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8
137. 저녁 식사 >
박준을 손님 방에 눕힌 후 거실로 나온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얘기를 듣고 와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눈에 띌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내일부터 다시 이어질 촬영이 무리로 보일 정도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참 마음에 안 드네요. 사람이 저 정도로 몰리게 두다니.”
“저도 자세한 건…. 앨범이 또 미뤄졌나?”
“앨범이요?”
“네. 지난번에도 앨범 미뤄져서 힘들어했거든요.”
“팀 해체했다고….”
태주가 말을 얼버무렸다. 팀이 해체 상태라는 건 쿠첼루스에게 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경솔하게 입에 올린 것은 실수였다. 김은형은 씁쓸한 웃음을 짓고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제스처였다.
“준이가 그룹으로 활동 안 한 게, 벌써 이 년쯤 됐어요.”
“꽤 오래됐네요?”
“네. 아마 지금은 연락 안 되는 멤버도 있을 거예요.”
“흠.”
“에쭈.”
두 사람이 박준의 사정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태산이가 태주를 불렀다. 안아 달라 팔을 벌리는 아이를 품에 안자, 덥석 목에 매달렸다. 태산이가 어리광을 부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 그는 곧 무신경한 자신을 탓했다.
‘산이로 바뀌고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겨우 커틀릿하고 고기 몇 조각만 먹였네.’
“은형 씨 미안한데요. 산이가 먹을 음식을 좀 부탁해도 될까요?”
“아! 죄송해요. 바로 차려 드릴게요.”
“에쭈.”
“응. 금방 밥 먹을 거야.”
도와줄 생각으로 주방으로 들어가자 랩만 벗기면 되게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태산이가 맛있게 먹은 커틀릿 외에도 꽤 많은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냄새도 좋고 모양도 예쁜 게, 한두 해 요리해서 익힌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태산이를 무릎에 앉힌 태주가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젓가락을 들었을 때였다. 음식은 안 먹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김은형이 보였다. 의아한 얼굴로 태주가 그를 보자, 얼굴이 빨개져서는 태산이 밥을 자기가 먹여 주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 그러세요.”
“앙.”
“산이 은형 형이랑 같이 밥 먹자.”
“은, 은형 형!”
“네?”
김은형은 태주가 자신을 부른 호칭에 솔직하게 놀랐다. 물론 자신을 부른 게 아니라, 친척 동생한테 설명하느라 쓴 호칭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호칭을 듣자 어쩐지 부끄러우면서도 만족스러웠다.
태주와 알게 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그는 줄곧 김은형 씨라고 불렀다. 형이라는 호칭을 비록 태주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거리감이 줄고 좀 더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산이는 무슨 음식 좋아해?”
“꼬꼬.”
“꼬꼬?”
“치킨이요. 요새 치킨에 빠져서 매일 사 달라고 해요.”
“아! 그럼 이거 먹을까? 닭고기 호박 조림이야.”
“앙.”
태주는 김은형이 태산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것저것 챙겨 먹이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민망함을 느꼈다. 자신도 남에게 저렇게 보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자신도, 지금 김은형처럼 부지런히 젓가락으로 음식을 입으로 옮겨 줬었다.
“산이만 너무 챙기지 마시고, 은형 씨도 드세요.”
“…형.”
“네?”
“아까 형이라고….”
“아! 그, 네. 은형 형도 드세요.”
두 사람은 서로 형이라는 호칭을 요구하고 부른 것과 다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겨우 형이라고 부른 것뿐인데, 이상하게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크흠. 맛있네요.”
“만, 많이 드세요.”
“네.”
“….”
“….”
‘악! 이 분위기 뭐야?’
뜬금없는 부드러운 공기가 주방 식탁 위에 가득했다. 두 사람은 이 쓸데없이 다정한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라서 굳어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태산이는 김은형의 젓가락이 멈추자 바로 음식을 요구했다.
“앙. 빱.”
“응? 미안. 이거 줄까?”
이번엔 태산이 식탐 덕을 봤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빱이라는 태산이 목소리에 깔끔하게 사라졌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손길이 다시 바빠졌다. 김은형의 요리 솜씨는 어디 나가서 자랑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했다. 요리 잘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태주의 솔직한 칭찬이 식사하는 내내 이어졌다.
-주르륵.
“아!”
“괜찮아요. 갈아 입힐 옷 가져왔어요.”
“앙.”
“킥. 산이한텐 소스 흘린 것보단, 음식을 안 먹여 주는 게 더 큰 문제일걸요.”
그의 말대로 태산인 미트볼 소스가 흘러서 옷에 묻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입까지 왔다가 다시 가 버린 음식에 눈이 가 있었다. 두 사람이 흘린 소스를 신경 쓰지 않자, 김은형이 다시 바쁘게 음식을 집어 날랐다.
먹성 좋은 태산이는 혼자서 성인 한 사람 몫을 먹었다. 오히려 태산이에게 음식을 챙겨 준 김은형이 제대로 먹지 못했다. 태주는 김은형이 식사할 수 있게 중간에 태산이를 데려왔다.
식사 시간은 사과의 의미로 대접하겠다던 원래 이유와는 상관없는 느긋하고 편한 시간이었다.
*
짐 가방 안엔 귀여운 옷이 여러 벌 있었다. 오늘 입힌 것은 얼마 전에 구한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셔츠였다. 백호가 아닌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귀여운 호랑이 모습이 그려진 셔츠는 색깔별로 장만할 정도로 태주의 마음에 쏙 들었다.
“우와. 우리 산이 멋있다.”
“앙.”
“어흥! 호랑이 그림이야.”
“꺄하.”
“하하하.”
옷을 갈아입힌 후, 장난을 치고 놀아 주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태주는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늦은 밤에 방영하는 단막극을 보려면 그만 일어나야 했다.
돌아가려고 태산이 옷과 장난감 등을 챙기는 태주에게 김은형이 남은 음식을 챙겨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많은 양을 만들기도 했지만, 박준이 자느라 입이 줄어서 음식이 많이 남아버렸다. 새벽부터 스케줄을 시작해서 오후에 일본으로 출국해야 해서 남은 음식 처리가 문제였다.
태주와 김은형, 두 사람이 주방에서 이것저것 포장하는 사이 태산이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폴짝 뛰어서 문손잡이를 잡고 매달리자 문이 열렸다.
킁킁. 방 안에선 익숙한 꽃향기, 꿈결초 향기가 가득했다. 정원에서 태주가 가끔 들어가는 곳에서 나던 냄새였다. 솔솔 잠이 오는 걸 느끼던 태산이에게 꿈결초 향이 가득한 방은 치명적이었다.
태산이는 침대 위에 낯선 사람이 누운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올라갔다. 보들보들한 이불 속을 파고들어서, 따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에게 몸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김은형의 음식이 담긴 쇼핑백까지 챙긴 태주가 태산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워낙 숨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어디 숨었나 싶어서 돌아보다, 손님방 문이 열린 것을 알아챘다. 소리를 죽이고 방안을 살펴보던 태주는, 그곳에서 박준의 품에 안긴 채 쿨쿨 자는 태산이를 볼 수 있었다.
태주의 뒤에서 김은형도 안을 살펴보다 슬쩍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끌어안고 세상모르게 푹 잠이 든 상태였다. 태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그가 방문을 눈으로 가리켰다. 태주는 그의 뜻에 따라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단막극 11시 50분에 시작하죠?”
“네.”
“아직 9시니까 한 시간 정도는 재우셔도 될 것 같아요.”
“모처럼의 휴일인데…. 남은 시간이라도 쉬셔야죠.”
“하하하. 이런 게 쉬는 거죠.”
김은형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도 그에겐 휴식이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는 아이돌이라서 밖에선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데뷔하고 벌써 한참 됐지만, 그런 상황은 여전했다. 조금이라도 인상을 쓰면 태도 논란이 벌어지고, 여자 연예인과 대화라도 나누면 스캔들이 생겼다.
굳이 스캔들이 아니더라도 말조심, 행동조심은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매일 듣는 주의사항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평범하고 편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에겐 휴식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때, 태산이는 무척 즐거운 꿈을 꾸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침대에서 잠이 든 태산이에게 꿈결초 양초의 효과가 제대로 들었다.
태산이는 꿈속에서 드래곤만큼 거대한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호랑이로 변한 태산이 앞발을 휘둘러 하얀 드래곤을 후려쳤다. 드래곤은 태산이 발에 맞아 큰 소리를 내며 정원을 뒹굴었다. 그렇게 드래곤을 무찌른 태산이 우렁찬 울음소리를 냈다.
꿈속에서 태주가 태산이에게 잘했다고 외치고 있었다. 태산이는 나쁜 드래곤이 데려간 모린의 바구니를 되찾을 수 있었다. 태산이 바구니 손잡이를 물고 태주에게 모린을 데려갔다. 모린을 다시 만난 태주가 아주 기뻐하면서 태산이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꿈결초의 효과로 꾸는 꿈속에서 태산이는 혼자서 거대한 드래곤을 물리치고 모린을 되찾는 활극을 벌이고 있었다.
박준 역시 좋은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로켓보이 멤버가 다시 모여 새 앨범을 내는 꿈을 꿨다. 새 앨범이 크게 성공해서 해외로 공연도 다니고, 빌딩도 사서 레이블을 만드는 꿈이었다. 꿈속에선 매니저 형이 레이블의 대표가 되어, 멤버 각자가 바라는 음악을 할 수 있게 지원해줬다.
깨기 싫을 정도로 좋은 꿈을 꾼 박준은 눈을 뜨자마자 현실을 깨달았다. 모든 게 꿈이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멤버가 다시 모이는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흑흑.”
“앙?”
“흐흡흑.”
“아앙. 에쭈.”
박준은 품 안의 온기를 놓칠세라 꼭 안고 펑펑 울었다. 꿈이라는 걸 깨닫자, 사람들 눈이 무서워 울지도 못하던 그의 눈물보가 터져 버렸다. 참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꿈속의 행복한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비교되자,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박준의 안에 쌓이고 쌓인 설움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모린이 함께 지내는 기분 좋은 꿈을 꾸던 태산이는 날벼락을 맞았다.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침대에서 달게 자던 태산이는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우는 사람 때문에 억지로 잠에서 깨야 했다.
태산이에겐 정원이나 현실이나 모두 즐거운 곳이었다. 정원 식구들과 하는 놀이도 현실에서 형들과 노는 것도 전부 즐거웠다. 지금까지 태산이는 그를 보고 좋아서 웃어 주는 사람만 만났었다. 박준처럼 슬프게 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태산이 마주한 낯선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역시 태주였다. 태산이는 박준의 품에 안긴 채 큰 소리로 태주를 불렀다.
“앙. 에쭈!”
-달칵!
“산아!”
태산이의 부름에 태주가 바로 반응했다. 안 그래도 방안에서 나는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의 귀에 자신을 찾는 태산이 외침이 들어오자, 박준이 같이 자고 있었다는 사실 같은 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머리엔 자신을 찾는 태산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산이 괜찮아?”
“앙.”
“흑흑흑.”
“박준 씨? 무, 무슨 일이에요?”
“아앙. 에쭈. 앙.”
태산이 익숙한 그를 보자 바로 안아 달라 팔을 뻗었지만, 태주는 당황한 모습으로 태산이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박준은 그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태주는 태산이를 구명줄인 양 붙잡고 서럽게 우는 박준에게 손을 대기 난감했다. 보는 사람도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럽게 우는 박준에게서 태산이를 뺏어 안을 정도로 모질지 못했다.
태산이 한 번 더 안아 달라 보챘지만, 태주는 미안한 얼굴로 시선을 외면했다.
“어? 준아!”
“은형 형. 그냥 두세요.”
“어?”
“기분 풀릴 때까지 울게 두죠.”
“그, 산이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자신이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얘기한 태주가 태산이 바로 곁에 앉았다. 태산인 자신을 바로 안아 주지 않아 조금 심술이 난 것 같았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태주가 곁에 붙어 앉아 손을 잡았다 놓는 장난을 치자, 금세 기분이 풀렸다. 태주의 손이 요리조리 잘도 피하자, 눈을 반짝이며 그의 손을 잡으려 집중했다. 놀이를 좋아하는 태산이 성향은 아이 모습이어도 그대로였다.
*
한바탕 울고 난 후에 진정된 박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산이는 그제야 풀려나서 태주의 품에 안겼다. 태주는 제법 긴 시간 동안 박준을 힘으로 밀어내지 않고 용케 참아 낸 태산이 대견했다. 그는 머리도 쓰다듬고 엉덩이도 토닥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태산이를 칭찬 했다.
태산이의 만족한 얼굴에 우쭐우쭐한 표정이 더해질 때까지 태주는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태산이는 낯선 상황에 당황한 것은 이미 모두 잊은 것 같았다. 꿈에서 모린을 구하고 들은 것보다 더 많은 칭찬을 들은 덕분에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제 좀 진정이 됐어?”
“…미안.”
“괜찮아. 나보단 산이가 수고했지. 산이 알지? 태주 씨 친척 동생.”
“응.”
“무슨 일이야?”
울먹이면서 박준이 꺼내 놓은 사연은 김은형의 짐작 대로였다. 앨범 일정이 다시 밀렸다는 소리였다. 그 얘기를 들은 김은형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 역시 아이돌이었다. 비록 연기를 병행하고 있지만, 본업은 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앨범을 내주기로 약속을 했었어요?”
“…네.”
‘몹쓸 인간이네.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거랑 뭐가 달라? 미끼를 흔들면서 계속 달리게 하다니.’
혀끝까지 욕이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정도인 태주보다, 실제로 겪는 중인 박준이 더 속상할 게 분명해서였다.
게다가 김은형이 설명한 대로라면 그는 주변에서 욕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힘들어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욕이나 험담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그 대표님한테 선물을 좀 보내야겠네. 산세비에리아 같은 공기 정화 식물이 좋겠어. 웃는 얼굴에 노래도 좀 할 줄 알면 더 좋겠지?’
어차피 처치 곤란한 정원의 화초였다. 정원사의 양심상 차마 뽑아 버리지는 못하고, 창고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준 참이었다. 어두운 창고 안, 달빛이 한 줄기도 닿지 않는 장소였다. 평소 그는 실수로라도 그 근처로 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 무덤초가 제 쓰임을 다할 만한 일이었다. 노래도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아이돌 기획사에 딱 맞는 화초일지도 몰랐다. 태주는 속으로 무덤초는 잘 어울릴 장소를 찾아 주고, 정원은 평온을 찾게 될 방법을 떠올린 자신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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