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9
138. 단막극 시청 >
칭찬 세례를 받고 어깨가 올라간 태산이 활기차게 형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자기를 놀라게 했던 박준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소파에 앉은 태주의 어깨에 매달렸다가 김은형에게 안기기도 했다. 형들의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모르는 아이의 천진한 모습에 거실 안의 분위기가 점점 풀어졌다.
태산이 거실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늘은 평소 활동량의 반에도 못 미치게 움직였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은 호랑이 모습으로 캣 타워를 오르락내리락할 시간이었다. 자기 전에 실컷 몸을 움직여서 쌓인 체력을 소모해야 푹 자는 태산인데, 오늘은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이를 데려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좀 전까지 우울한 얼굴이던 박준이 어느새 미소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산이가 따로 재롱 같은 걸 부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돌아다니는 아이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준아, 뭐 좀 먹을래?”
“아니. 괜찮아.”
“사니. 앙.”
“은형 형. 산이 이제 먹을 거 더 주시면 안 돼요. 많이 먹었어요.”
“노.”
“노는 형이 해야지. 산이 오늘 정말 많이 먹었어. 더 먹으면 큰일 나.”
태산이는 노느라 바쁜 와중에도 먹는다는 단어는 놓치지 않고, 김은형을 바라봤다. 이미 보통 아이 식사량의 두 배 넘게 먹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과식하고 탈이 난 적이 없긴 했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먹을 걸 주지 말라고 하는 태주에게 태산이 달려들었다. 그는 달려드는 아이를 익숙하게 안아 들어 간지럼을 태웠다. 옆구리도 간질이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놀아 줬다. 태산이는 금세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은 잊어버리고 태주와의 놀이에 푹 빠졌다.
그렇게 둘이 노는 모습을 김은형이 폰으로 찍었다. 평소처럼 태주가 나오는 작품의 홍보를 해 줄 생각이었다. 오늘은 실물도 바로 곁에 있으니, 태주에게 물어보고 좀 전에 찍은 사진을 써서 SNS에 올리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이 사진 SNS에 올려도 돼요? 산이도 나오는데….”
“네. 괜찮아요.”
“앙.”
김은형은 좀 전에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그대로 올렸다. 태주의 단막극 홍보를 위한 게시글이라, ‘단막극#박수#태주&산이#두근두근’이라는 해시태그도 달아 두었다. 김은형이 올린 사진은 올리기 무섭게 바로 퍼져 나갔다.
김은형의 팬뿐 아니라, 태주의 팬들도 김은형의 SNS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많았다. 초기에 미디어 노출이 적은 태주의 정보를 김은형의 SNS와 그의 팬클럽에서 얻던 사람들이 여전히 팔로우하고 있었다.
사진 속 태주는 편한 차림으로 동생과 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머리에 살짝 접힌 눈꼬리가 보기 좋았다. 태산이 역시 사랑스럽다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반짝이는 파란 눈에 통통한 볼이 웃고 노느라 발그레했다.
“우리 산이 귀엽네.”
“앙.”
“고마워요. 은형 형.”
“거마뜨.”
“하하하. 스타 라이브도 하면 좋은데, 아쉽네요.”
태주는 스타 라이브를 하지 못해 아쉽다고 얘기하는 김은형을 말렸다. 쉬는 날을 자기들에게 내준 거로 충분했다. 스타 라이브가 개인 방송이라지만, 실제로 하려면 신경 쓸 일도 많고 번잡스러울 텐데, 그 정도로 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응? 진동 소리 들리지 않아요?”
“제 폰은 아니에요.”
“나도 아닌데….”
김은형과 태주의 폰은 조용했다. 그런 둘을 보다 박준이 화들짝 놀라서 손님방으로 갔다. 그의 폰이었던 듯 바로 통화가 이어졌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가까운 곳이라서 내용이 대강 들렸다.
박준의 매니저가 한참 전부터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연락이 안 되는 박준이 걱정돼서 돌아가지도 못하고 계속 전화를 건 것 같았다. 전화를 받는 박준은 괜찮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태주는 그 모습에 조금 부아가 치미는 것 같았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뭐가 그리 괜찮고 미안한 건지….
통화를 끝낸 박준이 가방을 들고 나왔다. 바로 돌아갈 생각인 것 같았다. 문을 나서기 전 그는 태주와 김은형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초대해 놓고 접대를 못 한 일, 은형에게 장소와 요리를 떠넘긴 일, 우는 내내 태산이를 안고 있던 일들을 사과했다.
태주가 보기엔 그가 그렇게 고개 숙여 사과할 필요 없는 일들이었다. 장소가 바뀐 이유는 태주가 태산이를 데려오느라 그렇게 된 것이고, 그의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은 절대 그의 탓이 아니었다.
“알았어, 준아. 어서 가 봐.”
“나중에, 다시….”
“응. 나중에 다시 시간 낼게.”
“이태주 씨도….”
“저도 나중에 시간 낼게요.”
“감, 감사합니다.”
태주는 처음 김은형을 봤을 때 저렇게 순둥이 같은 사람이 연예계 생활을 어떻게 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준에 비하면 김은형의 신경은 고래 심줄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순한 성격은 비슷해 보였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차이 났다.
“두 분 어떻게 아시는 사이세요?”
“원래 같은 회사 소속이었어요. 연습생 때요.”
“아아.”
“저는 중간에 연습생을 그만뒀다가, 나중에 지금 회사로 들어갔고요. 준이는 그대로 거기서 데뷔했어요.”
태주는 김은형의 설명에 그제야 두 사람의 친분이 이해됐다. 데뷔 시기가 비슷해서 같이 활동하면서 친해졌나 생각했었는데, 두 사람은 그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사실 스케줄이 많은 건 나쁘지 않아요. 겨우 몇 분 방송에 나오려고 온종일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잖아요.”
“그렇죠.”
“준이가 안 좋은 현장들만 거친 거는 알겠지만, 그런 일에도 감지덕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현실이죠.”
“흠. 그건 좀….”
“아마 태주 씨는 이해하시기 힘들 거에요.”
스무 살의 나이에 바로 영화로 데뷔한 태주는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김은형은 지레짐작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태주가 지나 온 길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 화보와 광고도 골라서 찍는 편이었다. 드라마 주연을 맡진 못했지만, 데뷔 3년 차에 주연급 조연으로 불리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김은형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태주가 그런 현장에서 참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맞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처럼 간절하지 않아서라는 뜻은 아니었다. 태주는 회귀 전 이미 그런 현장을 많이 봤기 때문에 참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곳은 절대로 성과를 남과 나누지 않지. 사람을 짓밟고 올라갈 발판으로만 여기는 곳이라, 아무리 참고 견뎌도 전혀 도움되지 않아.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지고 몸만 상할 뿐이야.’
“하지만 앨범을 내주겠다고, 거짓말한 건 두말할 필요 없는 몹쓸 짓이에요.”
“맞아요. 준이같이 우직한 애한테는 더 그렇죠.”
“우직?”
“그렇게 안 보이시죠?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준이 성격에 앨범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그런 박준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표한테 더 열 받는다며 김은형이 드물게 화를 냈다. 김은형의 말이 맞았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따지지도 못하는 사람이 여태까지 버틴 건 우직한 게 맞았다. 앨범 발매. 그것 하나만 바라고 우직하게 버틴 것이다.
‘솜뭉치도 띄울까? 창고에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
태주와 태산이는 아슬아슬하게 단막극 방영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출발해서 늦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올 수 있었다. 아마 도중 태산이가 잠이 들지 않았다면 시간을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마트에 꿀이라도 발라 놨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
태산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새로 나온 장난감을 사 달라 떼를 쓰진 않았다. 다만 식탐이 있어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전부 사 달라고 조르곤 했다. 대부분은 제가 생각했던 맛이 아닌지 한 입 만 먹고 먹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해나의 음식에 입맛이 길들었는데, 마트 음식에 만족할 리 없었다.
“아앙.”
“쉬이. 형이야. 더 자자.”
나갈 때보다는 적었지만, 돌아오는 길에도 그의 손에는 짐이 많았다. 잠든 태산이를 달래서 안고, 태산이 가방, 음식 쇼핑백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김은형에게 태산이 선물 받은 커다란 인형까지 챙기자, 태주는 전도유망한 배우라기보다 평범한 아기 아빠처럼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좀 늦었어요. 아! 방송 아직 시작 안 했죠?”
“이제 곧 시작합니다. 산이는 제가 안겠습니다.”
“부탁할게요.”
급하게 옷만 갈아입고 나온 태주가 거실로 나갔다. 거실 TV 앞에는 담요와 음료수, 노트북이 준비되어 있었다. 노트북을 발견한 태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얼마 전 신조선 사또전에 카메오로 출연한 편이 방영됐을 때가 떠올라서였다.
‘설마 오늘도 그러는 건 아니겠지?’
쿠첼루스는 태주의 드라마를 보면서 흔히 불판이라고 불리는 게시판을 모니터했다. 거기까지는 쿠첼루스의 관심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드라마 현장의 스태프들이 쿠첼루스처럼 노트북을 펴 놓고 방송을 보는 모습을 봤었기 때문에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스태프들은 쿠첼루스처럼 대화창에서 마음에 드는 시청자 의견을 발견했다고 직접 읽어 주진 않았었다. 그들은 시청률 그래프를 보면서 분석하기 바빴었다. 어떤 장면에서 시청률이 오르는지, 어떤 대사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는지 원인을 찾아내느라 바빴었다.
반면 쿠첼루스는 조선 시대는 왕을 얼굴로 뽑았냐, 이성계 후손이니 저 얼굴이 당연하다, 앞으로 조선 시대 왕은 그냥 이태주한테 전부 시키자 같은 태주에 관련된 의견을 찾아봤다. 그리고 태주가 들을 수 있게 육성으로 직접 그에게 읽어 줬다. 어쩐지 쿠첼루스는 태주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제 시작하는군요.”
“아!”
“아직은 기대된다, 너무 늦게 시작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군요.”
“읔! 쿠첼, 설마 오늘도?”
“하하하. 시청자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태주는 쿠첼루스가 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따지지 않았다. 쿠첼루스의 질문에 시청자 의견을 듣지 않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쿠첼루스도 대답을 바라고 되돌려 준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사과 머리 귀엽다. 우리 조카랑 같은 고무줄이네.”
“윽. 쿠첼, 반응은 나중에 찾아볼게요.”
“하하하. 실시간으로 듣는 게 더 좋지 않습니까.”
“으으. 민망하단 말이에요.”
“하하하.”
확실했다. 쿠첼루스는 태주가 부끄러워하는 걸 재밌어하는 게 분명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증거였다. 이미 한 번 겪은 일, 태주는 그냥 쿠첼루스와 자신의 사이가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가까워진 거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혹시 박수 사실은 진짜로 신기 있는 거 아니야? 오호. 이건 제가 봐도 그럴듯합니다. 진짭니까?”
“있을 거예요. 허공에 대고 혼잣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아!”
박수 대본에는 단막극이어서 길게 풀어내지 못하고 암시만 해 둔 내용이 좀 있었다. 박수와 금괴 탐색을 의뢰한 고객이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이어 갈 거라는 얘기나, 박수가 심부름 일을 하기 전의 과거 같은 얘기가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 처리됐다.
“오!”
“왜요?”
“박수를 미니시리즈로 만들자는 의견에 찬성 댓글이 엄청 달리는군요.”
“와! 시청자들 진짜 예리하네요. 박수는 사실 프리퀄 같은 작품이에요. 작가님이 박수를 탐정물로 생각하고 쓰신 거거든요. 신기를 숨기고 있는 박수와 여유롭고 부유한 조수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거예요.”
박수의 방영은 이미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태주는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쿠첼루스가 읽어 주는 시청자 반응이 도움된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었다. 쿠첼루스는 간간이 찬양에 가까운 태주의 외모 평가를 읽어 줘서 얼굴을 붉히게 했지만, 대체로 예리하게 지적하거나 분석한 반응을 읽어줬다.
박수는 예비 스타 작가와 PD의 작품이었다. 두 사람의 재능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입봉작이라서 어떻게 나올지 두근두근했었다.
그리고 작품은 태주의 기대대로 꽤 괜찮게 편집됐다. 강은진은 예전에도 꼼꼼하고 섬세한 편집으로 유명했었다. 박수에도 그 편집 성향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색감이 예쁘다는 의견도 꽤 있군요. 무당집인데도 무섭기보단 색이 퍼지는 부분이 예쁘다는 의견입니다.”
“아! 그게 그거예요. 신기 있다는 암시. 그렇게 퍼져 보일 때는 전부 박수가 신당에 혼자 있는 장면이거든요. 색이 퍼져 보이는 건 박수 시선이에요.”
“거기까지 알아챈 시청자는 없군요.”
“하하하.”
강은진 PD가 조명과 카메라에 숨겨 둔 의도까지 짧은 단막극에서 읽어 내긴 힘들 것이다. 극장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밤늦은 시간에 매주 한 편씩 방영되는 단막극이었다. 재밌다, 정도의 평만 받아도 충분했다. 쿠첼루스가 읽어 주는 반응을 보니 박수의 성적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론 태주와 다르게 여랑 작가와 강은진 PD는 시청률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적이 잘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시청률을 기다리는 두 사람은 방영이 시작한 순간부터 종료된 지금까지 쭉 긴장한 채였다.
“어헉!”
“왜? 왜? 여랑 작가.”
“사, 사!”
“사, 뭐?”
“4.48%!”
“뭐? 4.48?”
아무리 이태주가 출연한 단막극이라지만, 이게 가능한 수치인가 싶었다. tvM 드라마 중에도 2%를 못 넘기는 드라마가 꽤 있는데, 한편짜리 단막극이 4%를 넘어 버렸다.
“아. 아하하하하.”
“역시 우리 배우님. 감독님 내가 말했잖아요. 우리 배우님만 나와 주시면 성공은 보장된 거라고요.”
“하하하. 여랑 작가 말이 다 맞아. 아! 전화! 전화해야지.”
총 10편이 제작, 방영되는 단막극 공모전 작품 중 박수는 가장 먼저 제작되고 방영되는 작품이었다. 박수의 좋은 성적은 뒤이을 작품에는 부담으로 작용할지 몰랐지만, 두 작감과 시청자 그리고 방송국에는 매우 좋은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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