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2
181. 침입자 >
상자를 들고 있던 스태프는 견우의 질문에 상자를 한 손으로 옮기며 다른 손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뒷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는 동작을 취하던 스태프가 상자를 떨어뜨렸다. 상자 안에서 긴 비닐에 싸인 종이컵 뭉치가 후두둑 떨어졌다.
“어! 이런. 잠시만요.”
“태주 씨 좀 더 떨어지십시오.”
스태프는 무언가 꺼내려던 동작을 멈추고 상자에서 쏟아진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뒷주머니 쪽에 파란색 끈이 살짝 보였다. 만약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바로 꺼내 보였을 텐데, 일부러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에 견우의 의심이 짙어졌다.
견우는 태주를 스태프와 좀 더 떨어뜨린 후, 그 사이를 막아섰다. 만약의 경우에라도 태주에게 스태프가 다가가지 못하게 할 요량이었다. 견우는 그 상태로 스태프의 차림새를 살펴봤다.
의심스러운 스태프의 차림새는 촬영장에서 일하는 다른 스태프와 다를 바 없었다. 움직이기 편한 옷과 신발. 모두 꽤 험하게 입은 티가 났다. 차림만 봐도 촬영장 어디든 쉽게 스며들 수 있을 듯했다.
-저벅저벅.
“거기 무슨 일이십니까?”
“아! 경비 아저씨!”
“크르르릉!”
“태산아. 경비 아저씨야.”
발소리가 들리고 새로 나타난 사람은 경비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떨어진 물건을 줍던 스태프는 경비원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본 후엔 손을 빠르게 놀리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시간을 끌면서 천천히 물건을 주워 담던 태도는 버리고 순식간에 물건을 주워 담았다.
“이 스태프분이 저희 스튜디오 쪽에서 나오는 걸 봤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본 적 없는 분이라서 어느 팀 소속인지 확인하는 중이었습니다.
“크르릉.”
“거기 선생님, 출입증 좀 보여 주십시오.”
“저, 그게, 제가 오늘은….”
“우선 경비실로 가시죠. 가서 얘기합시다.”
“잠시만요. 지금 조감독님한테 연락하는 중입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견우의 의심대로 남자는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경비실로 가자는 얘기에 자리를 피하려는 것처럼 몸을 뺐다. 그런 남자의 뒤를 견우가 막아섰다. 그에 맞춰 실례하겠다는 말을 뱉은 경비원이 남자의 팔을 잡았다.
“아무래도 경비실로 먼저 가야겠습니다. 조감독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연락 닿으면 경비실로 오십시오.”
“예. 바로 가겠습니다.”
“크르르릉.”
“쉬이. 태산아, 이제 괜찮아.”
견우는 경비원의 손에서 벗어나려 몸을 뒤트는 남자를 보고 먼저 경비실로 가겠다는 의견에 찬성했다. 경비원의 손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남자 때문에 이곳에서 조감독에게 연락하고 기다리는 것도 불편했다. 무엇보다 태주를 이런 외진 곳에 계속 세워 두는 일도 내키지 않았다.
“가시죠. 촬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네. 가요.”
“크르르릉.”
“이제 들어가자, 태산아.”
태주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얌전히 견우의 보호를 받으면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당장 촬영 시간이 가까웠다. 메이크업 수정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본을 확인하려면 이제는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에 도깨비 무사 찍을 때요. 윤비 씨 팬이 침입한 적 있었죠?”
“네. 태주 씨가 박지헌 씨랑 촬영 중일 때 B팀 촬영장에 침입했었습니다.”
“좀 전의 남자는 윤비 씨 경우랑 다르게 팬은 아닌 것 같았어요. 음…. 혹시 그 사람들일까요? 경찰에서 얘기한 흥신소 사람.”
“알아봐야겠지요.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태산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태주의 어깨에 매달린 채 뒤쪽을 보면서 으르렁대고 있었다. 태주는 그런 태산이 등을 살살 쓸어 주며 진정하라 달랬다.
*
미나 곁에 태주를 데려다준 견우는 그 길로 조감독을 찾아 나섰다. 그가 찾는 조감독은 조명 감독님과 세트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짓으로 세트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게 강은진 감독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중인 것 같았다.
견우는 조감독의 근처로 가서 기다렸다. 의심스러운 남자를 발견한 것도 중요한 일이 맞았지만, 촬영보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가기 전까지 경비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얘기를 마쳤는지 조감독이 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매니저님,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점심시간에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네? 수상한 사람이요? 어디서요?”
“스튜디오 건물 옆쪽에서요. 이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인 팀은 박수 팀뿐이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저희만 촬영하는 중이에요.”
조감독의 긍정하는 답을 들은 견우는 자신이 봤던 남자의 행색과 의심스러웠던 행동들을 설명했다. 태산이를 산책시키던 중에 만났다는 얘기와 지금 경비실에서 경비원과 같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 역시 전했다.
“같이 가시죠. 제가 스태프 얼굴을 전부 아는 건 아니지만, 낯선 얼굴이었습니다.”
“이번 스튜디오 촬영에 FD가 몇 명 추가됐는데, 혹시 그 사람 중 한 명을? 으음. 스튜디오 안에 전부 있군요.”
스태프가 추가됐다는 얘기를 하면서 스튜디오 안을 둘러본 조감독의 표정이 굳었다. 견우가 혹시 새로 투입된 스태프를 침입자로 오해하고 의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번 스튜디오 촬영부터 합류한 스태프들은 모두 스튜디오 안에 있었다.
조감독은 강은진 감독의 지시 사항을 떠올려 봤다. 가장 급한 조명 건을 전달했으니, 남은 것은 경비실에 다녀와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견우가 말한 남자가 정말로 침입자라면, 시끄러워지기 전에 조용히 처리해야 했다.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오는 중인데, 이런 게 기사로 나가면 큰일이지.’
“가시죠. 경비실에 있다는 남자를 확인해 봐야겠어요.”
탐정 박수의 성적은 모두의 예상보다 더 좋았다. 이태주가 주연을 맡는 순간부터 관계자 대부분은 시청률이 괜찮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리고 이태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첫 화부터 꾸준히 시청률이 오르고 있었다.
감독님과 작가님의 협업도 잘되고 출연진 간의 사이도 좋았다. 촬영도 큰 문제 없이 이뤄지고 있었고 회사의 지원도 나쁘지 않았다. 조감독은 이런 좋은 분위기를 마지막 촬영일까지 이어 가고 싶었다. 경비실로 향하는 동안 조감독은 침입자 소식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발생할 일들을 걱정했다.
그에 반해 견우는 침입자가 혹시 스토커의 사주를 받은 흥신소 사람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태주의 말도 있었지만, 그 역시도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탐정 박수에도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있긴 했지만, 단역이었다. 데뷔 삼 년 차의 아이돌 그룹 멤버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다. 팬이 촬영장에 숨어들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아이돌의 촬영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스토커의 사주를 받은 흥신소 직원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였다.
경비실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견우와 속도를 맞춰서 걷던 조감독이 걸음을 멈췄다. 그런 그를 따라서 견우 역시 발을 멈췄다. 조감독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기색이었다. 견우는 그가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도록 그대로 서서 기다렸다.
“큼. 매니저님. 혹시 침입자라고 밝혀지면, 그 얘기가….”
“새어 나가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저희도 바라는 일입니다.”
“휴우. 감사합니다. 대체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그렇게 할 일들이 없나?”
“그러게 말입니다.”
조감독과 견우, 두 사람 모두 이 일이 소문 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견우는 스토커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는 중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좋은 이미지만 챙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이미지는 지금 상황에선 득이 될 게 전혀 없었다.
간단한 대화로 합의한 두 사람이 경비실에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
“무슨 일로?”
“좀 전에 스튜디오에 침입한 사람이 경비실로 오지 않았습니까? 박상원이라는 경비분이 데리고 가셨습니다만.”
“박상원이요? 잠시만요.”
경비실에서 두 사람은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을 맞아야 했다.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한 침입자와 경비원이 그곳에 없었다. 심지어 둘을 응대하고 있는 경비원은 그 비슷한 일도 들은 적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타다다닥.
“박 형. 그러니까 박상원 씨는 오늘 야간 조입니다. 아직 출근할 시간이 아닙니다.”
“예? 좀 전에 스튜디오 건물 근처에서 만났습니다만…. 혹시 박상원 씨 얼굴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견우의 말에 경비가 자신의 폰을 꺼냈다. 그는 바로 갤러리에 들어가더니 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을 견우에게 보여 줬다.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박상원이라고 불렀다.
“여기, 머리 짧게 자른 사람이 박 형입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제가 봤던 사람은 이분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좀 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CCTV 확인 가능합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조감독님.”
“네. 저는 지금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촬영팀의 조감독입니다. 오늘 낮에 저희 스튜디오에….”
조감독이 경비에게 설명하는 사이 견우는 한가지 가정을 떠올려 봤다. 정체를 의심받는 침입자를 빼내기 위해서 경비로 위장한 사람이 나타나서 데려가는 상황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지만, 의뢰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의 준비를 했다고 여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매니저님. 매니저님이 말씀한 시간대의 영상이에요.”
스튜디오 내부의 영상은 없었다. 대신 스튜디오 입구에 설치된 CCTV로 찍은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시간 전에 문제의 남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도시락 배달 업체 사람들 사이에 껴서 스태프인 척 유유하게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 사람입니다. 제가 봤을 때도 이 상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좀 더 뒤로 돌려 보죠.”
“지금. 지금 통과하는 이 사람입니다.”
“아아. 얼굴이 나오질 않네요. 모자로 가렸어요.”
“다른 영상은 없습니까? 얼굴이 나온 영상이 필요합니다.”
조감독은 경비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견우의 말을 잠깐 의심했었다.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이태주의 매니저인 그가 자신에게 장난을 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촬영장에서 봐 온 견우는 그런 장난을 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감독은 꽤 꼼꼼한 성격이었다. 증거는 없고 견우의 말뿐이었지만, 이런 일일수록 확실하게 확인하고 넘어가는 게 나중에 말이 안 나왔다. 그런 생각으로 확인한 CCTV 영상에서 침입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정하고 침입한 것 같네요. 다른 각도의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얼굴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스튜디오 내부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길로 돌아가 태주 씨의 분장실을 확인할 생각입니다.”
“후우. 먼저 가십시오. 전 영상 챙겨서 가겠습니다.”
“예. 먼저 가 보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조감독 곁에서 어떤 상황인지 들은 경비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보안문이 아닌 출입 카드를 사용하는 곳이라 침입하기 쉽다지만, 대낮에 버젓이 침입자가 활보하고 다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침입자를 경비인 자신보다 고객이 먼저 알아차린 일이었다. 게다가 확인한 결과는 단순 침입자 사건이 아니었다. 침입자를 경비원을 가장한 사람이 데리고 도망갔다. 경비 사칭 건도 포함된 복합적인 사건이었다.
조감독과 경비에게 인사를 하고 경비실을 나온 견우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굳은 표정을 풀어 보려는 의도였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는 좀 전에 영상을 보고 침입했던 사람들이 스토커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분장실과 밴. 그 외에 태주가 자주 가는 곳들을 확인해 봐야 했다. 확인할 곳을 떠올리는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
견우와 조감독이 침입자를 확인하러 간 사이, 태주는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메이크업 수정을 받은 채로 조명 세팅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도중 태주는 한껏 뽐내는 얼굴이 되어서 미나에게 태산이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몇십 분 전까지 어리광쟁이라고 흉봤던 것은 잊은 채였다.
“우리 태산이가 한눈에 수상한 사람을 찾아냈다니까요.”
“사실이면, 엄청난데.”
“정말이에요. 얼마나 멋있었는데요. 딱 네 발로 버티고 서서 크르릉거리면서 경계하는데, 아주 포스가.”
“호호호. 포스까지 느껴졌어?”
“큼. 진짜 멋졌어요.”
태주는 의상에 털이 묻을까 봐 안지는 못하고 옆자리에 태산이를 앉혀 놓고 자랑하는 중이었다. 손을 꼼지락거리는 게 안고 싶은 걸 참는 것 같았다.
태주의 설명대로라면 태산이가 정말로 장한 일을 한 게 맞았다. 매일 제 주인의 뒤만 쫓아다니면서 어리광을 부리고 칭얼대면서 잔뜩 어린 티를 냈었는데, 오늘 한 일을 떠올리면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호호호. 태산이가 보디가드네. 태주 보디가드.”
“하하하. 맞아요. 보디가드.”
“어? 매니저님 오셨다. 일찍 오셨네. 벌써 확인이 끝났나?”
“그러게요. 전 확인하고 신고하고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오셨네요.”
일행과 웃고 떠드는 태주의 곁으로 경비실에 다녀온 견우가 다가왔다. 그는 태주와 그 주변을 한 번 훑어보더니, 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태주나 미나가 말을 붙일 틈도 없었다. 급하게 분장실 쪽으로 움직이는 견우의 등 뒤로 태주와 미나의 의아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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