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26
225. 과일 상자 배달하기 >
조용한 사무실 안에 ‘드르륵’ 카트가 끌리는 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예상 밖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연 배우 이태주가 때 이른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루돌프 망토를 쓴 아이와 카트를 밀고 있었다.
“루돌프?”
“어머!”
“꺄야! 귀여워라.”
태주는 폰을 집어 드는 사람들을 위해 카트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카트를 밀던 태산이를 직원들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사진 찍히는 건 루돌프 머리띠를 썼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어차피 찍히게 될 것, 팬 서비스나 하자는 마음이었다.
“산아 브이 해 봐.”
“부이?”
“응. 이거. 전에 해 봤지?”
“앙. 부이.”
태주가 로션 광고를 찍을 때, 했던 브이를 해 보였다. 태주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본 태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많이 했던 동작이었다. 장난스레 브이를 해 보였던 태주는 아이가 바로 따라 하자,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브이 모양 손가락을 턱에 대고 마주 웃는 두 사람을 향해 드림쉽 직원들 대부분이 폰을 들이댔다. 잘생기고 귀여운 형제가 크리스마스 소품을 착용하고 있는 장면도 흔하지 않은데, 귀여운 포즈로 마주 웃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소장해야 했다.
-찰칵찰칵!
“하하하. 산아 어흥도 해 봐.”
“어흥! 어흥!”
“아이고, 무서워라!”
“꺄하하.”
태산이는 처음 방문하는 장소였는데도 낯가림 없이 태주가 부추기는 대로 재롱을 부렸다. 브이도 하고 두 손을 들고 어흥 소리도 냈다. 몇몇 안면이 있는 드림쉽 직원들이 재치 있게 무서운 척을 해 준 덕에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찰칵찰칵! 태산이를 찍는 사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오랜만에 받는 관심이 좋은지 태산이 녀석은 연신 귀여운 표정과 동작을 해 보이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작은 소란이 일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이지명을 비롯해서 지난 회의에서 봤던 사람들과 처음 보는 사람 몇 명이었다. 그들은 태주가 가져온 카트를 잠시 보다, 태산이가 재롱을 부리는 걸 보더니 그쪽에 합류했다.
“태주 씨, 어쩐 일이에요?”
“안녕하세요, 이 대표님. 마침 계셨네요. 과일 좀 드리려고 들렀어요.”
“과일이요? 설마 거기 카트 두 대 전부 과일이에요?”
“네. 간식으로 드시라고요.”
“양이 상당한데요.”
“하하하. 여유롭게 가져왔어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고맙다는 이지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주가 2호의 카트에서 따로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는 그걸 이지명에게 건네며 여사님께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태주가 여사님용으로 만든 과일 상자는 작은 열매 중에서 예쁘고 특별히 품질도 좋은 것들만 골라서 채운 상자였다.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 받은 도움에 비하면 작았지만, 그 나름대로 정성을 들인 선물이었다.
드라마를 찍는 동안 여사님이 빌려준 모터홈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준비 시간이 길고 출연장면이 많아서 컨디션 조절이 관건이었는데, 촬영장에 모터홈이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조절할 수 있었다. 또 태산이와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안심하고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여사님께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감사하다고 꼭 전해 주세요.”
“알겠어요.”
이지명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태주는 모른 척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상자 안에 카드도 있긴 했지만, 태산이와 같이 적은 것이라서 읽기 힘드실 것 같아서였다.
이지명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눈치 빠른 직원 몇 명이 과일을 씻어 왔다. 상자 여러 개를 열어 골고루 과일을 꺼내서 준비해 왔다. 개중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있었는지, 과일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먹기 좋게 손질되어 있었다.
“와! 맛있다.”
“이게 사과가 맞아? 어떻게 이렇게 달지?”
“망고도 장난 아니에요.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어요.”
“이건 향부터 다르네. 단내가 장난 아니야.”
드림쉽 직원들 반응은 예전 트리즈에 슈퍼 딸기를 처음 가져갔을 때와 비슷했다. 진한 과일 향과 그에 못지않은 달콤새콤한 맛에 감탄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새로운 과일을 먹을 때마다 ‘와!’, ‘우와!’ 같은 탄성을 터트렸다.
“허엇! 무슨 이런 맛이!”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회의를 방해한 것 같아서 죄송했는데, 다행이네요.”
“방해 아니에요. 안 그래도 골치 아파서 좀 쉬려던 참이었어요.”
“무슨 일이 있나요?”
이지명은 태주가 오기 전까지 캐스팅 회의 중이었다. 이제영 감독의 영화에 필요한 일본 배우 캐스팅이 난항을 겪고 있어서 그 대책을 논하는 회의였다. 일본의 배우 소속사 여러 곳에 섭외 요청을 보냈지만,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온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일본 연예계는 상당히 폐쇄적이라고 들었어요. 원래도 그랬지만, 요즘같이 예민한 시기에는 더 몸을 사릴 듯하네요.”
“그 말이 맞아요. 친한(親韓) 연예인이라고 불렸던 배우들도 자제하는 중인데, 다른 배우들은 오죽하겠어요.”
“이해는 되지만…. 우리 영화에는 안 좋네요.”
“정 안되면 일본어를 하는 배우나 외국어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섭외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외국어 연기가 쉬운 게 아니라서, 그게 좀 걱정이에요.”
“외국어 연기라…. 어렵죠. 준비 시간도 꽤 필요하고요.”
태주의 기억 속엔 외국어 연기를 잘해서 인정 받은 배우들이 꽤 있었다. 일본어나 중국어로 하는 연기를 그 나라 사람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해내서 호평을 받은 배우들을 알고 있었지만, 이지명에게 소개할 수는 없었다. 그와 그 배우들은 현재 아무 친분도 없을뿐더러, 몇몇은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뭐, 우리만 섭외 못 한 건 아니고요. 피닉스 스튜디오 쪽도 일본 배우 섭외는 못 한 것 같더라고요.”
“그쪽도 못 했대요? 하긴 시기가 시기니까 어쩔 수 없었겠죠. 그나저나 우리 영화랑 그쪽이랑 촬영 시기가 겹치지는 않겠죠?”
“비슷하게 크랭크 인 할 것 같긴 해요. 오디션 일정 나와 있는 거 보니까, 촬영 시기도 비슷하게 잡힐 것 같아요.”
“으음. 걱정이네요.”
“걱정할 것 없어요. 우리 쪽도 전혀 밀리지 않으니까요.”
피닉스 스튜디오, 나성안 감독의 와 드림쉽, 이제영 감독의 중 전자의 결과를 잘 아는 태주야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테지만, 다른 배우의 경우는 확신하기 힘들었다. 비슷한 시대 배경을 가진 영화에 소재로 삼은 것도 비슷했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가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고르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다른 배우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걱정하는 태주에게 이지명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전부 태주 씨 덕이에요.”
“네? 제 덕이요?”
“킥. 네. 태주 씨 덕.”
“제가 뭘 했나요?”
“많이 했죠. 진짜 태주 씨를 에 섭외한 게 신의 한 수였어요.”
“네?”
이지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주에게 다시 한번 만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아마 태주는 지금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짐작도 못 할 게 분명했다.
이지명 역시 겨우 태주 한 명 주연으로 섭외했을 뿐인데, 찾는 곳이 많아서 섭외하기 만만치 않은 중견 배우들이 먼저 연락을 줄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제 겨우 5년 차 배우인데 같이 출연했던 배우들이 너도나도 연락을 주다니.’
박창환 감독의 영화 에 같이 출연했던 중견 배우와 에서 같이 출연했던 우승환 배우가 태주의 출연 기사가 나가고 얼마 뒤에 연락을 주었다. 게다가 얼마 전 방영이 끝난 에서 대신 역할을 맡았던 중견 배우는 소속사의 배우들을 전부 오디션에 보낼 테니, 일정을 알려 달라고 연락해 왔다.
그뿐 아니었다. 태주와의 친분으로 카메오 출연을 약속한 배우도 여러 명이었다. 박지헌, 진혁, 조세라 같은 주연급 배우들은 물론이고 이세하와 어진권 같은 조연급 배우들도 카메오 출연을 자청했다.
캐스팅은 중심을 잡아 줄 주연에 무게를 더해줄 조연, 화제성을 부여해줄 카메오까지 이미 모두 정해진 상태였다. 일본인 배우 섭외를 제외하고, 캐스팅 디렉터가 이렇게 일하기 쉬운 프로젝트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캐스팅은 순항 중이었다.
“아! 지환이도 있었지.”
“네? 지환이가 왜요?”
“태주 씨가 감독님께 소개한 것 맞죠?”
“맞아요. 우연히 알게 돼서 소개해 드렸어요.”
“이제영 감독님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세요.”
주연 배우 이태주는 혼자서 다른 배우들을 끌어온 것도 모자라, 연기력 좋은 아역 배우까지 찾아왔다. 동생 역을 맡을 김지환은 나이는 어렸지만, 연기 실력은 물론이고 연기에 대한 열정도 의지도 충만한 배우였다.
지금 태산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캐스팅 디렉터가 대체 어디서 이런 배우를 찾아왔냐며 기함했을 정도였다. 태주가 우연히 중학교 연극부에서 찾았다는 얘기에 당장 그쪽을 확인하겠다는 걸 말려야 했었다.
‘정말 대단해. 복덩이야 복덩이. 물론 복덩이를 알아보고 섭외한 나는 더 대단하지. 하핫!’
이지명은 자신에게 선견지명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태주를 섭외할 생각을 했겠는가. 그것도 제대도 하지 않은 시기에, 다른 제작사들이 제대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 트리즈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노력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이지명의 어깨가 한치 정도 위로 올라왔다. 턱도 슬쩍 하늘을 향했고, 어깨가 벌어지며 가슴도 약간 앞으로 나왔다.
태주는 이지명 옆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제대로 된 설명도 않고 자신을 흐뭇하게 쳐다보다 갑자기 어깨를 쫙 펴는 게, 어쩐지 꼭 거리를 둬야 할 것처럼 보였다. 그의 반응과 상관없이 이지명은 어느새 의기양양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아까 꺼냈던 골치 아프다는 말은 아무래도 엄살인 것 같았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이지명한테서 떨어져서 사무실을 둘러보자, 간식 시간을 끝내려는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과일이 담겨 있던 접시는 태반이 빈 상태였고, 음료수도 거의 다 마신 것 같았다. 태산이의 재롱도 멈췄고 그걸 받아 주던 직원들도 하나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대표님,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어? 벌써 가요?”
“네. 오늘 들를 곳이 많아서요.”
“그래요. 과일 잘 먹을게요. 다음에 봐요.”
태주는 점점 차분해지는 사무실 분위기를 보고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도 들를 곳이 많이 남아 있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산아, 가자. ‘안녕히 계세요.’ 해.”
“앙! 안냐히 계떼요.”
“잘 가, 산아.”
“산이 안녕.”
태주 일행은 잠깐의 휴식으로 활기를 찾은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직원들에게 귀염을 잔뜩 받았는지, 사무실을 나서는 태산이의 발걸음이 통통 튀었다.
주차장에서 태주는 태산이를 유아 시트에 앉히려다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움직일 때마다 보스락보스락 소리가 나더니, 망토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에 초콜릿과 사탕이 가득했다. 다람쥐가 먹이를 모아온 것처럼 태산이 주머니가 빵빵했다. 드림쉽 직원들이 간식으로 사 놓은 걸 전부 아이에게 준 모양이었다.
꼬맹이가 드림쉽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알았지만, 주머니가 빵빵해질 정도로 간식을 얻어 왔을 줄은 몰랐다. 태주는 간식 중 작은 초콜릿 하나를 까서 입에 넣어 주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잘했는지 물었다.
“산이 ‘고맙습니다.’ 했어?”
“앙. 해떠.”
“잘했어. 아이 착하다.”
“꺄하.”
시키지 않았는데도,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했다는 말에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유아 시트의 벨트를 잘 채운 태주가 자리에 앉자, 2호가 차를 출발시켰다. 트리즈에 들를 차례였다.
*
트리즈의 사무실은 여전했다. 변함없는 직원들에 변함없는 업무 모습이었다. 아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태주와 태산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샤샤삭 움직여서 테이블 뒤로 숨어 버렸다.
테이블 뒤쪽 바닥에 엎드리기라도 했는지, 긴 검은 머리가 삐쭉 나와 있었다. 과일 카트를 직원들에게 넘기고 우 팀장 자리로 오던 태주는 그 머리카락을 발견했지만, 모른 척했다. 이상한 여자라고, 엮이지 말자고 다짐했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굳이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우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어머나! 산이 오늘은 루돌프야?”
“앙!”
빨간색 루돌프 망토와 머리띠. 두 사람의 오늘 콘셉트는 과일 카트를 미는 루돌프인 것 같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런 모습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 소품을 착용한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무척 보기 좋았다.
“과일을 저렇게 많이 가져오시다니, 오늘 무슨 날이에요?”
“아니요. 날이 꽤 쌀쌀해졌잖아요. 감기 예방하게 비타민 보충하시라고요.”
“호호호. 잘 가져오셨어요. 어제 김은지 작가님 만나셨죠? 대본은요?”
“1시즌 8화 대본 다 받아 왔어요.”
“보셨어요? 어때요?”
장르물 첫 도전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설정도 꼼꼼하고 서사도 훌륭했다. 태주가 맡아야 할 캐릭터의 지향점도 잘 드러나 있어서 준비하기 편할 것 같았다.
“감독님 만나는 자리에서 얘기가 나오겠지만, 액션 스쿨에 며칠 다녀야 할 것 같아요.”
“며칠이면 될 것 같아요?”
“네. 활 쏘는 거랑 검 휘두르는 것 몇 번 빼면 대부분은 뛰어다니거나, 지휘하는 장면이라서요.”
“그건 다행이네요. 영화 쪽도 드라마 쪽도 착착 진행되니 한시름 놓아도 되겠어요.”
태주는 착착 진행된다는 우 팀장의 말에 동의했다. 제작사에서 들었던 일본 배우 섭외가 안 된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잘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제작사에 들렀었어요. 일본인 배우를 못 구할 것 같대요.”
“이제영 감독님 영화요?”
“네.”
“한일 양국의 사이가 이래서 쉽지 않겠다 생각은 했었어요. 그럼 한국 배우가 맡겠네요. 일본인 배역이 몇 명이었죠?”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요. 나머지는 한두 단어, 길어야 한 문장 정도거든요.”
“일본인 역을 맡을 배우는 캐스팅을 빨리 마쳐야 할 텐데 말이죠.”
“네. 안 그래도 캐스팅 디렉터님하고 회의 중이시더라고요.”
제작사에서 봤던 장면을 설명한 뒤 태주는 태산이가 뭐 하고 있나 돌아봤다. 태산이는 친한 직원들 앞에서 호랑이 노래 공연을 하고 있었다. 루돌프 망토를 쓰고 호랑이 노래를 부르는 게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다들 좋아하니 상관없을 것 같았다.
“호호호. 마지막은 브이네요.”
“킥. 귀엽죠?”
“날이 갈수록 더 귀여워지는 것 같아요. 그거 아세요, 이 배우님? 얼마 전에 산이 예능 섭외가 들어 왔었어요.”
“헐. 섭외가 아직도 들어 와요?”
“산이 소식이 SNS 같은 곳에 끊임없이 올라오잖아요. 이 배우님이랑 같이요. 화제성이 있으니, 섭외가 계속되는 거죠.”
박수와 카메라 세례를 받은 태산이 어깨가 올라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봐 온 직원들은 아이의 그런 모습이 귀여운지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태주는 초콜릿을 받은 태산이가 방방 뜨며 ‘고맙뜹니다.’를 외치는 것까지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 배우님 잠깐만요. xx 브랜드 론칭 쇼 초청이 왔는데, 가실래요?”
“XX 브랜드요?”
“네. O사 서브 브랜드예요. 어제 오후에 초청 연락이 왔는데, 론칭 쇼가 모레예요. 보통 이렇게 급하게 초대하지 않는데, 무슨 이윤지 모르겠네요. 참석하실래요?”
“글쎄요. O 브랜드 모델이 누구예요? P사 브랜드 계약 끝나서 다른 브랜드 론칭 쇼에 가도 될 것 같긴 한데….”
“O 브랜드 국내 모델은 따로 없고요. 아시아 지역 모델로 대만의 멀티 엔터테이너 조우첸이 모델이에요. 어떡하실래요? 거절할까요?”
“네. 거절해 주세요. 론칭 쇼에 하루를 쓰느니, 대본을 보는 게 낫겠어요.”
우 팀장은 애초부터 이런 초청에 태주를 보낼 생각은 없었다. 겨우 이틀 전에 초청이 온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태주가 기존에 모델로 활동했던 P 브랜드에서 재계약 의사를 비쳐서였다.
군대 때문에 계약 연장을 못 했을 뿐, 그전까지 태주와 P 브랜드의 관계는 꽤 좋은 편이었다. P 브랜드는 협찬에 협조적이었고, 태주 역시 P 브랜드 시계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양쪽 모두 상대에게 만족한 계약이었다. 이런 상황에 굳이 잡음이 일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저흰 이만 가 볼게요. 아직 들를 곳이 남아서요.”
“그러세요. 변동 사항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이 배우님도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네. 그럴게요.”
태주는 일어나기 전에 책상 뒤쪽을 흘끔 쳐다봤다. 얘기하는 도중 갔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검은 머리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숨어 있는 아가씨의 무릎을 생각해서라도 그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태주는 볼이 빨개져서 사무실 안을 종횡무진하는 태산이를 불러들였다. 다시 배달을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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