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43
142. 아기 로션 광고 촬영 >
반백수인 태주가 태산이와 놀고 있을 무렵 우 팀장은 지난밤에 방영된 박수의 성적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케이블 방송국의 단막극이 4.48%라는 좋은 성적을 얻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2%대의 시청률만 나와 줘도 충분했을 텐데, 그보다 훨씬 괜찮은 시청률에 아침 일찍 CP에게 감사 전화도 받은 상태였다. 인사 말미 은근히 태주의 차기작 일정을 묻는 CP의 생각이 그대로 읽히는 것 같았다. CP는 차기작을 다시 tvM에서 해 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우호적인 방송국이 하나 있으면 좋긴 하지. 지상파건 케이블이건 상관없이 아군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문제는 태주가 차기작의 후보로 올린, ‘신부님’과 ‘어린 연인’의 사정이었다. 제작 가능성조차 큰 것 같지 않은데, 어느 방송국에서 편성 받을지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태주의 부탁을 받고 두 대본에 관한 소식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녀도 대본을 다시 확인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들어온 대본 중에선 가장 괜찮았다.
스토리도 재밌었지만,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시놉시스와 1화 대본뿐이라서 속단하기 힘들지만, 제대로 제작만 된다면 꽤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제작만 된다면 말이지. 알아낸 사실을 이 배우님한테 알려 주긴 해야 하는데….’
“견우 씨.”
“네, 팀장님.”
“모레 로션 광고요. 촬영 끝나시면 이 배우님 모시고 사무실에 들러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촬영이었다. 오전에 시작해서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촬영을 마치는 일정이었다. 촬영 시간이 좀 짧은 게 걱정이었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늦은 시간까지 촬영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당장 태주부터가 반대하고 나설 게 뻔했다.
우 팀장이 본 태주라면 차라리 위약금을 물지언정, 어린 동생을 고생시킬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태주의 광고 촬영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예전 우유 광고를 찍는 현장에서 그가 어떻게 아이를 달래면서 촬영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고 촬영하는 날 형식 씨를 붙여 드릴까요?”
“음. 괜찮습니다.”
“이번 광고에선 산이도 저희 소속이니까요. 혹시 손이 부족할 것 같으면 얘기하세요.”
“태주 씨랑 동선이 같아서, 따로 사람이 필요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건 그렇긴 하죠.”
트리즈는 이번 광고에 한해서 산이와 에이전시 계약을 맺었다. 태주의 부탁이 없었더라도 산이의 계약이나 다른 일들을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그가 직접 산이의 에이전시 계약을 제안했다. 아마 대표님이라면 에이전시 계약이 아니라 전속 계약이라도 바로 승낙하셨을 것이다.
“광고 감독 맡으신 분은 어때요? 미팅에서 봤었죠?”
“고집이 좀 세 보이긴 했지만, 괜찮았습니다.”
“다행이네요. 고집이야, 뭐. 촬영만 잘하면 되죠.”
우 팀장은 광고 촬영일까지 태주가 부탁한 대본에 관한 내용을 더 자세히 알아볼 생각이었다. 괜찮은 대본이 왜 아직도 제작사나 배우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지, 태주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그녀도 이유를 알고 싶었다.
*
광고 촬영 당일이 되었다. 태주와 태산이는 일찍 일어나서 깔끔하게 씻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태주는 돌아오기 전 정원에서 팩을 하고 전신에 미용 크림을 발랐었다. 그 덕분인지 그렇지 않아도 좋았던 피부가 지금은 진짜 아기 피부처럼 곱고 부드러웠다.
“푸흡. 너무 열심히 씻는다 했어.”
“하하하. 잠들었습니까?”
“네. 이대로 데려가게요.”
아침에 욕조에서 너무 열심히 놀았는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태산이가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태주는 입히려고 준비했던 외투와 신발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태산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담요로 잘 감싸서 안았다.
태산이는 쿠첼루스가 태주 대신 짐 가방을 들고 주차장까지 배웅할 때도, 견우가 운전해서 촬영장까지 일행을 데려갈 때도 자고 있었다. 담요를 둘둘 감고 태주의 품에서 한 시간 가까이 잔 녀석은 세트장을 통과해서 분장실로 들어가자, 그제야 잠에서 깼다.
“앙.”
“이제 일어났어? 딱 좋은 시간에 일어났네. 우유 줄까?”
“앙.”
태주는 준비에 여념 없는 촬영 스태프와 다르게 느긋했다. 그는 이번 촬영 콘셉트를 본 후에 남은 긴장을 모두 풀어 버렸다. 촬영에 집중하지 않겠다거나 대충 하겠다는 에기가 아니었다. 기획된 광고 콘셉트가 태주와 태산이가 촬영하기 편한, 긴장할 필요 없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산이 오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앙?”
“형이랑 똑같이 하면 돼. 형이 이렇게 하면 산이도 이렇게 하는 거야.”
“안.”
태주가 엄지와 검지로 브이를 만들어 턱에 댔다. 그 모습을 태산이에게 보여 준 후에 태산이 손을 잡고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턱에 대주었다. 태산이는 아직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것 같았다. 브이를 만드느라 접었던 세 손가락이 스르륵 풀려 버렸다.
‘하하하. 다시 해 볼까? 형이 브이 하면 산이도 브이 하는 거야.”
‘부으.”
‘응. 브이.”
‘부으.”
‘아이. 우리 산이 진짜 잘하네.”
우리 아기 첫 로션의 CF 콘셉트는 형을 그대로 따라 하는 어린 동생에게 로션을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같이 로션을 바른 후에 거울을 보면서 턱선을 따라 브이를 하면 된다.
태주는 뭐든 형을 따라 하는 동생이라는 콘셉트를 확인한 후에 광고 촬영에 관한 걱정은 내려놓았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금세 보고 배우는 태산이에게 이번 광고 콘셉트는 안성맞춤이었다. 촬영을 위해 따로 연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평소에 둘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었다.
오늘 광고의 촬영 의상은 샤워가운이었다. 준비된 짧은 반바지를 안에 입은 태주가 흰색의 샤워 가운을 걸쳤다. 태산이도 마찬가지로 짧은 바지를 입고 태주와 같은 샤워 가운을 걸쳤다. 태주는 아이 옷을 다 갈아입히고 나서 흥분해서 폰을 찾았다.
자신과 사이즈만 다르게 해서 같은 샤워 가운을 걸친 태산이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였다.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은 후 태주는 아이가 추울 것 같아서 샤워 가운 위로 담요를 둘러서 끌어안았다. 그 상태로 잠시 기다리고 있자, 미나가 분장실로 들어왔다.
“누나, 우리 의상 다 갈아입었어요.”
“잘했어. 이거 두고 온 줄 알고 식겁했어. 다행히 차 안에 있더라.”
“예쁘게 잘 나왔어요?”
“그럼 잘 나왔지. 이게 얼마짜린데, 잘 나와야지.”
태산이를 안은 채로 거울에 비친 미나한테 말을 걸자, 그녀가 검은색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로션 광고 콘셉트를 듣자마자 바로 주문한 물건이었다. 태주는 기대하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미나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쇼핑백에서 상자를 꺼내서 건넸다.
검은색 긴 상자 안에는 동전 펜던트가 세 개 달린 목걸이가 있었다. 태산이 목에 걸린 것과 같은 모양의 펜던트였다. 크기만 성인인 태주에게 맞춘 펜던트였다. 촬영 중에도 펜던트를 풀 수 없는 태산이를 생각해서 일부러 주문한 것이었다.
“진짜 똑같네요.”
“앙.”
“하하하.”
눈이 동그래진 태산이가 그가 손에 든 펜던트를 만지작거릴 때, 프로덕션 소속의 스타일리스트가 준비를 도우러 왔다. 오늘은 메이크업이나 의상, 소품의 준비를 프로덕션 소속 스타일리스트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메이크업이나 의상은 손볼 게 많지 않았다.
*
태주와 태산이가 준비를 마치고 세트에 섰다. 아이와 같이 찍는 광고라서일까, 광고내용이 어렵지 않았다. 태주가 얼굴을 닦은 수건을 바구니에 넣으면 아이도 따라서 넣는다. 로션을 바르면 따라서 바르고 손으로 브이를 하면 그대로 브이를 따라 하고 끝이었다.
첫 촬영은 콘셉트에 충실하게 찍었다. 수건을 통에 넣고 로션을 바른 후에 브이를 했다. 태산이는 촬영 전에 태주가 알려 준 대로 그를 잘 따라 했다. 태산이는 지금 하는 촬영을 따라 하기 놀이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컷. 이태주 씨, 잠시만요.”
“네.”
반복해서 세 번을 촬영한 후, 감독이 태주를 불렀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인상을 찌푸린 상태였다. 태주는 태산이를 안아 들고 감독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여기 좀 전에 찍은 화면 보이시죠?”
“네.”
“화면에 펜던트가 잡히는데, 너무 거슬려요.”
“제 거요?”
“둘 다요. 펜던트 좀 풀어 주세요.”
펜던트를 풀어 달라는 감독의 요구에 태주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견우를 확인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견우가 태주의 시선을 받고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펜던트 풀고 다시 갑시다.”
“죄송하지만 펜던트는 풀 수 없어요.”
“뭐라고요?”
“매니저님?”
“네,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태산이 펜던트에 관한 사항은 이미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태산이가 산이로 변해 주는 것도 문제였지만, 풀 수 없는 펜던트도 CF 계약을 망설인 이유 중 한 가지였다. 그 때문에 계약하기 전에 펜던트 사진도 보여 주고 일부러 계약서에 착용한 채 촬영하겠다는 조건도 넣은 후 사인했었다.
태주가 태산이를 데리고 스타일리스트 쪽으로 움직인 사이에 견우가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 펜던트 착용은 계약 전에 이미 여러 차례 확인을 거친 사항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얘기를 나눴고, 착용하고 촬영하겠다고 얘기하는 장소에는 감독도 같이 있었다. 견우가 감독에게 그 점을 차분하게 짚어 줬다.
“내가 뭐 어려운 요구를 했어요?”
“예?”
“막말로 내가 무슨 옷이라도 벗으라고 요구했냐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그깟 펜던트. 잠깐 풀고 찍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계약을 들먹여요?”
차분하게 입장을 설명하는 견우에게 큰 목소리로 감독이 짜증을 냈다. 감독의 생각에 자신의 요구가 과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펜던트 같은 작은 소품의 탈착 요구는 현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 정도 요구도 받아 주지 않는 모델은 본 적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이미 합의가 끝난 사항입니다.”
“이봐요, 매니저 양반. 합의, 합의하는데. 작품이 잘 나오게 현장에서 합의해서 바꿀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미 수차례 얘기를 드렸고, 사전에 사진으로 펜던트를 확인도 하셨지 않습니까.”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니까.”
사진으로 본 것과 다르다고 말하는 감독의 얼굴은 뻔뻔했다. 이미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인데 네가 어쩔 거냐는 얼굴이었다.
견우는 저런 얼굴을 한 감독들을 몇 번 본 적 있었다. 계약서를 쓸 때는 무조건 조항을 지킬 듯이 하며 쓰지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이래서 어렵네, 저래서 힘드네, 핑계를 대며 무리한 요구를 해 대는 부류였다.
이런 경우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가 아니면, 대부분 연예인이 요구를 수용한다. 광고 촬영에는 적게는 30명, 많게는 100명에 가까운 인력이 들어간다. 촬영 팀, 조명 팀,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수많은 스태프가 자리한 현장에서 촬영장을 박차고 나갈 연예인은 많지 않았다.
“펜던트에 관한 사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참나. 대단하신 양반이네. 지금 이대로 광고는 나 몰라라 하고, 자기 고집만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거요?”
“고집이 아니고 합의한 사항입니다. 이미 사전에 충분히 얘기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당장 작품이 안 사는데, 그깟 합의가 중요해!”
조용한 세트 안에 있던 모든 스태프가 감독과 견우의 대화를 들었다. 개중에는 감독의 요구를 정당하다고 여기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사전에 합의한 내용을 감독이 멋대로 바꾸길 바라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좀 전까지 촬영을 진행하면서 적막할 정도로 정숙했던 현장이 맞나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동료와 감독의 요구에 관해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전혀 촬영이 계속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펜던트를 풀라고 요구한 감독은 여전히 뻔뻔한 얼굴이었다. 그 앞에 선 견우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견우는 이런 감독들을 볼 때마다 골이 다 아팠다. 이런 부류는 자신이 대단한 예술을 하는 거로 착각하고 그게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양 굴었다.
이미 합의된 사항을 가지고 현장에서 어깃장을 놓는 이 감독도,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예술인 줄 아는 것 같았다. 광고는 30초의 예술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예술 작품은 아니었다. 상업적 목적이 뚜렷한 작품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어수선한 세트 안으로 기획을 맡은 이 이사가 들어섰다. 그는 촬영이 진행 중인 세트로 광고주와 같이 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광고주에게 도중에 일이 생겨서 중간에 헤어지지 않았다면, 이 모든 걸 날 것 그대로 보여 줄 뻔했다.
“김 감독님. 무슨 일입니까?”
“아, 내 말 좀 들어봐요. 이 이사.”
이어지는 감독의 설명을 들은 이 이사는 머리가 아팠다. 때때로 프로덕션 과정에서 감독들이 엇나가는 일이 생기곤 했다. 광고 현장에서 비즈니스가 아닌 아트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도 가끔 나왔는데, 아마도 오늘이 그런 현장인 것 같았다.
모델이 착용한 펜던트는 어차피 샤워 가운에 가려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데, 그것이 작품을 망친다는 집착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계약 전에 합의했고, 프리 프로덕션 미팅 단계에서 제작진들과도 얘기를 마친 사항이었다.
“김 감독님, 나 좀 봅시다.”
“왜요?”
이사라고 불린 사람이 김 감독을 데리고 세트를 벗어났다. 태주는 그사이 꽤 불쾌하고 불편한 심정이었지만, 아이를 안고 있어서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좀 전에 이 이사라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태주는 태산이를 미나한테 맡긴 후, 감독에게 직접 따졌을 것이다. 현장에서 말을 바꾸는 감독을 많이 겪어 본 태주였다. 평소라면 적당히 내줄 것을 내주고 얻을 것을 얻으면서 타협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태주와 일행은 조용히, 말을 아끼며 이 이사와 김 감독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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