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3
162. 꽃미남 포차 >
해나의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태주가 진정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빠른 속도로 관에서 멀어졌던 그는, 전투 인형에 대한 궁금증을 못 참고 결국 다시 관 근처로 돌아왔다. 눈, 코, 입이 없는 무서운 모습이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누워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건 그냥 모습만으로도 무섭잖아요.”
“호호호. 정원사 씨, 이건 초기화된 모습이라서 그래.”
“그래요? 전 이 모습으로 다니는 줄 알고 놀랐어요.”
“외형은 직접 설정할 수 있는 것 같아.”
“해나, 여기 설명서 같은 거 없어요?”
해나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 설명서처럼 보이는 책이 있었다. 단지 마네킹의 등 아래에 있어서 꺼내려면 꽤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았다. 태주는 크게 한숨을 쉰 후, 관 안으로 팔을 뻗었다. 뻗은 손끝이 조금 떨렸지만, 해나는 모른 척 해 주었다.
“어디 보자. 동봉된 코어를 넣으면 작동합니다. 인형의 외형과 전투 타입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게 코어인가 보네.”
“외 멋진데요.”
“호호호. 직접 넣어 주라고.”
설명서에 나온 대로 가슴 부위에 코어를 올리자 인형의 가슴 안으로 코어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잠시 기다리자 인형의 몸 위로 알 수 없는 문자가 가득 생겨 났다가 사라졌다.
“이대로 둘 순 없으니, 오두막 안으로 옮기자고.”
“그, 옷도 좀 입혀야겠어요.”
“호호호.”
전투 인형은 벌거숭이였다. 초기화된 상태로 관 안에 누워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보는 태주는 무척 민망했다. 인형을 오두막 안으로 옮기자마자 바로 옷을 입혔다. 그가 매일 입는 작업복이었다.
“외형 설정은…. 가슴에 손을 대고 명령어를 말한 뒤, 표본 중에 고르거나 직접 설정할 수 있습니다.”
“호오. 어서 해 봐, 정원사 씨.”
“네. 외형 변경 설정.”
“이 창 안의 것을 고르는 건가보네.”
“그런 것 같아요.”
온라인 게임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하는 캐릭터 만들기와 비슷한느낌이었다. 설정 창 안에는 상당히 많은 표본이 있었다. 태주와 희는 처음에는 얼굴 모습을 조심스럽게 조합했지만, 금세 조합에 재미가 들려서 이상한 얼굴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이히히. 재밌다.”
“아하하. 이런 건 찍어 둬야 하는데. 아까워라.”
“호호호. 짓궂긴. 정원사 씨, 오크 뻐드렁니는 너무 흉하잖아.”
“킥. 적용하기 전이니까요. 여러 가지 얼굴을 해 봐야죠.”
“그러지 말고. 정원사 씨 모습을 카피하게 해 봐.”
“제 모습이요?”
태주의 반문에 얼굴을 끄덕인 해나가, 어쩌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한 번 더 권했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존재가 움직이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쓸모가 있을 거라는 해나 말에는 동의했다.
“해 보자, 태주.”
“어, 그럴까?”
희까지 해나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서자, 태주도 마음이 동했다. 그는 설명서에 나온 대로 자신의 외형을 스캔한 후 인형 외형 변경 설정에서 몇 가지를 조정했다. 그가 조정을 마친 외모는 화사한 금발에 태산이를 닮은 파란 눈을 빼면 그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때요? 이 머리색이면 확실히 구분되겠죠?”
“괜찮네. 그대로 적용해도 되겠어.”
“우와!”
외형 설정 창에서 적용을 누르자, 다시 마법 문자가 생겨났다. 한참 빛을 내던 마법 문자가 사라지자, 그가 적용한 외모 그대로의 인형이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와! 해나, 희. 이 인형 꼭 제 분신 같지 않아요?”
“호호호. 같은 얼굴에 작업복 차림이라 그런지, 아주 비슷한걸.”
“태주 2호라고 할까요? 아니면 정원사 2호?”
“히히히. 태주 2호가 좋아.”
“그래. 그럼 태주 2호라고 하자.”
외형을 정한 후로도 전투 인형의 설정은 한참 이어졌다. 전투 타입에선 경호 타입으로 설정하고 행동이나 판단력은 자율성을 최대치로 올려 두었다. 전투 인형에 대한 명령권은 태주가 1순위, 희가 2순위로 가지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리품에 무기를 하나 넣을 걸 그랬어.”
“아니에요, 해나. 딱히 전투를 시킬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뭐라도 하나 쥐여 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이대로는 뭔가 부족해 보이지 않아, 정원사 씨?”
“어, 저는 괜찮은데요. 아! 해나, 잠시만요.”
태주는 무기 같은 걸 눈에 띄지 않게 숨기고 다니는 경호원을 많이 봐서 괜찮았는데, 해나는 그 점이 어색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해나의 말대로 2호한테 쥐여 줄 만한 것을 찾아서 오두막을 두리번거렸다.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딱 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오호호호호. 정원사 씨. 그게 뭐야?”
“하하하. 이거요. 해나 말대로 엄청 쓸모 있었어요.”
“이히히.”
“희, 빗자루 괜찮았지?”
“응.”
태주의 작업복을 입고 빗자루를 들자, 정말로 그의 분신처럼 보였다. 해나는 고가의 강력한 무력을 지닌 전투 인형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태주 역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전투 인형의 모습이 웃겨서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웃기긴 했지만, 얼굴 없는 무시무시한 모습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자 한결 대하기 편했다.
“2호야. 혹시 빗자루질할 줄 알아?”
“생활 지원 모드 적용이 필요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아! 그런 것도 있구나. 응. 적용해 줘.”
“태주, 2호 목소리 이상해.”
“희, 목소리는 그대로 두자. 나랑 목소리까지 같으면 더 이상할 것 같아.”
목소리마저 같으면 사람들이 그와 2호를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2호가 현실에 갈 수 있을 때의 얘기였다.
“2호가 정원 전용은 아닌데, 또 양쪽에서 모두 사용이 가능하지도 않네요.”
“그건 좀 아쉽네. 한쪽에서만 쓸 수 있다니.”
“생활 지원 모드 적용 끝났나 봐요. 마법 문자가 사라졌어요.”
“정원사 씨 또 무슨 기능이 있는지, 사용 설명서를 꼭 읽어 보는 게 좋겠어.”
“네, 그럴게요.”
그날은 태주 2호의 생활 지원 모드, 빗자루질과 청소를 구경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전투 인형은 태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을 잘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원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던 그는 전투 인형의 성능에 매우 만족했다.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관 안으로 들어가 눕는 점만 빼면, 전투 인형은 앞으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
태주는 새로 생긴 아공간에서 치즈 케이크를 꺼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매번 물건을 옮길 때마다 태산이를 달래 가면서 해야 했는데, 이젠 아니었다. 직접! 물건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쿠첼, 저 내일 하고 모레는 예능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가야 해요.”
“모처럼 촬영이 없는 날인데, 쉬지도 못하시는군요.”
“하하하. 괜찮아요. 쉬는 건 정원에서 하면 되니까요.”
“정원에서도 할 일이 많으실 텐데요.”
“흐흐흐. 쓸 만한 일꾼이 생겼어요.”
태주는 이번에 전리품이 배달된 일과 그 안에 같이 있던 전투 인형 소환 주문서에 관해서 그에게 설명했다. 전투 인형의 외형 설정 과정도 알려 주고, 생활 지원 모드의 유용함도 설명했다. 쿠첼루스는 태주 2호에 관한 설명을 듣더니 그에게 현실로 가져오길 권했다.
“그 인형은 정원보단 현실에서 쓰시는 게 낫겠습니다.”
“네?”
“태주 씨를 대신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줄 수도 있고, 뭐하면 군대에 대신 보내시지요.”
“엑! 아하하하. 그건 좀….”
“외형 변경을 다시 할 수 있으면, 바꾼 뒤 경호원으로 쓰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태주는 자신 대신 전투 인형을 군대에 보내자는 쿠첼루스의 얘기에 그 상황을 잠시 상상해 봤다. 아마 전투 인형은 설렁설렁 움직여도 최고의 성적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이태주가 사실은 로봇이었다는 이태주 로봇설이 돌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훈련소와 군대에서 전투 인형이 들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하하하. 그건 정말 아주 급할 때 한 번 정도 쓰는 거로 해요.”
“그렇게 하시지요.”
*
예능은 기획도 그렇고 촬영도 정말 빨리 시작하는 것 같다고 태주는 한 번 더 생각했다. 같이 촬영할 출연진을 소개받은 게 얼마 전인 데 벌써 첫 촬영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한 태주는 제법 커다란 푸드트럭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가끔 촬영장에 오는 작은 밥차를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커다랬다. 얼핏 보이는 차 안도 꽤 넓었다.
“안녕, 태주야.”
“안녕하세요. 형.”
“태주, 넌 혹시 오늘 오는 게스트 누군지 들었어?”
“게스트도 있어요?”
“준이, 너, 나 이렇게 셋에 매 촬영에 게스트 한 명씩 온다고 하던데.”
여자 게스트면 좋겠다고 귓속말을 하는 그에게 태주가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여자 게스트가 오면 촬영하기는 좋겠지만, 현지에서 하룻밤 자야 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았다. 차라리 남자 게스트가 같이 다니기 편할 것 같았다.
“그건 그렇지. 오늘 진혁 형이 오면 딱 좋은데. 그런 얘기 없었지?”
“네. 진짜로 그 형님 오시면 걱정할 게 없는데 말이죠.”
“응. 요리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예능인이시잖아요. 킥킥.”
“크크. 맞아. 예능인이지.”
진혁은 현재 영화 홍보 중이었다. 홍보를 위해서 다른 예능에 출연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었다. 태주가 그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기도 하니, 꽃미남 포차에 홍보차 나올 명분도 있었다. 예능에도 익숙한 그가 나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준이는 시간 안에 오려나?”
“그러게요. 곧 시작할 것 같은데….”
“저쪽 고양이, 네 고양이지? 오늘은 촬영 안 해? 예전에 찍은 거 보니까 촬영 잘하던데.”
“그게 푸드트럭이라서 안 될 거 같아요. 태산이가 털이 좀 빠져서요.”
“저런. 그건 안 되겠다.”
같이 촬영하는 30대 배우 한주원과 수다를 떠는 중에 마지막 출연자인 박준이 왔다. 박준은 드라마를 막 끝낸 후인데도 스케줄이 꽤 많은 것 같았다. 김은형의 얘기로는 꽃미남 포차 외에 다른 예능에도 출연하는 중이라고 했다.
“출연진이 모두 모이신 것 같으니, 오늘의 목적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디예요?”
“하하하. 마음이 급하신 것 같네요. 목적지는 경남 XX시의 청산 초등학교입니다.”
“초등학교요?”
“네. 신청해 주신 분의 사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청자는 청산 초등학교의 졸업생이었다. 전교생 17명, 학급 수 4개인 청산 초등학교는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를 앞두고 있었다. 신청자가 다닐 때는 지금보단 나았지만, 당시에도 워낙 작고 외진 곳에 자리한 학교라서 떡볶이나 튀김 같은 군것질거리를 사 먹을 곳이 없었다. 신청자는 학교 후배이자, 고향 동생들에게 폐교 전에 친구들과 군것질하는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다는 사연을 보냈다.
“폐교를 앞둔 청산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마지막 운동회에 꽃미남 포차를 몰고 가시면 됩니다.”
“운동회면 보호자님들도 오시나요?”
“네. 학생 17명하고 교직원 11명, 그 외 학부모님들이 참석하십니다.”
“몇 인분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네. 100인분 정도면 되려나?”
“헉. 100인분이요?”
옆에서 듣던 태주는 100인분이나 준비한다는 얘기에 다 팔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음식 장사를 해 본 적 없는 초보들이 100인분의 요리를 준비하고 판다는 게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PD님, 게스트는요? 안 보이는데요.”
“게스트분은 청산 초등학교에 가시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목적지로 이동해주세요.”
“네.”
첫 번째로 푸드트럭을 모는 것은 한주원이 맡았다. 태주는 일행에게 혹시 태산이를 태워도 되겠냐고 물었다. 요리하는 도중이 아닌 이동 중일 때는 태산이와 같이 가도 될 것 같아서였다. 두 사람의 흔쾌한 허락을 받은 태주가 기다리던 태산이를 데리고 왔다.
“이야. 슈퍼스타.”
“하하하. 우리 태산이가 인기가 좀 많죠. 얘가 저보다 인별이나 파랑새 팔로워 수가 더 많아요.”
“냐아앙.”
“하하하. 사실은 나도 팔로우하는 중이야. 얼마 전에 올린 정원에서 노는 영상은 한 열 번은 돌려 봤어.”
“준이 형, 안아 보세요.”
태산이를 태산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박준 무릎에 앉혀 줬다. 태산이는 박준이 낯설지 않은 기색이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편한 자세를 잡더니, 귀엽게 냥냥거리고 있었다. 아마 같이 잠도 자고 한참 안겨 있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하하. 고양이 한 마리 태웠는데, 분위기가 갑자기 좋아졌네.”
“에이, 형. 원래 좋았잖아요. 그나저나 게스트는 진짜 안 알려 주네요.”
“그러게. 귀띔이라도 해 줄 줄 알았는데.”
“냐아앙.”
“하하하.”
태주와 한주원이 얘기하는 사이, 박준이 입은 후드티의 줄을 노린 태산이 장난이 시작됐다. 박준은 그런 녀석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얼굴에 웃음이 맺히자,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런데 100인분이 팔릴까요?”
“팔리겠지. 남으면 스태프들한테 팔자고. 킥.”
“오! 그거 괜찮네요. 남으면 스태프 할인해서 팔아요.”
“그런데 이런 게 재밌나?”
“그쵸? 운전만 몇 시간을 하는데, 재밌을지 모르겠어요.”
태주는 제작진이 실제로 목적지까지 푸드트럭을 몰고 가게 할 거라고 생각 못 했었다. 몇 시간 동안 좌석에 수다를 떨거나 하는 게 전부인데, 방송할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주원 형, 준이 형. 이거 드세요.”
“샌드위치?”
“네. 음료수는 커피랑 주스 있는데, 뭐 드려요?”
“커피. 헐. 너 뭘 그리 많이 싸 왔어? 보랭 백이 가득한데?”
“하하하. 우리 먹을 거랑. 태산이 간식이요.”
새벽에 정원에서 올 때, 제법 많은 음식을 챙겨 왔다. 쿠첼루스한테 줄 것도 있었지만, 뼈밖에 없던 박준이 생각나서 해나에게 특별히 부탁해 챙겨 온 것들이었다.
음식은 푸드트럭에 실은 보랭 백뿐 아니라, 밴에 있는 아이스박스에도 가득 실려 있었다. 모두 그의 스태프와 같이 출연하는 출연진에게 먹일 것들이었다. 태주는 이번 예능을 찍는 동안, 자신의 스태프와 출연자들을 잘 먹일 결심을 한 상태였다.
“잘 먹어야 힘을 내죠.”
“하하하.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그러자.”
샌드위치는 시작이었다. 태주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먹이기 바빴다. 이동하면서 먹기 편하게 손질해 온 과일에 수제 쿠키, 마트에서 사 온 짭짤한 과자들까지 쉴새 없이 둘에게 음식을 먹였다.
세 사람과 한 마리는 평범하게 운전만 할 것이라는 제작진의 예상과 다르게 차 안에서 먹방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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