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9
188. 녹색 의뢰 >
정원 입구를 통과하는 태주의 품엔 쿨쿨 자는 태산이가 안겨 있었다. 공부하느라 피곤했는지 정원에 왔는데도 여전히 아이 모습으로 잠든 채였다.
“희, 잘 있었어? 알아, 너도 잘 있었어?”
“응. 희는 잘 있었어.”
-펄럭펄럭.
“하하하. 그래.”
태주는 언제나처럼 자신을 마중 나온 희와 알한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밝게 웃고 있었지만, 실상 그의 속내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아칸서스 가족이 다녀간 후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알의 이름을 짓지 못해서였다.
그의 머릿속엔 수많은 위인의 이름이 있었지만, 알에게 붙여 주기는 부족한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긴 했지만, 너무 짧아서 성의 없게 느껴졌다.
“오늘은 산이네?”
“네. 요 며칠은 현실에서도 산이로 있어요.”
“호호호. 점심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거로 해 볼까나.”
“얼마 전엔 야채도 먹었어요.”
“면을 먹게 된 것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야채도 먹을 수 있게 되다니…. 이러다 곧 과일도 먹게 될 것 같은데?”
“하하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신맛은 여전히 싫어해요.”
해나와 얘기를 나누길 잠시 그의 표정에 고민이 서렸다. 해나는 그 모습에 아직도 그가 알의 이름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지으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정원사 씨는 쉽게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니베이아도 괜찮았는데.”
“저도 처음엔 괜찮은 것 같았는데, 뜻을 생각하면서 계속 부르는 건 별로인 것 같아서요.”
“천국이란 뜻이랬지?”
“네. 천국아. …음. 역시 별로네요.”
“호호호. 다른 건 뭐였지? 알렉산더? 담덕? 치우?”
해나의 입으로 위대한 왕들의 이름을 듣자 어쩐지 부끄러웠다. 괜히 아이 이름에 너무 힘을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름들을 듣자 제일 마음에 들었던 이름도 꺼내 놓기 민망했다.
“조이, 미아, 클로이, 에린, 린지. 후우.”
“조이나 미아도 괜찮은데.”
“큼. 여자아이면 괜찮겠지만, 남자아이일 때는 쓰기 힘들 것 같아요.”
“호호호.”
왕의 이름을 빌려 오려고 했던 주제에 하긴 민망한 변명이었다. 게다가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이름 역시도 왕의 이름을 빌린 것이었다.
“하암.”
“산이 깼어? 미안, 이제 조용히 말할게. 더 자.”
“태주. 겅부.”
“아침부터? 쉬이. 공부는 나중에 하고 좀 더 자. 어제 늦게 잤잖아.”
그가 더 자라고 토닥여 봤지만, 이미 잠이 달아난 얼굴이었다. 품 안의 태산이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그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태주는 왜 아이를 침대에 안 눕히고 품에 안고 있었는지 잠시 후회했다.
“공부?”
“그림 그리기요. 어제도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렸더라고요.”
“어머나. 산이 그림 공부했어?”
“앙. 사니 겅부.”
“호호호. 좋아. 만약 산이가 해나 그림을 그려 준다면, 산이한테 좋은 색연필을 선물할게.”
“앙!”
둘 사이에 거래가 성립되었다. 태주는 태산이의 그림을 받은 해나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벌써 예상되었다. 그는 그새 품을 벗어나 해나를 붙들고 상점으로 가고 있는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색연필 외의 다른 물건들은 그가 사 줄 생각이었다.
‘이 층의 거실을 아이 공간으로 만들면 되겠지. 나중에 모린이 와서 같이 놀아도 되고, 알이 깨어나면 같이 놀 수도 있고.’
*
태산이를 해나에게 맡겨 둔 태주는 평소처럼 정원 일을 했다. 2호의 도움을 받은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워낙 일을 잘 도와줘서 일까,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윽. 이 녀석들 이제 너희 덩치를 생각해야지.”
“캉캉. 캉캉.”
“어휴. 귀여우니 봐줬다. 이번엔 또 뭐가 먹고 싶어서 이리 달려왔을까? 응?”
“캉캉.”
2호는 정원을 떠났고 해나는 태산이를 봐주느라 바빴다. 오늘은 그렘린에게 과일을 잘라 줄 사람이 태주 자신뿐이었다. 그는 그렘린을 밟지 않게 조심하면서 녀석들이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억. 여기에 웬 가시넝쿨이 있어?”
“캉캉.”
“이 열매를 먹고 싶은 거야? 맛있어 보이긴 한다.”
“캉.”
정원에는 무덤초처럼 가끔 정원사인 그가 심지 않은 식물이 자란다. 그렘린이 먹고 싶어 하는 이 넝쿨에 달린 보라색 열매도 태주가 심지 않은 식물이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어쩌면 다른 정원사의 정원이 인근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 정원에서 씨앗이 날아온 것인 지도 몰랐다.
“잘했어. 이 넝쿨 가시가 엄청 뾰족하다. 너희가 따려고 했으면 다칠 수도 있었겠어.”
“챱챱.”
“잘 먹네. 맛있니?”
“캉.”
그렘린이 먹었다고 안전한 식물은 아니었다. 태주는 열매를 여러 개 따서 아공간에 넣었다. 식물 사전에서 확인한 후에 괜찮으면 다른 정원 식구들과 같이 맛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희 진짜 많이 자랐다.”
“캉캉.”
“킥. 아유. 얼굴 봐라. 아주 보라돌이가 다 됐잖아. 이리 와. 오빠가 닦아 줄게.”
“캉.”
태산이의 경우 1차 성장을 겪으며 얻은 몸을 2차 성장 시기까지 유지한다. 그와 다르게 그렘린은 보통의 동물들이 그렇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성장기이니 당연한 얘기였지만, 자꾸 돌려보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안했다.
‘펫 용 강화제가 효과가 있으려나? 시스템에 속한 아이들이 아니라서 효과가 없을 것 같단 말이지.’
태주는 어린 태산이에게 여러 가지 비약과 강화제를 먹였었다. 건강한 아이였지만, 노파심이 끊이지 않아서 좋다 싶은 것들은 모두 챙겨 먹였었다. 그 덕분에 현재의 튼튼한 태산이가 된 것 같았다.
그렘린에게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몸에 좋은 약초로 만드는 것이니, 먹여도 될 것 같았다. 만약 효과가 전혀 없으면, 제약 기술로 보약을 넣은 영양 간식을 만들어 먹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단단도 먹이고.
-펄럭펄럭.
“응? 알아, 왔어? 억! 너 그게 무슨 꼴이야?”
-펄럭펄럭.
“크으. 범인이 누구인지 알겠다. 이리 와, 너도 닦자.”
이 정원에서 붉은 알의 표면에 색연필로 죽죽 선을 그어 놓을 사람은 태산이 녀석뿐이었다. 만약 해나가 그려 준 거라면 이렇게 알이 깨진 것처럼 금을 그었을 리 없었다.
-뽀득뽀득.
“이놈 자식. 알한테 이게 무슨 못된 짓이야.”
-펄럭펄럭. 펄럭펄럭.
“괜찮다고?”
-펄럭펄럭.
“아이고. 착하기도 하지. 알껍데기에 온통 색연필 자국인데 감싸 주다니. 알았어. 안 혼낼게.”
처음 알의 모습을 보고 엉덩이를 팡팡 때려 줄 생각이었던 태주의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자세히 보니 일부러 금을 그은 게 아니고, 눈, 코, 입과 머리카락을 그려 준 것이었다. 솜씨가 너무 조악하고 투박해서 금이 간 것처럼 보였지만, 자기 딴에는 알을 위해서 색색의 색연필로 그려준 것이었다.
“알은 지금도 예뻐. 그림 안 그려도 예쁘니까, 다음에 태산이가 또 그려 준다고 그러면 싫다고 해. 알았지?”
-펄럭펄럭.
“킥. 싫기는. 혹시 알록달록한 게 좋아?”
-펄럭펄럭.
펄럭펄럭. 알이 펄럭이면서 타고 다니는 카펫도 굉장히 화려한 색이었다. 아마도 알은 알에서 나오기도 전부터 취향이 정해진 모양이었다. 알록달록한 돌길 위로 카펫을 움직여서 다니더니, 실은 그 길 색이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그나저나 네 이름이 고민이다.”
-펄럭펄럭.
“사실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분의 이름을 너한테 붙여 줄 생각이었거든. 같은 발음의 다른 뜻을 가진 한자도 찾아놨는데.”
-펄럭펄럭.
“알려 달라고? 이도. 세종대왕님의 이름이야. 이가 성이고 도가 이름이야. 도, 도야. 역시 너무 단순하지?”
-펄럭펄럭. 펄럭펄럭.
“어? 괜찮아? 마음에 들어?”
마지막 질문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기분이 좋은지 알의 카펫이 그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그렘린은 알이 기분 좋은 이유도 모른 채 카펫을 따라서 그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 도야. 네 이름을 흐음…. 도도? 도도, 도도야.”
-펄럭펄럭.
“이름은 이도로 하고 평소엔 애칭으로 도도라고 부를게. 괜찮지?”
“캉캉.”
“킥. 그렘린들이 듣기에 괜찮은가 보네.”
이도. 태주는 알한테 자신과 같은 성씨에 염이라고도 읽는 불꽃 도(植) 자를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 지금은 임시 등록증에 등록된 알이지만, 나중에 정원이 레벨 5가 되어서 정식 펫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면, 이도라는 이름으로 등록할 것이다.
“도도.”
-펄럭.
“오두막으로 가자.”
-펄럭펄럭.
“하하하. 오빠 태워 주려고? 고마워.”
태주는 그도 탈 수 있을 정도로 카펫의 크기를 늘린 도도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폴짝폴짝 뛰는 그렘린도 태우고 그도 카펫에 올라앉자, 도도가 카펫을 오두막으로 몰았다.
고민하던 알의 이름 문제를 처리한 태주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제가 보호하고 돌봐야 할 알의 이름이 없는 게 내내 걸렸었는데, 이젠 그 고민은 던져 버려도 될 것 같았다.
“희, 해나. 오늘 점심은 뭐예요?”
“게시판 앞에서 뭐 하세요?”
“태주, 큰일이야.”
“왜? 어? 녹색 종이?”
점심도 먹을 겸 알의 새 이름을 둘에게 알려 주러 오두막으로 온 그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길잡이 협회에서 온 협조 요청 공문이었다.
*
[길잡이 협회 협조 공문전쟁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었던 생물을 도와주신 정원사님과 정원사 협회의 도움에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길잡이 협회에서 해당 차원의 환경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차원은 전쟁이 끝나고 떠나왔던 생물들이 돌아가도 괜찮은 상태였습니다.
공문 발송 후 숲 지역 환경 재건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식물과 곡물 재배에 도움을 주신 정원사님과 정원사 협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보호 생물의 귀환은 삼 개월 후입니다. 보호 생물의 귀환 시기는 숲 지역 환경 재건 진척도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녹색 의뢰. 길잡이 협회의 협조 공문의 내용은 최근 그가 걱정하던 것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렘린이나 다른 생물들을 위해서라면 전쟁이 끝나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태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그래도 헤어지는 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삼 개월이라니. 너무 짧잖아요.”
“좋은 일이긴 한데, 마음이 좀 그렇긴 하네.”
“태주….”
길잡이 협회의 공문을 본 이후로 태주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잠시 낙담하고 슬퍼하던 그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주먹도 단단히 쥐고 표정도 다잡았다.
“후우. 이렇게 된 이상 프로젝트를 가동해야겠어요.”
“프로젝트? 가동?”
“슈퍼 그렘린 만들기 프로젝트요.”
“응?”
“숲 지역이든 바위 지역이든 상관없이 우리 애들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줘야겠어요.”
그는 펫 전용 비약 먼저 먹여 보자며 그대로 상점으로 향했다. 예전에 태산이가 먹었던 것과 비슷한 비약 종류는 상점에 항상 올라와 있는 스테디셀러였다.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튼튼한 골격 비약] [발톱 강화제] [날카로운 이빨 비약] [면역력 강화제]그렘린의 숫자에 맞춰서 각각 네 개씩 비약을 샀다. 2호와 이동문, 다른 물품들을 옮기고도 DP는 충분했다. 효과가 미약하다면 여러 번 사서 먹여도 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펫 전용인데, 효과가 있으려나?”
“만약 없으면, 보약을 지어 먹일 거예요.”
“호호호. 좋아. 그럼 나도 앞으로 삼 개월간 이 아이들에게 영양가가 듬뿍 들어간 식사를 먹이도록 하지. 곡물이나 과일도 효능을 극대화하는 레시피가 있다고. 필요한 약초는 부탁해도 되지?”
“물론이죠. 얼마든지 부탁하세요.”
“희는? 희는 뭐 해?”
희가 그렘린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회복 계열의 마법이 특기인 작은 요정인 희의 도움은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희가 제피르와 함께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제피르랑 그렘린의 훈련을 도와줬으면 해.”
“훈련?”
“응. 숨기 훈련. 그렘린은 흰털이라 숲에서도 눈에 잘 띄잖아. 무리 생활을 하는 애들이라고 했지만, 무리에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응.”
“희가 그렘린에게 숨는 요령을 가르쳐 줘.”
“응. 맡겨 둬, 태주.”
할 일을 정했지만, 태주의 마음은 심란했다. 비약이나 숨는 방법을 가르치는 정도로 귀환 준비가 충분할지도 의문이었다.
-끼루루룩.
그렘린의 비약은 저녁에 먹이기로 하고 다 같이 잊고 있던 점심을 먹으려던 때였다. 언제나처럼 도착을 알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펠리컨 우편배달원이 정원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신가. 이런 기운이 없구만. 오늘 전달하는 소식 때문인가?”
“알고 계시네요. 네, 맞아요. 임시 보호가 끝날 거라는 소식 때문에 그래요.”
“흠. 힘내시게. 그들에겐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쁜 일이라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아직 어린 애들이라서요.”
“정원사 협회의 공문이라네. 봐 두게나. 보면 조금 기운이 날 테니.”
우편배달원이 주고 간 공문의 내용은 그의 장담처럼 기운이 나는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그렘린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열흘에 한 번씩 각 종족끼리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요정 숲에 마련합니다. 정원사님께서 보호하시고 계신 흰털 그렘린의 교류 일자를 알려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교류?”
“확실히. 무리 생활을 하는 흰털 그렘린이니 귀환하기 전에 얼굴을 익혀 두는 건 도움이 되겠어. 정원사 씨, 참가할 거지?”
“네. 참가해야죠. 미리 친구를 사귀어 두어야죠.”
당연히 참가할 생각이었다. 다들 미리 만나서 친구를 사귀어 두었는데, 우리 그렘린만 친구가 없어서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태주가 급하게 다시 상점으로 뛰어갔다.
“정원사 씨?”
“아까는 몸이 튼튼해지는 비약만 샀잖아요. 예뻐지는 비약도 사야죠. 우리 애들은 그냥도 예쁘지만, 더 예뻐지면 더 좋을 거 아니에요.”
“호호호. 마음대로 해. 그래도 우선 오늘 저녁에 펫 전용 비약이 효과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게 어때?”
“큼. 몸에 좋은 거니, 효과 없어도 괜찮아요.”
임시 보호 종료를 삼 개월 앞둔 태주는 슈퍼 그렘린 만들기 프로젝트 외에 열혈 보호자 모드도 가동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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