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3
182. 알 이름 짓기 >
견우는 태주의 분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가지고 있던 탐지기를 켰다. 천천히 분장실 벽을 따라 돌던 그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분장실 캐비닛 위쪽, 물건이 쌓여 있는 곳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후우. 아침에 확인했을 때는 없었는데…. 역시 태주 씨를 노린 건가?”
밴도 확인해 봐야 했다. 최근 견우는 어느 장소에 가든 이런 확인을 빼놓지 않았다. 태주의 차에 설치된 GPS를 본 이후로는 이동하기 전에 항상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태주를 태우러 가기 전에도 확인했었다.
견우는 밴을 주차해 둔 주차장으로 가면서 우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토커의 소행으로 보이는 일이 다시 발생했다. 태주의 스케줄을 그대로 강행해도 괜찮을지 상의할 필요가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던 중에 태주는 견우에게 경비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남자를 데려간 사람이 경비원으로 속였다는 사실에는 태주 역시 많이 놀랐다.
하지만 금세 그 놀람은 가라앉았다. 생각해 보면 경비원 행세를 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유니폼을 파는 곳도 많았고 경비원은 접하기 쉬운 직업이었다. 흉내 내기 쉬웠다.
“이번에도 제대로 얼굴이 나온 영상이 없습니다.”
“어!”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주는 태산이가 산책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 모습을 자동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신이 나서 발랄하게 걷는 게 귀여워서 나중에 다시 볼 생각이었다. 덕분에 산책 도중 수상한 남자를 경계하던 모습도 찍었고 수상한 남자와 경비원의 얼굴도 제대로 찍을 수 있었다.
‘촬영 위치가 좀….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쓸 수 없다니. 아까워라.’
침입자를 발견한 곳은 스튜디오 옆쪽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태산이 산책을 시키느라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돌던 중이었다. CCTV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당시 근처에는 다른 사람도 없었다. 태주의 영상을 다른 사람이 찍은 걸 얻은 척 건네기도 쉽지 않았다. 예전 흥신소를 찾아낸 것처럼 이번 영상도 쿠첼루스와 둘만 아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일정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온 태주는 문제의 영상을 쿠첼루스한테 건넸다.
*
정원 입구를 통과하는 태주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현실에서 골치 아픈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을 정원에까지 끌고 올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희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2호도 곧 현실로 이주할 예정이고 입대도 멀지 않았으니, 한동안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다.
게시판 앞을 지나치는 태주의 눈이 불안함으로 살짝 떨렸다. 그는 곁눈질로 게시판을 살폈다. 녹색 종이는? 없었다. 다행히 길잡이 협회의 공문이 게시판에 붙어 있지 않았다.
최근 그렘린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이젠 과일을 혼자서도 제법 잘 갉아 먹었다. 여전히 태주나 2호, 해나한테 잘라 달라고 조르는 일이 더 많았지만, 정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렘린이 먹다 남긴 과일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정말 많이 컸어. 의뢰 받은 나무도 다 자란지 한참이고. 슬슬 불안하단 말이지.’
그렘린은 태산이보단 여전히 작았지만, 덩치가 많이 커졌다. 발톱 역시 아직 과일을 자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카롭고 단단해졌다. 앞발은 정원에 왔을 때부터 잘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잘 사용했다. 이미 그렘린은 언제 데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잘 성장한 상태였다.
“해나, 저 왔어요.”
“어서 와. 정원사 씨. 오늘도 여전히 인기가 많네.”
“하하하. 그런가요?”
태주의 주변에는 평소처럼 그를 마중 온 희와 알이 있었다. 품 안에는 태산이가 있었고, 어쩐 일인지 제피르도 근처에 같이 있었다.
“태주.”
“응?”
“제피르랑 희, 요정 숲에 가도 돼?”
“아직 아침인데, 벌써?”
“응. 오후에는 아칸서스가 와.”
“아! 오늘 오기로 했었지. 그래. 다녀와.”
태주의 허락이 있자마자 제피르와 희가 요정 숲으로 이동했다. 이히히. 웃음소리만 남긴 채 바로 이동 기술을 사용했다. 매일같이 가는데도 저렇게 신이 날까. 요정 숲을 정비하면서 대체 얼마나 재밌는 시설을 지어 놓은 건지 그 역시 궁금할 지경이었다.
“시간 내서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요정 숲에?”
“네. 얼마나 재밌는 걸 지어 놨길래, 우리 희랑 제피르가 저렇게 좋아하는지 궁금하네요.”
“모험가가 도전할 만한 시설도 많이 지었다고 하던데, 나중에 정원사 씨도 한번 도전해 봐.”
요정 숲에 모험가를 위한 시설을 지었다는 얘기에 태주의 고개가 갸웃했다. 요정 숲은 출입 제한이 깐깐한 편이었다. 정원사인 태주와 그 일행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지만, 평범한 모험가는 출입 허락을 받기 힘들었다.
“우선 어떤 시설인지 보고 나서요.”
-펄럭펄럭!
“음. 알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데려갈게.”
-펄럭펄럭. 펄럭펄럭.
“하하하. 알았어. 꼭 데려갈게.”
“호호호. 요샌 정말 의사 표현이 많아졌어.”
깨어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한 보람이 있었는지, 알이 더 활발해졌다. 정원 식구들의 근처를 맴돌면서 이런 식으로 대화에 자주 끼어들기도 했다. 정원 식구들은 알의 그런 변화를 반기고 있었다.
“아칸 가족이 올 때까지 전 연못 정원 근처를 손보고 있을게요.”
“저번에 얘기한 꽃을 옮겨 심게?”
“네. 꽃이 피기 전이라 헷갈렸나 봐요.”
“호호호. 붉은 꽃 사이에 드문드문 파란색이 보이길래, 난 일부러 그렇게 심은 줄 알았지 뭐야.”
“큼. 일부러는 아니고요. 모종이 섞인 줄 몰랐어요.”
붉은색, 분홍색, 보라색, 흰색으로 꾸며 놓은 꽃밭 사이사이 파란색 꽃이 섞여 들어갔다. 원형 화단 안에 구역을 정해서 심은 것이었는데, 다른 곳에 심고 남은 파란색 꽃모종 몇 포기를 같이 심어 버렸다. 그걸 모르고 있다가 얼마 전 꽃이 전부 피고 나서야 발견했다.
새로운 화단. 태주는 처음 정원 확장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천천히 정원의 관리 구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번에는 연못 정원 근처에 꽤 큰 원형 화단을 만들었다.
그렇게 정원 일을 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내자, 아칸서스 가족이 오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주는 희와 제피르가 요정 숲에서 돌아오자 그제야 씻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어서 오세요. 다나 씨, 아칸. 모린도 어서 오렴.”
“안녕하세요. 정원사님.”
“마아.”
“정말 너무 반가워, 정원사. 자주 좀 초대해.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아칸서스 가족은 시간에 맞춰서 정원에 도착했다. 태주는 평소처럼 그들을 반기다가 예상보다 훨씬 더 반가워하는 아칸서스의 기세에 깜짝 놀랐다. 아칸서스 가족이 다녀간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가 느끼기엔 아니었나 보다.
-파닥파닥!
“꺄하. 마아!”
“어?”
“아이고야.”
“어? 어어? 모린이 벌써 날아다녀요?”
모린의 성장이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는 카펫을 기어 다녔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고 거실 카펫을 깨끗하게 세탁해 뒀는데, 손님 맞을 준비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요새 아주 난리야. 모린이 날아다니는 데 재미를 붙인 건 좋은데, 제 체력을 가늠 못 해서 큰일이야.”
“무슨 얘기에요?”
“날아다니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몸도 그대로 뚝 떨어진다는 소리야.”
“헉! 그건 큰일이잖아요.”
“그뿐이게? 걱정해서 걸어 놓은 보호 마법은 기가 막히게 다 파훼를 해요.”
모린은 자리에서 일어서도 그의 허벅지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을 작은 아기였다. 그런 아기가 마법 실력이 뛰어난 아칸서스의 마법을 파훼한다는 소리에 태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약초 있잖아. 전에 나한테 판 거.”
“어? 혹시 부작용인가요?”
“아니. 너무 잘 들었어. 내가 솜씨가 좋잖아. 약을 너무 잘 만들어 먹였어.”
“아, 예.”
“마력의 질이 굉장히 좋아. 잘 정제된 순도 높은 마력이 모린이 몸 안팎으로 가득해.”
그리고 모린은 용의 본능에 따라 그 마력을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아칸서스가 걸어 주는 마법들을 파훼하는 일에 재미를 붙인 모린은 마법만 걸어 주면 신이 나서 모두 해제해 댔다. 그 때문에 모린이 날기 시작하면 별수 없이 따라다니며 지켜봐야 했다.
“어휴. 이제야 좀 쉬겠네.”
“헐.”
어이없다는 듯 ‘헐’ 소리를 내긴 했지만, 소파에 편하게 몸을 묻은 아칸서스의 심정이 조금 이해되는 태주였다. 산이를 돌보면서 집안 일을 하려다 포기한 경험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위스키 초콜릿 사건도 겪었었다. 아이 돌보기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피곤해하는 아칸서스한테서 약간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거기. 카펫 위에 알. 이리 와 봐.”
“아칸! 말투 좀 조심해 줘요. 모린한테 하는 정도까진 안 바랄 테니, 명령조 말투는 쓰지 말아 주세요.”
“깐깐하긴. 알았어.”
“알아. 이리 와 봐. 아칸서스 기억나? 네가 숨은 바위틈에 보호 마법을 걸어 줬었는데.”
-펄럭펄럭!
알은 다행히도 아칸서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칸서스가 용이라면 당연히 마력의 성질을 기억할 거라고 등 뒤에서 떠들었지만, 태주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태주는 상태가 안 좋았을 때였는데도 똑똑히 기억하는 알을 칭찬하기 바빴다.
“우리 알 진짜 똑똑하구나. 한참 전 일인데도 잘 기억하고 있네.”
-펄럭펄럭.
“하하하. 그래. 잘했어. 어쩜 이렇게 기억력도 좋고 의사 표현도 똑 부러지게 잘할까.”
-펄럭펄럭
“카펫 펄럭이는 정도로 뭘 그리 칭찬하고 있어?”
찰싹! 분위기를 망치는 말을 하는 아칸서스를 그가 응징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새 나타난 다나가 그의 팔뚝을 한 대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길이 제법 매웠는지 아칸서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파닥파닥!
“세상에. 모린아, 날아다니니까 진짜 천사 같다.”
“마아.”
-파닥파닥.
“헉! 모린아! 괜찮아?”
작은 날개를 파닥이면서 돌아다니는 모린이에게 말을 걸기 무섭게 받아 안아야 했다. 태주의 근처로 온 모린이 갑자기 날개를 멈추고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렇게 내려오는 거예요?”
“호호호. 그건 아니에요. 뚝 떨어지면 사람들이 놀라는 게 재밌나 보더라고요. 못 하게 하는데도 소용이 없어요. 한번 제대로 떨어져 봐야 그만둘 것 같아요.”
“….”
단호한 다나의 말에 태주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녀의 반응은 그새 낯빛이 핼쑥해진 아칸서스와 정 반대였다. 해나의 얘기로 그녀의 집안에선 아이를 강하게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마아.”
“크흠. 모린. 공중에서 그렇게 갑자기 멈추면 위험해. 내가 못 받았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
“마아.”
“모린아. 네가 아무리 귀여워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모린을 보듬어 안은 태주가 알의 카펫을 아칸서스 앞쪽으로 밀었다. 오늘 초대한 목적은 알의 상태 확인이었다. 알이 제대로 잘 크고 있는지 같은 용인 아칸서스의 진단을 받고 싶었다.
“어때요?”
“음. 괜찮네. 그런데, 이 녀석도 뭘 잘못 먹었나?”
“네?”
“우리 모린이 만큼은 아닌데, 얘도 마력 양이 많아. 마력은 안정된 상태고. 부화는 언제 할지 모르겠네.”
“언제 부화할지 알 수는 없어요?”
“어. 알 수 없어. 그건 알 마음이니까.”
언제 나올지는 알 속의 있는 아이 마음에 달린 일이라는 게 아칸서스의 설명이었다. 마력이 안정된 상태이니, 알이 나오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만약 오랫동안 알에서 나오지 않아도 알 속 마력이 충분해서 그런 거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도 알려줬다.
태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태주뿐 아니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칸서스의 진단을 듣던 정원의 모든 식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무 때나 제가 나오고 싶을 때 나와도 괜찮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니. 최근에 들은 가장 좋은 소식이었다.
“혹시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나요? 펫 등록이 급해서 이름도 못 짓고 알이라고 올렸잖아요. 이젠 건강해졌으니, 이름을 지어 주고 싶어요.”
“응? 내가?”
“책에서 보니까 드래곤 어른에게 이름을 받아야 한다고….”
“그게 일반적이긴 한데. 이 녀석은 이미 정원 소속이잖아. 정원사에게 이름을 받아야지.”
드래곤에 관한 책에 드래곤은 동족 어른에게 이름을 받는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태주는 알의 이름을 지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칸서스를 만나면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 다 같이 고민해 봐야겠네요. 좋은 이름을 지어 줘야겠어요.”
“태주. 알은 건강해야 해.”
“응? 아아. 건강하라는 뜻이 담긴 이름을 지어 주자는 거지?”
“응. 맞아, 태주.”
태주의 머리에 현실의 모 공단의 대표 캐릭터가 스쳐 지나갔다. 하늘색, 분홍색의 아이 모습 캐릭터였다. 무척 촌스러웠다. 그는 건강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건이나 강이라는 이름은 알한테 붙여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알의 상태 확인이 끝난 후, 태주는 새로 꾸민 연못 정원에서 아칸서스 가족과 티타임을 가졌다. 아칸서스는 티타임보다는 2호를 관찰 하길 바랐지만, 태주가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 초기화 상태로 관 안에 누워 있던 때라면 몰라도, 이미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2호였다. 실험체처럼 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쳇. 잠깐만 껐다가 다시 기동해도 되잖아.”
“절대 안 돼요. 꿈도 꾸지 마세요.”
“알았어. 이거나 받아.”
“뭐예요?”
“후후후. 그거야.”
그거? 태주는 그거가 뭐지? 하는 표정으로 아칸서스가 건넨 것을 펼쳐 봤다. 둘둘 만 종이를 펼치자, 그 안에 복잡한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설계도 위로 빛이 나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혹시 열기구예요?”
“열기구? 태주, 열기구야?”
“흐흐흐. 맞아. 열기구 소환서야. 예전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를 자랑하는 물건이라고.”
“우와! 더 빨라? 아칸 대단해.”
“나 같은 마법사가 손을 대는 건데, 당연하지.”
태주는 순간적으로 뻐기는 말투로 열기구의 스펙을 설명하는 아칸서스의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눈을 빛내며 설명을 듣는 희와 제피르가 없었다면, 대체 열기구에 무슨 짓을 했냐고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멀티 록 온 시스템에 삼 단계 부스터를 대체 왜 열기구에 설치하느냐는 말이다!’
태주는 진지하게 이번 열기구 시범 비행에는 자신 대신 2호를 태우는 게 어떨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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