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
15. 트리즈의 배우들
“매니저님, 진혁 선배님께 감사인사 드려야 하는데요. 한 번 찾아뵐까요?”
“요새 촬영에 속도가 좀 붙어서 여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제가 먼저 연락드린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어제 촬영한 건 언제 방영해요?”
“다다음 주 토요일입니다.”
“이 주 간격이면 괜찮네요.”
예전에 미니시리즈에 출연했을 때, 작가가 방전되어버린 일이 있었다. 아이디어가 떨어졌던 건지, 체력이 떨어졌던 건지 끝까지 말을 안 했지만, 덕분에 실시간으로 촬영해야 했다. 다행히 시청률은 잘 나왔지만, 그 이후 그 작가와 다시 작업하는 일은 없었다.
진혁 선배가 찍는 주말 드라마는 다행히 대본이 밀리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말이 이 주 간격이지 분명 더 촬영해 놓은 것이 있을 것이다. 오동돈 감독이나 조연출 누님 성격을 보면 아마 촬영분을 더 챙겨 놨을 게 뻔했다.
“밤에 뮤비 공개되었는데 보셨습니까?”
“봤어요. 태산이 분량이 적었는데도, 댓글에 언급이 제법 되고 있더라고요.”
“그렇죠. 확실히 태산이가 물건은 물건입니다. 제 동생은 태산이 부분만 캡처하더군요. 원래는 TB 팬인데, 지금은 태산이 채널 구독하고 알림도 설정해 둔 태산이 열혈팬입니다. 물론 저도 구독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회사 사람 대부분은 태산이 채널 구독자일 겁니다.”
‘아! 태산이 얘기에 또 말이 많아졌다. 우리 매니저님 이런 모습은 좀 귀엽단 말이지.’
태산이 추종자가 꽤 많아진 것 같다. 원래 반려동물 주인은 자기 반려동물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법이라 객관적일 수 없는데, 주변에서 하도 예쁘다 하니 콩깍지가 끼는 것 같았다. 슬쩍 어깨가 올라가는 것도 같고.
예전 본인 동영상의 조회 수는 기억도 안 나는데 태산이 채널 구독자 수랑 동영상 조회 수는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처럼 보일까 봐 말을 아끼고 있지만, 사실 태주도 맞장구치면서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까지 올라온 말들을 꾹 참고 있었다. 자랑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자.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법. 태산이 자랑 시작하면 아마 회사에서 정한 이미지고 뭐고 다 깎아 먹어 버릴 게 분명하니까.’
*
매니저님의 얘기를 들은 진혁이 주말에 시간이 된다면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장소는 진혁의 집이었다. 태주는 공손하게 그때 뵙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BJ막먹군의 먹방에 출연했다는 얘기를 태우에게 전하자 상당히 놀라워했다. BJ막먹군은 최상위 권의 BJ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컨텐츠를 보여주는 BJ들과 달리 정보전달을 우선으로 하는 먹방이라 평가가 좋은 편이라고 알려줬다. 맛집 정보, 국가별 식사 예절, 계절 음식 등 주제를 정해서 방송을 해서 태우도 꾸준히 시청하고 있다고.
“형한테 연락처 있는데, 본명은 이찬성 이야.”
“오오. 그럼 형은 언제 나와?”
“모르겠는데, 편집본을 회사에서 확인한 후에 올릴걸? 그때 찍은 주제가 보양식이니까, 시기랑 관계없어서 천천히 올라갈 수도 있어.”
“우리도 태산이 먹방 찍을까?”
“이미 우유 먹는 거랑 이유식 먹는 거 전부 올렸잖아.”
“아, 아쉽다.”
나중에 정말 집으로 한 번 초대해 봐야겠다. 정원 과일 먹방을 시켜보면 재밌는 영상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형, 나 연우랑 같이 채널 만들 거야. 요리 채널하고 공예 채널.”
“태산이 채널도 있는데 또 만들어?”
“어, 연우가 알바 구하는데 쉽지 않나 봐. 그래서 혹시 하고.”
“나중에 자격증 따고 구하면 되지. 뭘 벌써 구해.”
태주는 연우에게 요리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을 꺼냈었다. 하지만 연우가 이미 너무 많이 도움을 받아서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집세와 생활비는 자신이 벌겠다며, 학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겨우 17살이니 아마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연우가 조리사 시험 준비하는 과정을 찍고 싶데. 나는 미니어처 가구 만드는 거랑 팝업북 만드는 것 찍을 거야. 서로 찍어 주기로 했어.”
“하고 싶으면 해야지. 장비 필요하면 얘기해 형이 사줄게.”
“고마워 형. 안 그래도 우리 PC 한 대 더 필요했어.”
두 달 사이에 주식이 많이 올라서 다행이었다. 사실 태주가 이 시기에 오른 주식을 알고 있는 건 정말 운이었다. 한참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기였는데, 같이 일하던 형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그 일을 모두 태주가 떠맡아야 했다.
소문에 듣기로 그 형이 투자한 주식이 대박을 쳐서 그만뒀다고 했었다. 쉬는 시간에 매일 그 형의 주식 얘기를 들었던 것이 도움되었다.
독립하려고 모아 두었던 돈을 모두 그 주식에 투자했다. 당시에는 현금 일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투자했지만, 두 달 새에 주가가 많이 올라 원금의 세 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
그 형이 팔았던 시기에 팔면 더 이익을 볼 수 있겠지만, 사실 매우 싼 값에 산 주식이라서 이미 충분히 이익을 본 상태였다.
‘이번에 번 것 중에 일부만 남기고, [XX테크]에 묻어 둬야겠다. 제대할 때쯤에 제대로 터졌었으니까, 4년 정도인가.’
무슨 무슨 코인에 투자해서 번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로 충분했다. 4년 정도 묻어 두는 것만으로 수억의 수익이 보장되니까. 이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니 더 큰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태주에겐 주식 투자를 위해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보다 배우로 성공해서 CF를 한 편 찍는 게 더 쉬워 보였다. 투자 수익이 날 4년 후엔 태주의 몸값도 꽤 올라 있을 게 분명했다.
트리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회사에서도 성공했는데, 온갖 지원을 다 받는 현재, 이전보다 나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으로 모험하느니 연기력을 갈고닦는 게 더 나아 보였다. 태주에겐 그게 더 쉬운 성공 방법이었다.
*
유명 아이돌이 공개해 유명해진 초고층 주상복합빌딩에 들어선 태주는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자신도 한때 이런 곳에서 살았었는데, 뭐 지금 사는 곳도 나쁘진 않지만.
“안녕하세요.”
“어서 와, 어서 와.”
태주를 문 앞까지 나와 반겨주는 진혁은 화면보다 좀 더 마른 모습이었다. 운동 중독에 체지방 3% 이하라 기사에서 봤었는데, 정말 말투와 달리 외양은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미안한데, 너 온다 하니까 사람들이 한번 보고 싶다고 다 왔지 뭐야.”
“괜찮아요. 저도 뵙고 싶었어요.”
문밖까지 미리 나와 있었던 게 예상보다 사람이 많이 와서 그랬나 보다.
“진짜 반갑다. 너 와서 형이 너무 좋은 거 있지.”
‘진심으로 반기는데, 왜지?’
가벼운 의문을 가진 채 진혁이 안내하는 응접실로 들어서자 그곳에 이미 여러 인물이 모여있었다.
“형님들 왔어요, 새로운 막내. 저 이제 막내아닙니다. 얘가 막내예요.”
“아, 자식. 어지간히도 막내 소리 듣기 싫어하더니, 무지하게 좋아하네.”
“아이 형님 저도 이제 마흔하난데, 막내 졸업해야죠.”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트리즈 소속의 배우였다. 배우끼리 사이가 좋다더니 꽤 자주 모이는 것 같았다. 바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잔이 쥐어졌다. 차갑게 식은 황금색 음료 잔이었다. 태주가 오래간만에 마시게 된 맥주에 반색하며 한 모금 마시려 할 때였다.
“잠깐! 쟤 미성년자 아니었어?”
“뭐? 얘 미성년자야?”
태주의 나이를 알고 있었던지,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태주가 미성년자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 그런 걸 따질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야야. 잔 뺏어라.”
“그래그래. 넌 음료수 마셔. 종류별로 다 있어.”
갑자기 태주 앞에 놓여있던 잔과 맥주가 치워졌다. 태주는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집에서 모여서 마시는데 무슨 성년, 미성년을 따지는지 알 수 없었다.
“미안. 네가 이해해라. 저 형이 진짜 FM이거든. 뭘 하든 원칙대로 해야 해.”
“아아.”
“담에 저 형 없을 때, 형이 한 잔 사줄게. 오늘은 음료수 마셔.”
천만 배우에 완벽한 자기 관리로 회귀 전 태주가 존경하던 선배의 본모습은 원리원칙에 충실한 FM인 것 같았다. 은근슬쩍 진혁이 해준 얘기로는 한 번 발동 걸리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설교를 늘어놓는다고. 덕분에 다들 저 형님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라고 알려줬다.
‘킥.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네.’
맥주는 마시지 못하게 되었지만, 분위기가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배우 형님 중, 우락부락한 생김새로 악역을 주로 맡던 형님이 얼마 전 분양받은 강아지 자랑을 하고 있었다. 혀짧은 소리를 내는 형님 덕분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운동 중독 진혁 형님, FM 한정민 형님, 강아지 아빠 배동석 형님. 술자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술병을 몇 개나 비워낸 말술 이성군 형님까지. 지금 자리에 없는 김윤선 선배님과 정한선 선배님까지 트리즈의 배우들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전에 우리가 술 먹고 트리즈 F4라고 말하고 다녔잖아요. 이젠 절대 그러면 안 되겠어요.”
“그러게 나도 어디 가서 못생겼단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데. 얘는 독보적이다. 전에 빈이랑 같이 촬영할 때 생각나네.”
“아아, 그 영화요. 형님 거기서 통나무 장사하는 조직원으로 나왔죠?”
“어. 그때 빈이 보고 남자가 뭐 저렇게 잘 생겼냐 했는데. 얘도 만만치 않네.”
태주의 외모가 배우들 사이에 이야깃거리로 올랐다. 편하게 입고 온 지금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의 외몬데, 제대로 꾸미면 비교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이 얼굴이면 뜨는 건 문제 없겠는데, 문젠 배역이 제한되기 쉽다는 거지.”
“내가 감독이며 그냥 쓸 텐데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해도, 형님이 배역 제일 깐깐하게 고르시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지금까지 말없이 술만 마시던 이성군이 태주에게 물었다.
“너 바이올린 연주도 할 수 있다던데, 사실이야?”
“예? 네, 할 수 있어요.”
“그럼 내가 나중에 책 하나 줄게. 그거 한 번 봐봐.”
이성군이 말하는 책이 어떤 건지 아는지 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야, 솔직히 그건 아니지. 아직 어린 애 길 막을 일 있냐.”
“그래. 그런 건 나중에 자리 잡은 다음에 해도 돼.”
사람들이 만류하기 시작했지만, 이성군의 고집을 꺽지 못 했다. 이성군은 그 자리에서 자기 매니저에게 전화해 책을 챙겨오게 했다.
태주는 이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이 시기의 태주는 영화나 연극보다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 보는 걸 더 좋아했었다. 기타연주에 한참 심취해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녹음 가수 일을 하던 때라 음악 쪽 이슈라면 잘 알고 있었지만, 영화 쪽 소식은 알지 못했다.
“어휴, 성군이 형도 참.”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옆에 앉은 진혁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태주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태주에게 주려는 책은 이성군의 오랜 친구인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제작사와 섣불리 계약했다가 수년간 촬영도 못 하고 묶여있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다 감독이 다른 영화를 찍어 해외에서 상을 받자 제작사에서 제작을 제안했다는 것.
시나리오에 애정이 있었던 감독은 제작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안을 수락하고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출연진 및 연출진을 모두 최상으로 꾸리고 촬영에 들어가려던 순간, 감독은 제작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교체되고 만다. 사정을 알아보니 제작사 높으신 분의 자제를 밀어주기 위한 일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감독은 법적 다툼을 시작했고, 수년간 소송을 진행해 결국 시나리오를 되찾아왔다. 하지만 소송을 하는 동안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부인과는 생활고에 이혼해야 했고, 친구라 여겼던 사람들은 감독이 거대 제작사와 싸우기 시작하자 모두 등 돌려 외면했다.
승소했지만, 남은 것은 엉망이 된 몸과 감당하기 힘든 빚뿐이었다. 이때 감독을 도와준 것이 이성군 이었다. 소송하는 동안 곁에서 지지해주고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빚도 이성군이 먼저 갚고 천천히 갚으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이성군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중에 영화를 만들 때 도와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다 얼마 전 빚을 모두 갚고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본도 마련해서 돌아왔다. 하지만 거대 제작사와 트러블이 있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투톱을 이룰 바이올리니스트 역의 젊은 배우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업계에 해당 역을 맡으면 연기 인생이 끝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작사에 찍힌 감독의 작품이라 조심스러웠는데, 그 작품에 출연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는 얘기를 들은 이들이 모두 배역을 거절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비화가 있는 작품은 거들떠보지 않았을 터였다. 수상에 지장이 될 만한 일은 당연히 걸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흥미가 생겼다.
제작사에서 욕심을 내고 가로채려 했던 시나리오. 감독이 모든 것을 잃고도 포기하지 못한 작품. 제목은 모르겠지만, 태주가 들어본 적 없는 내용인 걸 보면 아마 지난 생엔 세상에 나오지 못한 작품 같았다.
“책 주시면 한번 볼게요. 촬영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매니저님이랑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냥 보기만 해. 솔직히 성군이 형이 무리한 얘기 꺼낸 거야.”
“맞아. 성군이가 무리했어. 이제 시작하는 애한테 똥물 뿌리는 것도 아니고.”
“그 작품이 똥물은 아니지. 좋은 작품인데 운이 너무 안 좋은 거지.”
“아니 내가 작품을 욕한 건 아니고, 상황이 그렇잖아.”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술 취한 형님 네 분이 내는 소음이 만만치 않았다. 이 네 명의 팬을 모두 합하면 유명한 아이돌 팬덤 정도는 될 텐데, 그들이 이 모습을 보면 환상이 전부 깨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대체 과자는 왜 이렇게 던지는 거야. 그만 좀 던지라고.’
‘저 형님은 어딜 자꾸 올라가는 거야. 몸값이 얼만데, 다치면 어떡하려고.’
문제의 책이고 뭐고 지금 당장은 눈앞의 술 취한 아저씨들이 문제였다. 얌전할 줄 알았던 이성군은 술에 취하자 자꾸 높은 곳에 올라갔다. 소파 등받이 위에 앉아있다가 벽난로 위로 가고 다시 바 카운터 위에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배동석은 진저리치는 표정으로 FM 한정민에 잡혀서 30분째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진혁은 언제 일어났는지 과자를 표창처럼 날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취하는 게 낫겠다. 취한 사람들 속에서 나만 멀쩡하니까, 진짜 이상하네.’
이성군의 매니저가 책을 가져왔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들어오자마자 물건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남은 술들을 챙겨 넣었다. 태주가 돕고 뭐고 할 새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를 끝낸 그가 다른 형님들을 객실에 나눠서 들여보내고, 이성군을 챙겨서 돌아갔다. 물론 응접실에 놀라서 서 있던 태주도 같이 챙겨주었다.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진혁과의 만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호화빌라도 유명 배우 네 명도 문제의 책도 아니었다. 마지막에 등장한 이성군의 매니저였다. 말없이 빠른 속도로 상황을 정리하고 빠짐없이 주변을 챙겼다.
태주가 진정으로 처음 보는 능력자였다. 나중에 듣기로 그 매니저님이 워낙 능력이 좋고 다른 사람들을 잘 챙겨서 배우들 사이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을 했었다고 한다. 물론 데뷔 때부터 같이 한 이성군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갈 일은 없다며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
[선율]“이제영 감독님 작품이었구나.”
이제영 감독. 해외에서 상도 받았던 능력 있는 감독이었지만, 태주가 데뷔했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해외 수상작이었던 ‘숙녀들’을 감명 깊게 봐서 혹시 시나리오 도는 게 있나 찾아봤었는데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병명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큰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었다.
“만약 내가 이 작품에 들어가면, 이게 감독님의 유작이 되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사람과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