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7
156. 영화 맑은 날 시사회 >
태주는 짐을 옮기기 전에 예정대로 연우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묻고 답하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줄곧 보여 주었다. 그렇게 연우를 안심시키는 한편,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공방 이사 얘기를 꺼내 놨다.
“집 근처에도 작업실로 빌릴 만한 곳이 꽤 있더라.”
“지금 공방은 바로 아래층이라 편한데….”
“그래도 오피스텔이라 밤에 작업하기 불편했잖아.”
“밤엔 편집을 주로 해서 괜찮아요.”
“큼. 그, 아예 이참에 집도 옮길래?”
연우는 공방을 옮기는 일에는 미련이 남은 듯 보였지만, 그래도 수긍했다. 하지만 이어서 꺼낸 이사하자는 얘기에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 전원주택에 들어오라고 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태주는 이미 지난번 거절로 전원주택에서 동생들과 같이 사는 건 포기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반응을 보니 그 생각은 깔끔하게 접는 게 나아 보였다.
“그런데요, 형. 진짜 사생팬이에요?”
“그런 것 같아. 음, 너희 형 사는 곳으로 옮길래?”
“아니요. 위층은 괜찮은 것 같아요.”
“며칠만이라도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PC랑 그런 것도 전부 집에 있는데요.”
옷가지만 챙겨서 며칠만 와 있으라고 해도 괜찮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간 집 앞에는 태주가 연락한 매니저 견우와 쿠첼루스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태주는 연우와 태산이를 먼저 집으로 올려 보낸 뒤, 두 사람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태주 씨. 괜찮으십니까?”
“네, 전 괜찮아요. 연우가 좀 놀란 것 같지만, 지금은 진정됐어요.”
“그렇습니까. 혹시 공방에서 다른 물건이 없어지진 않았습니까?”
“네, 상자를 다 살피진 않았지만, 없어진 건 전부 제 물건이었어요.”
태주의 설명을 듣는 두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태주는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따라온 시선을 설명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최 대표가 빌려준 아파트는 입주 세대에 따라서 주차장도 구분되어 있는 곳으로 외부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소였다.
“오피스텔도 공용 문을 통과해야지 안으로 갈 수 있는데. 어떻게 들어간 건지 모르겠어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공인중개사무소에 집을 보러 왔다고 부탁만 해도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헐, 진짜요?”
“예. 우선 제가 가진 탐지기를 사용해 보고, 아침에 바로 보안 업체에 연락하겠습니다.”
견우가 도청 장치를 탐색할 수 있는 물건을 꺼냈다. 스마트폰보다도 작은 사이즈의 탐지기로 태주는 그도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 회귀 전 매니저인 운석도 비슷한 걸 가지고 다니면서 가끔 대기실이나 그의 집을 확인했었다.
“짐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잠시 두시죠.”
“그럴게요.”
“아파트 쪽은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쿠첼?”
공방이 있는 오피스텔 건물보다 훨씬 외부인의 출입이 까다로운 곳이었다. 쿠첼루스는 아파트 보안 서버에 접속해서 태주가 쓰는 주차장에 출입한 사람들을 모두 확인할 생각이었다. 태주의 의심대로 CCTV가 설치된 게 사실이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생팬인지 스토커인지 모르겠지만, 동생들이 있는 곳에 침입하다니….”
“태주 씨, 괜찮습니다.”
“쿠첼….”
“견우 씨가 돌아가면 제가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네.”
두 사람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연우가 놀랄까 봐,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게 있었지만, 사실 태주도 속으론 꽤 놀란 상태였다. 지금 사는 곳이 보안이 뛰어난 곳이어서 이런 부분을 걱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범인이 그가 사는 아파트가 아닌 짐을 둔 공방에 침입한 것이라 더 소름 끼치기도 했다.
“제가 여기에 짐을 둔 걸 알 정도니까, 꽤 오래 지켜본 것 같아요.”
“여기서 살 땐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그래요?”
“아마 태주 씨가 동생들을 만나러 오가는 걸 보고, 이곳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휴. 여기 사는 것도 아니고, 가끔 들르는 데도 이런 짓을 하다니, 참.”
쿠첼루스가 아는 사생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보다 심각한 게 더 많았다. 자기 배우의 차기작을 알아낸 후, 그를 보기 위해 몇 달이나 연기 학원을 다닌 사생팬의 얘기는 유명했다. 그 사생팬은 해당 학원에서 드라마에 단역으로 학원생을 보내는 사실을 알고 몇 달을 끈질기게 다녔었다.
만약 범인이 태주의 사생팬이라면, 그가 동생들을 보러 자주 들르는 이곳을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범인이 욕심 때문에 태주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면, 이번 일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태주와 쿠첼루스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견우가 탐지를 마쳤는지 둘이 기다리는 차로 돌아왔다. 차 안으로 들어온 견우의 입매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주머니에 넣어 뒀던 물건을 꺼냈다.
“도청기입니까?”
“네. 도청기하고 현관 쪽에서 찾아낸 카메랍니다.”
“후우. 그것참.”
“동생분들을 며칠 다른 곳에 묶게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파트로 같이 갈게요.”
간단하게 짐을 챙겨서 도착한 아파트에는 형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 팀장의 연락을 받은 형식은 한동안 태주와 모든 스케줄을 같이 할 거라는 얘기를 해줬다. 태주는 좋지 않은 일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형식을 제대로 반겨 주지 못한 게 못내 미안했다.
“태주 씨는 먼저 올라가십시오. 저랑 형식이는 주차장 좀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네. 가자 연우야.”
“태주 씨, 저도 견우 씨랑 같이 주차장에 들르겠습니다.”
“그러세요. 먼저 올라갈게요.”
세 사람이 주차장을 둘러보러 간 사이 태주는 연우와 같이 집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이 태주는 화가 난 것이 드러나지 않게 노력했다. 그는 태산이를 안지 않은 다른 팔로 연우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연우는 짐을 챙겨서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손을 떨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멀고 낯선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불안해하고 있었다. 스토커 혹은 사생팬 때문에 사라졌던 연우의 불안 증세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태주는 지금 이 상황에 이가 갈렸다. 이제야 겨우 안정을 찾은 연우의 평온한 일상을 깨뜨린 상대를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
우려했던 대로 주차장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태주의 차에서 초소형의 차량용 GPS가 발견되었다. 언제 설치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태주의 개인 스케줄까지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 끔찍하다는 표정이었다.
“우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말씀하세요.”
“동생분들하고 태주 씨도 숙소를 옮기시는 게 낫겠습니다.”
우 팀장이 태주와 동생들이 묵을 수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아 두었다. 보안이 괜찮은 아파트의 주차장에 몰래 CCTV를 설치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회사에선 한동안은 태주의 경호를 강화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음. 전원주택은 이미 완공됐어요. 인테리어가 아직 안 끝났지만, 그건 천천히 해도 되니까요. 저흰 그쪽으로 옮길게요.”
“그렇게 하십시오.”
“태우랑 연우, 동생들이 머물 곳만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태주는 주방에서 이것저것 꺼내 요리하는 태우와 연우를 봤다.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야식을 만드는 둘을 보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연우의 상태도 괜찮아진 듯하니, 견우가 얘기한 집을 잠시 옮기는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았다.
“떡볶이 드시고 하세요.”
“이게 바로 요새 가장 핫한 마라 떡볶이야.”
“어, 엄청 매워 보이는데.”
“보기보다 안 매워요, 형.”
“이거 산이는 못 먹겠다.”
태주의 말에 산이는 이거 먹으라면서 연우가 소시지 떡꼬치를 손에 쥐여 줬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 입맛에 맞게 거의 소시지만 끼워져 있는 꼬치였다. 그는 야식을 먹으면서 조심스럽게 연우의 상태를 살펴봤다.
연우는 태우가 아파트로 온 뒤로 한층 안정을 찾았다. 태우가 사 온 야식 재료로 같이 요리도 하고 떠들고 하더니 이젠 괜찮은 것 같았다. 새삼 둘이 정말 많이 친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형, 우리 숙소 마음대로 정해도 돼?”
“어, 마음대로 정해.”
“그럼 우리 군포로 해도 돼?”
“어디?”
“경기도 군포. 오늘 목요일이잖아. 나 내일 수업 없거든. 우리 철쭉 축제 보고 오기로 했어.”
기왕 며칠 밖에서 자는 김에, 둘이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얘기였다. 형 탓이니 형이 경비를 대라는 당당한 요구에 태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야식을 만드는 내내 무언가 얘기를 나누더니, 그게 여행 계획이었나 보다. 태주는 기분 좋게 두 사람의 요구를 받아줬다.
*
스토커의 일은 회사와 쿠첼루스한테 맡기고 태주는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수행했다. 오늘은 작년 여름에 우정 출연했던, 원로 배우 김혜숙의 은퇴 작품 의 시사회가 있는 날이었다.
“누나, 이 슈트 어때요?”
“어디 거야? 네가 좋아하는 슈트 브랜드랑 비슷하네.”
“그쵸?”
“원단도 마감도 괜찮고. 디자인은 다른 말이 필요 없고. 브랜드가? 어?”
“예전 슈트랑 같은 데 거예요.”
시사회 참석을 위해 스타일링을 받는 내내 태주는 미나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이번에도 정체를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 디자이너라고 얼버무렸다. 정원에서 가져온 고급 슈트의 디자이너 정체는 태주도 모르는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예전 슈트도 그렇고. 진짜 너무 잘 어울린다.”
“하하하. 전 역시 슈트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호호호. 너 운동복 차림도 잘 어울려. 박수 때 반응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
“킥. 그건 진짜 하나도 안 꾸민 모습인데요.”
태주와 미나는 평소처럼 편하게 떠들면서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둘과 다르게 견우는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따라다니는 사람의 시선을 느꼈었다는 태주의 설명을 들은 뒤여서 더욱 신경 쓰고 있었다.
“시계는 이걸로 바꿔야겠다. 같은 브랜드라 상관은 없는데, 이 옷에는 가죽 밴드보다 메탈 밴드가 더 잘 어울린다.”
“아아. 이거 저번에 화보 찍은 거네요.”
“응. 이런 날 한 번씩 차 줘야지.”
“그건 그렇죠.”
딱 좋은 시간에 메이크업이 끝났다. 곧 태주가 포토월에 설 시간이었다. 미나는 마지막으로 옷의 매무새를 정돈해 주고 난 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팬카페와 태주의 SNS에 올릴 사진이었다.
“시시회 끝난 다음에 바로 미팅 장소로 가야 하지?”
“네. 바로 출발해야 시간이 맞을 것 같아요.”
“지금 굳이 예능까지 출연할 필요가 있어?”
“먼저 나온 얘기라서요.”
“그래도 그렇지. 몇 달 동안 엄청 바쁠 것 같은데.”
오성호 PD가 직접 연출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나갈 필요가 있냐며, 미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태주도 미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차기작 계약이 코앞이라서 예능 같은 곳에 나갈 생각은 그다지 없었는데, 출연자 목록에 박준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너 요리도 못 하잖아.”
“그, 렇죠?”
“제목도 꽃미남 포차가 뭐니?”
“킥. 촌스럽긴 하네요.”
“그치? 게다가 너무 노골적이잖아.”
곧 무대에 올라야 하는데도 전혀 긴장 없이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견우가 말렸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마지막 확인을 위해 태주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먼지 한 톨, 주름 한 자락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좋아. 완벽해. 잘하고 와.”
“하하하. 네.”
사회자의 신호를 받고 태주가 무대로 올라가자, 거대한 함성이 홀 안에 울렸다. 박창환 감독이나 천만 배우인 김윤선이 등장했을 때보다 태주가 등장할 때가 훨씬 시끄러웠다.
함성과 박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사회자의 멘트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태주는 멘트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좌측, 정면, 우측을 차례대로 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움직였다. 차라라락. 촬영음과 눈이 멀 것처럼 강렬한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네, 이태주 씨였습니다.”
“다음은 이번 영화에서….”
한동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자세를 취한 태주가 무대에서 내려가려는 순간에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전혀 줄지 않았다. 태주는 회복되지 않은 시야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면서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퍽!
“꺄아아아!”
-촤르르르륵!
계단이 있는 무대의 끝부분에 다다랐을 때였다. 태주는 가슴에 묵직한 충격을 받고 몸을 휘청거렸다. 다시 한번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플래시가 터졌다. 겨우 회복되었던 시야가, 다시 뿌예질 정도로 눈이 부셔서 그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무대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견우가 바로 태주를 감싸 안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태주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도중 한 관객이 보안 요원에게 제압당해서 끌려가는 것을 확인했다. 견우는 태주를 데리고 분장실로 가는 한편 형식에게 보안 요원에게 가 보라고 지시했다.
“태주 씨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뭐였어요?”
“물병이었습니다.”
“허얼. 아! 저 아까 인상 썼는데. 사진 다 찍혔겠어요.”
“얘! 지금 그게 문제니? 어? 다칠 뻔했잖아!”
겨우 세 개의 계단이었지만, 내려오려던 중에 물병을 맞았다. 잘못해서 발이라도 헛디뎠으면 다쳤을 수도 있었다. 또 그 사람이 던진 물건이 물병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미나는 이런 상황인데도, 인상 쓴 사진을 걱정하는 태주의 모습에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미안해요, 누나.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에요. 다들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런 때에 그런 배려 필요 없으니까. 네 걱정 먼저 해.”
“알았어요. 그래도 시사회에는 참석하고 가요.”
“뭐?”
“지금은 문제없다는 걸 보여줄 때예요. 실제로 문제가 없기도 하고요.”
전혀 마음에 안 들었지만, 태주의 말이 맞았다. 시사회에 참석하는 것보다 그가 이대로 돌아갈 경우의 문제가 더 컸다. 미나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태주의 옷을 정돈해 줬다. 몇 시간 뒤, 시사회가 끝나고 돌아갈 때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힐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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