어린 연인’에 출연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다.
우 팀장이 전해 주지 않고 빼놨던 작품인 만큼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몰랐지만, 지금까지 본 대본 중에선 이 두 작품이 가장 괜찮았다. 부디 두 작품의 문제가 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길 바랐다. 혹은 다른 출연진이 문제가 많은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만약 음주 운전 사고를 내는 여배우 같은 출연진이 예정되어 있다면 다시 차기작을 찾아야 했다.
*
박준의 매니저는 소속사 대표의 얘기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런 그를 팀장이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라지만, 대놓고 인상을 쓰는 매니저가 걱정돼서였다.
“준이 드라마 끝나면 바로 예능 들어가기로 했어.”
“안돼요. 준이 걔 휴식 없이, 벌써 드라마만 세 작품이었어요.”
“누구 작품인지나 듣고 반대를 해. 오성호 PD 거야. 예능 대부 오성호.”
“오성호고 칠성호고 안돼요. 애 상태 좀 보시라고요.”
“지금 촬영 잘하고 있잖아.”
매니저는 주먹 쥔 손을 뒤로 숨겼다. 그렇지 않으면 촬영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뻔뻔한 대표의 얼굴을 후려갈길 것 같아서였다. 촬영을 잘하긴 뭘 잘한다는 말인가. 촬영장에서 박준은 겉돌고 있었다. 촬영장의 배우나 스태프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미 계약서 썼어. 나가 봐.”
“대표님!”
“그만해. 저흰 나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준이….”
“씁. 그만해.”
대표실에서 팀장의 손에 끌려나가는 매니저는 분한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말린 팀장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고개를 저은 팀장이 쫓아갔다.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매니저를 발견한 팀장이 가져온 물을 건넸다.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물이었다.
“먹고 속 차리라는 거예요, 이거?”
“속 차려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
“빌어먹을. 팀장님, 준이 이러다 진짜 망가져요. 애를 작작 굴려야죠.”
“이번 촬영장은 좀 괜찮다며?”
“괜찮긴요.”
매니저는 자기가 본 것을 늘어놨다. 사극인데도 촬영 환경은 괜찮았다. 식사도 잘 나왔고, 간간이 쉬는 날도 있었다. 감독이 무리한 연기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배우들과 트러블도 없었다.
“듣기론 괜찮은데, 뭐가 문제야?”
“후우. 거기 사람들은 준이를 연기자로 안 봐요. 연기 기술자? 그런 거로 봐요.”
“그게 무슨 뜻이야?”
“동료로 안 본다는 거예요.”
촬영장의 누구도 박준을 방해하지 않았다. 처음엔 주연 대접을 받는 것 같고, 박준도 예민한 상태라서 그런 환경을 반겼었다. 특히 소문이 안 좋은 박동진이 박준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감독이고 작가고 쓴소리를 참지 않는 박동진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박동진을 만나면 박준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박동진은 유일하게 박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니저는 박준이 연기를 잘해서 욕을 먹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박동진이 감독에게 연기자도 아닌 거랑 촬영하라고 자신에게 매달렸냐며 성질을 내는 걸 보게 됐다.
박동진은 박준이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욕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감독에게 자신과 박준이 같이 찍는 신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감독은 순순히 그러겠다 대답했다.
“쯧. 조금만 참아. 예능 끝내면 쉬게 할 테니.”
“저번 드라마 끝났을 때도 그랬죠.”
“그럼? 이미 계약서 쓴 걸 어떻게 하라고?”
“드라마 끝나면 앨범 내주겠다고 하셨잖아요. 예능 끝나면 앨범 내주실 거에요?”
“….”
팀장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진짜로 앨범을 내줄 생각이라면 지금 예능에 내보낼 리가 없었다. 곡을 모으고 앨범 콘셉트를 정하고 밤 낮으로 노래 연습과 안무 연습을 시켜야 했다.
박준을 지탱하는 버팀목은 대표가 한, 앨범을 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믿고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박준은 멤버들과 다시 모여 앨범을 내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날만 바라고 있었다.
“알잖아. 준이가 지금 회사에서 유일하게 돈 나올 구석인 거.”
“그렇다고 애를 그렇게 혹사시켜요?”
“혹사라니. 걔보다 바쁜 연예인이 더 많아.”
“스케줄 말고요. 멘탈이요. 지금 걔 멘탈 나가기 직전이에요.”
“….”
십 년 넘게 봐 온 자신하고만 말을 한다. 감독이나 스태프의 말에는 대답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사실 동료 취급을 못 받는 이유 중엔 박준의 무시도 들어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 대부분이 차갑게 무시당했다. 그런 취급을 하고 동료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예능 출연하라는 말 난 못해요. 하실 거면 팀장님이 하세요.”
“쯧. 알았어. 내가 말할게.”
연습생 5년, 데뷔 후 6년. 11년을 박준과 함께한 매니저는 도저히 예능에 나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손톱만큼의 배려도 없는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의 경력이라면 어디로든 옮기기 어렵지 않았다.
그가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박준 하나뿐이었다. 이제 1년 남은 박준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 돌봐 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
태주는 김은형에게 전화를 받고 두 사람이 자신을 놀리려고 그러나 의심했다. 이미 사과하고 사과받은 일을 다시 꺼내서 밥을 사겠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낯을 가린다는 김은형의 설명을 듣고 박준과의 통화로 그때의 일은 잊은 지 오래였다. 사실 애초에 박준과의 일은 그쪽에서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모두 기억에서 지운 상태였다.
“왜 그러십니까?”
“전에 박준이라고 신조선 사또전의 주연 배우랑 작은 일이 있었어요.”
“아아. 로켓보이 박준 얘기군요.”
“풉. 네. 로켓보이요. 사과하고 싶다고 식사에 초대했는데, 이미 지난 일로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음. 가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쿠첼루스는 태주가 박준을 만나는 게 나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로켓보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 줬다. 팀은 이미 해체된 상황이었는데, 박준은 그걸 모르고 있고, 현재 정신적으로 꽤 위기에 몰린 상태라고 알려줬다.
“그 양초를 선물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양초요? 아! 꿈결초로 만든 양초 말하는 거죠?”
“네.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물건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요, 쿠첼. 아이돌에 대해서 정말 잘 아시네요.”
“흐흐흠. 좀 그렇게 됐습니다.”
쿠첼루스의 설명은 간단했다. 예전 김성진의 일이 있었을 때, 안티 활동을 하며 아이돌의 음악과 문화를 많이 접했었다. 로켓보이도 그때 알게 된 그룹이었다. 실력은 좋았는데, 지원을 너무 못 받아서 결국 뜨지 못했다고 알려 줬다.
“그쪽 대표가 아주 양아치입니다.”
“양아치요?”
“네. 돈만 밝히고, 제대로 케어도 안 해 주는 곳입니다.”
“그래요?”
쿠첼루스는 태주에게 박준을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태주는 잠시 생각한 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사실 꿈결초 양초는 태주가 온실에서 키워낸 상급 꿈결초로 만든 것이었다. 쓰임새가 많은 꿈결초라 꽤 많이 기르고 있었다. 만들려면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쿠첼루스가 연예계 쪽 소식을 잘 아는 편이긴 했지만, 자신과 관련된 소식을 제일 많이 찾아봤다. 그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아이돌의 소식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로켓보이의 멤버들이 유기묘 두 마리를 몇 년째 키우고 있습니다.”
“아!”
“큼.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이 힘든 상황에 놓인 걸 돕는 건 괜찮습니다.”
“아하하하. 알았어요. 유기묘를 키우는 사람이라니 저도 도울게요.”
“길고양이를 돌봐 주기도 합니다.”
“하하하.”
로켓보이를 도와주려는 쿠첼루스의 이유는 너무 귀엽고 단순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에 김성진이 고양이를 해친 걸 보고 안티가 된 그였다. 고양이를 도와준 로켓보이를 돕는 건 그에겐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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