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
17. BJ 막먹군
집 안에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딸기를 열 상자나 현실로 가져 왔더니, 상자를 닫아 두었는데도 달콤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우와. 단내.”
“형, 이게 뭐예요?”
“연우야, 이거 슈퍼딸기야. 엄청 달아. 같이 먹자.”
태우와 연우가 같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최근 새로운 채널을 만들 준비를 하느라 둘은 꼭 같이 붙어 다녔다. 태우가 연우에게 딸기를 씻어서 건네주었다.
“반은 사무실 가져갈 거야.”
“아하. 이거 가져가면 다들 정말 좋아할 거야.”
“진짜예요. 형. 이거 정말 맛있어요.”
그 사이에 딸기 맛에 반했는지, 연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태주는 맛있어하는 둘을 보다 BJ 막먹군을 한 번 초대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딸기도 많이 있었고, 본격적으로 미튜버 일을 해보려는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안녕하세요. 저 이태줍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 네네네, 네. 기억합니다. 그 얼굴을 어떻게 잊어요.
“큭. 다름 아니라,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집에 한 번 초대할까 해서요. 굉장히 맛있는 과일들이 있거든요.”
– 아! 정말이요? 초대해주시는 겁니까? 전 아무 때나 됩니다. 오늘도 됩니다. 지금 갈까요?
“큭큭. 네, 오세요. 주소 알려드릴게요.
– 저, 그런데 혹시?
“네?”
– 태산이, 태산이도 있습니까?
“아하하하. 네, 있어요.”
여전히 유쾌했다. 자신이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몰랐는데, 이 BJ와 대화를 하기만 하면 웃음이 나왔다. 태주는 영문을 몰라 하는 둘에게 좀 전에 통화한 사람이 BJ 막먹군이고, 곧 이곳으로 올 거라고 얘기해줬다.
둘은 깜짝 놀라더니 소리를 지르며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주가 보기엔 깨끗했는데, 둘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 보다. 갑자기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시작하는 둘을 피해 태산이와 방으로 숨어들었다.
*
BJ 막먹군은 그때 식당에서 봤던 스태프와 같이 왔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로 처음 BJ 일을 시작할 때부터 같이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태우와 연우의 표정이 더 밝아져서 태주는 내심 잘 초대했다고 뿌듯해했다.
“여기. 오늘 오시라고 한 건 이 과일들 때문이에요.”
“헉! 이게 뭐예요. 무슨 딸기가 수박만 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사과보다 좀 큰데.”
“있어요, 그런 수박. 토 달지 마세요.”
태주는 먹는 것에 관한 BJ 막먹군의 집착을 몰랐다. 지금 BJ 막먹군의 눈에는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나게 맛있어 보이는 과일만 보일 뿐이었다. 과일을 내오기 전 인사를 나눌 때까지 공손했던 태도는 먹는 것 앞에서 눈이 돌아가며 사라져버렸다.
타박을 들었지만 웃음만 나왔다. BJ 막먹군의 말투에 기분 상할 일은 없었다. 말투가 마치 아이가 투정부리는 것 같은 말투였기 때문이다. 아마 눈앞에 맛있는 과일이 있는데 먹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다 찍었어? 이제 먹어도 돼?”
“먹어. 먹어. 아주 눈이 돌아갔네.”
오늘은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라 촬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처음 보는 과일이라며 사진은 찍기로 했는데, BJ 막먹군의 스태프가 제법 깐깐한 사람이어서 구도나 조명을 조절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덕분에 태주는 앞에 앉은 BJ 막먹군이 몇 번이나 침을 삼키고, 코를 벌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흐미야미얌. 허억. 이거슨 딸기가 아니야.”
“오마이, 오마이, 오마이갓! 넘넘 맛나.”
“대에에에박. 이거 오렌지 맞나? 응?”
“큭큭큭.”
BJ 막먹군은 원래 시끄러운 편인 것 같았다. 식당에서 우키키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낸 건 그냥 본능 같은 것이었나 보다.
“좀 시끄럽죠?”
“크크. 괜찮아요. 재밌어요.”
“쟤가 전부터 뭘 먹을 때 저랬어요.”
“그래요?”
“쟤랑 같이 음식점 가면 장난 아니게 쪽팔렸거든요. 주변에선 돌아이 보듯이 보고. 사장님은 나가라고 눈치 주고. 밥 한번 편하게 먹기 힘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먹방 BJ가 촬영하는 걸 봤는데, 이거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했군요.”
“아니요, 처음엔 그냥 밥 좀 편하게 먹자는 생각에 흉내만 냈었는데. 집에서 하도 눈치를 줘서요. 뭐라도 하자 하다가 얼떨결에 지금까지 한 거예요.”
“아하하하.”
BJ 막먹군의 친구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둘이 괜히 친구인 건 아닌 듯했다. 태우랑 연우는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막먹군의 반응에 놀랐는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제 생전 이렇게 맛있는 과일은 처음이에요.”
“야, 늦었어. 점잔빼고 말하기엔 이미 추태란 추태는 다 보여드렸어.”
“어윽. 죄송합니다. 제가 맛있는 것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큭큭. 괜찮아요. 맛있게 드시는 것 보니까, 초대하길 잘한 것 같아서 좋았어요.”
과일 접시를 모두 비우고 나서야 이성을 찾은 듯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전 촬영에서 ‘먹방 BJ치고는 많이 먹지 않네.’ 라고 생각했던 것은 태주의 착각이었다. 워낙 커서 두 개 이상 먹기 힘든 딸기를 혼자서 8개나 먹고 다른 과일들도 몇 접시를 먹은 후에야 배가 부른 표정을 했다.
관심사가 촬영에 있는 네 명은 곧 이야기꽃을 피웠다. 촬영하는 방법이나 편집요령들을 한참 동안 얘기하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방으로 올라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따라가 보니 넷이서 편집 프로그램을 켜놓고 다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태주는 원래 목적을 100% 달성한 것 같은 만족감을 느꼈다.
*
정원에 들어가자 희가 반겨주었다. 희는 다행히 어디 상한 곳 없이 무사한 모습이었다.
“태주, 미안. 침입자를 못 찾았어.”
“괜찮아, 괜찮아.”
밭작물은 역시 평소보다 적게 매달려 있었다. 밭 근처에서 어제는 발견하지 못했던 발자국도 보였다.
“킁킁.”
“태산아?”
태산이가 강아지처럼 발자국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태주, 태산이가 이 냄새를 따라가도 되냐고 물었어.”
“허. 태산이가? 냄새를 추적할 수 있어?”
“태주, 태산이는 이제 사냥도 할 수 있는 걸.”
얼마 전 슬라임 사태에서 1차 성장 조건 중 하나인 ‘사냥 본능’을 깨우치긴 했지만, 설마 추적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 부탁해 볼까. 태산아 추적을 부탁해.”
“태산아, 부탁해.”
“냐아웅.”
태주는 희에게서 마법 로프를 건네받아 손에 쥐고 태산이 뒤를 쫓았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겨우 생후 2달의 새끼 호랑이가 추적을 제대로 할 거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여기야?”
“응. 태산이가 여기래.”
태주는 태산이 안내해 준 곳을 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쪽은 비료의 재료로 쓰기 위해 나뭇잎과 나뭇가지, 밭에서 뽑아낸 작물의 줄기를 쌓아둔 곳이었다. 딸기나무 줄기가 가득 쌓인 곳 주변을 태산이가 뱅글뱅글 돌았다.
‘그냥 딸기 냄새 따라서 온 건가.’
“냐아아웅.”
바로 여기라는 듯이 태산이가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내심 못 미더웠지만, 태산이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태주가 딸기 줄기 무더기를 파헤칠 때였다.
샤샤샥!
“악.”
검은 네발짐승이 딸기 줄기 무더기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태주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태주, 로프.”
“윽. 여기.”
“니야아웅.”
엉치뼈를 잘못 찧은 태주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희가 나섰다. 태주에게 마법 로프를 돌려받은 희는 태산이와 함께 검은 네발짐승을 쫓기 시작했다.
‘쪽팔려.’
태주는 낑낑대며 상점에 가서 회복 약을 구매했다. 태주가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태산이와 희가 돌아왔다. 검은 네발짐승을 마법 로프로 꽁꽁 묶은 채였다. 둘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서 태주에게 돌아왔다.
“고마워.”
희의 회복마법을 받았다. 이미 회복 약을 마신 상태였지만, 희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았다.
“수달?”
“응. 자이언트 수달이야.”
‘하늘에 떠 있는 섬이란 설정이지 않았나? 어떻게 수달이 나오지?’
“그, 그렇구나. 아주 크네.”
자이언트 수달은 전에 봤던 방문자 까마귀만큼 컸다. 사람 몸통만 한 크기였다. 태주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 수달을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희, 어떻게 해야 해?”
“응? 수달을 어떻게 하냐고?”
“응.”
“태주, 잠깐만.”
희는 수달에게 다가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태산이와도 대화가 가능한 희는 저 수달하고도 말이 통하는 것 같았다. 희가 날개를 부르르 떨어 수달에게 반짝이는 가루를 뿌려 주었다.
“태주, 슬픈 일이야.”
“응?”
“단단은 집이 없데. 큰물에 모두 쓸려 가버렸대.”
“어, 그래? 그럼 어떡하지? 정원에서 살 게 해야 하나?”
태주가 희에게 의견을 구할 때였다.
[일꾼 고용!정원에 나무와 꽃이 많이 늘었습니다.
정원사님을 도와서 함께 정원을 가꿀 일꾼을 고용하세요.
현재 고용 가능한 일꾼: 0/3
일꾼 채용 대기자: 자이언트 수달 단단.]
“일꾼으로 채용할 수 있다는데. 희 혹시 우리 정원에서 일할 거냐고 물어봐 줄래?”
“응. 희가 물어볼게.”
“단단.”
“응응, 전해 줄게. 태주, 좋대.”
태주는 일꾼 고용을 승낙했다. 자이언트 수달 단단이 정원에 일꾼으로 합류했다. 대체 수달한테 무슨 일을 시키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집이 없다는 단단이 안쓰러웠다.
“태주.”
“응?”
“단단은 물고기 사냥을 제일 잘 한데. 연못의 잉어를 잡아 줄 수 있데.”
“뭐라고?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훌륭한 일꾼이 정원에 온 것 같았다. 단단은 과일도 잘 먹지만, 실은 물고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황금 잉어의 비늘만 필요한 태주는 단단에게 연못에서 비늘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침입자라는 말에 깜짝 놀랐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낚시에서 해방되었다는 홀가분함만이 자리 잡았다. 이제 고대하던 반짝반짝 피부 크림을 만들 수 있었다. 태주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태주가 하하하 크게 웃기 시작하자 다들 저마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
태주가 매니저님과 함께 딸기 상자를 사무실 안으로 옮겼다. 딸기 열 개가 든 상자 다섯 개였는데, 제법 묵직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태주를 매우 반겼다. 태주가 올 때는 부록처럼 태산이가 딸려오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태산이 이동 장을 메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읏차. 우선 세 상자만 씻을까요?”
“한 상자에 10개씩이니까 남지 않겠습니까.”
“부족할 걸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씻어 나온 딸기를 다 같이 나눠 먹었다. 대표님 몫은 따로 챙겨드려야 하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제 대표실에서 나오셨는지, 한 손엔 딸기, 한 손엔 쥐 모양 장난감을 든 채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계셨다. 태산이가 오기를 기다린 모양새라 슬쩍 웃음이 나왔다.
“이태주 배우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이성군 선배의 능력자 매니저님이 서 계셨다.
“괜찮으시면, 성군이랑 이제영 감독님을 뵈러 다녀오시겠습니까?”
“좋아요. 오늘은 오후에 수업이 있으니, 내일이나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그럼 내일 오전에 괜찮으시겠습니까? 일정이 비어있으시던데요.”
태주가 허락하자 능력자 매니저님이 그럼 견우 씨 통해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인사하고 갔다. 돌아서는 그의 손에는 언제 챙겼는지 딸기가 여러 개 들려있었다.
사무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노닥노닥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 팀장이 외근에서 이제 돌아온 듯 외투를 입은 채로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태주와 견우를 불렀다.
“마침 회사에 계셨네요. 이태주 배우님, 견우 씨 회의실로 오세요.”
태주는 우 팀장님을 따라 회의실로 가기 전에 태산이를 확인했다. 대표님이랑 쥐 모양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결국, 소원풀이 하시는구나.’
회의실에 자리하자마자 우 팀장님이 시놉시스를 건네주었다. 웹드라마였다. 25분 분량에 10화로 구성된 짧은 웹드라마였다.
“솔직히 영화 준비만 하시게 두고 싶지만, 이 웹드라마는 기간도 짧고 캐릭터도 나쁘지 않아서요. 한 번 보세요.”
아이돌 기획사에서 준비한 웹드라마였다. 아이돌 지망생들이 데뷔를 위해서 노력하고 좌절하다, 다시 희망을 품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뭔가요?”
“사실 내용은 너무 뻔하죠. 이태주 배우님이 수락하시면 거기 프로듀서 역 오디션을 보게 되실 거예요.”
“아니, 내용이 좀. 대체 이런 걸 누가 보죠?”
“GTS의 전 세계 팬들이 보죠.”
“네?”
우 팀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웹드라마에 나오는 아이돌 연습생들은 GTS의 후속 그룹 멤버로, 그룹의 홍보를 위해 제작하는 웹드라마라고 한다. 연습장면에서 주로 GTS의 노래를 커버해서 기존 팬층의 관심을 유도하고, 가능하면 예비 팬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라는 얘기였다.
“정말 좋은 기회예요. GTS의 전 세계 팬에게 홍보할 수 있으니.”
“대단하네요. 그런데 이런 좋은 역을 다른 회사에 넘겨주나요, 보통? GTS 멤버 중 한 명이 맡으면 더 효과가 좋을 텐데요.”
“없어요.”
“네?”
“GTS에는 연기가 가능한 멤버가 전혀 없어요. 그 후속 그룹도 그렇고요. 그 회사 방침이 그래요. 어정쩡하게 연기 연습시켜서 내보내느니 춤 연습 한 시간 더 시킨다는 마음이에요.”
“와. 그런 데가 다 있어요?”
“그게 GTS가 세계적인 보이그룹이 된 이유인지도 모르죠.”
태주는 웹드라마의 내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말로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 우 팀장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서며, 오디션 일정 정해지면 알려주겠다고 체력관리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매니저님이 보시기에도 이 내용은 좀 너무하죠?”
“네. 좀 청춘 만화 같기도 하고 촌스럽긴 합니다.”
“그래도 확실히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촬영 기간도 며칠이면 될 테니, 상당히 괜찮습니다.”
웹드라마는 처음이었다. 이전 생에선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한 편에 25분. 보통 드라마의 반밖에 안 되는 분량이다.
그중 태주가 오디션을 볼 프로듀서 역은 총 3화에 출연하게 된다고 한다. 아직 대본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 나오는 분량도 많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쩐지 본격적으로 배우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아, 작은 흥분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