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9
178. 주인의 위엄 >
지금까지 상점의 물품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었다. 마법 물품은 물론 평범한 물품까지도 모두 그 효과가 대단했다.
사람용으로 나온 숙취 해소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펫에게 먹이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 무색해졌다. 위스키를 먹고 헥헥거리던 태산이는 숙취 해소제 한 병을 먹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태가 좋아졌다. 바짝 말랐던 코도 촉촉하게 젖어 들었고, 데일 것처럼 뜨겁던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롱고롱.
“자니?”
-고로로롱.
“자는구나. 정원은 다 망가트려 놓고 태산이는 자는구나.”
-짭짭짭.
“그래. 자라. 자고 일어나면 너에게 지옥을 보여 주마.”
태주는 숙취 해소제를 마시고 사지를 펼치고 자는 태산이를 보며 의지를 다졌다. 이번에야말로 혼이 빠지도록 야단을 쳐 줄 생각이었다. 그는 맛있는 것이라도 먹는지 짭짭 소리를 내며 자는 태산이에게 줄 벌을 떠올려 봤다.
“응?”
떠올려 봤다.
“어라?”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야단을 쳤던 경험을 떠올려 봤지만, 없었다. 태산이에게 이놈이라고 소리치면서 잔소리를 한 적은 있었지만, 벌을 준 적은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아는 야단치는 방법은 야단칠 때 반려동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려동물의 이름을 부르면서 야단을 치면, 자기 이름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언젠가 들어서 혼낼 때는 이놈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 벌은 어떻게 주는 거야?”
아이디어를 쥐어짜 봤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기껏 떠올린 것이, 사냥 놀이를 해 주지 않는 것과 밥을 생고기가 아닌 사료로 바꿔서 주는 것뿐이었다.
책도 많이 보고 영화와 드라마도 많이 봤는데, 벌줄 만한 일이 그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태주는 자신의 빈약한 상상력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챱챱.”
“꿈속에서 얼마나 맛있는 걸 먹길래 아직도 입맛을 다시니 너는.”
제피르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위장 기술은 현실로 가면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 같았다. 태산이는 알에서 나온 다음 날 바로 현실로 데려갔었다. 태어나서 이틀째부터 위장 기술을 받아서일까, 본모습을 보여 달라고 졸라도 보여 주지 않았었다. 그런 녀석이 술에 취해서 본모습이 되어 버렸다.
“정말로 백호구나. 사실 한때는 상태창 오류가 아닌가 의심했었는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태주는 태산이가 전혀 본모습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자, 원래는 고양인데 잘못 등록된 것 같다고 의심했었다. 어흥 소리도 몇 번 듣지 못했었고, 커진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주는 이번엔 뒷다리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자는 태산이를 훑어봤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누워 있는데도 여전히 볼록한 배였다. 그 다음은 평소보다 훨씬 커진 발바닥이었다.
“중형견보다는 크고 대형견보다는 조금 작은가? 발은 훨씬 크네.”
몸무게는 원래 무게의 두 배보다 더 나가는 것 같았다. 발바닥도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두 배로 커진 듯했는데, 다른 부위는 그 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아니면 고양이로 위장하면서 작아졌던 것인지도 몰랐다.
태주는 태산이의 가슴 부위에 살짝 손을 올려 보았다. 쿵쿵, 쿵쿵!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정원도 망가트리고 아프다고 착각해서 불안함에 떨게 한 괘씸한 녀석이었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독한 술을 먹었는데도 다행히 큰 탈이 나진 않은 것 같았다.
“휴우. 너 때문에 형이 늙는다. 늙어.”
그가 내뱉는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미간을 긁어 주는 손길은 무척 다정했다.
*
태주는 주방에 이어 거실을 치우고 있는 해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해나는 태산이가 남긴 초콜릿 발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주방에서 거실, 다시 이 층으로 이어지는 초콜릿 발자국을 지우는 그녀의 손에 힘줄이 돋아나 있는 것 같았다.
“해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후우. 뭐?”
“그, 해나 혹시 아이들 벌주는 방법 아세요?”
“응? 벌주는 방법? 알지.”
“저한테 좀 알려 주세요.”
해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묻는 정원사씨의 의도를 금세 알아차렸다. 말썽꾸러기 녀석을 벌주는 방법을 몰라서 그녀에게 온 게 분명했다. 매번 말로만 혼을 내주겠다고 하고 실제로 혼을 내 본 적 없는 정원사 씨였다. 방법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 집은 주로 체력 단련을 시켰어.”
“오! 체력 단련 좋네요.”
“어렸을 때는 운동장 100바퀴 돌기 같은 걸 했지.”
“배, 백 바퀴요? 아이일 때요?”
“호호호. 정원사 씨, 그 정도는 다들 장난치면서 돌아. 중간에 세다 까먹고 다시 돈 적이 더 많은걸.”
해나가 알려 준 운동장 100바퀴 돌기를 태산이한테 시키는 상상을 해본 태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마 자신은 태산이가 100바퀴를 도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내내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 같았다. 너무 가혹한 벌을 준 게 아닌가 자책하고 혹시 뛰다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할 게 뻔했다.
“그건 좀. 태산이한테 시키기는….”
“호호호. 태산이 체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아니요. 그건 제가 좀….”
“오호호호.”
해나의 재밌어하는 눈빛에 스스로가 좀 한심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덩치가 커지긴 했지만, 그의 눈에 태산이는 여전히 아기로 보였다. 처음 키우는 반려동물이었다. 잔실수도 있었지만, 그가 직접 우유를 먹이고 안고 재우면서 키웠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해나는 질겁하는 그가 재밌었는지 그 외에도 아이들이 받을 벌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한참 설명했다. 비상식량만 준 채 숲에서 혼자 돌아오게 한다든가, 동굴에 가둔 후 자력으로 나오게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었다.
설명을 들을수록 태주는 자기 얼굴의 표정이 굳어 가는 걸 알 수 있었다. 해나가 말하는 벌은 그가 듣기엔 방치에 감금이었다. 벌이 아니라 학대에 가까웠다.
그는 해나의 종족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칸서스의 말대로 용도 때려잡을 정도라고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나와 다나가 전투에서 활약했지만, 평소에는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같이 차를 마시는 상대여서였다. 그녀들이 괜히 강한 게 아니었다. 전부 어렸을 적부터 말도 안 되는 훈련을 받아서 그렇게 강한 것이었다.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호호. 잘해 봐, 정원사 씨.”
“네. 이번에는 단단히 혼을 낼게요.”
“응. 정원사 씨, 주인의 위엄을 세워 보라고.”
“위, 위엄이요?”
태주는 해나의 눈에서 빛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재미인지 기대인지로 반짝반짝한 해나의 눈빛을 살짝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그녀의 기대에 부응할 방법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어쩐지 벌은 주지 않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무에 물을 주려고 물뿌리개를 들고 왔다가 허망한 표정을 짓고 돌아선 단단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약해지려던 야단치려는 의지를 다시 다졌다. 이번에는 꼭 태산이 녀석을 혼내 주고 말겠다 다시 다짐했다.
정원 일 중 가장 급한 나무와 화초 돌보기에 2호의 도움을 받았다. 울타리나 돌길은 천천히 고쳐도 되지만, 뿌리째 뽑힌 화초는 아니었다. 당장 제대로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됐다. 그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화초를 다시 심기 시작했다.
오전에만 해도 간단하게 작물만 수확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었다. 얄미운 보석 거울의 몸도 닦아 주고 과실수의 수확 시간을 알람에 등록하기도 했다. 급한 일이라고는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화초의 뿌리가 마를세라 땅을 파고 심는 그의 동작엔 전혀 여유가 없었다.
오후 내내 태주와 2호, 해나는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태주와 2호는 정원을 정리해야 했다. 해나는 엉망이 된 주방, 거실, 이 층 바닥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칸서스한테 줄 답례품은 다시 만들었다. 만약을 위해 이번에는 위스키 따윈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
태주와 해나는 급한 일만 마쳐두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점심도 못 먹고 정원 일을 해야 했던 태주의 손놀림은 무척 빨랐다. 반나절 가까이 쉬지도 못하고 몸을 움직인 그는 빠른 속도로 접시를 비워 나갔다.
그런 그에게 음식을 더 덜어 주는 해나의 눈에 어슬렁거리면서 주방으로 오는 태산이가 들어왔다. 태산이는 여전히 검은 줄이 그대로 드러난 본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우웅.”
“정원사 씨?”
“네? 아! 태산이 이제 깼구나? 몸은 괜찮아?”
“크흠! 정원사 씨!”
“아 참.”
태주는 느릿느릿 하지만 제대로 걸어온 태산이를 반겼다. 반려동물이 가까이 오면 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해나의 눈치를 받고 태세를 다시 정비했다. 위엄. 그는 위엄 있는 주인님의 모습을 오늘 보여 줄 생각이었다.
“이놈. 오늘 아주 크게 혼날 줄 알아.”
“푸흡.”
태주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시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엄포는 가까이 다가와서 슬쩍 다리에 몸을 비비기 시작한 태산이를 보면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흥. 애교도 소용없어. 넌 오늘부터 사료야.”
“푸하하하!”
“아이. 해나. 웃으면 어떡해요.”
“큭. 미안, 정원사 씨. 이제 안 웃을게. 계속해.”
해나가 웃어 버려서 맥이 좀 빠졌지만, 태주는 꿋꿋하게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 그대로 태산이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 주었다.
촤르르륵. 태산이에게 사료를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태주는 혹시 태산이가 사료 그릇을 엎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킁킁.”
“오늘은 그게 밥이야. 넌 그거 먹어.”
“킁킁.”
태산이가 고기를 달라고 매달리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태주는 등을 돌리고 앉아서 다시 수저를 들었다. 이미 마음은 음식에서 멀어졌지만, 열심히 밥 먹는 시늉을 했다.
-오독.
“크릉.”
-오독오독. 와드득.
‘어라?’
등 뒤에서 들리는 오도독, 와드득 소리에 참지 못하고 몸을 돌린 태주의 눈에 신이 나서 사료를 씹는 태산이가 보였다. 처음 먹는 사료가 꽤 입에 맞는지 이젠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았다. 맛없다고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료의 소리도 식감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호호호.”
“크흠. 사료가 과자 같은가 봐요.”
“오호호호.”
“에효.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요.”
싹싹 비운 밥그릇을 보면, 사료를 벌 삼아 주는 방법은 실패한 것 같았다. 태주는 이번에는 태산이 눈앞에서 장난감을 전부 상자에 담아서 치워 버리는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장난감에 흥미를 보여도 절대 놀아 주지 않고 빼앗아서 치워 버리는 게 그가 생각한 두 번째 방법이었다.
잠시 후 태주는 한쪽 모서리가 뭉개진 상자를 들고 오두막 안을 뛰고 있었다. 그는 힘차게 뒤를 쫓는 태산이에게서 꽤 힘겹게 도망 다니고 있었다.
장난감을 담던 상자는 태산이가 앞발로 짚고 일어서자 모서리가 푹 주저앉아 버렸다. 녀석은 그게 재밌는지 일부러 상자를 밟으며 장난을 쳤다. 그걸 못하게 상자를 뺏어 들자, 대신 태주를 쫓기 시작했다.
“상자 다 부서졌잖아. 그만해.”
“크헝.”
본모습으로 돌아온 태산이는 커진 자기 몸에 적응을 못 한 모양이었다. 힘도 세지고 덩치도 커진 녀석이 평소처럼 달려들자, 감당하기 힘들었다. 태산이가 장난으로 툭 건드릴 때마다 태주의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대비하지 않고 본모습의 태산이 돌진을 받아 안은 후, 태주는 태산이가 위장 기술을 다시 써 줬으면 싶었다. 아니면 제피르가 방어막이라도 쳐 줬으면 싶었다. 그 정도로 태산이 돌진은 무지막지했다.
제 녀석 덩치가 커진 걸 생각 않고 안기고 매달리는 녀석을 밀어내자, 그걸 또 장난으로 받아들여서 더 덤벼들었다. 태산이는 괴물 같은 체력을 과시하며 쉬지 않고 그에게 치댔다. 태산이 녀석의 숙취는 확실히 사라진 게 맞았다.
“가릉가릉.”
“…재밌니?”
“컹!”
“형은 무거워. 너 이제 고양이 아니야. 그만 내려가자.”
“컹.”
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는 그의 다리 위로 덩치 큰 녀석이 올라와 앉았다. 묵직한 무게에 소파 쿠션이 푹 꺼졌지만, 그의 품에 안겨 어깨에 머리를 얹은 녀석은 전혀 내려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몸에서 힘을 빼고 축 늘어져서 그가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 줘야 했다.
“어휴. 덩치만 커졌지. 하는 짓은 그대로네.”
“크헝.”
“큭. 울음소리도 늠름해졌네, 우리 태산이.”
살살 등을 쓸어 주는 손길이 좋은지 고롱고롱 목을 울리기 시작한 녀석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단단히 마음먹고 혼을 내려 했는데, 태산이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애교를 부려 댔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주인의 위엄을 세우는 것은 무리 같았다.
-탁!
“냉차야, 정원사 씨.”
“고마워요, 해나.”
“호호호. 야단치고 벌주는 건 역시 무리지?”
“크흐흠. 그게, 그렇네요. 저한텐 무리예요. 자꾸 마음이 약해져서.”
“뭐, 사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었어. 그럼 정원사 씨, 야단치는 건 그만두고 제대로 교육하는 건 어때?”
혼을 내서 교정 효과를 볼 수 없다면, 차라리 좋은 습관을 가르치라는 조언이었다. 태주는 해나의 조언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의 성 =격상 태산이를 호되게 야단치는 일은 하기 힘들었다. 대신 잘한 일에 칭찬하고 상을 주는 일은 자신 있었다.
태주는 해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잘한 일에는 꼭 보상을 주고, 나쁜 짓을 했을 때는 외면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 방법은 큰소리로 야단치거나 벌을 주지 않고도 교육할 수 있어서 그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현실로 돌아가면 시간을 내서 상담도 받아 보기로 다짐했다. 이번은 다행히 큰 탈 없이 넘어갔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먹는 버릇은 꼭 고쳐야 했다.
-퓨우. 짭짭.
“킥.”
“어머. 그 자세로 잠들었어?”
“네. 잠들었어요. 회복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신나게 뛰었잖아요.”
“호호호. 정말 못 말리는 아이야.”
이번에도 주인의 위엄은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 같았다. 자신을 쿠션 삼아 꿀잠을 자는 녀석을 보면, 아마 앞으로도 주인의 위엄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든 태산이 등을 쓸어 주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정원을 떠올리면 여전히 화가 나지만, 커진 제 덩치도 잊고 평소처럼 와서 폭 안기는 녀석이 귀엽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슬슬 다리가 저려 왔지만, 달게 자는 녀석을 밀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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