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
14. 슬라임킹
띠링!
띠링!
띠링!
태주의 태블릿에서 알람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태주는 희가 심심한가 하며 가볍게 생각하다, 희의 다급한 메시지에 시간보다 빠르게 정원에 들어갔다.
“희? 우왓!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태주, 태주. 큰일이야. 슬라임 동굴이 폭발했어.”
정원 안은 온통 슬라임 천지였다. 색색의 슬라임이 텃밭, 창고, 나무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붙어있었다. 태주는 희의 다급한 외침에 슬라임 동굴이 있는 정원의 안쪽으로 달려갔다.
슬라임 동굴 입구를 장식하던 돌은 폭발에 튕겼는지, 정원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었다. 입구 뒤편을 감쌌던 흙무더기도 무너져 바닥에 뿌려져 있었다. 슬라임 동굴 주변에 심어두었던 야생화는 슬라임 진액과 버섯조각에 엉망이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태주, 동굴에 슬라임이 너무 많았나 봐.”
팅팅!
퐁퐁퐁!
슬라임들은 동굴 밖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로 통통 뛰어다니고 있었다. 태주는 희가 몇 번이나 슬라임을 너무 많이 합치지 말라고 했던 경고를 무시한 대가가 이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선 슬라임을 어딘가로 모아야겠다. 빈 동굴을 사야 하나?”
“태주, 동굴은 수리할 수 있어. 하지만 슬라임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슬라임을 너무 많이 샀던 것 같다. 태주는 한숨을 내쉬며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냐아웅!”
그때였다. 태산이가 낮추고 있던 몸을 날려 슬라임을 덮친 것은.
콰직!
태산이가 한 번에 슬라임의 핵을 물어서 부서트렸다.
[태산(백호)이 1차 성장 조건을 만족합니다. (1/3)사냥 본능: 사냥감을 쫓는 것은 맹수의 본능입니다. 피 속에 잠재된 강력한 공격능력을 일깨웁니다.
1차 성장 조건 달성: 1. 사냥 본능/ 2. ???/ 3. ???]
태산이가 슬라임 사냥에 성공하자, 태주 앞에 익숙한 메시지 창이 생겨났다.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태산이 성장 조건이 한가지 만족 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전화위복이라고 하기엔 너무 난장판이지만, 어쨌든 이 사태에서도 얻는 게 있긴 하구나.”
태산이는 첫 사냥을 성공한 것에 고양되었는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슬라임을 사냥해나갔다. 조그만 새끼였지만, 맹수는 맹수인지 횟수를 거듭할수록 사냥 속도가 빨라졌다.
“태주, 슬라임이 너무 많아. 상점에 어항이 있어. 슬라임을 어항에 넣자.”
“그래, 우선 어항에 넣기로 하자.”
희가 알려준 어항은 상당히 신기한 것이었다. 크기는 수박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몇 마리나 슬라임이 들어갈까 걱정될 정도의 크기의 어항이었다. 하지만 태주가 슬라임을 잡아서 넣자 바로 평범한 어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먹만 한 슬라임을 잡아 어항에 넣었는데, 슬라임은 어항에 들어가자 작은 유리 구슬처럼 크기가 바뀌었다. 어항 크기를 생각하면 수십 마리는 충분히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한 어항 덕분인지 슬라임을 잡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태주, 빨리빨리 슬라임을 잡아야 해.”
“알았어, 희.”
태주가 열심히 어항에 슬라임을 모았지만, 온 정원에 퍼진 슬라임을 짧은 시간 안에 전부 모으는 것은 무리였다. 태산이도 마찬가지로 아직 어린 태산이 체력으로 십여 마리나 되는 슬라임을 사냥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경고: 위험! 위험!일정 숫자 이상의 슬라임이 합쳐져 슬라임킹으로 진화합니다.
정원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하십시오.]
“아니. 무슨 슬라임이 모여서 슬라임킹이 돼?”
쿵쿵쿵!
태주가 메시지 창을 지우고 고개를 돌리자 소형차만 한 슬라임이 정원 구석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악! 저걸 어떻게 잡아.”
“태주, 상점으로 가.”
“아! 상점!”
태주는 슬라임킹을 피해 상점으로 뛰었다. 예전에 게임에서나 쓸법한 물건들을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났다. 힘 물약, 민첩 물약, 공격마법 주문서 등이 소모품 탭에 가득했다.
“구매, 마법 화살 주문서. 구매, 바람 칼날 주문서, 방어 마법 주문서. 희 이것 말고 뭘 더 사야 해?”
“슬라임킹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느리게 만드는 주문서를 사야 해.”
“알았어. 얼리기 주문서 이걸로 될까?”
“응. 그걸 제일 먼저 쓰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영화에서나 나오던 괴수를 눈앞에 두니 침착해지기 쉽지 않았다. 마법 주문서를 찢기 전 태산이 위치를 확인해보니 트리하우스 위에 올라가 있었다.
‘허, 머리 좋은 녀석.’
“찢는다.”
쏴아아.
차가운 기운이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슬라임킹은 그 기운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차가운 기운을 맞은 곳부터 하얗게 서리가 끼더니 얼기 시작했다.
“태주, 바람 칼날 주문서!”
“알았어.”
희의 지시에 따라 바람 칼날 주문서를 찢자 거대한 반원형의 푸른 칼날이 공중에 생겨났다. 칼날은 일렁거리며 당장에라도 앞으로 쏘아져 나갈 태세였다.
“태주, 지금!”
바람의 칼날이 슬라임킹의 몸을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핵을 자르지는 못했는지, 핵이 남은 몸통 쪽에서 푸시식 소리가 나며 얼음이 녹고 있었다.
“마법 화살.”
태주가 녹기 시작한 몸통을 향해 마법 화살을 날렸다.
퍽!
마법 화살이 제대로 박혔는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냐아웅!”
“태산아!”
그때였다. 언제 트리하우스에서 내려왔는지, 태산이가 슬라임킹의 핵에 달려들어 앞발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태주가 쥐고 있던 방어 주문서를 태산이에게 사용했다.
푸등.
촥촥.
“으야웅!”
태산이 흥겨운 울음소리를 크게 냈다. 슬라임킹의 파동 공격은 다행히 방어 주문에 막혔다.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태산은 신나게 앞발을 휘둘렀다.
푸시시시식!
슬라임킹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태산이는 성에 찰 정도로 공격한 후에야 태주에게 다가왔다. 마치 칭찬을 바라듯 태주를 올려다보며 옹알이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태주, 태산이가 이제 걱정하지 말래. 태주는 태산이가 지켜줄 거래.”
“그, 그래? 고맙다, 태산아.”
‘굳이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생후 2달짜리한테 보호받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정원은 난장판이었다. 슬라임킹이 지나온 자리의 잔디는 눌려있고 나무는 쓰러져있었다.
[축하합니다.정원의 위기를 무사히 극복했습니다.
보상 1. 금색 상자.
보상 2. 성장 속도 2배 물약(30일).]
“보상을 다 주네. 하여간 게임 같은 구석이 많다니까.”
“태주, 열어 보자.”
“그럴까?”
랜덤 박스를 여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무지개 씨앗에서 얻은 작물들을 판 후에는 사고 싶은 물건들을 마음대로 샀기 때문에 굳이 뽑기로 운을 시험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희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못하게 하기도 했고.
“연다.”
“응.”
금색 상자의 오프닝 효과는 붉은 상자보다 화려했다. 금색의 빛이 깜빡이더니 상자가 사라지고 빛의 구 안에 든 물건이 드러났다.
“기타?”
“반짝반짝해.”
“그러네, 멋지다.”
상자에서 나온 기타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어쩐지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태양의 조각이 깃든 기타아폴론의 축복을 받은 전설적인 가수가 애용하던 기타.
연주를 들은 사람에게 치유력, 회복력, 면역력 중 한 가지의 효과를 12시간 동안 매우 높여 준다.]
“와! 희 이 기타 설명 보여?”
“응, 정말 좋은 기타야.”
“내가 가수라면 이걸 들고 병원 같은 곳에 가서 연주할 것 같아.”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준 이복동생의 일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복동생 민수 말에 따르면 여동생은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 태주가 이 이상 해줄 일은 없었다.
“태주, 연주해줘.”
“어? 지금?”
태주의 눈에 보이는 정원은 여전히 반파 상태였다. 슬라임킹은 죽었지만, 슬라임들이 여전히 정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쓰러진 나무들을 바로 세워야 했다.
“희 조금 이따가 연주해 줄게. 우선 정원을 좀 손보자.”
“응, 꼭 연주해줘. 꼭 이야.”
“알았어. 약속할게.”
슬라임이 또 합쳐지는 불상사가 생길까 걱정한 태주는 열심히 슬라임을 잡아서 어항에 모았다. 재밌다고 마구 합친 슬라임 덕에 꽤 고생했다.
“인과응보지.”
슬라임을 다 잡은 후, 나무를 바로 세우며 한심함에 자신을 욕했다. 그 직후 얼마 전에 누군가를 향해 이 말을 했던 게 생각나 우울해졌다.
*
정원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현실로 돌아오자 마음이 놓였다. 태주는 앞으로는 희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다. 이번처럼 경고를 무시했다가 거대한 슬라임 같은 괴물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아! 이제 뮤비 공개됐겠다. 12시에 공개한다고 했지?”
태산이가 촬영했던 뮤비가 이제 공개된다. 진작 편집까지 마쳤다고 들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공개가 한참 늦어졌다. 태주는 태산이를 품에 안고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노래 좋다. 태산아, 저기 봐봐 너 나왔다.”
뮤비는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미 조회 수가 무시무시했다. 뮤비 밑의 댓글도 스크롤을 내리기 힘들 정도로 달려있었다.
“오! 우리 태산이 얘기도 있네. 귀여운 거야 당연하지.”
이 뮤비를 찍는다고 태산이에게 여러 가지 약을 먹였었는데, 이번 슬라임 사태에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 같았다. 강화제와 비약을 쓴 보람이 있었다. 덩치도 작은 녀석이 아무리 반으로 갈라졌지만, 여전히 큰 슬라임킹에게 덤벼들었다. 다행히 발톱에 슬라임킹의 몸이 갈라졌지만, 아니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간 큰 녀석.”
태산이는 온 체중을 태주의 팔에 실은 채 잠이 들어있었다. 천하 태평한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조금 얄미웠다. 자신은 태산이 슬라임킹에 뛰어드는 모습에 간이 다 떨렸는데, 태산은 의기양양해서 자신을 지켜준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꼬맹이 주제에 누굴 지킨다고.”
마음은 고마웠지만, 정말 2개월 차 새끼 호랑이에게 지켜지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앞으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
*
운전하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긴 태주 덕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네? 아. 그냥 어제 먹방 찍은 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편집본은 아직 못 봤지만, 어제 촬영한 건 나쁘지 않았습니다.”
“음, 그게 아니라요. 제가 원래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거부감 없이 촬영해서요.”
“그렇습니까? 태산이 채널에 나오시는 걸 보고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요.”
“아아. 어쩐지. 태산이 채널이 있어서 그렇구나.”
연기 외길이라 할 정도로 예능에 나가지 않던 자신이 어째서 어제 먹방에 나갔는지 고민했다. 태산이 채널이 있어서 익숙해서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어쩐지 예능이나 다른 것들에 이전처럼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좀 여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게 정원 덕분인지 이미 겪었던 시간들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한 회의는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았다. 특히 홍보팀의 김도진 실장님과 김 이사님 만담 콤비는 자칫 과열되려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언성을 높이던 사람들도 두 사람의 입담에 두 손을 들고 다시 차분히 회의에 참여했다.
태주의 이미지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라졌다. 고급스럽고 섹시한 이미지에서 고급스럽고 천재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태주가 할 줄 아는 특기가 많기도 했고, 암기력이 좋아서 어지간한 대본은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모두 외워버리자, 이런 점을 중점으로 어필하기로 결정됐다.
“그럼 다음 주부터 보컬과 연주 수업 일정을 잡겠습니다. 연기 선생님은 말씀하신 연극배우님을 우선해서 섭외하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화 버스킹에서 태주가 소화해야 할 노래가 제법 많았다. 전곡을 다 부르는 건 아니라지만, 가능하면 모두 연주하고 부를 수 있게 준비하기로 했다. 덕분에 일주일에 두 번 보컬과 연주 수업을 받기로 했다.
연기 수업은 박재성 선생님을 섭외할 수 있는지 소속사 차원에서 문의하기로 했다. 소속사에 충분히 좋은 연기 선생님 풀이 있었는데도 태주의 의견을 받아줘서 다행이었다. 현역으로 일하는 선생님이 의뢰를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지만, 태주는 박재성 선생님의 수업이 가장 좋았었다.
박재성 선생님의 수업에서 태주는 상상하는 법, 몸 쓰는 법, 다른 배우와 연기를 주고받는 법을 배웠었다. 연기 선생님 중에 수강비만 받고 엉터리로 가르치는 자격 미달인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은 나중에 알았다. 그 와중에 박재성 선생님을 만난 자신은 아주 운이 좋았다.
박재성 선생님의 닦달에 연기를 배운지 한 달이 지났을 때부터 프로필을 돌리고 오디션을 봤다. 결과적으로 3개월 만에 독립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연기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계약만 해두고 군대에 가버린 자신을 소속사에서 안 좋게 보고 있었는데, 독립 영화지만 주연에 캐스팅된 덕에 평가를 바꿀 수 있었다.
“꼭,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