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47
146. 불꽃놀이 >
태주 일행이 돌아간 후, 이 이사는 제품 촬영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 감독의 성품이야 어떻든, 일하는 재주는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제품 촬영하는 일이 까다롭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촬영 속도가 다른 감독들보다 빠르긴 했다.
‘그래도 다시 일을 맡길 생각은 없지만.’
“응?”
이 이사는 아무리 일머리가 좋아도 썩어 빠진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일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지휘하는 현장은 굳이 오늘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나마 이태주의 성격이 좋아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들어왔다. 김 감독이 지나갈 때마다 여자 스태프들이 인상을 찌푸리거나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었다. 남자 스태프들은 김 감독이 곁을 지나가도 그저 흘깃 보고 말 뿐이었는데, 여자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지?”
“뭐가요?”
“김 감독이 지나갈 때….”
“웩! 저 김 감독은 대체 씻고 다니기는 하는 거예요? 한 달은 안 빤 것 같은 썩은 냄새가 나요.”
“박, 박 대리?”
아까부터 박 대리가 되도록 멀리 떨어지려던 이유를 알게 된 이 이사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대리는 이 이사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이 아무리 바빠도 사람이 좀 씻고 다녀야지 않겠냐며,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박 대리 한 사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여자 스태프 전체가 불쾌해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김 감독한테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오늘 모델과 신경전을 벌인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사람이 지저분하기까지 하다니 여러모로 예상외였다.
“에휴. 젊은 사람이…. 박 대리, 예전에 샴푸 광고 편집한 감독 연락처 있지?”
“네. 왜요?”
“그것 좀 줘 봐. 급하게 의뢰할 게 하나 생겼어.”
“그럴게요. 아휴, 진짜. 환기도 힘든 곳에서 이게 무슨 냄새예요.”
이 이사는 냄새 때문에 짜증을 내면서도 착실하게 연락처를 건네는 박 대리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얘기를 건넸다. 자신은 코가 무딘 건지 괜찮았지만, 그녀는 정말로 냄새가 괴로운지 토기를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가로지르는 박 대리였다. 그녀는 한시도 스튜디오 안에 있기 싫은 듯 바로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다만 중간에 김 감독이 있는 위치는 멀찍이 돌아서 지나갔다. 그렇게 떠나는 박 대리를 부러운 듯 보는 시선이 제법 많았다.
‘어휴, 골치야. 사람이 좀 씻고 다니지. 일하는 사람이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할 거 아니야. 남이 불편해할 정도로 안 씻고 다니다니….’
*
tvM 방송국, 드라마국의 CP는 하반기 드라마 편성표를 보면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케이블 드라마의 절대 강자로 군림 했지만, 이미 그 시기는 지나 있었다. 지금은 JTTC와 1위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었다.
독특한 소재, 완성도 높은 대본이 이 두 케이블 방송국으로 몰리는 상황은 이전보다 더 심해진 상태였다. 덕분의 두 방송국 간의 시청률 쟁탈전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번 단막극 공모전이 호평을 받으면서 JTTC를 근소하게 앞서 나가는 중이었다.
“이럴 때 크게 한 방 먹이면 좋겠는데….”
지상파는 이미 케이블 드라마의 상대가 아니었다. SBC나 KBC나 사전 제작에, 대규모 자본을 들인 드라마들이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어서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쪽은 이미 수목드라마 시간을 통속극 작가에게 내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신흥 강자인 JTTC에도 한 방을 먹이고 앞서 나가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태주의 첫 주연작 정도면 괜찮은 패인데.’
은근슬쩍 이태주의 소속사에 차기작을 tvM에서 하지 않겠냐고 이미 운을 떼어 봤었지만, 바라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태주가 차기작을 tvM에서 한다고만 하면 확실하게 지원을 해 줄 생각이었다.
이태주는 외모, 재능, 인지도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소속사 역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곳이라서 소속 아티스트의 보호나 관리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한 세 작품 정도를 계약해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CP가 강은진 감독의 연락처를 찾았다. 얼핏 듣기로 여랑 작가가 이미 박수의 미니시리즈 대본을 들고 있다는 것 같았다. 만약 사실이라면 하반기에 바로 편성을 잡아 주고, 이태주를 끌어들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신이 주연으로 촬영한 단막극을 미니시리즈로 제작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출연료도 신인 배우급이 아니고 A급으로 맞춰 준다고 하면, 계약은 문제없어 보였다.
강은진 PD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한 후, 이태주가 다른 작품을 차기작으로 정하기 전에 섭외 먼저 하라고 말하는 CP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
태주는 우 팀장과 얘기를 나눈 후로 줄곧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이를 교육하는 문제에 관한 고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랑이 모습으로 바꾸고 뛰어다니는 태산이를 보면, 쓸데없는 고민인 것 같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태주 씨, 왜 그러십니까?”
“태산이 교육 문제 때문에요. 아까 우 팀장님이 태산이 어린이집 안 보내냐고 물으셔서요.”
“꼭 보내야 합니까?”
“네?”
“태산이를 봐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또래 친구는 정원에도 있고 다원 보육원에도 있으니,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쿠첼루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같이 놀 또래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태산이는 자신과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태산이가 다니고 싶어 하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 눈이 신경 쓰여서 억지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필요는 없었다.
“그렇네요. 태산이가 제일 중요한 건데….”
“냐앙.”
“하하하. 그래. 우리 태산이가 제일 중요하지.”
“냥.”
“하하하. 태산이 사냥 놀이할까?”
좋아서 우다다다 뛰는 태산이를 보는 태주의 얼굴이 밝았다. 굳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는데, 괜한 걱정을 했었다. 걱정을 내려놓자, 오늘 수고한 아이를 위한 보상을 제대로 해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깃털 낚싯대를 찾아 흔드는 태주의 손길이 경쾌했다.
태주의 밝은 기분은 정원에 들어서서도 여전했다. 오두막에 들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도 그대로였다. 이유는 몰랐지만, 태주가 기뻐하는 모습에 희 역시 기분이 좋았는지, 빠른 속도로 거실을 날아다녔다.
“호호호. 정원사 씨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조금 고민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게 해결돼서 그래요.”
“그래? 그건 즐거운 일이잖아. 이 해나가 만든 맛있는 디저트를 즐겨도 될 충분한 이유라고.”
“하하하. 해나.”
오늘 태산이와 광고 촬영을 하는 걸 알고서 일부러 태주가 정원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그가 좋아하는 레몬 타르트를 준비해 둔 해나였다. 그녀는 오늘 일이 괜찮았는지,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 태주를 보고 티타임을 가질 이유를 들어준 것이다.
태주가 테이블 앞에 앉자, 옆자리로 태산이가 폴짝 뛰어 올라왔다. 최근에 태산이 녀석이 전과 다르게 티타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아마 해나가 최근 굽기 시작한 고기 비스킷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해나, 아칸서스 가족은 언제 시간이 괜찮대요?”
“걔들은 아무 때나 괜찮다고 했어.”
“그럼 오늘 저녁도 괜찮을까요? 같이 저녁도 먹고 밤엔 불꽃놀이를 하기로 해요.”
“불꽃놀이! 태주, 오늘 불꽃놀이야?”
“응, 희. 저번에 얘기했잖아. 불꽃놀이 해 보자고.”
불꽃놀이를 본 적 없다는 희를 위해서 오늘 저녁엔 별똥별 잡기를 하루 쉬기로 했다. 그런 태주에게 해나가 DP는 충분하냐고 물었다. 쿠첼루스에게 선물한 마력 강화제를 현실로 가져가던 날, 정원 입구를 통과한 태주도, 정원에 남은 희도 식겁하고 말았다.
“큼. 마력 강화제가 비싸긴 했지만, 불꽃놀이 주문서를 살 정도는 있어요.”
“호호호. 그날 희 아가씨의 표정을 봤어야 해. ‘DP가, DP가’ 하면서 울먹였다고.”
“이잉. 해나.”
“하하하. 사실 저도 현실로 가져가는 수수료가 그렇게 비쌀 줄은 몰랐어요. 무덤초에 신경이 쏠려 있어서 그냥 넘어갔지, 아니었으면 울었을지도 몰라요.”
“호호호.”
태주는 붉은 상자에서 얻은 마력 강화제가 귀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그걸 현실로 가져가려고 정원 입구를 통과했을 때, 내야 하는 수수료를 보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었다. 그날 태주는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DP를 수수료로 내야 했다.
지난 며칠간 태주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쉬지 않고 피부 크림과 허브티를 만들어서 상점에 올렸다. 과실수의 열매도 부지런히 따서 창고로 보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겨우 불꽃놀이를 해도 될 정도로 DP를 모을 수 있었다.
“아유. 방어 탑이 급한 건물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다행이지.”
“하하하. 고마워, 희. 기다려 줘서.”
“히히히.”
희의 방어 탑 건설 계획은 DP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렸다. 희가 상점에서 방어 탑에 설치할 무기와 방어 마법을 꽤 많이 찾아 둔 걸 알지만, 이번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겨우 정원을 유지할 DP 정도만 남은 상태라 희가 바라는 걸 사 줄 수 없었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쿠첼루스도 비용이 많이 드는구나.”
“마법사가 원래 그래요?”
“호호호. 정원사 씨도 쿠첼루스에게 자주 원석을 사다 주었잖아. 그거 외에도 마법 재료는 하나같이 고가야.”
“사실 원석도 그렇게 싼 물건은 아니죠. 현실보다 싸긴 하지만.”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비싼 건 아닌데…. 이번 마력 강화제는 좀 타격이 있었지?”
그는 해나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불꽃놀이를 하고 나면 다시 열혈 정원사 모드를 가동해야 했다. 그는 시간에 딱 맞춰서 작물을 수확하고 열매를 따는 생활을 한동안 계속해야 한다. 물론 태산이와 노는 시간, 오전과 오후의 티타임은 지키는 열혈 모드였다.
*
밭작물을 한 번 수확하고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아칸서스의 가족이 정원에 도착했다. 태주는 태산이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점심을 먹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졌던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린이 오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세상에! 모린. 너무 귀엽잖아.”
“귀여워.”
등에 한 쌍의 작은 날개가 돋아 있는 모린은 아기 천사 같은 느낌이었다. 하얀 곱슬머리에 반짝이는 녹색 눈이 동글동글 사랑스러웠다. 눈동자 색과 같은 연두색 상의와 노란색 호박 바지를 입은 모습은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처럼 보였다.
“호호호. 정원사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나 씨,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우! 닭살.”
“아칸!”
“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그래? 며칠이나 같이 지냈었는데.”
모린이 너무 귀여워서 아칸서스 가족을 반기는 것도 잊었었는데, 변함없이 철없는 말투의 아칸서스 덕에 어색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아칸서스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모린을 태주의 품에 안겨 줬다. 그러고는 다나의 팔을 잡고 폭포 쪽으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다나, 여보. 얼른.”
“어휴. 아칸.”
“킥. 다나 씨, 산책로에 심은 꽃들이 자리를 잡아서 꽤 볼 만해요. 느긋하게 구경하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정원사님.”
아칸과 다나가 산책로 구경을 간 사이 태주는 모린을 데리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태산이와 모린이 같이 놀 수 있게 거실 바닥에 내려 줄 생각이었다.
거실에 깐 러그는 아침에 세탁 주문서로 깔끔하게 세탁해 두었다. 모린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해나의 얘기에 부딪힐 만한 것들도 전부 치워 둔 상태였다.
“모린. 여기서 놀까?”
“마아.”
“아유. 벌써 옹알이도 하는 거야?”
“마야.”
“귀, 귀엽다. 태산아, 이리 와 봐.”
도착했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달려온 녀석이, 막상 모린이 오두막 안에 자리 잡자,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태주는 그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건지, 많이 자란 모린이 낯설어서 그러는 건지 궁금했다.
“냐앙.”
“태산아, 모린이 많이 컸다. 그치?”
“냥.”
“마아.”
“크윽. 이건 진짜 너무 치명적이다.”
태산이와 모린이, 귀여운 아이 옆에 귀여운 아이. 여기에 그렘린들까지 같이 있으면, 심장에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았다. 태주가 감동하는 사이 호기심이 동했는지, 모린이 러그 위를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태주는 모린의 방해가 되지 않게 한쪽으로 비켜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으. 카메라로 촬영을 못 하는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기어 다니는 모린도 귀여웠지만, 그 주위를 이리저리 뛰는 태산이도 몹시 귀여웠다. 다가오지 않고 지켜보던 녀석이, 혹시라도 모린이 다칠까, 그 주위를 맴돌며 러그를 벗어나지 않게 지키는 모습이 대견했다. 안타깝게도 모린은 가는 길을 방해하는 태산이가 귀찮은 모양이었지만….
“냥냐아. 냐낭.”
“괜찮아, 괜찮아. 러그 위잖아.”
“냐냐냥. 냥.”
“꺄하.”
태산이를 피해서 방향을 바꾸던 모린이 기우뚱하더니 러그 위를 굴렀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태산이 모린이 주위를 뱅뱅 돌았다.
꺄하. 제 주위를 도는 태산이 재밌는지 모린이 귀여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잠시 뱅뱅 도는 걸 멈췄던, 태산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모린을 걱정해서가 아닌, 재밌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이고. 태산아, 형 멀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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