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3
152. 로션 광고 채택 >
어린 연인의 방영 시기를 듣자마자 표정이 나빠진 두 사람이 이상했는지, 제작 피디가 견우를 불렀다. 그는 표나게 아쉬워하는 태주를 본 후, 설마 방영 일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매니저님?”
“죄송합니다. 혹시 촬영 시기는 어떻게 됩니까?”
“그, 그게 이 배우님 일정은 어떻게?”
“예?”
“저희 사정은 대략 파악하셨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견우를 본 제작 피디는, 앞에 놓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뒤 제작사가 겪은 사연을 풀어놨다.
제작사의 상황은 알아본 것보다 훨씬 더 다급했다.
견우가 들은 소문과는 다르게, 제작사에선 방송국과의 교섭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은 상태였다. 5월 전까지 어린 연인의 출연진을 섭외하지 못하면, 다른 대본으로 제작한 드라마를 그 시간에 방영하기로 약속을 받았었다.
제작사에서 새 대본으로 급하게 제작에 들어가려던 때에, 심수경이 어린 연인의 여주인공 역할을 다시 맡겠다고 나섰다. 기존 계약을 지킬 수 있게 된 제작사에선 그녀의 의사를 무척 반겼었다. 남자 주인공을 찾는 한편 연출을 위해 부랴부랴 외주 팀들을 섭외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다시 말을 바꿔 버렸다. 한동안 제작사를 기다려 줬던 외주 팀들은 사정이 이렇게 바뀌자, 하나둘 씩 계약을 해지하고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저런.”
“그래서 저흰 가능하시면 최대한 빨리 촬영에 들어갔으면 하고….”
“여자 주인공은요?”
“지금 섭외 중입니다.”
“어느 분을 섭외 중이십니까?”
“그게… 조세라 씨입니다.”
조세라, 제일 처음 제작사에서 여주인공으로 섭외를 시도했었던 배우였다. 다만, 상대 배우가 권재형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교체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체할 남자 배우를 찾을 수 없었다. 조세라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즉시 출연을 고사했었다.
태주는 잠시 조세라와 자신의 투 샷을 떠올려 봤다. 웩. 걸쭉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조세라를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보는 자신을 떠올리자, 속이 불편했다. 대본상엔 상대 여배우가 언제나 밝고 활기찬 성격이라고 나온다. 남자 주인공은 가끔 그런 자기 연인을 요정같이 신비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요정 조세라를 떠올렸다가 인상을 심하게 구기고 말았다. 꿈의 정원에서 최고의 요정과 지내고 있는 태주는 도저히 조세라를 보면서 요정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특히 조세라의 평소 모습을 잘 아는 그는, 절대 그녀를 희처럼 사랑스럽게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세라 누님이 요정? 요정한테 그게 무슨 미안한 짓이야!’
“이, 이 배우님?”
“아! 죄송해요.”
“혹시 조세라 배우님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네? 아! 그런 일 없어요. 저희 사이좋아요. 형제 같은 사이예요. 요새도 가끔….”
“큼. 태주 씨.”
“네?”
형제 같은 사이라고 말한 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태주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조금 난감했다. 사실 태주는 그 말을 하면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희가 팅커벨이라면 세라 누님은 트롤이지. 트롤 요정.’이라고 비교하고 있었다.
제작사에선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거로 충분했는지, 태주의 형제 발언을 그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것보다는 촬영 일정을 최대한 당기는 일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조세라 씨와는 계약만 남겨 둔 상탭니다.”
“벌써요?”
“아하하.”
“크흐흠.”
제작사 대표의 멋쩍어하는 모습을 본 견우는 바로 사정을 눈치챘다. 제작사 대표는 아마 태주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말로 조세라를 설득한 것 같았다.
견우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박지헌도 그랬지만, 태주와 같이 촬영했던 배우들은 그와 다시 촬영하는 것을 매우 반겼다. 몇몇 배우는 태주와 연기하는 게 편하고 즐겁다면서 그에게 태주의 차기작을 묻기도 했었다.
중간 과정이야 어떻든, 촬영 일정이 빨라지는 것은 반길 일이었다. 견우는 촬영 일정, 촬영 장소 등을 꼼꼼하게 물어, 다이어리에 정리했다. 아직 섭외 장소 같은 게 정해지진 않았지만, 박수 출연 여부를 정하려면 대략적으로라도 알아 둬야 했다.
그는 속으로 부디 촬영일이 박수와 겹치는 날이 많지 않아서, 태주가 바라는 대로 두 작품 모두 출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제작사 미팅 막바지에 견우는 곤란한 표정으로 태주에게 섭외 제안이 굉장히 많이 들어 온다는 얘기를 흘렸다. 조건 역시 A급 배우와 같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그의 얘기를 들은 제작진의 안색이 나빠졌지만, 이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동시 출연의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 경우, 아예 출연하지 못하는 것보단 일정이 좀 겹쳐도 태주가 출연하는 게 낫다는 인식을 미리 심어 두어야 했다.
“아무래도 촬영 일정이….”
“헉! 그런.”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매니저님?”
“죄송합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듯합니다.”
견우는 줄곧 화기애애하던 회의 분위기를 살짝 무겁게 만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 얘기를 꺼냈으니, 눈치 빠른 제작사 대표라면 태주에게 들어온 섭외 제안을 바로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태주가 박수 연출진과 좋은 관계라는 걸 알게 되면, 촬영 일정이든 조건이든 최대한 태주의 상황을 고려해서 다시 제안할 것이다.
견우는 우선 그때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
잘 가꿔진 정원에 놓인 라운지 체어에, 태주가 트롤 요정에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조세라가 길게 누워 있었다. 편한 자세로 누운 그녀는 작은 화면을 보면서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이 xxx같은 쉑이 어서 트롤질이야.”
“…조세라.”
“넝마 쪼가리를 처입고 와서는 xx이야.”
“세라야. 조세라.”
“나 바빠. 나중에 얘기해.”
바쁘다고 말해도 끈질기게 곁에서 말을 거는 매니저에게 조세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별말 아니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겠다는 흉흉한 눈빛을 한 채였다.
“이민하 작가님한테 연락 왔어.”
“누구? 이민하 작가? 어린 연인?”
“어. 그쪽에서 다시….”
“뒤질래? 지금 나보고 그 변태 새끼랑 같이 뭘 하라고?”
“아니. 아니. 이번엔….”
-쾅!
손으로 내려친 것 같지 않게, 테이블에서 상당히 큰 소리가 났다. 조세라는 겉보기엔 여리여리했지만, 생각보다 완력이 센 편이었다. 액션 영화에도 출연할 정도로 몸놀림도 좋았고, 호신술에도 능했다. 그녀가 으르렁거리며 따지듯 되묻자, 매니저가 겁을 먹고 말을 얼버무렸다.
“아오. 대표님은 대체 왜 널 매니저로 보내 놔서.”
“그, 작가님이….”
“내가! 이태주 정도를 바랐어? 그냥 그 썩을 놈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안 된다며?”
“아니, 이번에는….”
“됐어. 이젠 이태주라도 데려오지 않는 한, 거들떠볼 생각도 없어.”
제작사에서 이태주와 협상 중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그녀에게 다시 대본을 보내왔다. 매니저는 그걸 조세라한테 알려 줄 생각이었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그녀 때문에 입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등을 돌리고 다시 게임을 시작한 조세라를 보던 매니저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바로 코톡 창을 열어서 조세라한테 마저 하지 못한 말을 빠른 속도로 타이핑했다.
-토토토토토토.
“그냥 말로 하라고 했지? 네 톡 때문에 뒈졌잖아. 아우. 너 진짜.”
-세라 네 말대로 이번엔 남주로 이태주 섭외한대. 지금 계약서 쓰기 직전이래.
“진짜?”
-응. 오늘 사전 미팅한다고 했어.
“야! 뭐라 안 할 테니, 이제 말로 해.”
-알았어.
“말로 하라고!”
촬영한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간 지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 가끔 찍는 화보와 인터뷰를 제외하면, 그녀는 반년이 훌쩍 넘도록 푹 쉬는 중이었다.
도깨비 무사 후속작으로 이민하 작가의 어린 연인을 제의받았지만, 상대 배우를 확인한 후에 바로 고사했었다. 직후 그녀는 바로 영화에 들어갔고, 어린 연인에 관해선 신경을 끄고 있었다.
“걔한테 들어가는 대본이 얼마나 많은데, 뭐가 아쉽다고 그런 대본을 골랐지?”
“대본 재밌던데.”
“재미야 있지. 그런데 걔가 굳이 여러 번 까인 대본을 고를 이유가 없잖아. 막말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다 걔한테 러브 콜을 보내고 있을 텐데. 안 그래?”
“어, 대본 다 들어갔대.”
“그러니까.”
이유가 어찌 됐든 자신이 깠던 대본이 한 번 더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민하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대본을 다시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라면 이런 대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 배우가 배우라서 한 번은 펼쳐 봐야 할 것 같았다.
*
우리 아기 첫 로션을 출시 중인 회사의 본사로 들어서는 이 이사는 자신의 일행을 둘러본 후, 슬쩍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김 감독이 제대로 씻고 나온 듯했다. 동행한 박 대리가 구토를 참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본사 전무님을 모시는 발표회인데, 또 안 씻고 오는 줄 알고 걱정했네.’
이 이사는 신경 쓸 일도 많은데, 별 시답잖은 것까지 자신이 신경 쓰게 만드는 김 감독이 못마땅했다. 그는 자신이 김 감독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싫어하는 중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약을 우습게 여기고, 남 탓만 해 대는 그가 도저히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사님.’
‘왜?’
‘저 사람은 영상 두 개인 거 알아요?’
‘모르지. 그걸 알릴 필요 있어?’
‘그건 그렇죠.’
김 감독의 영상은 이미 광고주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연히 그 영상을 시연하는 자리에 틀 것이다.
태주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찍은 영상은, 이 이사가 따로 만든 것이었다. 다음 계약을 위해 시연이 끝나는 자리에서 선보일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퀄리티가 너무 좋았지만, 계약된 광고는 단 한 편이었다.
회의실에 영상을 평가할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이 이사는 짧은 설명을 마치고 바로 광고 영상을 틀었다. 같은 샤워 가운을 차려입은 형제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특히 아이와 같은 동작을 취하고, 유쾌하게 웃는 얼굴은 뇌리에 콕 박힐 정도였다.
-짝짝짝.
“좋아요. 마음에 드네요.”
“감사합니다.”
“호호호. 수고했어요. 60초는 마음에 들어요. 정말 잘 나왔네요. 이 이사님, 이어서 30초, 15초, 5초도 차례로 확인하죠.”
“예. 보시죠.”
시간별로 편집한 영상도 나쁘지 않았다. 이 이사는 좀 전에 직접 마음에 든다는 평을 한 전무 외의 사람들의 표정도 살폈다. 광고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다 괜찮았다. 사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전무가 마음에 들어 하는데, 거기에 대고 딴지를 걸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광고 영상 시연이 끝난 뒤, 전무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이 이사가 바로 스크린 앞으로 나섰다. 가벼운 치하를 하고, 회의를 끝내려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 이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광고 영상 촬영 현장에서 너무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콘셉트와는 조금 다른 영상입니다만, 부디 잠깐의 시간을 내어 주십시오.”
이 이사가 신호를 주며 스크린을 벗어나자, 박 대리가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은 좀 전 영상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형제가 찍은 것이었다. 다만 이전 영상보다 훨씬 활기차고 개구져서, 보는 이가 저절로 웃음 짓게 하는 것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몇몇은 귀를 만지작거렸다. 형을 따라 하던 아이가 내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맺혀 있는 것처럼 간지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몇은 손으로 자기 볼을 만지작거렸다. 로션을 문질러 주던 형의 부드러운 손길이 자기 볼에 닿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였다.
“이 이사님. 이 영상 뭐에요?”
“괜찮게 보셨습니까?”
“괜찮게 봤냐고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하하하. 촬영이 끝나고 모델에게 자유롭게 연기해 달라 요구한 걸 찍은 영상입니다.”
“좋네요. 두 편 모두 마음에 들어요. 김 본부장님 우리 계약 조건 어떻게 되죠?”
본부장은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알고 있는 사실을 전무에게 보고했다. 단발성 광고로 영상, 지면 포함 6개월짜리 계약이었다.
이태주와의 계약이 끝나면, 몇 년간 계속 유지해 온 엄마와 아이의 유대 콘셉트를 다시 채용할 생각이었다. 이태주가 워낙 화려한 이미지가 강하고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배우라서, 반년 뒤의 이미지가 바뀔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흐음. 난 두 번째 게 더 마음에 드는데.”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김 본부장님도 그러시죠? 이 이사님, 두 번째 영상을 사용해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전무님.”
짧게 편집된 영상을 본 후에도 전무를 비롯한 광고주 측의 의견은 바뀌지 않았다. TV 광고는 이태주와 친척 동생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촬영한 영상이 채택되었다.
이 이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놀라는 한편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고심해서 만든 콘셉트의 영상도 좋았지만, 실제로 다정한 형제의 모습을 찍은 영상보다 진심이 잘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런 결과는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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