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13
212. 팬 미팅 >
견우가 모는 밴을 타고 돌아가는 동안에도 태주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야 캐스팅을 시작하는 단계라서 실제 촬영은 한참 후에나 할 게 분명했는데도 진정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감독님이 제작까지 하실까요?”
“선율 때랑은 상황이 좀 다르지 않습니까.”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선율을 찍을 때는 제작 감독 일까지 맡아서 하셨었잖아요. 능력자, 큼큼. 이성군 형님 매니저님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그쪽 일을 하시던 분도 아니시고 하시는 일도 있으신데….”
“하하하. 태주 씨 진정하십시오. 전작인 선율을 수많은 난관을 뚫고 성공시킨 이제영 감독님이십니다. 제작을 직접 하시든 제작사를 찾든, 이 감독님은 영화를 위한 최고의 선택을 하실 겁니다.”
“하아. 저도 그러실 거라 믿고는 있는데요….”
믿고는 있는데, 이제영 감독이 무리하며 일하는 타입이라 걱정을 그만두기 힘들었다. 이미 선례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태주는 이제영 감독에 대한 걱정을 잠시 미뤄 두고, 좀 전에 읽었던 대본을 떠올려 봤다. 잠깐 봤을 뿐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그가 맡을 형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속 형은 병사로 징집당해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을 뼈저리게 겪은 사람이었다. 전투에서 얻은 심각한 부상으로 평생 다리를 절게 된 형에게 남은 것은 어린 동생뿐이었다. 유일한 가족이자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의미인 동생이 끌려간 후, 형에겐 폐허 같은 삶만 남는다.
‘전쟁, 강제 징용…. 끔찍한 시대야. 이런 시대에 파괴된 삶을 되찾으려는 개인이라….’
이제영 감독의 대본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절망이 절절하게 나와 있었다.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면도 있었지만, 과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이었다. 다큐와 허구의 균형을 맞추는 수준이었다. 영화가 전하는 폭력적이고 참혹한 현실에 관객이 지치지 않게, 가족애와 형제애가 완충 장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제영 감독님의 연출에 따라 그가 대본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한 번 본 것만으로 영화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 강제 징용 노동자를 실어 나를 수송선이나 하시마를 표현할 CG만 해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것 같았다. CG를 넣지 않을 배경들, 그 시대의 건물이나 거리 등을 최소한으로 재현한다고 해도 예산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준비 기간도 꽤 길 것 같았다.
‘프리 프로덕션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촬영은 석 달 정도 걸릴 것 같고….’
이제영 감독님은 생각보다 배우의 직관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중시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지난 촬영은 감정 소모는 컸지만, 꽤 재밌는 촬영이었다.
도 실제 촬영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캐릭터 분석에 쓸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아마 이번 영화의 ‘형’ 역시 선율의 재하 못지않게 개성 있는 캐릭터가 될 듯했다. 물론 캐릭터의 내면을 채우는 과정도 외면을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이긴 했지만….
대본상의 형은 극심한 가뭄과 수탈로 제대로 끼니를 잇기 어려운 시대에 어린 동생까지 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그에겐 더 가혹한 환경이었을 게 뻔했다. 캐릭터에 관해 우선 감독님과 얘길 해 봐야겠지만, 형 캐릭터 역시 시대의 광기에 물든 면이 있었다.
외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량은 당연히 필요했고, 장애 때문에 몸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이라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했다. 제대로 연기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몸의 중심을 옮기는 법부터 서는 법, 걷는 법, 건강한 사람과 다른 속도와 호흡까지. 익히려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도착했습니다.”
“태주 씨?”
“헛! 벌써 도착했네요.”
“아직 드라마 촬영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영 감독님 대본 생각은 잠시 미뤄 두시죠.”
“흐흠. 그럴게요.”
밴이 주차장에 들어설 때까지 깨닫지 못할 정도로 대본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견우의 말대로 드라마의 촬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차기작 연기를 고민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지금 촬영하는 작품에 영향이 갈까, 대본을 챙겨 두기만 했을 텐데….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2년. 회귀 전까지 합쳐도 그렇게 길게 쉰 적은 없었다. 회귀 직전까지도 작품에 출연했었고, 회귀 후에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단역으로 활동했었다. 2년이나 쉬고 작품에 들어간 것은 ‘고정하세요, 전하!’가 처음이었다. 덕분에 1화 방영을 하던 날부터 드라마 반응에 꽤 신경이 쓰였었다
물론 그것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길었던 복귀작의 촬영이 끝나 가고 있었다. 역시 이태주라는 말을 다시 들을 수 있게, 우선은 이제영 감독님의 대본을 넣어 두어야 했다.
*
팬 미팅 기획을 맡은 디렉터는 태주의 연주 실력이나 노래 실력이 알려진 것보다 더 훌륭하다는 사실에 아주 반색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가수의 쇼케이스 같은 팬 미팅 프로그램을 짜서 트리즈로 찾아왔다. 태주나 우 팀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노래와 연주가 더 많이 들어간 프로그램이었다. 대관한 공연장도 프로그램 구성도 배우의 팬 미팅이라기보다는 솔로 가수나 컴백 하는 아이돌의 쇼케이스에 적합한 구성이었다.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팬 미팅을 준비하던 태주는 이대로 가수 데뷔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 ♩♩♬~♬♬♪~
“꺄아아!”
하지만 팬 미팅의 처음을 연 바이올린 연주의 반응을 보면 디렉터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장 안을 울리던 전자음과 조명이 모두 사라지고 들리기 시작한 바이올린 연주에 모든 관객이 숨을 죽였다.
찢어질 듯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공연장의 어둠을 가른 얼마 후, 무대 위는 삭막한 가을 숲으로 바뀌었다. 마른 잎이 버석거릴 것처럼 바닥에 쌓여 있고 비틀린 가지의 나무들이 공연장 위를 채웠다. 그리고 그 음울하고 축축한 가을 숲속에 적갈색 바이올린을 든 민재하가 있었다.
영화 의 명장면으로 꼽혔던 민재하의 가을 숲 연주 장면이 팬 미팅 무대 위에 재현되고 있었다. 촬영 당시보다 유려해진 솜씨에 훨씬 깊어진 표현력이 더해진 연주였다. 5분이 넘는 긴 연주였지만, 팬들은 적갈색 바이올린이 뿜어내는 소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이태주입니다.”
“꺄아아!”
연주가 멈췄지만, 팬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태주가 인사를 하고 난 후에야 팬들은 음악이 준 여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러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며 인사한 태주가 왼쪽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바이올린을 넘겼다. 바이올린을 받으러 온 2호의 모습에 객석이 잠시 소란스러워졌지만, 곧 진정되었다. 평소라면 태주와 닮은 모습에 흥미를 보였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태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좀 전의 연주 장면이 익숙하신 분도 계실 거예요.”
“네에.”
“데뷔작인 에 나오는 장면을 재연해 봤어요. 영화에 쓰인 음악은 바이올린 수업을 맡아 주셨던….”
태주는 촬영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풀어놓았다. 김윤선과 둘이 대립하는 장면을 찍을 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촬영 스태프들이 둘을 슬금슬금 피해 다녔던 얘기도 하고, 그가 선율 OST에 욕심을 냈다가 결국엔 포기한 얘기도 했다.
그다지 재밌는 얘기가 아닌데도 팬들이 집중해서 들어주고 호응해 주자, 태주가 안도했다. 사회자 없이 두 시간을 직접 진행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다행히 팬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그리고 여러분께 알려 드릴 일이 한 가지 있어요. 바로 며칠 전에 결정된 일이에요. 아직 어느 곳에도 알리지 않은 따끈따끈한 소식, 궁금하세요?”
“네에!”
“팬 여러분에게 제일 먼저 알려 드릴게요.”
“꺄아!”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던 태주가 과장된 동작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속삭이듯 마이크에 대고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은 차기작 소식을 알렸다.
“이제영 감독님의 신작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어요.”
“꺄아아!”
“하하하. 너무 좋은 작품이라서요. 대본을 보자마자, ‘이거다!’ 하고 결정했어요.”
여러분에게 제일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다며 웃는 모습에 팬들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차기작 소식이야 당연히 반가웠지만, 그보다는 공식 발표나 기사로 나오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소식을 들은 사실 자체가 기분 좋았다.
사실 팬들은 공연장 입장 전부터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아이돌이 아닌 배우라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굿즈를 선물로 받았다. 캔버스백에 커플링 세트 등, 팬 미팅 전용 굿즈를 받고 흥분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태주의 노래에 떼창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태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후렴구 정도는 같이 부르는 사람이 있겠거니 싶었는데, 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같이 노래를 불러줬다.
그는 가수도 아니었고 본인의 노래도 아니었지만, 팬과 노래하는 순간이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무대 양옆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눈꼬리가 접힌 태주의 얼굴이 잡혔다. 그는 하얀 이가 보일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하하. 저 이대로 가수 데뷔할까 봐요.”
“하하하.”
“심장이 너무 뛰어요.”
“꺄아!”
가슴 한쪽을 손으로 꾹 누르면서 엄살을 피우는 모습에 다시 한번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태주는 팬들과 가벼운 얘기를 나누면서 무대가 꾸며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팬 미팅에서 빠질 수 없는 문답 시간을 가질 차례였다. 문답은 태주가 직접 내리는 차와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팬이 뽑은 질문지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무대 가운데에 얼마 전 출연한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느낌의 가구들이 놓였다. 좀 전까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공간이 순식간에 생활감 넘치는 방처럼 바뀌어 있었다.
“세 분 뽑을게요. 뽑히신 분은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서 무대로 나와 주세요.”
뜸 들이지 않고 빠르게 번호 세 개를 뽑은 태주가 그 길로 무대 중앙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그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준 후, 티 세트를 꺼내서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팬들이 무대에 도착하면 바로 마실 수 있게 준비할 생각이었다.
“오빠!”
“네.”
“오빠 성형이죠?”
“네? 성형이요?”
“태어날 때부터 완성형!”
“아! 아하하하하.”
1층 좌석에 있던 팬이 제일 먼저 무대로 올라왔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팬은 다른 팬이 도착하기 전에 태주와 둘만 있는 시간을 알차게 쓸 생각인 것 같았다. 태주가 그녀를 반겨 주기도 전에 스태프가 건넨 마이크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 이거 써 주세요.”
“뭐, 뭘까요?”
“인싸템이요.”
“혹시 토끼 모자?”
“후후후.”
여고생이 건넨 쇼핑백에서 나온 것은 그의 예상이 맞았다. 태산이한테나 어울릴 법한 귀가 움직이는 모자였다. 태주는 마음을 다잡고 모자를 집어 들었다. 며칠 전에 뉴스에서 봤던 화관 쓴 남자 아이돌보단 토끼 모자가 훨씬 나았다.
“이건 우리 산이한테 더 잘 어울리겠어요.”
토끼 귀를 까딱이면서 태주가 돌아보자, 여고생이 소파 위로 쓰러졌다. 그러나 여고생은 역시 여고생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태주를 가리키며 신고라고 외쳤다.
“네?”
“심, 심장 폭행죄로 신고!”
“킥킥. 아이. 정말.”
“와하하하.”
아직 다른 두 명의 팬은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태주는 우리는 차를 한쪽으로 치우고 차가운 음료수를 꺼냈다. 첫 번째로 뽑힌 팬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면서 진정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2시간을 조금 넘긴 19세 이하팬 미팅은 상당히 좋은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문답 티타임에서 예상외로 강력한 팬들 때문에 난감한 상황도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
-태주 오빠 U19 팬 미팅 후기
코스모스님들, 오빠 팬 미팅 U19 이랑 20+로 나눠서 하는 건 아시죠? 저는 U19 팬 미팅에 다녀왔어요.
후후후. 우선 이번 팬 미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역대급이었어요.
다음 팬 미팅도 무조건 참가예요.
(사진)
포토 카드, 손거울, 커플링 세트(반지+체인), 텀블러, 캔버스백.
입장 전에 나눠 준 선물이에요.
개인적으로 역조공이라는 단어는 좀 불편해서 선물로….
진짜 미쳤어요. 팬 미팅 전용 굿즈들이… 하아.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지.
코스모스들 이미 여기서 실신 직전이었었어요. 판매도 아니고 팬 미팅에 온 사람한테 전부 선물….
팬 미팅 내용도 장난 아니었어요. 다른 연엔이 하는 거랑 비슷하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노래 다섯 곡(한 곡은 동요)에 바이올린 연주 두 곡.
진짜 솔로 가수 쇼케이스장 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노래 부르면서 웃는 건 또 얼마나 예쁘게 웃던지…. 아, 내 심장!
오빠는 대체 못 하는 게 뭔가요? 노래도 잘하고 진행도 잘하고.
그래도 제일 부러운 건 티타임에 뽑힌 팬들.
여자 두 명에 남자 한 명 뽑혔는데…. 개부럽.
팬들 드립도 다 받아 주시고, 위시리스트에 쓴 것도 다 들어주고.
그리고 오빠 아재 개그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티타임에 올라간 남팬이 하는 아재 개그도 전부 웃어 줬어요.
남팬: 동생이 형을 잘 따르는 걸 3글자로 줄이면?
오빠: ???
남팬: 형광펜!
오빠: 크크큭! (오빠 자지러짐. 진심 포복절도함.)
이거 말고도 너무 좋았어요. 티타임 때 준비된 컵케이크 보고 오빠가 산이가 좋아하는 거라고 해서 산이 특별 출연한 것도 좋았고, 중간에 무대에서 내려와서 하이파이브하면서 다닌 것도 좋았고.
정말 오빠 팬 미팅은 직접 봐야 해요.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마지막은 오빠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하겠다고 준비한 멘트로 끝낼게요.
오빠: 오늘 저녁엔 치킨이야!
팬들: ???
팬 미팅이 끝난 후, 공식 팬카페에 팬 미팅 후기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로 팬 미팅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좋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는 한편 팬 미팅에 가지 못했던 팬들의 굿즈 판매 요청과 지방에서도 팬 미팅을 열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태주의 팬 미팅은 준비 기간이 짧았던 것에 비해 무척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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