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5
184. 질투
2호는 그날 저녁 현실로 이주했다. 태주는 2호가 현실에서 쓸 물품과 이동문, 쿠첼루스의 마법 재료 등을 모두 현실로 옮겼다. 그 외에 평소에도 자주 가져오는 과일과 소모품도 옮겨 왔다.
주방 식탁 위에 차와 과일, 음식을 부려 놓던 그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곁에서 그를 돕던 2호와 쿠첼루스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봤지만, 그의 웃음은 한동안 멎지 않았다.
“아하하. 배 아파라.”
“뭐가 그렇게 재밌으십니까?”
“푸흡. 사실 별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보따리장수 같아서요.”
“보따리장수요?”
“옛날에 커다란 보자기에 물건을 넣고 다니면서 팔던 사람을 그렇게 불렀어요. 오늘은 유독 짐이 많아서 그런지 갑자기 그 단어가 생각나서요.”
태주는 2호의 방에 꺼내 준 짐들과 아직 아공간 안에 있는 쿠첼루스의 물건을 떠올려 봤다. 그것도 한 짐이었다. 이번엔 정말 장사꾼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물건을 챙겨서 돌아왔다.
“배우 그만두고 과일 장사할까요? 아니면 허브티 장사나요?”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정원 과일의 품질은 다른 과일과 비교하기 힘드니까요.”
“상인 이태주. 어때요? 어울려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태주 씨는 무얼 하셔도 어울릴 겁니다. 연기의 재능도 아깝고 들인 시간도 아깝긴 하지만, 태주 씨가 상인이 하고 싶으시다면 하셔도 됩니다. 소속사와 팬들이 갑작스러운 은퇴에 놀라고 슬퍼하겠지만, 태주 씨가 하시고 싶은 일을 하셔야….”
“어우. 알았어요, 쿠첼. 상인 얘기는 농담이었어요.”
태주는 최근 스케줄이 늘면서 지치긴 했지만, 연기를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연기 자체에 대한 애정도 애정이었지만, 여전히 남우주연상에 대한 욕심이 남아 있었다. 이레귤러나 주최 측의 농간에 상의 의미가 바래기는 했지만, 여전히 노력에 대한 보상의 의미는 남아 있었다.
‘남우주연상은 꼭 받아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당연하게 내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예전처럼 상을 가지고 싶고 그 빛나는 무대 위에 서고 싶은 욕심이 강하진 않았다. 회귀 전처럼 수상하고 은퇴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상을 받지 않으면 회귀 전 보낸 시간이 의미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간절하진 않지만, 꼭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까진 은퇴할 생각 없어요.”
“상을 받으면 은퇴하실 생각입니까?”
“아니요. 다시 상을 노려야죠. 한 번은 회귀 전을 위한 거고, 그다음은 이번 삶을 위해서 받아야죠. 어라?”
“하하하. 상인 직업은 한동안 넣어 두셔야겠습니다.”
“크흠.”
쿠첼루스의 물음에 답하다 태주는 멋쩍음을 느꼈다. 회귀 전만큼 상이 욕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하다 보니 아니었다.
회귀 전과 후를 위해 하나씩, 그새 받고 싶은 상의 숫자가 늘어 있었다. 예전처럼 뜨겁게 들끓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상에 대한 욕심은 여전했다.
태주는 우연한 대화에서 깨달은 자신의 욕심에 충실하기로 했다. 어차피 당장 연기를 그만둘 예정도 없으니, 기왕 할 것 상도 노리자고 다짐했다. 물론 앞으로 최소 2, 3년은 채우기 힘든 욕심이었지만.
2호는 2층의 빈방 중 하나를 자기 방으로 골랐다. 태주는 2호의 관을 아공간에서 꺼내 주면서 충전에 필요한 시간과 그 주기를 한 번 더 물었다. 정원에서는 며칠에 한 번 정도로 충전 시간을 가졌었다. 현실에선 어떨지 알아 둬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원에서도 충전은 필요 없었습니다.”
“어? 미식 던전에서 돌아온 날은 12시간이나 들어가 있었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미식 던전에서 돌아와서 관에 들어간 건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였습니다.”
“큭. 그때 진짜 많이 먹긴 했어. 다시 들어가라고 하면 난 사양할래.”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차라리 삼일 밤낮으로 전투하는 게 낫습니다.”
2호는 지구에서 재난 상황을 맞아 본신의 힘을 모두 쓰는 게 아닌 이상은 그렇게 자주 충전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줬다.
태주는 2호가 말하는 본신의 힘이 어떤 건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실 2호보다 더 오래 같이 지낸 해나와 쿠첼루스의 힘도 잘 모르는 그였다. 간단한 설명만으로 2호의 전력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저 앞으로 충전이 자주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만 이해했다.
*
곧 태주를 태울 차가 올 시간이었지만, 그는 난감한 얼굴로 소파에 앉은 채였다. 현실로 온 지 몇 시간 만에 자신을 따라나서겠다는 2호 때문이었다.
“며칠간 지내면서 이곳 상황을 파악하는 게 어때? 새로운 신분에 적응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태주 씨의 경호입니다.”
“어. 그건 아는데, 우선 이곳에 적응 먼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적응은 경호하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데려가시지요. 제가 이곳 생활에 필요한 자료는 이미 정리해서 건넸습니다.”
“쿠첼.”
쿠첼루스는 2호가 오면 바로 태주의 경호를 맡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가 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해 뒀었다. 전투 인형의 성능을 파악하지 못해서 심도 있는 자료는 없었지만,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식이나 사회 구조 등에 관한 자료는 충분했다.
2호의 외견은 정원에 있을 때와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태주의 외모와 체격을 그대로 카피했던 것에 변화를 주었다. 모델 체형인 태주의 체형에서 키와 근육을 더 늘려서 전투에 좀 더 적합한 체형으로 바꾸었다.
얼굴 역시 태주와 적당히 닮은 정도로 보이게 바뀌어 있었다. 턱선을 굵게 하고 눈매를 날카롭게 한 것만으로 전보다 훨씬 거칠고 야성적인 인상이 되었다. 그 외 화사한 금발과 태산이랑 같은 파란 색 눈은 바꾸지 않았다.
“외국 출신인데 외국어도 배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어와 프랑스어 자료는 입력했습니다.”
“어?”
“제가 준비해 주었습니다.”
“…쿠첼.”
2호는 그를 경호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런 2호를 두고 가겠다 우기는 건 못할 짓 같았다. 태주는 난감해하던 얼굴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웃으면서 2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해.”
“네. 맡겨 주십시오.”
“앙. 산이.”
“응?”
태주와 2호가 악수하는 사이로 태산이가 난입했다. 말 그대로 손을 붙잡은 두 사람의 틈 사이로 끼어들었다. 호랑이 모습으로 거실을 돌아다니던 태산이는 어느새 아이 모습으로 바뀐 후였다.
“산이 가티 가자.”
“산아….”
“사니 가자.”
“산아 오늘은 2호가 같이 갈 거라서 산이는 집에서 놀아도….”
집에 남으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태산이의 거절이 들려왔다. 단호하게 거절한 태산이는 조를 대상을 바꿨다. 허락할 것 같지 않은 태주에게서 2호로 대상을 바꿔서 같이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사니 가티 가자.”
“알겠습니다.”
“헐.”
“산이는 제가 돌보겠습니다.”
“산이는 두고 가자. 오늘은 밤늦게까지 촬영할 거라서 그래.”
호랑이 모습으론 여러 번 데려갔던 스튜디오지만, 아이 모습일 때는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촬영 시간도 길고 새로운 아동 연기자가 오기로 한 날이었다. 태산이가 문제를 일으킬 거로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심해서 나쁘지 않았다.
“오전에는 촬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럼 점심시간에 맞춰서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이 떼쟁이 때문에 쿠첼까지 힘들게 그럴 필요 없어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겸사겸사 처리할 일도 있어서요.”
여랑 작가의 대본이 늦어지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촬영도 순조로워서 새로운 대본이 나오면 오전에 리딩 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오늘 역시 오전엔 리딩, 오후엔 촬영하는 일정이었다. 쿠첼루스는 그런 사정을 알고 있어서 태산이를 시간 맞춰 데리러 오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휴. 쿠첼은 태산이한테 너무 무르세요.”
쿠첼루스를 타박했지만 내심 찔리는 태주였다. 태산이에게 무른 거로 따지면 그는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무안함에 태산이 짐을 챙기러 가는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차도 한 대 더 필요하겠어요.”
“그것도 오늘 나가서 처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아아. 전 요거트 맛 아이스크림 사러 가시는 줄 알았는데.”
“하하하. 그것도 사 올 생각입니다.”
갑자기 늘어난 일행에 놀랐던 것도 잠시, 태주의 경호를 맡아 줄 거라는 얘기에 견우는 2호의 합류를 반겼다.
형식이와 자신이 있긴 했지만, 항상 태주의 곁에 있기는 힘들었다. 자신은 스케줄 확인이나 사전 미팅으로 중간중간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형식이는 태주와 떨어져 있던 사이 다른 배우의 매니저를 맡았었다. 그 배우의 휴식기 동안 태주를 지원하기 위해 와 있었는데, 그쪽도 복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산이는?”
“아! 오전에만 잠시요. 쿠첼루스가 점심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올 거예요.”
“예. 이호 씨는 촬영 마치실 때까지 같이 계실 예정이십니까?”
“네. 그럴 거예요.”
“알겠습니다.”
이호. 2호의 현실 이름이었다. 너무 단순하게 짓는 게 아닌가 싶어서 바꿔 주려 했지만, 2호가 마음에 들어 해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산, 이호. 태산이 사촌 형 신분이니,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았다.
견우는 운전하는 도중 옆자리에 앉은 이호를 가끔 돌아봤다. 태주의 설명대로 친척이 맞는 듯, 닮은 모양이었다. 선글라스 아래의 눈매는 보지 못했지만, 그 외 모습만 봐도 꽤 비슷했다. 다만 표정이 없는 차가운 얼굴에 말수도 적은 듯해서 다가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태주나 산이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태주의 밴이 스튜디오 주차장에 들어서자 근처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라마 촬영이 막바지로 넘어가자, 촬영 장소를 알아내서 찾아오는 팬들이 생겼다. 스튜디오 안쪽까진 들어오지 않았지만, 주차장 근처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꽤 있었다.
태주는 밴에서 내린 후 그런 팬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그의 곁을 견우가 날카롭게 감각을 벼린 채 지켰다.
견우 역시 태주의 예전 매니저처럼 그가 이런 팬들에게 아는 척하는 걸 싫어했다. 스토커의 꼬리를 잡지 못한 일 때문에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라서 더 그랬다.
“그만 들어가시죠.”
“네. 아침부터 이렇게 더운데 대단하네요.”
태주는 새벽부터 나와서 자리 잡고 기다리는 팬의 모습에 감탄했지만, 견우는 그런 팬을 만든 태주가 감탄스러웠다.
배우의 경우 배우 본인보다 배역이 사랑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작품의 배역을 좋아해서 형성된 팬들이 배우 자체를 좋아하게 되기 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여러 유명 배우들이 그렇게 팬덤을 형성했는데, 태주는 그런 시간을 상당히 단축해 버렸다.
“앙. 브이.”
-꺄아아!
“산아 손도 흔들었어?”
“앙.”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는 걸 아쉬워하던 팬들 사이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태주의 품에 안긴 채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던 태산이가 손을 흔들고 전에 배운 브이를 해 보여서였다.
“킥. 오늘 오신 분들은 운이 좋네요. 우리 산이 재롱도 보고.”
“아직도 가끔 산이 섭외 문의가 회사로 오곤 합니다.”
“아직도요?”
“예. 광고도 있고 드라마 출연 섭외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산이 인기는 여전하네요.”
태주의 일행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쏠렸다. 아이와 금발 장신의 남자가 같이 있는 일행은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견우는 태주를 분장실로 먼저 보내고 이호를 촬영 준비 중이던 조감독님 쪽으로 이끌었다. 산이와 이호의 출입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산아. 오랜만이야. 누나 기억 나지?”
“앙. 미나.”
“아이고 똑똑하다. 그래도 앞으론 누나라고 불러야 해. 해 봐. 미나 누나.”
“미나 누나.”
“크윽. 이름이 단순한 게 좋을 때도 있구나.”
미나는 태주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태산이를 보고 있었다. 아이의 키는 제법 큰 것 같았는데, 뽀얗고 통통한 볼살은 여전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태주의 분장실을 노크한 것은 2호였다. 미나는 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이 눈에 들어오자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다. 태주의 분장실에 선글라스를 쓴 외국인 남성이 올 이유가 전혀 없어서 더 그랬다. 미나가 산이를 안아 들려던 때였다. 2호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분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앙. 호. 이호.”
“이호?”
“이호입니다. 오늘부터 태주 씨의 경호를 맡기로 했습니다.”
“어머. 어머머. 세상에. 유전자가 참 이기적…. 크흠.”
미나는 태산이와 2호를 번갈아 보더니,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에메랄드처럼 짙은 파란 눈이 똑같았다. 이산, 이호. 성도 같고 외자 이름을 쓰는 것도 같았다. 결정적으로 태주와 닮은 생김새로 바로 친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대본 리딩을 위해 비워 둔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태산이는 2호의 품에 안겨서 회의실 안에 들어간 태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면 간간이 태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접 보는 게 더 좋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쪼옥. 쪽.
2호가 입에 대주는 우유를 마시면서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하하. 우리 동우 진짜 잘하네.’
‘동우 정말 많이 늘었다.’
‘동우야 이번에는 조금 더 화난 목소리로 해 볼래?’
‘잘했어, 동우야.’
“크르르.”
동우? 회의실 안에서 태산이가 좋아하는 태주의 다정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칭찬하는 소리, 권유하는 소리. 평소 그에게 들려주던 목소리가 동우라는 상대에게 향하고 있었다.
태산이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상대는 곧 확인할 수 있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대본 리딩을 끝낸 출연진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태산이는 동우라는 상대를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동우 지금도 햇살 유치원 다녀?”
“네. 햇살 유치원 다녀요.”
“하하하. 대답도 참 잘하네. 동우 지난번보다 키도 진짜 많이 컸다. 이젠 형이 안기도 힘든걸.”
“이히히.”
태산이가 궁금해하던 상대는 태주의 품에 안겨 있었다. 태주는 품 안의 상대에게 연신 웃어 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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