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19
218. 기부 물품 전달하기 >
태주는 어느새 동생의 카트에 올라타서 빨리 출발하자며 재촉하는 태산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눈을 빛내며 몸을 들썩이는 게,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마트 쇼핑이 모험 같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일행은 아이의 귀여운 성화에 바로 카트를 움직였다.
“기부하는 거 촬영하는 건 누구 아이디어였어?”
“복지 센터 사무장님 아이디어예요.”
“응?”
“저희가 미튜브 하는 걸 아시고는 기부하는 걸 많이 알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아아. 그런 거였구나.”
태우나 연우나 이런 기부 물품 전달을 영상으로 남길 성격이 아니었다. 좋은 일이었지만, 뜬금없는 부분도 있어서 이유가 궁금했는데, 복지센터 직원의 요청이었다. 복지센터 직원이 무슨 생각으로 영상 제작을 부탁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엔 이런 걸 만들어도 되나 걱정했는데, 지금은 만들기로 한 게 잘한 것 같아요. 만약 저희 영상 보고 기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뭐부터 살 거야?”
“우선 쌀이랑 세제 같은 무거운 것들 먼저요. 아직 체력이 많이 남아 있을 때, 그런 것들을 옮겨 두게요.”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평일 마트 오픈 시간에 맞춰 와서일까,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가끔 태주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연우가 들고 있는 카메라 덕인지,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태주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거나 웃어 주면서 감사를 표했다.
“하하하. 산이가 대장님이야?”
“대당니?”
“응. 산이 대장님. 대장님, 쌀 어디 있어요? 쌀 좀 찾아 주세요.”
“짤?”
“킥. 응. 쌀. 산이가 형한테 쌀 어디 있는지 알려 줄래?”
“앙. 아라떠. 사니가 알려 주께.”
오늘 방문한 마트는 예전에도 자주 왔던 곳이었다. 동생들과 같이 살 때부터 쭉 다니던 곳이라서, 그와 태산이 모두 익숙했다. 일행은 태주의 장난에 장단을 맞추듯 태산이가 탄 카트 뒤로 카트를 쪼르륵 줄지어 세웠다.
“산이 대장님 파이팅!”
“앙!”
동생들까지 산이 대장님이라고 부르며 아이를 응원했다. 그 모습이 꽤 재밌었는지, 장을 보던 다른 고객과 매장 직원들도 웃으면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기세 좋게 쌀을 찾아 주겠다고 나선 태산이었지만, 번번이 쌀의 위치를 지나쳤다. 열심히 배운 한글로 표지판을 읽으며 지나가고 있었지만, 목표인 쌀은 찾지 못했다.
양곡. 그린 푸드 라이스 존. 두 군데에 쌀이 있었지만, 정확하게 쌀이라고 쓰여있지 않아서 태산이가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혀짧은 소리로 ‘짜알’을 외치며 쌀을 지나칠 때마다 그걸 보는 어른들의 애가 탈 정도였다.
세 번째로 양곡 코너를 지나칠 때였다. 태주는 이대로라면 제시간 안에 쌀을 사기 힘들 것 같아서 직접 나서기로 했다.
“산아, 여기 봐 봐. 이게 뭘까? 이게 뭔지 산이가 알려 줄래?”
“앙. 태쭈, 형미짤이야.”
“현미 ‘쌀’?”
“앙. 형미짤.”
“그렇구나. 이게 ‘쌀’이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산아.”
“앙?”
쌀이라고 강조하는 태주의 말을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곧이어 ‘꺄하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주변으로 퍼졌다. 일행을 주시하던 사람들이 가볍게 박수를 쳐 주며 쌀을 찾아낸 아이를 칭찬했다.
태주와 일행들은 어렵게 찾은 쌀을 차곡차곡 카트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들이 카트에 쌀을 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매장 직원이 다가왔다. 다섯 개의 카트에 매장 안의 쌀을 모두 담을 기세로 담고 있었으니, 충분히 이상하게 보일만 했다.
“고객님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미튜브에서 채널을 운영하는 미튜버인데요. 지금 기부 물품 전달 영상을 제작하는 중이라서요. 우선 쌀을 산 뒤에 다른….”
평소 일행 앞에 나서는 일은 태주가 도맡았었다. 동생들과 외출할 때도 스태프들과 이동할 때도 대부분 태주가 방향을 정하거나 일행을 이끌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매장 직원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태우가 나서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와 웃으면서 매장을 돌았지만, 본인들의 영상을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태우는 직원에게 현재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린 후, 촬영 목적과 필요한 물품의 수량을 밝혔다. 이어서 직원에게 물품의 재고 현황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
태우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던 직원은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태우의 부탁을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태우는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기부 영상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직원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바로 카메라를 향해 기부하려는 쌀의 양을 말하며 매장에 진열된 쌀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태주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태우가 진행하고 연우가 촬영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직원이 다가오고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다. 시청자에게 전하는 대사들도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예전 기억 때문인지, 마냥 어리게만 여겨졌던 동생들이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둘은 그가 모르는 사이에 돌봐 줘야 하는 동생에서 인정하고 믿어 줘야 하는 동생으로 성장해 있었다.
‘정말이지. 누구 동생들이 이렇게 잘났니? 말도 잘해, 생긴 것도 귀여워. 거기에 착하고 성실하고. 재주도 많고 똑똑하기까지 하지.’
태주는 얘들이 내 동생이라고 동네방네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우와 연우는 이미 5년이나 미튜버로 활동하는 중이었다. 전문적이고 능숙한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둘이 들인 시간과 노력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들의 모습이 더 뿌듯하고 대견했다.
잠시 후 사라졌던 직원이 다른 직원과 함께 돌아왔다. 그 직원들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필요한 물품을 사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건을 카트에 싣고 계산대를 지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고, 그 물건을 빌린 트럭에 옮겨 싣는 것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부지런히 움직여 트럭에 짐을 모두 실은 일행은, 첫 번째 목적지인 노인 복지 센터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태주는 기부 영상을 찍도록 권유한 사무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태우 일행에 태주와 태산이가 섞여 있는 걸 보고 잠시 놀랐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사무장의 지시에 따라 물건을 옮긴 후엔 다시 마트로 돌아가야 했다. 빈 트럭에 기부할 물품을 다시 채워야 했다. 태주와 견우의 차에도 나눠 실었지만, 물품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일행은 마트와 기부처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
네 번째 기부처인 보육원은 서울 외곽의 상당히 오래된 보육 시설이었다. 꽤 공들여 관리한 것처럼 깔끔했지만, 건물 자체가 낡은 것은 감추기 어려웠다.
트럭 뒤에 차를 대고 내린 일행은 시설에서 마중 나올 사람을 기다리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여기는 어떻게 알게 됐어?”
“다원 보육원 원장님이 소개해 주신 곳이에요.”
“원장님이?”
“네. 이곳에 후원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래 보인다.”
어떤 기준으로 기부처를 골랐는지 묻고 싶었는데, 다원 보육원 원장님의 소개였다. 원장님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보살펴 오신 분이고, 여러 분야의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시는 분이었다. 식견도 넓었고, 인맥은 그보다 더 넓었다. 그분의 소개라면 믿을 수 있었다.
트럭이 도착하고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도 시설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마중이 없는 상황에 일행 사이로 난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만약 이곳이 다원 보육원처럼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면 알아서 짐을 옮겨도 괜찮았지만,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서 안내가 꼭 필요했다.
“헉헉!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일행이 기다렸던 인사는 시설 쪽이 아닌 일행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달려왔는지 헐떡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일행 모두 순간 굳고 말았다. 마중 나온 사람이 예상과 너무 달라서였다. 마중으로 원장님이나 선생님 중의 누군가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마중을 나온 것은 이제 겨우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년이었다.
‘뭐지? 평일이 아니었나? 왜 학생이 지금 여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요일을 착각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의심은 소년이 입고 있는 교복을 보고 바로 지워 버렸다.
“기부 물품 가지고 왔는데요. 혹시 원장님은 안 계세요?”
“병원에 가셨어요.”
“그렇구나. 그럼 혹시 기부 물품 가져온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네. 1층에 두시면 된다고 하셨어요.”
소년은 일행을 보육원 안으로 안내하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보육원 형이 쓰러져서 원장님과 선생님이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 때문에 태주 일행의 마중은 소년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급성충수염이래요.”
“응?”
“원장님이 저한테 메시지 보내셨어요.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해서 못 오신대요. 미안하다고 하시네요.”
“괜찮다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려.”
“네. 그럴게요.”
연우가 자신에게 온 연락을 알려 주자, 앞서서 안내하던 소년이 바로 곁으로 붙었다. 연우에게 온 메시지를 같이 보고 싶은 것 같았는데, 말은 꺼내지 않고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기색을 알아채고 연우가 폰을 건넸다.
“자, 원장님 메시지야.”
“봐도 돼요?”
“응.”
연우한테서 폰을 받아 든 소년은 길지 않은 메시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마치 메시지에서 환자의 상태를 알아내려는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했다.
짐을 들고 연우의 곁을 따라가던 태주는 그런 소년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듯이 집중해서 보는 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어디서 봤었나?’
태주는 원래부터 기억력과 눈썰미가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직업의 영향으로 특히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했다. 그런 그의 기억에 없으니 분명히 처음 보는 게 맞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소년의 모습이 익숙했다.
15살, 중학교 2학년. 나이 차도 그렇고, 활동 반경도 그렇고. 소년과 그는 접점이 전혀 없었다. 낯설어야 정상인데, 소년의 생김새도 동작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지환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네.”
“우리가 짐 나르는 동안 아이 좀 봐줄 수 있어?”
“아이요? 네.”
“산아. 이리 와. 형들 짐 나르는 동안 지환이 형이랑 같이 있자.”
폰을 돌려받은 후, 교복에 달린 이름표에서 이름을 확인한 연우가 태산이를 봐 달라 부탁했다.
장정만 다섯이라 짐을 나르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태산이를 혼자 두긴 불안했다. 밖에선 꽤 의젓하게 구는 태산이었지만, 그건 익숙한 장소에서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태산이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다.
‘김지환? 이름도 처음이네.’
회귀 전에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인가 싶어서 고민해 봤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 나이 어린 사람 중 김지환이라는 사람은 없었다. 동창과 스태프 중에 같은 이름이 있었지만, 눈앞의 소년과 매치되지 않았다.
사람이 여럿이라서인지 짐을 옮기는 건 금방이었다. 일을 마친 태주 일행은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원장님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이라도 한 명 있다면 모를까, 중학생 혼자 있는 보육원에 낯선 어른이 여럿 있는 건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산아, 돌아가자.”
“앙.”
“벌써 돌아가세요?”
“응?”
그 짧은 사이에 태산이와 지환은 꽤 친해진 것 같았다. 벌써 돌아가냐고 묻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앙. 사니 또 오께. 지하니 기다려.”
“진짜? 산이 또 올 거야?”
“태쭈, 사니 또 와?”
“하하하. 그래 . 다음에 또 오자.”
“앙. 지하니 안냐.”
태주에게 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태산이가 쿨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쉬워하는 지환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지, 손까지 흔들며 미련 없이 돌아섰다.
태주는 어색한 표정으로 지환의 얼굴을 살폈다. 맹랑한 꼬맹이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어서였다.
그 순간이었다. 태주는 소년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태산이가 잘못 발음한 이름에 힌트가 있었다.
‘지하니? 지한? 김지한!’
김지한. 회귀 전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배우였다.
태주는 자신이 알아챈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소년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들여다봤다.
“왜, 왜 그러세요?”
“…혹시 연극부 해요?”
“네, 어? 그걸 어떻게?”
“발음이 깨끗해서요. 발음이 깨끗해서 방송부나 연극부 활동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물어봤어요.”
태주는 배우 김지한이 중고등학교 내내 연극부 활동을 했었고, 그 경험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기사를 봤었다. 확실했다. 간단한 사실 확인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눈앞의 소년이 회귀 전 뛰어난 연기력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배우 김지한이었다.
‘김지한은 예명이었나 보네.’
지환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회귀 전 태주와 지환은 무척 좋지 않은 관계였다. 게다가 그가 기억하는 지환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회귀 전 김지한은 여러모로 태주와 비슷한 배우였다. 그도 태주처럼 무명 기간 없이, 독립 영화 한 편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메이저로 올라온 경우였다. 김지한과 태주, 둘은 비슷한 행보를 걸었지만, 처한 환경은 판이했다. 비슷한 규모의 중소 기획사 소속이었던 것은 같았지만, 회사의 지원이나 관리의 질이 확연히 달랐다.
태주의 소속사는 배우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필모그래피를 기획하고 관리해 주었던 반면, 김지한의 소속사는 그렇지 않았다. 배우의 의사와 상관없이 출연료를 많이 주는 작품과 계약을 강행했었다. 정산 비율도 비합리적이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었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김지한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고 사기를 친 일이었다. 그 때문에 김지한은 커리어의 정점에 오름과 동시에 막대한 빚더미에 올랐었다.
‘결국엔 자ㅅ…… 씁.’
회귀 전 암울한 미래를 가졌던 소년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러세요?”
“….”
“저기요?”
“….”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보는 그가 이상했는지, 소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지만,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떠올린 기억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어쩔 수 없었다.
회귀 전 배우 김지한과 태주는 빈말로라도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친분이 전혀 없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그러진 것은 김지한 탓이었다. 그는 배우로 자리를 잡은 후. 무슨 이유에선지 일면식도 없던 태주를 욕하고 다녔었다.
당시의 태주는 자신에게 무례한 상대를 봐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쉽게 곁을 내주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 남에게 독설을 뱉는 걸 주저하지 않는 까칠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우연인지 고의인지 같은 작품에 섭외된 김지한의 하차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그 정도로 서로를 싫어했었다.
“연기하는 거 좋아해요?”
“네?”
“혹시 연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왜요?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
태주는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환에게 호의를 베풀 생각이었다. 만약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면 괜찮은 소속사를 알려 줄 생각이었다. 지환이 회귀 전의 미래를 반복할 것을 걱정해서였다.
하지만 지환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호의를 담은 질문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적의마저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고아는 연기 같은 거 하면 안 돼요?”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들었어? 연극부야?”
“….”
흥분해서 말까지 놔 버렸지만, 태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대가 회귀 전 불편한 관계였던 김지한이고 누구고 개의치 않았다. 애한테 이런 억울한 얼굴을 하게 만든 상대가 누군지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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