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8
207. 팬 미팅 회의 >
태주가 촬영에 들어간 사이, 견우는 우 팀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우 팀장은 쿠첼루스와 최 대표에게 연이어서 연락을 받고 최나라와 태주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부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날 늦은 시각에 견우가 그냥 연락한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한참 동안 우 팀장의 얘기를 듣던 견우는 자신이 최근 태주의 태도 변화가 사실이란 걸 알았다. 항상 친절하고 예의 바른 태주여서 잠시 착각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태주는 데뷔 초기와 비슷한 태도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도 나쁜 건 아니지만, 같이 일하기엔 예전이 더 좋은 편이니….’
무거운 가체 때문에 중심을 잃어서 기우뚱한 여배우를 재빠르게 받쳐주는 태주의 모습이 보였다. NG가 났지만, 상황이 웃겼던지 다들 웃고 있었다. 빡빡하고 여유 없는 촬영 일정인데도 현장 분위기는 상당히 밝았다.
그 모습을 보던 견우는 지방 세트 촬영이 끝나는 며칠 뒤까지 우 팀장과 했던 통화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얘기도 아닐뿐더러 이미 그녀와 대표님이 나서서 모든 상황을 끝낸 상태였다.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얘기를 나누는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았다.
2주간의 지방 촬영 일정을 마친 태주는 모든 짐을 정리해서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은 촬영은 저잣거리와 왕성이 배경이어서 지방에 지은 세트가 아닌 양주의 테마파크 쪽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매니저님 미나 누나네랑 휴게소에서 만날까요?”
“이번 휴게소는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으니, 다음 휴게소에서 보시죠. 그쪽은 진입로가 길어서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편입니다.”
“그럼 다음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메시지 보낼게요.”
“예.”
견우는 룸미러로 메시지를 보내놓고 아이에게 휴게소 간식을 설명하는 태주를 확인했다. 2주간 빡빡한 촬영을 했지만, 체력은 괜찮은 것 같았다. 모터홈 덕분에 수면 시간이 좀 늘었지만, 아주 편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다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체력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집에 돌아가서도 쉴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보다 매니저님이 힘드셨죠. 다음 촬영일까지 매니저님도 좀 쉬세요.”
“그러겠습니다.”
견우는 같이 모터홈에서 지내자는 태주의 권유를 거절했다. 제작사에서 마련한 시내의 숙소에서 모터홈으로 출퇴근했다. 연출진들과의 소통 문제 때문이라고 얘기했지만, 그보단 여성들만 있는 미나의 스타일리스트 팀을 걱정해서였다.
제작사에서 가장 괜찮은 숙소를 빌렸지만, 오래된 건물이라서 보안이 허술했다. 태주에게 배정된 곳까지 미나의 팀이 사용해서 숙소가 좁진 않았지만, 여전히 안전이 의심스러웠었다. 그런 상황에서 견우가 나서 주어서 다행이었지만, 그의 체력이 걱정스러웠다.
“매니저님 보약 지어드릴까요?”
“예?”
“촬영 일정 앞으로 한 달이나 남았잖아요. 그다음엔 바로 팬 미팅 준비하려면 보약이라도 드셔야 할 것 같아서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챙겨주신 영양제로 충분합니다.”
“잊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다 드시면 말씀하시고요.”
“예.”
태주의 팬 미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곧 방영될 드라마였다. 견우는 이번 드라마 역시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팔월 중순부터 시월 중순까지, 만약 지상파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였다면, 태주의 수상을 점쳐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견우는 각종 영화제나 방송국의 연기대상 같은 곳에서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아무리 인기에 많이 좌우되는, 그다지 공정성 없는 상이라도 이미 데뷔 5년 차인 태주가 신인상이나 조연상도 받지 못한 현 상황이 불만족스러웠다.
수상을 못 한 것은 방송국 내부 사정이나 영화제 외적 요소의 영향이 작용한 탓이라고들 하지만, 그는 자신과 회사의 서포트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태쭈, 호당이 노래.”
“또? 아까도 들었잖아.”
“호당이 노래. 트러 주떼요.”
“그래.”
이번에도 받지 못할 연기상에 대해 아쉬워하는 견우와 다르게 태주와 태산이는 동요를 듣고 있었다. 이미 삼십 분 넘게 같은 동요만 들은 태주는 질린 표정이었지만, 아이의 부탁을 거절 못 하고 다시 노래를 켜고 있었다.
♪나는 용맹한 호랑이. 어흥. 어흥. 동물의 왕.♬
“나는 욘맹하 호당이. 어흥. 어흥. 동무데 왕.”
견우는 아이 노래를 듣자마자 질린 표정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뀐 태주를 확인하고 속으로 웃었다. 휴게소가 멀지 않으니 이번엔 몇 번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미나 일행과 만나기로 한 휴게소에 태주의 밴이 들어서자, 순식간에 사람들 시선이 몰렸다. 연예인 차로 유명한 밴이 들어서자, 반사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견우는 주차한 후 바로 내리지 않고 잠시 주변을 살피며 기다렸다. 그는 2호가 밴의 옆에 와서 선 후에야 태주에게 내려도 좋다는 말을 건넸다.
-꺄아! 어떡해. 이태주야!
-사진. 자기야! 나 사진 좀 찍어줘.
-같이 있는 사람은 누구야?
-찰칵! 찰칵!
평일 오후의 휴게소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잠시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견우는 태주가 사람들에게 웃으며 사진은 한 시간만 기다렸다 올려달라 부탁하고 벗어날 때까지 단단히 곁을 지켰다.
식사를 마친 후 태주는 태산이 손을 잡고 휴게소 뒤 공원을 잠시 걸었다. 2호가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사이 견우는 미뤄뒀던 얘기를 하기로 했다.
“태주 씨, 전에 최나라 씨가 주차장으로 찾아왔을 때 얘깁니다. 그때 사과하러 왔던 게 아니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오해를 풀 생각이었어요.”
“조금 변하셨습니다.”
“제가요?”
“예. 예전이라면 최나라 씨 일을 저에게 알리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오해를 푸셨을 겁니다.”
“아!”
생각지 못한 얘기였는지, 태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견우는 태주의 반응으로 그가 고의로 숨긴 게 아니라, 의식하지 못한 사이 혼자서 일을 처리하던 습관이 나온 거란 걸 알아차렸다. 태주의 얼굴에 순식간에 미안한 표정이 새겨졌다.
“죄송해요, 매니저님. 일부러 말을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러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변하셨다기보단 예전 모습이 나오신 것 같았습니다.”
“예전 모습이요?”
“예. 무슨 일이 있을 때, 혼자 결정하시고 그대로 강행하시던 모습이요.”
“아! 아오, 진짜. 내가 왜 그랬지? 어휴! 죄송해요, 매니저님.”
태주는 미안해하는 자신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달래는 견우를 볼 낯이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동료인 그가 못 미더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최나라의 존재감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정도로 크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었다.
최나라는 독기도 없었고 조금 위압감을 드러냈다고 바로 겁을 먹었었다. 만약 그녀가 주변 사람 말에 잘 휘둘리고 급한 성미를 가졌더라도 연기력이 독보적이라면 배우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태주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속단은 금물이었지만, 그는 최나라가 연기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할 거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두 작품 얼굴을 보이다가 사라질 거로 생각했었지.’
최 대표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태주는 그의 신인 배우 영입이 실패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송재성, 최나라의 일을 겪은 후, 태주는 소문이 퍼질 걱정보단, 최 대표에게 기억 속에 있는 회귀 전 성공한 배우를 소개해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었다.
“좀 더 저와 회사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믿고 있어요. 정말로요. 이번엔 실수였어요.”
‘최나라 씨 존재감이 너무 작아서 그랬어요.’
태주는 차마 견우에게 하지 못할 변명을 속으로 했다. 그는 차마 시야에서 멀어지자마자 관심이 사라져버린 최나라의 좋게 말해서 작은, 실제로는 하찮은 존재감 때문이라는 말은 못 했다.
솔직히 그는 지금도 최나라 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흥, 어흥 거리면서 노래하는 태산이가 더 신경 쓰였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태주는 견우의 말을 허투루 들을 생각은 없었다. 말수 적고 신중한 그가 말을 꺼낼 정도였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군대에 다녀온 2년 사이에 많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던, 주변의 의견을 듣지 않던 습관이 다시 나온 것 같았다.
자신의 상태를 잠시 돌아보던 태주는 문득 최근 동생들을 만나는 일이 뜸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창 바쁜 시기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동생들을 만나러 갔었는데, 최근엔 통화도 뜸했다.
그는 회귀 전처럼 하지 말자고, 좀 더 주위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도 많이 하자던 처음 다짐이 많이 흐려진 걸 깨달았다. 그대로 좀 더 시간이 흘렀으면, 동생이든 스태프든 누군가를 서운하게 만들었을 텐데, 적절한 시기에 견우가 깨우쳐줘서 고마웠다.
“고마워요, 매니저님.”
“하하하. 아닙니다. 얘길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후. 그만 돌아가요.”
“하하하.”
멋쩍은 듯이 빠른 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는 태주의 모습에 견우가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
양주 테마파크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삼일의 휴식이 주어졌다. 태주는 휴식일 동안 몇 가지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동생들도 만나고 요즘 음악에 관심이 커진 태산이가 쓸 악기도 사러 갈 생각이었다. 물론 팬 미팅이나 드라마 홍보에 대해 회사와 회의도 미루지 않고 할 생각이었다.
“어흥. 어흥. 동무데 왕.”
태주는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삼십 분 내내 들은 어흥, 어흥 소리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태산이만 그러는 건지, 아이들이 모두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치지도 않고 노래 한 곡을 계속 따라 불렀다. 태산이의 노래는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냐하떼요.”
오랜만에 가져온 정원 과일을 2호가 내려놓는 사이 태주는 우 팀장의 자리를 돌아봤다. 없었다. 우 팀장의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서류가 쌓여있었지만, 정작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어라? 우 팀장님이 안 계시네?”
“저 방향입니다.”
“대표실 방향?”
“네. 그쪽에서 느껴집니다.”
2호의 말이 맞았다. 태주가 대표실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우 팀장님이 대표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에 작은 쟁반을 든 채였다. 그녀는 태주 일행이 도착한 것을 보더니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일찍 오셨네요, 이 배우님. 회의실로 바로 가실래요?”
“네. 혹시 대표님 계세요?”
“아뇨. 오늘은 오후에 나오실 거예요.”
우 팀장은 최 대표의 부재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태주 일행을 회의실로 이끌었다. 회의실엔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음료수와 문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태주 일행이 자리에 앉자, 쟁반에서 고급스러운 초콜릿과 얼린 젤리를 집어 태산이 앞에 놓아 주었다.
“어? 이거 혹시?”
“오호호호. 산아, 녹기 전에 젤리 먼저 먹자.”
“앙. 고마뜹니다.”
“우 팀장님, 그건 좀….”
“호호호. 이 배우님. 문서 먼저 보세요. 팬 미팅 기획 초안이에요.”
태주는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게 사과했다.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얼린 젤리를 먹는 아이나, 그런 아이에게 잘 먹는다고 칭찬을 퍼붓는 우 팀장이나, 이미 그가 말리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그는 둘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기획안을 보기 시작했다.
“노래를 세 곡이나 불러요?”
“세 곡도 적죠. 두 시간이나 하는데요. 예전에 부르신 드라마 OST하고 I’m yours는 꼭 넣어야 하고. 버스킹에서 불렀던 곡도 한 곡 정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바이올린 연주도 있는데, 너무 많은 게 아닐까요?”
“두 시간이에요. 이 배우님 혼자서 두 시간을 채우시려면 쉽지 않을 거예요.”
배우 팬 미팅은 아이돌과 다르게 두 시간을 채우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아이돌이라면 노래와 춤만으로도 두 시간은 가볍게 채우겠지만, 레퍼토리가 적은 배우에겐 무리였다. 그나마 태주의 경우 가진 재주가 많아서 고민이 적은 편이었다.
“Q&A, 작품 영상 감상, 하이터치. 괜찮긴 한데, 조금 부족한 것 같긴 하네요.”
“그렇죠.”
기획안은 초안이라 그런지, 배우들이 일반적으로 팬 미팅에서 많이 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십만 원이 훌쩍 넘는 티켓 가격을 생각하면 좀 더 프로그램 내용을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무대는 왕좌처럼 꾸미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어떠세요?”
“왕좌요?”
“네. 직전에 방영을 시작하는 드라마도 그렇고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특, 특이하겠네요. 아예 의상도 입을까요?”
“호호호. 당연히 입으셔야죠.”
프로그램이나 무대의 분위기 같은 세부적인 내용의 결정은 공연 기획을 맡을 업체와 전체 미팅하기 전에 정해두는 게 좋았다. 그래서 마련한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게인 레이블의 뮤직비디오의 방처럼 꾸민 무대에서 팬하고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
“괜찮네요. 현장에서 팬 몇 분과 만나는 코너가 있으니, 그렇게 꾸미는 것도 괜찮겠어요. 다른 아이디어는 없으세요?”
“음. 은형이 형네 그룹 무대 커버라도 할까요?”
“혹시 그런 춤도 추실 수 있으세요?”
“아뇨.”
우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태주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재주가 많은 태주였지만, 춤을 출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그녀는 민망해하는 태주에게서 고개를 돌리다 숨을 들이켰다. 문틈 아래로 시커먼 긴 머리가 들어와 있어서였다.
“뭐? 뭐, 뭐, 뭐죠?”
“네?”
“저기? 검은 머리가? 어라?”
이후의 회의는 우 팀장의 집중이 깨지는 바람에 흐지부지하게 흘러갔다. 태주와 우 팀장은 시간이 지나도 진행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인 회의를 파하고 다음에 다시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우 팀장과 태주가 회의실을 정돈하고 있을 때였다. 태산이가 어느 한 곳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태산이는 발소리뿐 아니라 기척도 모두 죽인 채 은밀하게 목표지점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숨은 사람이 눈치채기 전에 순식간에 덮쳐들었다.
“어흥! 호당이다!”
“꺄아아!”
“어흥! 어흥!”
“꺄아아악!”
조용했던 사무실이 한순간에 시장통처럼 변해버렸다. 태주는 조그만 어린아이의 장난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여성에 되레 당황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긴 했지만, 혀짧은 소리로 하는 ‘어흥!’ 소리에 자지러지게 놀라는 게 조금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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