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
19. 이벤트 우편
[친애하는 정원사님.정원사 협회에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부디 참석하셔서 소중한 경험을 하시고, 귀한 상품도 받아가세요.
이벤트: 달 사탕 씨앗 키우기
달 사탕은 달 모양의 사탕 열매가 맺히는 나무입니다.
여러 가지 색의 달 사탕 열매가 맺힐수록 등급이 높습니다.
정원사님의 훌륭한 솜씨를 뽐내세요.
대상: 금색 상자x 1. DP 3000.
우수상: 은색 상자x 1. DP 1500.
참가상: 달 사탕 씨앗. DP 10.]
태주의 정원 하늘을 가르며 거대한 펠리컨 우편배달부가 날아왔다. 우편배달부는 붉은 실로 묶인 종이를 우편함에 넣고, 다시 날아갈 방향을 가늠한 후에 정원을 떠났다.
희는 무슨 편지가 왔는지 궁금했지만, 태주가 올 때까지 착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
태주가 정원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희가 날아왔다. 그리고는 태주를 우편함으로 인도했다. 빨리빨리 가자며 흥분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태주, 우편이 왔어.”
“우편? 설마? 정원도 세금 내야 해?”
“세금?”
“아! 아니. 우편이라고 하니까, 고지서가 떠올라서. 큭큭.”
카드 고지서에, 납세 고지서 등 직접 챙기진 않았지만, 매니저 형이 항상 챙겨서 회계사에게 보냈던 게 떠올랐다. 팬이 보내는 물건들은 일차적으로 회사에서 검토하니 직접 받는 것들은 모두 그런 것들이었다.
태주는 자신의 어이없는 생각을 비웃으며, 우편함의 편지를 열었다. 둘둘 말린 종이를 붉은 끈으로 묶은 고풍스러운 우편이었다.
“이벤트 소식인데. 달 사탕 씨앗 키우기.”
“달 사탕? 태주, 달 사탕은 아주 달콤한 거야.”
“그럼 한 번 참가해 볼까? 동봉된 신청서를 찢으면 씨앗을 가져 다 준다고?”
태주가 힘차게 신청서를 찢자 신청서가 화르르 불꽃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아마 이게 참가 신청인 것 같았다.
“태주, 커다란 펠리컨이었어.”
“펠리컨? 우편배달부?”
“응. 하얗고 커다랬어.”
희가 봤다는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한편 상점의 상품을 구경했다. 때때로 타임 세일이 시작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냐아우웅.”
“응응. 정말이야?”
“단단.”
“응응. 태주에게 말해 줄게.”
태주가 상점을 구경하는 동안 태산과 단단은 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태주, 태산이와 단단이 트리하우스에 다녀왔대.”
“그래? 요새 둘이서 거기에 자주 가더라.”
“응. 거기서 하얗고 커다란 깃털을 발견했대.”
“하얀 깃털?”
트리하우스에 몰래 왔다 간 방문자가 있는 것 같았다. 흰 깃털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예상대로 날개 달린 손님이 왔다 간 것 같았다.
‘흰 날개를 가진 방문자라. 혹시 천사? 에이 아니겠지? 그럼 하피나 페가수스 그런 걸까?’
끼루루룩!
‘왔다!’
“안녕?”
“안녕하신가?”
“응, 희는 안녕이야. 달 사탕 씨앗을 가지고 왔어?”
“그렇다네, 오늘은 달 사탕 씨앗 배달이 아주 많다네. 모든 펠리컨이 다 배달을 하고 있다네.”
“우와.”
희가 펠리컨 우편배달부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태주는 그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하얀 깃털이 풍성한 날개가 눈에 가장 잘 띄었다.
‘손님이 아니라, 우편배달부가 흘린 깃털인 것 같은데.’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방문자는 항상 반가운 법이었다. 태주도 펠리컨의 곁으로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이 씨앗을 받으시게나. 여기 이 화분도. 이벤트 기간이 끝나는 날 화분과 달 사탕 나무는 자동으로 회수된다네. 달 사탕은 아주 달콤하니 그전에 잊지 말고 맛을 보시게나.”
“큭. 알았어요. 전해줘서 고마워요.”
독특한 말투에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감사를 전했다. 펠리컨은 인사를 마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끼루루룩 소리를 내더니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희, 우리 정원 말고도 정원이 여럿 있는 것 같지?”
“응, 아마 매우 매우 많은 정원이 있을 거야.”
“하긴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으니까.”
어떤 조건을 채워서 이 꿈의 정원을 얻을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다만 이제 이곳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물건들 때문은 아니었다. 희와 태산이, 단단까지 이곳에서 만난 인연이 더없이 소중했다.
*
웹드라마의 촬영장소는 GTS의 소속사인 G1엔터의 건물이었다. G1엔터는 아이돌 중심의 연예 기획사답게 입구부터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다. 회사 로고, 소속 연예인의 사진과 앨범이 벽에 부착되어있었다. 통로에는 화려한 그라피티로 GTS 멤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태주는 화려한 통로를 김견우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이미나를 대동하고 통과하고 있었다. 오디션을 보러 왔을 때,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건물을 안내받았었다.
작곡가 출신의 대표님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G1엔터에는 훌륭한 녹음실이 있었다. 태주가 프로듀싱하는 장면은 모두 그곳에서 찍게 될 예정이었다.
사실 태주는 이런 녹음실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다. 회귀 전에 OST를 녹음하기도 했었고, 그 이전에 가이드녹음 가수 아르바이트도 했던 적이 있었다.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 입장은 바뀌었지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자, 지금 촬영할 신은요. 계속 실수하는 은호를 매섭게 야단치는 신입니다.”
태주는 한 손에 대본을 쥔 채 감독의 설명을 귀담아들었다. 이미 모든 대본을 외우고 있었지만, 촬영장에서는 항상 대본을 들고 있었다. 이건 태주의 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다.
*
“오늘은 돌아올까아~.”
“다시. 끝 음 끌지 말고.”
“오느른 돌아올까아.”
“다시. 오늘은 발음 정확히 안 하지?”
녹음 부스 안에 어린 태가 남은 청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마지막 음에서 계속 머뭇거리다 박자를 놓치거나 발음이 뭉개지고 있었다.
슈트 재킷을 사납게 벗어버린 프로듀서가 짜증을 감추지 않고 머리를 거칠게 뒤로 넘겼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켜고 녹음 부스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이게 장난이야? 왜? 내가 다 만져서 만들어 줄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꿈 깨라. 너 말고도 그 자리에 설 애들 수도 없이 많아. 그따위로 할 거면 당장 나가.”
“죄, 죄송합니다.”
“마지막이야. 이번에도 제대로 못 하면 대표님한테 보고할 거다. 네 실력으론 데뷔는 꿈도 못 꾼다고. 알았어?”
“네, 네.”
프로듀서의 질책을 들은 청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한참 청년을 노려보던 프로듀서가 옆에 앉은 기사에서 지시를 내린 후, 다시 녹음이 시작됐다.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이 나오자 태주가 자리에서 벗어나 모니터링을 하러 다가갔다. 사람들은 태주가 지나가자 저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좀 전에 프로듀서 역할을 하면서 야단을 치던 모습이 너무 매서워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동료 기사 역으로 대사 없이 앉아있던 배우가 땀을 닦는 모습도 보였다.
“괜찮아. 좋아. 이대로 가도 돼. 어찌나 실감 나든지, 내가 혼나는 기분이 다 들더라니까. 하하하.”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감독이 태주의 연기가 만족스러웠는지, 너스레를 떨며 칭찬했다. 태주는 모니터 속의 자신의 모습이 꽤 만족스러웠다. 연기를 전혀 못 하는 연습생이 상대 배역이라 좀 더 감정을 두드러지게 표출했는데, 자신의 연기에 이끌려 상대가 제법 괜찮게 반응했다.
‘좀 더 몰아붙여도 되겠네.’
연기를 모르는 이와 함께 촬영하는 것은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자신이 내보이는 감정에 순수하게 반응하는 것이 신선했다. 물론 자신이라면 상대 배우의 감정에 휘둘려 도구로 전락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상대는 가수지 배우가 아니었다. 배려가 없긴 했지만,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
그날의 촬영분은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나머지는 연습생의 몫이었다. 내일과 모레 이틀만 더 촬영하면 태주가 나오는 신은 모두 끝이 난다.
곡을 소화하지 못하는 은호가 프로듀서에게 찾아와 지도를 부탁하는 장면, 은호를 따로 가르쳐 무사히 멤버로 선발되게 하는 장면이 남았다.
태주는 남은 장면들도 최상의 성과를 낼 생각이었다. 처음 조연에 가까운 단역을 맡았다. 어떤 역이라도 영상으로 남는 이상 작품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은 회귀 전부터 태주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번 프로듀서 역도 마찬가지. 크지 않은 역이지만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모니터링까지 끝낸 태주가 다가오자 김견우 매니저가 외투를 걸쳐줬다. 녹음실은 은호의 단독 신이 남아있어서, 누구도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태주 일행은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
“촬영이 빨리 끝났네. 연기 배운 적 없다더니, 생각보다 연기를 잘 하나보다.”
“큼. 그건 아닐 겁니다.”
김견우 매니저는 촬영장에서 본 연습생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실제로 당황해서 반응한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촬영장을 휘어잡아 자신이 통제하면서 연기를 끌어낸 것이란 걸 그곳에 있던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이제 겨우 19살. 아직 성인이 되려면 몇 달 남은 신인배우가 베테랑 배우처럼 상대의 감정을 강제하며 연기를 하게 만들었다. 매너 없는 짓이 분명했지만, 연기를 전혀 모르는 상대와 하는 연기이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아마 지금쯤 촬영장은 쉽지 않은 촬영을 이어나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김견우 매니저의 예측대로 촬영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녹음 장면을 무사히 촬영했던 은호는 독백 신에서 제대로 대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어떤 감정의 독백을 해야 할지 대본을 이해하지 못했다.
감독은 감독대로 좀 전과 같은 연기가 나오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었다. 분명 계속된 실수에 당황하고 힘겨워하는 감정을 잘 표현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의 편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만 보였다. 속이 터질 일이었다.
*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물론 태주가 나오는 장면만. 태주는 마치 신인 연기자가 감정을 절제 못 해 마구잡이로 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견우는 알 수 있었다. 태주가 상대역을 압박해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을.
잠시 촬영이 멈췄을 때, 견우가 태주에게 우려를 내보였다. 상대를 도구 취급하는 일은 상당히 예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어차피 상대가 연기를 계속할 사람도 아니고. 지금 현장에서 눈치챈 사람은 매니저님뿐이에요.”
상대가 배우가 아니니 상관없다는 냉정한 대답에 견우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견우를 보고 태주가 쓰게 웃었다. 자신이 어지간히도 풀어져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기에 방해를 받았을 때 태주가 얼마나 냉정해질 수 있는지 견우는 모를 것이다.
회귀 전 태주는 톱스타였다. 그리고 연기 외적인 일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회귀 전 한 영화 촬영장에서 콜타임에 늦은 단역이 있었다. 태주와 같은 장면에 나와야 하는 단역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한 시간 넘게 촬영을 기다리게 한 단역을 태주는 용서할 수 없었다. 잔인한 일이었지만, 태주는 감독에게 그 단역의 교체를 요구했다.
태주가 그 자리에서 단역의 교체를 요구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설마 설마 했었다. 헐리우드도 아니고 바로 목을 날릴까, 의심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감독이 머뭇거리며 교체를 망설이자, 태주가 단역의 면전에서 제작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단역의 이름을 말하고 거침없이 하차시키라는 요구를 했다.
촬영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평소 스태프들과 격 없이 어울리던 태주의 모습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태주의 본 모습이었다. 태주는 ‘촬영에 방해되면 배제한다.’는 단순하지만 잔인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웹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도 아닌 상대에게 맞추느라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버스킹의 대본을 한 번 더 연습하는 게 낫다고 여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태주는 만족스럽게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