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2
151. 사전 미팅 >
회의실 안에는 긴장한 얼굴의 강은진 PD와 들뜬 기색이 역력한 여랑 작가가 있었다. 두 사람은 표정부터 앉아 있는 자세까지 모두 달랐다.
단막극으로 입봉작을 찍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미니시리즈를 연출하게 된 강은진 PD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같이 느끼는 중이었다. 그녀는 촬영 중일 때와 다르게 오랜만에 잘 차려입고 배우를 섭외하러 왔지만, 불편한 옷만큼 딱딱하게 긴장된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여랑 작가는 흥분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그녀는 지금 출연 배우 섭외보다 좋아하는 배우의 소속사에 방문한 사실 때문에 흥분한 상태였다.
‘아아! 내가 우리 배우님 소속사엘 다 오다니. 호, 혹시 우리 배우님이 이 회의실도 쓰셨었나? 어우! 그럼 혹시 이 의자에도?’
여랑 작가는 어쩌면 지금 앉은 의자에 태주가 앉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자,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매의 눈으로 회의실 안의 가구를 눈에 담았다. 나중에 작업실을 얻으면 비슷한 가구로 안을 채울 생각이었다.
-똑똑똑!
두 사람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우 팀장과 견우가 들어왔다. 양측의 사람들은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입을 닫았다. 사전에 아무 교감 없이 시간이 괜찮은지만 묻고 성사된 만남이었다.
시놉시스만 보내도 될 일을, 섭외에 힘을 실으려 직접 방문한 tvM의 두 작감도, 이미 차기작 제작진과 미팅 날짜를 잡아 둔 트리즈의 두 사람도 먼저 말을 꺼내기 주저하고 있었다. 덕분에 양측은 서로 상대의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호, 혹시 우리 배우님 오늘 회사에 나오세요?”
‘켁! 여랑 작가. 우리 배우님이라니!’
“헛! 아니요. 오늘 이 배우님은 일정이 따로 없으세요.”
“아이고. 옥안을 좀, 큼큼. 그, 그러시군요.”
어색했던 분위기는 여랑 작가의 아쉬운 표정과 목소리 때문에 풀렸다. 여랑 작가는 기세를 몰아 궁금했던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 팬이 좋아하는 배우의 소속사에 올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았다. 그녀는 이 기회에 사심을 듬뿍 채울 생각인 것 같았다.
“진짜요? 배우님이 이 자리에 앉으셨었어요?”
“네. 회의실 사용할 일이 있을 때는, 주로 그쪽에 앉으세요.”
“어흑. 어떡해요. 감독님, 지금 여기에 우리 배우님이….”
“여랑 작가, 이제 좀 그만하지”
“네? 왜요? 감독님 신기하지 않아요?”
하나도 안 신기하고,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부끄럽기만 했다. 여랑 작가야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에 관한 일이니 즐거울지 몰랐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미니시리즈를 직접 연출하는 것도 주연 배우 섭외도 처음이었다. 긴장되고 초조해서 여랑 작가의 높은 텐션에 맞추기 힘들었다.
“호호호. 이 배우님을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래도 곧 식사 시간이니, 그 전에 방문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아! 우리 배우님 차기작 때문에요. 혹시 벌써 정하셨어요?”
“아니요. 얘기가 오가는 곳은 있지만, 아직 정하시진 않으셨어요.”
“정말요? 그럼 저희 작품도 한번 봐 주세요.”
“어머. 작가님.”
여랑 작가의 저돌적인 태도와 솔직한 질문이 옆에 앉은 강 감독은 난감한 것 같았지만, 우 팀장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주변에선 솔직하게 궁금한 걸 묻거나 바라는 걸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이리저리 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질문 하나도 비비 꼬아서 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선 무슨 작품인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박수예요.”
“박수요?”
“네. 탐정 박수요.”
“탐정?”
우 팀장이 흥미를 보이자, 여랑 작가의 입이 멈추지 않았다. 로맨스는 주 시청자의 연령대나 성별이 한정적이지만, 귀신이나 탐정 얘기는 전 세대를 아우르며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라고 어필하고, 촬영 내내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한 은근한 암시를 깔고 연기할 배우는 이 배우님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요. 사실 이 대본은 우리 배우님을 생각하고 쓴 거예요. 비밀이 많으면서도 그걸 시청자한테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게 할 배우는 우리 배우님뿐이세요. 무, 물론 나이 많은 배우분들 빼고요.”
“호호호. 그렇죠. 박수에는 우리 배우님이 딱 맞으시긴 하죠.”
“그렇죠? 그렇죠?”
“그런데 혹시 편성은 언제로?”
우 팀장은 박수 대본을 태주를 생각하고 썼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이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방송국 자체 제작이라지만, 케이블이니 제작비가 부족할 것 같진 않았다. 감독이 미니시리즈 연출이 처음이라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단막극에서 보여 준 실력이라면 믿어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실 저희는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거든요.”
“7월!”
“네?”
“7월 초로 편성 받았어요.”
“어머. 그렇게 빨리요?”
7월 초에 편성을 받았다는 말이 우 팀장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소재도 작가의 태도도 딱 그녀의 마음에 들었는데, 편성 받은 시기는 더 좋았다. 여름과 귀신, 떼려야 떼기 힘든 두 단어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같이 붙여 두었을 때 더욱 효과적이었다.
“시놉시스 주세요. 바로 이 배우님께 드릴게요.”
“4화 대본까지 챙겨 왔어요.”
“어머나. 벌써 대본이 그만큼 나왔어요?”
“그게요. 이게 전부터 써 오던 거라서요.”
부끄럽다는 듯이 여랑 작가는 태주의 데뷔 때부터 조금씩 써 온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박수는 그녀가 영화 버스킹을 본 후부터 이 년 정도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쓰던 작품이었다. 태주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를 주인공으로 조금씩 쓰고 다듬고 하던 대본이었다.
얼굴을 붉히며 비밀 얘기하듯 털어놓는 여랑 작가는 확실하게 우 팀장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사실 오늘 만남에서 시놉시스만 받고 말 생각이었지만, 여랑 작가를 보고 얘기를 좀 더 진행하자고 마음먹었다.
이후 회의는 조용하던 강은진 PD도 가세해서 묻고 답하는 모습이 되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촬영 일정이나 개런티, 같이 출연할 배우 이름 등을 확인했다.
양측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우 팀장은 생각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만족스러웠고, 두 작감은 우 팀장의 호의적인 시선이나 말투에서 태주의 출연 가능성을 가늠해 보며 기뻐했다.
이어지는 식사 자리의 분위기도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우 팀장은 박수의 미니시리즈 대본이 태주의 마음에 들기만 한다면, 바로 계약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촬영 시기, 방영 시기 모두 괜찮았다.
*
오전에 있던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 회사에 들른 태주는 자신 앞에 내밀어진 대본에 깜짝 놀랐다. 회귀 전엔 여랑 작가의 퓨전 사극을 했었다. 사극 마니아인 그녀의 대본이라서 그는 퓨전 사극의 대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 못 한 박수의 미니시리즈 대본이었다.
단막극을 촬영하던 도중, 작가 본인에게 미니시리즈의 프리퀄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렇지만 그 드라마의 대본이 이미 4화까지 나와 있을 거로는 예상 못 했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여유가 생기면 쓰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조건이 좋아요.”
“말씀대로예요. 진짜 조건은 좋네요. 그럼 전 약속 전까지 대본 좀 볼게요.”
“네. 편하게 보세요.”
태주는 대본을 들고 대표실로 향했다. 태산이가 항상 그곳에서 대표님과 놀기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태주 역시 회사에 들르면 자연스럽게 대표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대본을 확인하러 휴게실이나 빈 회의실이 아닌 대표실로 자연스럽게 향하고 있었다.
‘오호! 요건 못 잡겠지.’
‘냐앙.’
‘으하하. 잘 잡네. 잘했어, 태산이. 이거 한 입 먹고 또 하자.’
‘냐아앙.’
대표님 방을 노크하려던 태주는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노크하려던 손을 잠시 멈췄다. 냐냐앙. 신이 난 태산이 녀석의 울음소리가 대표실 밖에까지 들리고 있었다. 대표님도 즐거우신지 연신 웃고 계셨다. 듣고 있던 그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였다.
대본은 생각했던 대로 재밌었다. 평소에는 생활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는 건 단막극과 비슷했다. 하지만 조수 역할을 하는 부잣집 도련님이 끊임없이 사건을 물고 온다.
여랑 작가가 건네준 1화에서 4화 대본에는 전세 사기를 당한 청년을 위해 사기꾼 부동산 업자와 집주인이 숨긴 재산을 찾아낸다. 물론 그 사기꾼 집주인에게 속아서 자살한 세입자 귀신의 도움을 받는 것은 비밀이었다.
“재미는 있는데….”
“이게 차기작 대본이에요?”
“후보요.”
“그래요? 대본 재밌는데, 이걸로 하셔도 되겠어요.”
“이거 말고 얘기 중인 다른 작품도 있어서요.”
태산이와 다 놀았는지 최 대표가 맞은 편에 앉아서 대본을 보고 있었다. 그는 태주가 대본을 내려놓고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자, 이유를 물었다. 아무래도 두 작품의 촬영 시기가 겹칠 것 같아서 곤란하다는 게 태주의 얘기였다.
최 대표 역시 태주의 의견에 동의했다. 좋은 작품이지만, 촬영 시기가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었다. 조연도 아니고 주연으로 두 작품을 동시에 촬영하는 것은, 아무리 연기력이 좋은 태주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하하. 욕심부려서 두 작품 모두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촬영이 바로 이어지거나, 기간이 일부 겹치는 정도면 그럴 생각도 있긴 해요.”
“큭. 그 정도 욕심은 내도 좋아요. 그만큼 재밌으니까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대본에 박수가 귀신 보는 장면 나오던데.”
“윽! 그건 조금.”
미라 모습이었던 쿠첼루스도 겪고 귀신보다 더 신기한 이종족도 만났지만, 태주는 여전히 공포물의 스산한 분위기를 싫어했다. 단막극에서는 귀신을 보는 장면이 거의 없었지만, 미니시리즈에선 직접 귀신에게 도움을 받는다.
“분장이 무섭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대본에 박수가 귀신이랑 농담도 하고 거래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 무섭게 꾸미진 않을 것 같아요.”
“하하하. 그런 점들도 고민해서 결정해 봐요. 아! 다른 작품은 제목이 뭐죠?”
“어린 연인이요. 대본 드릴까요?”
“갖고 계세요?”
최 대표는 빠른 속도로 태주가 건넨 어린 연인의 대본을 훑어봤다. 순식간에 1화 대본을 끝까지 읽은 최 대표가 복잡한 얼굴로 두 개의 대본을 나란히 놓았다. 그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태주에게 말을 건넸다.
“이 배우. 무리인 줄은 알지만, 만약 촬영 일정이 반이 안 되게 겹치는 정도라면 두 개 다 들어갑시다.”
“아!”
“이쪽 대본도 놓치기엔 무척 아까운 작품이에요. 일정은 최대한 겹치지 않게 조정을 해 봅시다.”
“그럴까요? 솔직히 저도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둘 다 대본도 좋고 조건도 너무 좋아서요.”
수사물과 로맨스. 귀신이라는 소재를 채용해 서스펜스를 가미한 탐정 수사물에, 환상 속에나 있을 법한 착하고 애교 많은 남자친구와의 로맨스. 두 대본 모두 괜찮아서, 사실 한 작품만 택해서 집중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최 대표는 곧 2년의 공백기를 가져야 하는 태주의 상황을 고려한 후, 두 작품을 모두 찍도록 권했다. 박수의 친근한 모습도 좋았지만, 어린 연인의 남자 주인공은 이상적인 남자친구의 표본 같은 모습이라서, 드라마가 끝나도 꽤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 같아서였다.
어린 연인의 제작진과의 미팅 자리로 이동하던 중, 태주는 최 대표와 나눴던 얘기를 견우에게 들려 줬다. 견우는 최 대표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바로 동의하지 않고 태주를 말렸다. 마음이 급해서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욕심을 부려서 부담을 떠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를 설득했다.
“음. 일정만 맞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네. 대표님은 일정이 반 정도 겹치면 조정해서 하자고 하셨는데요. 전 삼 분의 일 정도가 최선일 거 같아요.”
“그래도 거의 3, 4주 정도 되는 기간입니다.”
“하하하. 그 정도는 무리해도 괜찮아요. 대신 다른 스케줄은 최대한 줄여 주세요.”
“우선 오늘 미팅 결과를 보고 다시 얘기해 보시죠. 어쩌면 두 작품에 출연하는 걸 반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견우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연인 제작진과 미리 만났었던 견우는 그쪽에 태주 이상의 카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권재형을 섭외한 후에 조세라 섭외를 약속하고 방송국에 편성도 받았다는 소문이었다. 그게 일 년 전이니, 아마 곧 방영 시기가 돌아올 터였다. 다른 작품에 편성권을 내줄 생각이 아니라면, 제작사에선 태주가 바라는 어떤 조건이든 들어줄 것이었다.
‘다른 작품을 들고 갔다가, 편성에서 빼 버리겠다는 얘기만 듣고 왔다는 소문도 있으니.’
미팅 장소에는 제작사 대표, 제작 피디, 감독과 조감독, 작가와 그 일행 등 많은 사람이 모여서 태주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인원 모두가 호의적인 눈빛으로 열렬히 환영하는 바람에 잠시 문 앞에서 굳고 말았다.
제작사 미팅은 태주와 견우의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수월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태도라 다른 작품과 동시에 출연할 수도 있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였다. 아마도 견우의 예상대로 편성을 받은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편성을 이미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휴. 그것 때문에 저희가 속을 얼마나 끓였는지 말도 못 합니다. 정말이지 이 배우님 아니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시기는 언제로?”
“MBS에서 7월 초, 월화로 받았습니다.”
“7월 초요?”
tvM의 두 작감이 얘기했던 것도 7월 초였다. 7월 초의 수요일과 목요일. 마치 양쪽이 짠 것처럼 같은 시기에 요일만 다르게 편성을 받아 두었다. 두 작품의 방영 시기가 같은 것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방영 시기가 같으니, 촬영 시기 역시 대부분 겹칠 것처럼 보였다.
태주와 견우의 눈이 마주쳤다. 직후 태주가 안타까움에 탄식을 터트렸다. 견우가 그런 태주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