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7
136. 박준 >
태주는 쿠첼루스의 말대로 김은형과 박준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는 활동기인 김은형이나 드라마 촬영 중인 박준이 바빠서 근시일 안에 만나기 힘들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약속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바로 며칠 뒤로 잡혔다.
대접을 받기로 한 날이 단막극 방영일이라 피하고 싶었는데, 날짜를 바꾸기 힘들었다. 다음 주부터 김은형의 해외 스케줄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바쁜 아이돌이 얼마 없는 휴일을 쪼개서 시간을 내는데, 백수인 태주가 거절하기는 미안했다.
“진짜. 배우는 촬영 없으면 영락없이 백수구나. 가수랑은 확실히 달라. 가수들은 바로 다음 앨범 준비한다고 곡 쓰고 춤 연습하고 하던데.”
태주는 할 일이 없어서 집에만 있었다. 책 읽기도 지겨워서 스트레칭만 하고 있었다. 우 팀장님에게 겨우 고른 신부님과 어린 연인의 사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나니, 한동안은 대본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보려 해도 볼 게 없었다. 다음 주로 예정된 로션 광고를 찍기 전까지, 그는 말 그대로 백수였다.
태주는 이렇게 일이 없어서 노는 것보단 차라리 우 팀장님이 얘기했던 예능에 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성호 PD는 잘 알려진 것처럼 농어촌이나 가구 수가 몇 없는 산간에서 연예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찍은 예능으로 유명했다.
“예능은 잘 안 보지만, 오성호 PD 예능은 워낙 유명하니까.”
태주가 아는 오성호 PD의 예능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한 프로그램당 3, 4시즌을 찍는 게 기본이었다. 지금은 농촌과 어촌을 번갈아가면서 찍고 있었다. 나중엔 해외의 시골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촬영하지만, 아직은 국내 촬영 위주였다.
“농촌은 시즌 3까지 찍었고, 어촌은 시즌 2까지 찍었네. 정말 여기 섭외된 건가?”
오성호 PD에게는 오성호 사단이라고 불리는 PD, 작가, 연예인이 있었다. 오성호 PD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 할 때 그와 팀을 짜서 움직이는 후배 PD도 많았고, 작가도 많았다. 태주 생각엔 오성호 PD가 메인이 아니라, 그의 사단에 있는 후배 PD가 메인인 예능인 것 같았다.
“오성호 PD 사단의 PD와 작가는 잘 모르는데…. 자세한 건 우 팀장님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확실한 건 이미 캐릭터와 흐름이 단단하게 잡힌 농어촌 체험 쪽은 아닐 거라는 것이었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포맷이 있는데 굳이 새로운 역할로 자신을 투입할 이유가 없었다. 4시즌 넘어서 사람들이 지겨워할 때쯤 새로운 역할을 넣지, 성공 공식이 확실한 프로에 넣을 이유는 없었다.
오성호 PD 사단은 공동 제작인 것처럼 동료 PD의 이름을 같이 올리기도 했다. 그런 프로가 이제 슬슬 나올 때였다. 아마 태주에게 들어온 섭외 제안도 그럴 것 같았다.
*
김은형, 박준과 약속한 날이 되었다. 태주는 처음엔 탐탁지 않았던 약속이었지만, 당일에 외출 준비를 시작하자 살짝 설레었다. 또래와 어울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름에 은혁이를 만나고 한참만이었다. 물론 다섯 살 연상의 두 명이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커버 가능했다.
미나의 도움으로 구매한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방에서 나왔을 때였다. 방문 앞을 지키고 있었던 듯, 산이로 바뀐 태산이가 그에게 매달렸다. 입은 옷이 구김이 많이 가는 옷이 아니라서, 그는 가볍게 산이를 안아 들었다.
“오늘 약속은 산이로도 힘든데.”
“앙.”
“김은형 씨만 만나는 자리면 괜찮은데, 박준 씨는 형도 얼굴 한 번 본 사이라서 산이랑 같이 갈 수 없어.”
“노. 사니, 가자.”
“크흐흠. 산이는 집에. 형만 가는 거야.”
집에 있으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는 태산이 때문에 난감했다. 그렇다고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아이를 데려갈 수 없었다.
예약한 음식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아이돌이 다니는 장소인 만큼 폐쇄성이 짙은 곳일 텐데, 아이를 데려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편견이지만, 그는 아이는 밝고 깨끗한 곳에만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예인, 그것도 가장 팬덤이 큰 아이돌이 다니는 장소였다. 그런 곳은 그도 가 보지 않았지만, 회귀 전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던 장소를 떠올려 보면 결코 아이가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주차장부터 내부까지, 안내하는 사람 한 명 빼곤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지. 보안은 괜찮을지 몰라도 산이가 가기에는 좀.’
-똑똑.
“쿠첼, 바빠요? 산이 좀 봐주세요.”
“크르릉.”
‘아이고. 산아. 너 지금 아이 모습이야.’
“태주 씨?”
태주는 쿠첼루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태산이를 떼어 낼 생각이었지만, 그다지 훌륭한 선택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태산이에게 전부 져 주는 쿠첼루스가 도움될 리 없었다. 그는 태산이 고집부리는 것을 곁에서 보며 안절부절못하느라 바빴다.
-꼭!
“어휴. 정말. 형이 산이도 가도 되는지 전화해서 물어볼 거야. 안 된다고 하면 얌전히 집에 있기야. 응?”
“앙.”
“안 된다고 하면, 고집부리지 않고 쿠첼이랑 집에서 기다리는 거야. 알았지?”
“앙.”
태주는 결국 김은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너무 무른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에 팔을 꼭 감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이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신호음이 가는 사이, 그는 부디 김은형이 정한 약속 장소가 아이도 같이 갈 수 있을 만한 장소이길 바랐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태주의 차 안에서 태산이가 신이 나서 옹알옹알하고 있었다. 지금 태주가 향하는 곳은 김은형이 처음 예약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의 예상대로 약속 장소는 보안이 철저한, 달리 말해 상당히 폐쇄적인 장소였다. 게다가 음식점보다는 술집에 가까웠다.
잠시 고민하던 김은형이 태주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다른 멤버가 있는 곳에 가도 되는지 고민하는 그에게 혼자 사는 집이라고 알려줬다. 김은형은 멤버들과 같이 지내는 숙소와 별개로 혼자서 지내는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의 주소를 알려 줬다.
“앙. 사니. 가자.”
“그래. 산이도 가자.”
태산이는 아직 받침이 들어가는 단어는 발음하기 힘든 것 같았다. 그래도 태주가 자주 쓰는 말들을 기억하고 적절한 상황에 사용하는 게 꽤 기특했다. 따로 말을 가르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여러 단어를 배워서 쓰고 있었다.
“산이 도착하면. ‘고맙습니다.’ 해야 해.”
“앙.”
“고맙습니다. 알았지?”
“앙. 거마뜨.”
“옳지. 잘하네. 산이 잘한다.”
김은형의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짐을 내리던 그는 자신이 너무 과하게 챙겨 왔다는 걸 깨달았다. 정원에서 가져온 과일 상자와 해나가 만들어 준 케이크, 꿈결초 양초를 담은 쇼핑백에 태산이 짐 가방까지. 혼자서 옮기기엔 손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김은형의 집에 도착한 태주가 태산이를 먼저 들여보내고 나서,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둘을 반기던 김은형은 상냥하게 말을 걸며 태산이가 신발을 벗는 걸 도왔다. 그런 후엔 태주의 손에서 짐을 받아 주방으로 옮겼다. 따로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모습이 여전했다.
태주가 잠시 집안을 살펴보는 사이, 태산이는 김은형을 따라 쫄래쫄래 주방으로 갔다. 사실 김은형을 따라갔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음식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한 것 같았다. 그는 아차 하고 두 사람을 따라서 움직였다.
‘처음 오는 장소에서 아이에게서 눈을 떼다니. 얼빠진 것도 정도 것이지.’
급하게 따라 들어간 주방에선 김은형이 태산이를 안아 들고 손을 씻겨 주고 있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게 다행히 태산이가 온 게 싫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깨끗해졌네.”
“앙.”
“산아. 고맙습니다, 해야지.”
“앙. 거마뜨.”
“하하하. 별말씀을.”
태산이 손을 씻긴 김은형이 작은 그릇에 음식을 덜어서 건넸다.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태산이가 그의 다리에 매달려서 달라고 보챘기 때문이었다. 접시에 담긴 커틀릿은 양이 많진 않았다. 맛만 볼 수준이었다. 우선 이 정도로 태산이를 달래라는 것 같았다.
“준이는 회사에 들러야 한대요.”
“그런가요.”
“금방 끝난다고, 많이 늦진 않을 거래요.”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앙.”
태주는 김은형이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내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사람이 요리까지 잘했다. 오물오물 열심히 먹는 태산이만 봐도 맛이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태산이는 입맛이 까다롭진 않아도 맛없는 것을 참고 먹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몇 가지 음식을 덜어서 태산이에게 먼저 먹이고 박준이 오길 기다렸다.
*
박준은 회사에 들르라는 팀장의 말에 오랜만에 회사에 왔다. 최근엔 드라마만 촬영하느라 회사에 들를 일이 거의 없었다. 연이어서 드라마 세 작품에 들어가는 바람에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었다.
익숙한 로비를 지나 사무실로 가는 박준의 표정이 밝았다. 드라마가 끝나면 앨범 준비를 하자던 대표님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지난 앨범이 나오고 나서 벌써 이 년도 넘게 지났다. 더 늦기 전에 새 앨범을 내고 싶었다.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박준은 먼저 인사하는 팀장에게 마주 인사하며 자신의 매니저에게 눈으로 물었다. 왜 여기 있냐는 물음이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 생긴 김에 매니저를 두고 일부러 혼자 회사에 왔는데, 두고 온 보람도 없이 회사에 와 있었다.
“흠흠. 준아.”
“…?”
“그게…. 그, 지금 하는 드라마 끝나면 말이다.”
박준이 기억하는 팀장은 말을 더듬는 사람이 아니었다. 혈기 왕성한 멤버들을 상대하느라 이골이 난 팀장은 소리도 잘 질렀고 육박지르는 일도 많았다. 그의 눈치를 볼 사람은 아니었다.
“오성호 PD 알지?”
“…네.”
“오성호 PD 예능 섭외가 들어왔어. 연예인치고 여기 출연하기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 줄은 너도 잘 알지?”
“드라마 끝나고 바로 들어가는 거라 힘들겠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이해하지?”
좋은 기회라고 꾀듯이 말하는 팀장의 옆에 얼굴을 감싸 쥔 매니저 형이 보였다. 박준은 지금 듣고 있는 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팀장님이 그에게 한 얘기는, 그가 바라던 앨범을 준비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예능에 출연하라는 통보였다.
“자세한 건 오성호 PD 쪽이랑 다시 얘기를 나눠 봐야 하지만. 아마 상반기 안에 촬영이 끝날 거야. 그 후엔 쉬게 해 줄게.”
“…형?”
“…미안하다.”
“쯧.”
혀를 찬 팀장이 자리를 비웠다. 회의실을 나서기 전, 그는 박준의 매니저에게 잘 달래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가 이 예능 스케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걸 알지만, 이미 계약서를 쓴 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좋은 말로 박준을 달래는 게 최선이었다.
“형 이게 무슨 말이에요?”
“정확하게 무슨 예능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앨범은… ”
“…미안. 대표님이 이미 출연계약서에 서명하고 오신 상태라.”
“….”
오후에 친구 김은형과 약속을 잡은 걸 알고 있던 매니저가, 멍한 얼굴의 박준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출발하면 약속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로 달래는 것보다, 친구에게 털어놓는 게 훨씬 나아 보여서였다.
매니저가 이끄는 대로 인형처럼 따라나선 박준은 차가 출발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매니저에게 바뀐 행선지를 알려 줬다. 매니저는 익숙하게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 후, 그를 김은형의 집으로 데려다줬다.
“저녁에 데리러 올까?”
“10시에 데리러 올게. 폰 끄지 말고 전화하면 내려와.”
“…네.”
어깨가 축 처져서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가는 박준을 보는 매니저도 기운이 빠졌다. 아니 화가 나서 기운이 뻗쳤다. 정말 빌어먹을 상황이었다.
대표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게 분명했다. 아마도 대표는 박준이 재계약을 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1년 남은 계약 기간 최대한 뽑아 먹을 수 있는 만큼 뽑아 먹을 생각인 것 같았다. 망한 아이돌이니 취급이 나쁠 수밖에 없다지만, 너무한 상황이었다.
박준의 성격이 보통 사람 정도만 되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주변에서 강압적으로 조금만 밀어붙여도 그대로 떠밀리고 말았다. 오늘도 팀장의 말에 속이 상했을 게 분명한데, 한마디도 따지지 못했다.
그는 차를 출발하기 전에 한 번 더 박준이 간 방향을 돌아봤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기분이 좀 나아지길 바랐다.
*
저와 김은형이 같이 초대한 식사 자리였다. 기운 없는 모습으로 상대를 만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감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박준의 머릿속에는 대표가 했던 앨범을 내주겠다는 약속만이 맴돌고 있었다.
“왔어? 이태주 씨는 먼저 왔어. 친척 동생 산이랑.”
“…응.”
“준아 너 괜찮아?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김은형이 박준을 맞이하는 곳으로 태산이를 안은 태주가 다가왔다.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서 계속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였다. 박준은 정신이 나간 듯 힘없이 벽에 기대 있고, 그런 그의 곁에서 김은형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은형 씨. 박준 씨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죠.”
“네? 네.”
“아무래도 밥보단 휴식이 필요한 것 같네요. 혹시 눕힐 만한 곳이 있나요?”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에 손님방이 있어요.”
박준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초점이 흐려진 눈을 하고 있었다. 몸을 가누는 것도 힘이 드는지, 태주가 이끄는 대로 그대로 끌려왔다. 그는 지금 자신을 방으로 데려가는 게 태주인 것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숨 재우는 게 낫겠어요.”
“이게 대체….”
“회사에서 무슨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요.”
“역시 그렇겠죠?”
태주는 챙겨온 쇼핑백에서 꿈결초 양초를 꺼냈다. 쿠첼루스가 선물하는 게 좋을 거라고 괜히 추천한 게 아니었다. 박준은 정말로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옷에 가려져 있어서 몰랐는데, 방으로 데려가는 도중 손에 잡힌 몸에 살집이 전혀 없었다. 남자 팔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고된 드라마 촬영 외에 무언가 그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부디 좋은 꿈을 꾸길.”
태주는 침대와 좀 떨어진 장소에 꿈결초 양초를 켜 둔 채 방을 나왔다. 휴식이 필요한 박준이 잠시나마 좋은 꿈을 꾸며 쉴 수 있길 빌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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