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45
144. 광고 촬영 마무리 >
신경을 곤두세우며 카메라 위치나 광고에 쓰기 좋은 장면들을 떠올리는 태주를 방해하는 손길이 있었다.
-철퍽! 철퍽!
“꺄하.”
“…산이 재밌어?”
“꺄하하.”
‘아이고. 이놈 자식. 오랜만에 형이 실력 발휘를 하는 중인데….’
태주가 그랬던 것처럼 로션을 펌핑해서 그의 얼굴에 발라 대는 태산이가 그 범인이었다. 온종일 형 따라 하기를 해서인지, 태산이는 자기 얼굴에 로션을 바른 태주를 그대로 따라 했다. 단지 힘이 세고 손길이 투박해 결과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의도하지 않은 아이의 귀여운 행동에 태주의 입꼬리가 사르르 풀렸다. 치덕치덕 로션을 바른 얼굴이었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웃음이었다. 화면에 비친 모습은 좀 전까지 연기하며 웃던 것과 비슷했지만, 전해지는 감정의 농도가 달랐다. 지금 지은 미소에 훨씬 더 깊고 진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태주는 여전히 하얀 로션이 묻어 있는 아이 볼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줬다. 귀한 도자기 인형을 다루는 듯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런 태주의 손이 간지러웠는지, 태산이가 목을 움츠리며 웃음소리를 냈다.
“컷.”
한창 좋은 분위기를 김 감독의 컷 소리가 깨 버렸다. 김 감독 근처에 있던 스태프는 저도 모르게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그를 노려봤다. 둘의 달콤하고 행복한 장면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방해를 받아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컷 소리에 방해받았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주와 태산이를 지켜보던 현장의 모든 사람이 김 감독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이 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정한 두 형제의 모습을 보고 머릿속으로 영상을 만들던 그는 방해를 받고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
촬영장 안의 기획팀, 제작팀은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경악한 얼굴로 김 감독을 돌아봤다. 아무리 촬영 시간이 남았다지만, 이 상황에서 재촬영을 요구하는 건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예정에 없던 주제로 촬영을 진행한 후였다. 만약 김 감독이 촬영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양해를 구했다면, 할 수도 있는 요구였다. 하지만 촬영에 관한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다짜고짜 재촬영을 요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그저 꼬장을 부리는 짓이었다.
김 감독의 재촬영 지시가 있었지만, 이번엔 스태프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성큼성큼 김 감독의 자리로 다가가는 이태주의 매니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태주의 매니저가 정색한 얼굴로 김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김 감독님.”
“뭐요? 매니저 양반.”
“콘티 외의 촬영은 한 번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하이고. 그건 감독인 내가 정하는 일이요.”
“아니요. 계약 외의 촬영 지시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콘티대로 촬영하실 겁니까?”
정중한 말투와 다른 흉흉한 기세를 마주하자, 김 감독의 당당했던 목소리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그는 자신의 아군을 찾는 것처럼 눈동자를 굴리다 근처로 오던 이 이사를 발견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김 감독의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당연하지.”
“그렇습니까?”
“감독인 내가 촬영이 안 끝났다는데….”
“아닙니다! 이미 영상은 충분합니다.”
“이, 이 이사?”
견우가 김 감독에게 다가갈 때부터 끼어들 타이밍을 보던 이 이사가 바로 김 감독의 억지를 막아서며 나섰다. 촬영 시간이 남았지만, 이미 광고에 쓸 영상은 넘치게 찍은 상황이었다. 그 사실은 누가 봐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여기서 더 고집을 피우는 건 끝까지 가보자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이 이사, 내가….”
“매니저님! 오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
“분장실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아닙니다.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이사님께서는….”
견우는 말을 줄이며 눈짓으로 김 감독을 가리켰다. 자신들의 안내보다 김 감독이 더는 날뛰지 않게 제어해 달라는 의미였다.
이 이사는 눈치 빠르게 견우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견우에게 다가가려는 김 감독의 앞을 단단히 가로막았다. 그 상태로 견우에게 어서 배우님을 모시라는 말을 꺼냈다.
견우가 이 이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태주와 일행을 데리고 세트를 벗어났다. 촬영장 안은 태주 일행이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누구 한 사람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김 감독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얼굴을 들기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거, 이 이사 좀 전에 못 봤어요?”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제대로 기를 죽여 놨잖아. A급이면 뭘 해. 감독이 찍으라면 찍는 거지.”
“!!!”
이 이사는 김 감독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기겁하고 말았다. 지금 이런 대사가 이 상황에 나올 만한 대사인지 의심스러웠다. 이 이사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라도 들은 사람이 있는지 싶어서였다. 만약 이런 대화가 업계에 알려진다면, 속된말로 ‘매장각’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몸값이 억이 넘는 배우한테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아십니까?”
“몸값이 억이면, 현장에서 감독 말 안 들어도 되나?”
“허!”
“이 이사가 안 말렸으면 아주 본때를 보여 주는 건데…. 어디서 감독 말에 된다, 안 된다, 토를 달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벌써 두 번이나 일을 맡겼었다. 지난 광고 촬영에선 이번 같은 트러블도 없었고, 완성된 결과물도 괜찮아서 다시 섭외했는데, 큰 실수였다.
‘애초에 아트를 하는 게 아니라, 되먹지 못한 권위 의식을 세우려던 거였어!’
김 감독은 감독인 자기 요구를 거절한 태주를 자신의 위신에 해를 끼친 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반대로 자기 말을 들어주고 치켜 세워 주는 이 이사는 자신의 편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선지 김 감독은 예술가의 막무가내로 포장하려던 속내를 이 이사에게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이사는 김 감독의 한심한 작태에 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자기의 사고방식이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후우. 좀 전에,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촬영한 촬영본은 저한테 주십시오.”
“왜? 폐기하게?”
“김 감독님은 원래 기획했던 광고를 마무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어. 맡겨 둬.”
“예.”
이 이사는 김 감독이 꺼낸 폐기라는 단어에 뒷골이 당겼다. 제대로 눈이 박힌 감독이라면, 좀 전의 그 영상을 감히 폐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노는 모습이 얼마나 흐뭇했는지, 자신도 둘 사이에 끼고 싶은 걸 참느라 힘이 들었었다. 그 정도로 보기 좋은 장면이었는데, 폐기할 거냐고 묻다니. 못 봐줄 정도로 한심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감추고 지난 촬영을 진행한 건지…. 아마 지난 촬영이 완구업체의 광고로, 어린아이들이 모델이라서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에게 거스를 사람이 없는 촬영장이었으니, 조용히 넘어간 듯했다.
‘대표가 꼭 자기 같은 사람을 데려왔군. 일 잘하고 착하다고? 흥!’
아직 젊은 감독이 이런 썩은 권위 의식에 물들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능력이 괜찮아서 다시 제작을 맡겼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앞으론 절대로 일을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이사는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고, 대표가 데려온 감독들의 평판을 반드시 재확인하리라 다짐했다. 김 감독의 하는 짓이, 그가 질색하는 대표의 행동과 똑 닮아 있었다. 다른 감독들도 이렇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는 대표가 외주 감독 목록이라고 건네줬던 파일에 나온 감독을 전부 다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이 이사는 여전히 불퉁한 표정인 김 감독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스튜디오 밖으로 향했다. 그가 부탁한 인형과 아이용품을 가지고 올 박 대리의 마중을 나가야 했다. 이 이사는 박 대리가 가져올 인형이, 부디 업체 대표가 장담했던 대로 아이들이 좋아 죽는 물건이기를 바랐다.
*
분장실에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일행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례한 김 감독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태주가 연신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마음은 어떤지 몰랐지만, 같이 있는 아이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무실 들어가기 전에 맛있는 거 먹고 갈까요?”
“응?”
“오늘 우리 산이 엄청 잘하지 않았어요?”
“앙.”
“하하하. 산이 오늘 진짜 잘했어. 아주 의젓하고 멋졌어.”
아이 옷을 갈아입히는 내내 태주의 칭찬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실제로 태산이는 오늘 칭찬받을 자격이 있었다. 집중력이 높지 않은 어린아이가 긴 시간 동안 얌전히 촬영했다. 곁에서 태주가 놀아 주고 달래 주었어도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다.
“태주야. 바로 나갈래? 아니면 세트에 들렀다 갈래?”
“들렀다 가요.”
오늘은 그냥 돌아갔으면 싶었던, 미나가 인상을 썼다. 인사고 뭐고 이 촬영장에는 한순간도 더 있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그녀의 심정이었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촬영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겠다는 태주였다.
“넌 참 속도 좋다.”
“하하하. 촬영 스태프들의 소소한 재미잖아요.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그래야 나중에 자랑도 하고 하죠.”
“그것도 분위기 좋을 때나 하는 거지.”
“에이, 누나. 스태프들이 잘못한 게 어딨어요. 열심히 일만 한 사람들인데요. 우리가 이대로 그냥 가면, 괜한 사람들만 힘들어요.”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저지른 사람만 책임을 지면 된다. 애꿎은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만약 그가 이대로 돌아간다면, 묵묵히 자기 일을 한 사람들까지 감독과 같은 취급을 한 게 되어 버린다.
태주는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김 감독과 같은 제작진이었지만, 김 감독처럼 무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 눈치를 봤었다.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그의 눈치를 보던 스태프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그건 뭐니?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데.”
“치한 스프레이요.”
“뭐? 치한 스프레이? 아아. 호신용 스프레이?”
“네.”
태주가 건네준 스프레이에는 굉장히 알아보기 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자 인간이 음흉하게 손을 들고 있고 그 위에 붉은 금지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이런 걸 네가 왜 가지고 다녀? 너 혹시 치한 만났어?”
“흠흠. 아니에요. 그냥 대비 차원에서.”
“…태주 씨?”
매니저님까지. 진짜 아니에요. 그냥 호신용이에요. 호신용.”
태주가 가지고 있는 스프레이는 호신용은 아니었지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장난꾸러기 키트에 들어있던 물품으로, 예전 도깨비 무사의 종방연에서 방 CP를 놀려 줄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했다.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쓸 생각으로 가방에 넣어 놨었다.
[장난꾸러기 키트(스프레이)불쾌한 냄새가 나게 만드는 물건이다.
스프레이를 뿌리면 이성이 싫어하는 불쾌한 냄새를 피운다.
유지시간: 3일]
스프레이는 효과가 3일이나 유지되는 물건이어서 사실 태주도 써 본 적은 없었다. 장난꾸러기 키트의 물품답게 사용해도 표가 나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그의 성격상 함부로 쓰지 못했다. 쓸 만한 상대를 본 적도 없었다. 태산이 옷을 갈아입히다 눈에 띄어 손에 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쓰기 망설여졌다.
“이거 확 그 감독한테 뿌려 버릴까?”
“헉!”
“뭘 그리 놀라? 아아. 너도 그 생각했구나?”
“조, 조금이요?”
“킥킥. 좋아. 이거 이따가 뿌려 버리자. 내 폰에 모깃소리 들어 있거든. 모기약인 척 뿌리자.”
미나가 폰에 넣어 둔 모깃소리 벨 소리를 그에게 들려줬다. 그녀가 들려준 벨 소리는 여름밤을 괴롭게 만드는 모깃소리와 똑같았다.
짐을 정리하는 한편, 태주와 미나는 실제로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를 장난 계획을 세우면서 즐거워했다.
–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돌아갈 준비를 거의 마쳐 갈 무렵 태주의 분장실을 노크하는 사람이 있었다. 쇼핑백을 팔에 걸고 커다란 박스를 안은 이 이사와 그와 같은 모습의 여성이었다. 이 이사는 가져온 짐을 부려 놓은 후 태주와 일행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 번 더 했다.
어른들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태산이는 상자 안을 구경했다. 상자 안에는 동물 인형이 가득 들어있었지만, 태산이의 흥미를 끌지 못 했다. 다른 상자 안의 장난감 악기도 마찬가지였다. 태산이 흥미를 끌 만한 장난감은 들어 있지 않았다.
바로 상자에서 눈을 돌린 태산이가 태주에게 안아 달라 팔을 벌렸다.
‘아이고. 차라리 물고기 인형이나, 쥐돌이 인형이면 좋았을 텐데.’
태주가 품에 안은 태산이 등을 몇 번 토닥이자, 졸린 듯 몸에서 힘이 빠졌다. 눈치 빠른 이 이사가 의자에 걸쳐 놓은 담요로 태산이 등을 감싸 주었다. 따뜻하고 편한 상태가 되자, 태산이는 깜빡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본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순식간에 늘어놓았던 짐을 챙기고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 이사는 태주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겠다고 얘기하자,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태주 일행이 빠져나간 세트는 재정비가 한창이었다. 모델 촬영이 끝난 세트에서 제품 촬영을 이어서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다들 말을 아끼고 있었다. 지금 입을 열면 누군가를 성토하는 말을 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면 무례한 감독을 말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힐 것 같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축 가라앉은 세트 안으로 태주 일행이 다시 돌아왔다.
“수고하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이를 안은 태주와 그 일행은 세트장 곳곳을 누비며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눴다. 일행 중 누구도 촬영 중 있었던 일은 꺼내지 않았다. 태주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스태프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사진도 찍어 주었다.
“이만 돌아가시죠.”
“네.”
잠시 사라졌던 견우가 돌아와 태주와 미나를 주차장 쪽으로 이끌었다. 태주 일행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저녁 메뉴를 고르느라 정신 없었다. 메뉴는 오늘의 주인공인 태산이 좋아하는 닭고기 요리로 정했다. 두 사람은 근처의 식당을 검색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식당을 고르느라 바쁜 두 사람을 대신해서 짐을 싣던 견우가 태주의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점퍼 주머니에서 스프레이를 꺼내 가방 안에 살포시 넣었다. 스프레이를 넣기 전에 뚜껑이 잘 닫혔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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