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4
203. 소문 >
이른 새벽 태주는 잠에서 깨자마자 품에서 느껴지는 뜨끈뜨끈한 몸을 심술부리듯 꽉 안았다 풀어 주었다.
요정 숲 방문을 내켜 하지 않던 처음 태도는 어느새 버려 버린 태산이는 좀처럼 정원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데려오겠다고 여러 번 약속한 후에야 겨우 정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어디 가서 체력 부족하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유원지 안을 지치지 않고 뛰어다니는 태산이를 따라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잽싼지 잠깐 눈을 떼면 어느새 놀이 기구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놀랐는지…. 마법적인 안전장치가 있어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설명은 들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었다.
잠시 태산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 태주는 얇은 이불을 잘 덮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촬영으로 드라마의 딱 절반 분량이 끝난다. 이틀 쉬고 그다음 날부터 다시 지방 세트에서 촬영이 시작된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 촬영 진행 속도는 꽤 빠른 편이었다. 리딩부터 촬영하는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이어지고 있어서 태주는 이지명과 드림쉽을 재평가해야 했다.
‘회귀 전엔 쭉 배우로 일하면서 참담한 성적만 받았었는데….’
최근엔 촬영을 한 달 늦게 시작한 게 ‘신의 한 수’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촬영이 원활했다. 감독님의 스타일이 필요한 컷만 찍는 스타일인 이유도 있었지만, 늦춰지던 한 달 사이에 대본이 20화까지 모두 나오고 그걸 촬영진이 숙지할 시간이 충분했던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었다.
“읏차! 오늘 하루 힘내 볼까!”
“이잉.”
“쉬이. 미안. 더 자. 형 조용히 할게.”
기합을 넣는다는 게 목소리가 컸나 보다. 태주는 바로 태산이 곁에 붙어 토닥여서 재웠다. 아이는 더 재울 필요가 있었다. 정원에 돌아와서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아이는 현실로 돌아오기 전까지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놀았었다.
‘휴우!’
토닥이는 손길에 다시 잠든 태산이를 확인한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욕실로 갔다. 지방세트로 옮기기 전이라 오늘은 촬영이 오전부터 있었다. 견우가 오기 전에 외출 준비를 마치려면 바로 일어나야 했다.
스튜디오 촬영분 중 태주가 나오는 촬영 분량은 오늘로 끝이었다. 남은 촬영은 모두 지어 놓은 세트와 양주의 테마파크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촬영은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날쯤에 끝이 났다.
태주는 촬영이 끝나자 견우에게 집이 아닌 회사로 가자고 했다. 드라마 촬영이 중반을 넘어선 상황이라, 이후 일정을 우 팀장님과 논의할 생각이었다. 이틀 뒤부터 다시 지방 촬영이라 시간이 날 때 미리 점검해 둘 생각이었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지만 트리즈 사무실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 홍보팀도 매니지먼트팀도 대부분 남아 있었다. 태주는 그렇게 남은 직원들 사이에서 이곳에서 볼 거로 생각한 적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감독님? 오랜만이에요.”
“태주 씨? 하하하. 볼 수 있을 거로 생각 못 했는데, 제가 오늘 운이 좋은가 보네요.”
“잘 지내셨죠?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하하하. 저야 잘 지냈죠.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고, 성군이 드라마가 끝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을 생각으로 왔어요.”
“성군 형님도 오셨어요?”
태주의 물음에 이제영 감독은 손으로 사무실 안쪽을 가리켰다. 식사하러 가던 중에 잠깐 뭘 챙기려고 사무실에 들렀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태주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영 감독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선율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엔 그의 일정이 바빠져 이제영 감독과 만날 시간을 따로 내지 못했었다. 그저 이제영 감독이 외국의 조용한 도시를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질병 완화제를 인간이 복용하면 두 배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었으니, 앞으로 이 년 좀 넘게 남으셨나?’
“오래 여행 다니셨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이곳저곳 다녔어요. 유럽도 가고 아프리카도 다녀왔어요.”
“다음에 찾아뵐 때 어디에 다녀오셨는지 들려주세요.”
“하하하. 그래요. 한동안 양평 집에 있을 거예요. 언제든지 놀러 와요. 태산이도 같이요.”
챙기려던 물건을 찾았는지 이성군이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태주는 오랜만에 본 이제영 감독과 바로 헤어지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식사하러 가는 사람을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태주, 오랜만이다. 저녁 먹었어?”
“오랜만이에요, 형님 저녁은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같이 가자고 하려 했더니….”
아쉬움이 역력한 말투에 태주의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비치자, 이성군이 고개를 저었다. 우연히 만난 상황에 그런 일로 미안해할 이유가 없었다.
“네 촬영 끝나면 날 잡자. 진혁이랑 해서 다 같이 보자.”
“네. 그래요. 제가 촬영 끝나면 연락 드릴게요.”
“그래. 그때 보자. 그런데 태주 너 혹시 차기작 정했어?”
“아뇨. 아직 좀 일러서요.”
“하긴 아직 한창 촬영 중이지? 그럼 너 혹시 촬영 끝나고 영화….”
“성군아!”
태주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이성군을 이제영 감독이 말렸다. 하지만 영화라는 단어가 이미 그의 귀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태주는 이성군이 자기 일처럼 나서고 이제영이 말리는 모습에서 이제영 감독 차기작 얘기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감독님 차기작 준비하세요?”
“어. 시나리오는 거의 완성 단계야.”
“그만. 성군아, 그 얘기는 그만해.”
“…그래. 태주 넌 못 들은 거로 해라.”
“이미 들었는데요.”
“아니. 이건 내가 실수한 게 맞아. 신경 쓰지 마라.”
이성군은 한 번 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영 감독이 빨리 가자며 그런 그를 잡아끄는 게 보였다. 태주는 대체 이제영 감독이 무슨 영화를 준비하길래 바로 입을 닫은 건지 궁금했다.
“매니저님, 이제영 감독님 영화에 관해서 들은 게 있으세요?”
“아니요.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도 지금 알았습니다.”
“뭘까요? 무슨 내용이길래 저렇게 바로 자리를 뜬 건지 궁금하네요.”
“알아볼까요?”
“음. 아니요. 일부러 감추는데,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죠. 이만 들어가죠.”
“예.”
복도에 서 있던 태주와 견우는 바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더 지체해서 안 그래도 퇴근이 늦은 그녀를 붙잡아 두고 싶지 않았다.
우 팀장은 태주에게 한 무더기의 시놉시스와 다시 한 무더기의 예능 섭외 제안서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중 쓸 만한 것들을 고르느라 꽤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에 출연하셨던 예능 프로 감독님들도 모두 다시 연락을 주셨어요.”
“예능이 재밌긴 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네요.”
“그렇죠. 드라마 촬영 끝나면 바로 미뤄 뒀던 화보부터 찍으셔야 하니. 광고는 어떻게 하실래요?”
“괜찮은 거로 두세 개 골라 주세요. 드라마 끝나면 촬영하는 일정으로요.”
“네. 광고는 그렇게 할게요. 그럼 이제 이래저래 계속 미뤘던 팬 미팅 건에 관해서 얘기해 봐요.”
팬 미팅. 복무로 2년의 공백이 있지만, 이미 그가 데뷔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팬클럽의 팬 미팅 개최 요청을 더는 미루기 힘들었다.
“몇 명이나 오실지….”
“회의 결과 5천 석 규모가 적당하다는 판단이에요.”
“5천 석이나요? 전 2천 석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호호. 2천 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빌렸다간 회사 업무도 못 볼 정도로 항의를 받을걸요.”
“에이. 그럴 리가요.”
부정하는 말을 했지만, 태주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귀 전에는 초기 팬층이 2, 30대 여성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2천 석 규모의 팬 미팅 티켓이 매진됐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팬층이 더 다양해졌으니, 우 팀장님의 말대로 5천 석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팬 미팅 프로그램은 나중에 다시 회의하기로 해요. 이 배우님도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두시고요.”
“네. 그럼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요?”
“너무 추워지기 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9월 중순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9월 중순이라…. 괜찮을 것 같아요.”
회의실도 아닌 우 팀장의 사무실 자리에서 저녁 시간에 짧게 이뤄진 회의였지만, 하반기 활동에 관한 큼직한 얼개를 짜는 중요한 회의였다. 우 팀장은 며칠 뒤부터 다시 지방 촬영이 시작되는 태주와 짧게나마 만나서 얘기할 수 있어서 만족했다.
“촬영장에서 힘든 일은 없으세요?”
“괜찮아요.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도 친절하시고 환경도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 배우님 남은 촬영도 잘하고 오세요.”
“네. 다음 휴일에 뵈어요.”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일하던 직원들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한 태주와 견우가 사무실을 벗어날 때였다. 태주는 처음 보는 여성이 형식과 함께 회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태주는 형식을 이제영 감독님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입대 전에 봤던 게 마지막이니 이 년만이었다. 드라마 촬영 전에 자주 회사에 들렀었지만, 형식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사무실에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습니다.”
“잠깐 들른 거예요. 지방 촬영을 가기 전에 우 팀장님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요. 그런데 형식 씨 옆에 계신 분은?”
“아! 태주 씨는 처음 보시겠군요. 최나라 씨입니다. 재작년에 트리즈로 옮기셨습니다. 나라 씨.”
형식이 곁에 있던 여성을 태주에게 소개했다. 여성은 밝은 갈색의 긴 머리에 마른 체형이었다. 올해 스물네 살로 태주보다 한 살 어렸다. 태주는 형식의 소개로 그녀가 그가 군대에 있을 때 JJ에서 트리즈로 옮긴 배우 중 한 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반가워요, 이태주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 최나라예요.”
“큼! 나라 씨.”
“…내일 새벽부터 스케줄 있다고 했잖아요. 빨리 챙길 거 챙겨서 가요.”
“나라 씨?”
최나라는 무엇에 기분이 상했는지, 태주와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데도 자신의 상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태주는 지금까지 스케줄을 하고 온 듯한 그녀의 모습에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다. 설마 그녀가 처음 보는 자신에게 화가 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쁘신 것 같은데, 이만 가 볼게요. 형식 씨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
“그…, 네. 들어가십시오.”
“최나라 씨도 다음에 뵈어요.”
“….”
태주의 인사를 무시하는 최나라의 모습에 견우의 매서운 눈빛이 형식한테 쏟아졌다. 같은 소속사 선배 배우에게 보여도 좋을 태도가 아니었다. 만약 촬영장에서도 이런 태도라면, 앞으로 그녀와 태주가 엮이지 않게 할 것이다. 견우는 후배의 무례를 그냥 넘기려는 태주의 모습에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형식아. 너….”
“매니저님. 이만 가요.”
“태주 씨?”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태주는 초면인 사람과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 특히 사무실이 코앞인 복도에선 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나라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게 태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챙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굳이 분노인지 적개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견우는 태주의 만류에 하려던 말을 삼켰다. 하지만, 매서운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그는 담당 배우가 무례하게 굴도록 그냥 둔 형식한테 한 번 더 매서운 눈길을 준 후에 태주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아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오늘은 그냥 넘어갔습니다만, 다음엔 말리지 마십시오.”
“그럴게요. 오랜만에 들러서 그런가, 사무실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네요.”
“이제영 감독님의 방문은 뜻밖이긴 했습니다.”
“감독님, 안색이 나쁘지 않으셨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견우의 모습에 태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 전에 복용한 질병 완화제가 제대로 작용하고 있었다. 인간에겐 두 배의 효과가 있을 거라는 해나의 말이 사실이어서 다행이었다.
“무슨 영환지 모르겠지만, 준비하시는 영화도 잘됐으면 좋겠어요.”
“잘되실 겁니다. 같이 작업해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알죠. 그래서 걱정도 되고요. 무리하게 작업하시는 타입이시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선율’을 촬영할 때도 꽤 무리했었다. 조급한 마음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지만, 촬영 내내 쓰러지실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실제로 한 번은 쓰러지시기도 했었고.
태주는 이제영 감독이 이번엔 부디 지난번 영화처럼 무리하지 않고 작업을 하셨으면 하고 바랐다.
*
태주의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견우는 조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태주는 그런 그를 기다리느라 잠시 주차장 한쪽에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좀 전 사무실 앞에서 마주쳤던 최나라가 와서 섰다.
“무슨 일인가요?”
“….”
“최나라 씨? 나한테 할 얘기가 있나요?”
“…처럼 쫓아낼 거예요?”
“네?”
“나도 재성이 오빠처럼 쫓아낼 거냐고요!”
태주는 최나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송재성하고는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사이였다. 그와는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잠깐 본 게 전부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뻔뻔하시네요, 진짜 송재성 오빠 쫓아낸 게 당신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어요?”
“송재성 씨가 쫓겨나요? 왜요?”
“하! 대표님한테 거짓말해서 쫓아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계속 모른 척한다고 믿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언제 쫓아낼 거에요?”
“네?”
“재성 오빠 다음엔 나를 쫓아낼 거라면서요?”
태주는 최나라가 하는 말을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송재성이 쫓겨났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고 그를 쫓아낸 게 자신이라는 얘기도 최나라한테서 처음 들었다. 그는 지방의 촬영장과 스튜디오에 있는 사이에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뻔뻔하게 보였는지 최나라가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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