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9
18. 제약기술
“희 공중 계단을 솜사탕 무지개 쪽으로 옮겨 줄래?”
“태주 무지개 먹을 거야? 희는 노란색이 제일 좋아.”
태주는 희가 옮겨 준 계단을 밟고 올라가 솜사탕 무지개를 가위로 크게 자르기 시작했다. 노란색에 작은 이빨 자국이 나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희가 냠냠 베어 먹은 것 같았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태주가 희의 이빨 자국을 피해서 다시 가위를 놀렸다.
“이렇게 돌돌 감아서 유리병에 넣으면 보기도 좋고, 먹기도 편하겠지?”
“으응? 태주, 솜사탕 무지개 먹지 않아?”
“이건 선물할 거야. 화이트데이라고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 있어. 우 팀장님이랑 미나 누나한테 주려고.”
“우웅, 우 팀장님? 미나 누나?”
“응, 현실에서 희처럼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솜사탕이 든 병을 잘 챙긴 후에 바구니를 들고 하트 나무 열매를 따러 갔다. 지금까지 하트 나무 열매는 과일의 역할만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을 만드는데 쓸 생각이었다. 어젯밤에 단단이 황금 잉어 한 마리를 잡았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비늘을 아침에 건네받았다.
별 나무 열매 가루, 깨끗하게 씻은 황금 잉어 비늘, 그리고 잘 말린 허브 한 주머니. 여기에 상점에서 산 크림 베이스를 넣으면 된다.
태주는 냄비를 하나 꺼내 깨끗한 물을 담았다. 우선 황금 잉어 비늘이 녹을 때까지 천천히 끓인 후에 나머지 재료를 넣고 잘 끓여서 채로 걸러야 했다. 이 물에 크림 베이스를 넣고 휘휘 저어주면 반짝반짝 피부 크림이 완성된다.
모든 재료를 테이블에 두고 제약 테이블을 건드리면 자동 제작을 하겠냐는 선택 창이 나온다. 태주는 자동 제작을 선택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약 만들기는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었기 때문이다.
“태주, 하트 나무 열매를 잊으면 안 돼.”
“아차. 고마워, 희. 잊고 있었어.”
기껏 따온 하트 나무 열매를 1층 주방에 그대로 두고 와 버렸다. 매번 간식으로 먹다 보니 약에 넣는 것을 잊고 말았다. 태주는 황금 잉어의 비늘이 녹는 사이 하트 열매를 하나 넣었다. 맑은 황금빛 액체가 냄비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순서대로 재료를 넣은 후에 냄비 채 거름망 위로 쏟아 액체만 걸러냈다. 진한 허브와 과일의 냄새가 공방 안에 퍼졌다. 뜨거운 액체 속에 사각형의 크림 베이스를 여러 개 넣었다. 우윳빛의 베이스가 버터처럼 천천히 녹아내렸다.
태주는 상기된 표정으로 막대를 저었다. 이제 곧 크림이 완성된다. 이렇게 간단한 건데, 몇 달 동안 낚시로 고생했다. 중간중간 연못에 뛰어들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만약 희가 없었다면, 진즉 연못에 바위를 던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완성!”
[반짝반짝 피부 크림](평범)달빛을 받으며 자라는 황금 잉어의 비늘이 들어간 크림이다.
바르는 부위에 은은한 광채가 서린다.
제작자: 이태주
“태주, 축하해!”
“후후후. 고마워, 희.”
왜 이렇게 뿌듯할까. 완성된 반짝반짝 피부 크림의 등급은 평범이었다. 그런데도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태주는 완성된 크림을 용기에 담기 전에 얼굴에 발라보았다. 태주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희도 크림을 작은 손으로 콕 찍어 얼굴에 발랐다.
“아하하하. 희 그게 뭐야.”
반짝반짝 피부 크림은 희에겐 너무 과한 물건이었나 보다. 희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원래부터 반짝이던 날개보다 더 밝게 반짝이는 얼굴 때문에 마치 전구를 켜둔 것 같았다.
“이잉. 태주, 이건 너무 반짝거려.”
“날개에 발라 볼래? 더 반짝일 수도 있는데.”
“으응. 날개가 무거워질 것 같아. 희는 안 바를래.”
“그래. 그럼 나중에 희가 바를 수 있는 걸 만들어 보자.”
반짝반짝 피부 크림은 생각했던 대로의 효과였다. 피부에서 광채가 나는 느낌이었다. 크림을 바르자 번들거리는 느낌 없이 건강하게 빛나는 피부가 되었다.
‘미나 누나가 진짜 좋아하겠다. 성분을 물어보면 그냥 허브랑 과일이라고 해야지.’
“태주, 여기 남은 허브는 창고로 다시 보낼까?”
“아니. 잠시만.”
태주가 태블릿으로 약초학책을 열어서 ‘진통에 좋은 허브 티’를 검색했다.
“허브 티?”
“응, 내일 만나러 가는 감독님이 몸이 좋지 않으시거든.”
“아파? 태주는 아프지 않지?”
“응, 난 건강해.”
이제영 감독님의 병명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오래전 작게 난 기사를 스치듯 본 거라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약은 정해진 것만 드셔야 할 테니, 부작용 없는 이런 차가 더 나을 수도 있고.’
“이런. 힘찬 붉은 열매는 없는데.”
“태주, 힘센 붉은 열매가 있어.”
힘찬 붉은 열매는 기운을 북돋워 주는 효과가 있는 열매이고, 힘센 붉은 열매는 힘이 세지게 하는 열매로 힘 물약을 만들 때 쓰는 열매였다.
“어? 그걸 대신 써도 돼?”
“응. 얼음수정 열매와 섞어서 쓰면 괜찮아.”
무지개 씨앗에서 난 작물을 판 후에 신이 나서 묘목들을 심은 보람이 있었다. 사실 모양이 예뻐서 심은 것들이 많았는데, 심어두니 다 쓸모가 있었다.
태주가 한창 허브 티 만들기에 매진할 때, 태산과 단단은 정원을 활개 치고 다니고 있었다. 두 네발짐승은 빠른 속도로 공터를 가로질러 트리하우스에 도착했다. 태산이 냥냥 거리며 트리하우스의 밧줄 사다리를 타는 방법을 단단에게 설명해줬다. 단단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열심히 설명하는 태산에 얌전히 설명을 들어주었다.
둘은 사다리를 올라 트리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트리하우스 안에는 아주 큰 둥근 방석이 깔려있었다. 날개 달린 손님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태주가 가져다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석 위에 하얀색 깃털이 하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희도 태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날개 달린 손님이 왔다 간 것 같았다. 태산은 그 깃털의 냄새를 기억해 두었다.
*
태양의 조각이 깃든 기타, 연습용 바이올린, 허브 티 병. 솜사탕과 피부크림이 든 쇼핑백. 태산이 이동 장과 장난감, 이유식 등을 챙긴 가방. 그리고 태주의 태블릿과 전화기 등이 든 백팩까지. 견우는 제법 많은 짐을 차에 옮겨 실었다.
“아! 잠시만요, 매니저님.”
태주가 오피스텔에 두고 온 물건이 있는지, 빠르게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의 손에는 커다란 박스가 하나 들려있었다. 견우가 빠르게 다가가 대신 받아 들었다. 묵직한 상자 무게가 느껴졌다.
“이게 다 뭡니까?”
“좀 많죠?”
태주도 자기가 챙긴 짐의 양을 보더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 사람들이 초코체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몇 번 들락거리다 보니 초코체리 인기가 상당한 걸 알 수 있었다.
“초코체리예요.”
“어제 딸기도 주셨는데,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괜찮아요. 무리하는 것 아니에요.”
‘정원에서 직접 들고 오는 건 전송 수수료보단 좀 비싸지만, 새벽에 택배를 받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낮에 정원에 들러서 우편함으로 전송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태주는 주로 새벽 시간에 다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포장 용품을 사고 수수료만 내면 되는 일이니, 실제로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게 좀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태주는 이제영 감독님에게 선물할 허브 티가 든 쇼핑백을 슬쩍 쳐다봤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역시 허브 티도 평범 등급이 나왔다. 태주의 제약기술 레벨이 아직 낮기도 했고, 재료로 사용한 허브도 일반 등급이라 어쩔 수 없었다. 상급의 재료는 그만큼 키우기 쉽지 않았다.
실어 놓은 물건이 많아서일까, 차 안이 좀 좁은 것 같았다. 이제영 감독님이 산다는 양평에 가기 전에 사무실에 들러 물건을 내려놓고 가야 할 것 같았다.
*
양평의 이제영 감독 집은 정원이 꽤 넓었다. 잘 손질된 잔디에 듬성듬성 디딤돌이 놓여있었다. 단층의 갈색 건물은 한적한 마을에 잘 어우러졌다. 이성군 일행은 이미 도착했는지, 주차장에 차가 한 대 서있었다. 태주와 견우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태주가 태산이의 이동 장을 집어 든 뒤, 내려놓았던 짐을 챙기려 했지만 이미 누군가 모두 챙긴 뒤였다. 언제 나오셨는지 능력자 매니저님이 요령 좋게 짐을 모두 챙겨서 집 안으로 옮기고 계셨다.
‘와, 진짜 무슨 능력 같은 걸 가지고 계신 게 아닐까?’
태주가 능력자 매니저님의 뒤를 따르는 동안, 태산이 냥냥 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고양이와 습성이 달랐다. 고양이들은 낯선 곳에 가면 두려워한다는데, 태산인 새끼지만 호랑이라 그런지 새로운 장소에 흥분하곤 했다.
“조금 이따가 꺼내 줄게. 잠깐만 기다려.”
“냥냐앙.”
‘이럴 땐 말을 못 알아듣는 게 낫구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음식 냄새가 물씬 풍겼다. 곧 점심 먹을 시간이라 그 준비를 하는 듯했다.
“태주야 인사해라. 여기 이제영 감독.”
“안녕하세요. 이태줍니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제영이예요.”
이제영 감독님은 깡마른 체격에 본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성군 선배와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외모만 보면 삼촌과 조카 정도로 보였다. 아무리 배우가 관리를 받아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해도 차이가 심했다. 기억대로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저, 태산이를 좀 꺼내줘도 될까요?”
“아이고 답답하겠네. 어서 꺼내줘요.”
“신경 쓰지 말고 꺼내줘. 이미 데려오는 거 알고 고양이 점심도 준비해 놨어.”
“네?”
“닭가슴살 삶아 놨는데, 그거 먹여도 되지?”
삼계탕 냄새가 나서 점심은 그것이구나 했는데, 태산이 용도 준비해 주신 것 같았다.
“성군이한테 배우를 찾았다고 듣고 내심 기쁘면서도 미안했어요. 처음엔 이제 촬영할 수 있겠구나, 하고 좋아했는데. 이 영화 찍은 뒤에 고생할 배우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집만 남은 놈이 괜히 젊은 사람 앞길 막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고 그랬어요. 태주 씨 정말 이 영화 촬영해도 되겠어요?”
모든 것을 잃어서 악만, 깡만 남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이제영 감독은 태주의 상상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해탈한 고승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지킬 것과 버릴 것,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성군과 능력자 매니저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확실했다.
“태주 씨?”
태주는 이제영 감독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챙겨온 바이올린을 꺼내, 현을 켤 자세를 잡았다.
태주의 손에서 현란하고 불안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환상에 지친 지휘자가 찾아 들어간 숲에서 만난 폭풍 같은 인연. 한순간에 자취를 감춰버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민재하와 만나는 장면에 묘사되어 있던 모습과 닮아있었다.
Vivaldi: Four Seasons: Summer: Presto – ‘Storm’
겨우 2분 남짓의 짧은 연주였지만, 그곳에 있는 모두는 숨소리도 죽인 채 태주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태주가 활을 내렸지만, 연주가 준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재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어요.”
“허, 이런 연주를 들려주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눈앞에 재하를 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요.”
태주가 배부른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 전 연주하면서 느껴졌던, 혼란과 불안은 거짓이었다는 듯이 안정된 호흡과 자세로 돌아왔다.
‘연주만으로 부족해서 그 상태로 재하를 연기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 짧은 사이에 준비도 없이 바로 연기에 들어갔다고? 괴물 같은 녀석.’
태주의 연기를 직접 본 이성군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김윤선 선배가 칭찬했다고 들어서 한 수가 있겠거니 했지만, 실제로 본 태주는 숫제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얌전한 고양인 줄 알았는데, 실은 언제든 목덜미를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맹수였다.
바이올린을 갈무리한 태주가 한쪽에 놓아두었던 기타를 꺼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태주의 행동에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태주도 그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점심도 먹었고, 곧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전에 기타연주를 이제영 감독님에게 들려줘야 했다.
Come on, let it go Just let it be
Why don’t you be you
And I’ll be me And I’ll be me
James Bay – Let it go
[회복력이 12시간 동안 매우 높아집니다.]내심 치유력을 바랐는데,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태주가 다른 사람을 보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헐. 너 왜 연기하니. 그냥 가수 하는 게 낫겠다.”
“어, 아니, 이게 참. 허, 말이 안 나오는 실력이네요.”
태주는 이런 반응을 예상한 듯 빙긋 웃더니 기타를 챙겨 넣었다. 사람들이 말리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지만, 태주는 매정하게 기타 케이스를 닫아버렸다. 기타의 효과는 중첩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챙겨 온 허브 티의 효능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준 뒤에 태주는 서울로 올라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아직 본 촬영까지 6개월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바이올린 실력을 더 올려놔야 했다.
“태주 씨 말씀대로네요.”
“네?”
“연주나 연기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아, 그건 사실 좀 건방진 말이었죠. 그래도 정말 연습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아뇨, 자신하실 만한 실력이었습니다.”
정말로 왜 가수가 아닌 연기자가 되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노래 실력과 연주 실력이었다. 프로필 영상이나 오디션의 조악한 영상을 통한 게 아닌 실제 연주와 노래를 들어보니 알겠다. 배우만 하기에는 많이 아까운 실력이었다.
“혹시 나중에 OST 작업 요청 같은 게 들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력은 충분하신 것 같은데요.”
“홍보에 도움만 된다면야 상관없어요. 그러고 보니 올 한 해는 음악 관련 작품만 하겠네요.”
“가장 경쟁력 있는 특기이니 우선은 그런 작품이 먼저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렇게라도 우선 얼굴을 알려야죠.”
돌아오는 차 안. 두 사람은 잠든 태산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배경으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