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32
231. 전언 >
내후년의 시상식은 시상식이고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우 팀장은 휴게실 소파에 늘어진 김 실장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이 바쁜 시기에 휴게실에서 벌써 10분이나 쉬었다. 홍보실 직원이 찾으러 오기 전에 사무실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만 쉬고 이제 일하러 가죠.”
“어휴. 딱 삼 개월만 쉬었으면 좋겠네.”
“연예 기획사에서 연말연시 삼 개월을 쉬겠다니, 그게 무슨 놀부 심보예요?”
“이런! 벌써 시간이!”
도끼눈을 뜨는 우 팀장에 화들짝 놀란 김 실장이 나름 괜찮은 연기력을 보였다. 단지 비어 있는 손목을 보면서 시간을 보는 시늉을 한 것이 NG였다. 차라리 폰 화면을 보는 시늉을 했으면 나았을 텐데…. 김 실장을 바라보는 우 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크허험. 우, 우 팀장. 나 먼저 갈게.”
“…들어가세요.”
김 실장도 본인의 연기가 상황을 모면하기보단 부끄러움만 더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이상 소파에서 버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우 팀장 쪽은 보지 않고 문 쪽으로 잽싸게 걸음을 옮겼다.
“아차차! 우 팀장.”
“네?”
“태주 씨 어디 여행 갈 계획 없지?”
“여행이요?”
“어. 항상 겨울쯤에 가족 여행 갔잖아? 매번 뉴스에도 나오고.”
“바다.”
“어?”
“바닷가 휴양지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김 실장은 우 팀장의 대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은 것 같았다. 올해는 특히 트리즈 소속 배우들이 활발히 활동한 해였다. 덕분에 연말이 미친 듯이 바빠질 예정인데, 태주까지 일을 보태 주는 것은 사양이었다.
“작, 작품 준비하셔야지.”
“촬영은 두 달 뒤잖아요. 그 전에 가족들이랑 며칠 다녀오셔도 괜찮죠.”
“…이번엔 뉴스에는 안 나왔으면 해.”
“걱정이 지나치세요. 가족 여행마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렇지?”
가족 여행은 아니었지만, 산이와 같이 지방의 촬영장에서 보내는 동안에도 뉴스는 나오지 않았었다. 아마 이번에 가는 가족 여행도 큰 문제 없이 다녀올 것이다.
김 실장은 우 팀장의 호언장담에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기사 모니터링은 매일 해서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일이었다. 그래도 소속 연예인 기사가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 뜨는 걸 발견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다. 그는 이번에는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다.
태주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대본에서 눈을 떼었다. 옆구리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던 녀석이 다 잤는지 꿈틀거렸다. 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켜더니 비비적비비적 소파에 등을 비비고 있었다. 그는 대본을 한쪽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세워 태산이 가슴을 살살 긁어 주었다.
“태산이 다 잤어?”
“냐앙.”
“하하하. 해 지기 전에 정원에 나갈래? 아니면 집 근처 한 바퀴 돌고 올까?”
“냐아앙.”
“형 걸칠 것 좀 가지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대답 없이 옆으로 구르는 태산이 녀석의 몸을 한 번 더 쓸어 준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동적인 녀석이라 낮에 양껏 움직이지 않으면 밤에 잠을 안 자고 뛰어다녔다. 오늘은 낮잠까지 오래 잤으니, 이제라도 적당히 체력을 소모하게 해야 밤이 편안했다.
태주가 웃옷을 가지러 2층에 올라간 사이 태산이는 나무 모양 켓 타워의 잎사귀 뒤로 몸을 숨겼다. 태산이는 태주가 ‘태산아’하고 부르면서 찾아다니는 게 좋았다. 숨어 있는 곳을 발견하면 환하게 웃으면서 안기라고 팔을 벌리는 것도 좋았다.
태산이가 캣 타워에 숨어서 기다리는 동안 태주는 진혁과 통화하고 있었다. 그가 보낸 과일 상자를 잘 받았다는 내용의 통화였다. 며칠 전에 보낸 과일 상자들이 오늘 도착했는지 태주는 아침부터 비슷한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별것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저 과일 많이 생기는 거.”
-과일도 과일이지만 밤이 간식이 고마워서 그래. 매번 잊지 않고 챙겨 줘서 고맙다.
“뭘요. 밤이는 저도 귀여워하는걸요.”
-너 요새 일 없다며? 나와. 밥 사 줄게.
“형님은 요새 바쁘시잖아요. 나중에 한가해지시면 그때 봐요.”
-오늘 내일은 괜찮아. 그 뒤로는 연초까지 시간이 안 날 거 같아.
“그래요? 그럼 오늘 저녁에 볼까요.”
-어, 이따 보자. 그런데 태주야, 혹시 간식 한 봉지만 더 얻을 수 없겠냐? 밤이가 그것만 먹는다. 벌써 반절도 넘게 먹었어.
“하하하. 밤이가 몸에 좋은 걸 알아보나 보네요. 알았어요. 가져다 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태주는 그새 간식을 먹는 밤이 사진을 보낸 진혁의 극성에 고개를 저었다. 이 팔불출 아저씨가 얼마나 잘 먹였는지 밤이는 뼈만 앙상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지금은 통통하다 못해 조금 묵직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밤이 털 색깔이 좀 연해진 것 같은데?”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올 때부터 나이가 많은 강아지였다. 진혁이 건강 관리에 신경을 쏟고 있었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예전에 봤던 진한 밤색 털이 옅어져 있었다. 태주는 간식을 여러 봉지 챙겨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태주가 진혁에게 선물하고 태산이나 다른 펫에게 먹이는 간식은 그가 직접 만드는 영양제였다. 그렘린에게 먹일 보약을 만드느라 올린 제약 기술로 정원의 약초와 과일, 고기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간식의 탈을 쓴 영양제였다.
“태산이도 밤이 보면 좋아할 텐데….”
진혁이 밥을 사 주겠다며 얘기한 장소는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애견 카페 같은 곳에서 둘이 만나는 것은 무리였다. 따로 룸이 마련된 곳이 많지 않아서,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얘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잠시 만날 장소를 고민하던 태주가 급하게 통화 기록을 뒤졌다. 태산이와 밤이도 데려갈 수 있고, 사람들의 시선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게다가 그 장소의 주인들이라면 태주와 그의 일행을 거부할 리 없었다.
약속 장소를 변경하고 밤이도 데리고 오라고 얘기한 태주가 1층 거실로 내려갔다. 통화를 여러 번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제가 좋아하는 작은 형들을 만날 약속을 잡은 것이니 이해해 줄 터였다.
“태산아. 어딨어?”
“태산이 여기 숨었어?”
“냥!”
“아하하.”
캣 타워 잎사귀 뒤에 숨은 녀석을 발견하자,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뛰어들었다. 그가 보기엔 태산인 숨는 것보다 발견 당해서 품으로 뛰어드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찾기 쉽게 비슷비슷한 장소에 숨을 리 없었다.
태주는 품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는지 편한 자세를 잡느라 꼼지락거리는 녀석을 단단히 받쳐 주었다. 그렇게 품에 안은 채로 그는 이따 밤이를 만나러 갈 거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
태주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냄새를 묻히기 바쁜 태산이 더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와 있는 장소는 동생들의 작업실 2층이었다. 몇 년 전에 리모델링 한 2층은 널찍한 주방과 식탁, 긴 소파까지 있어서 얼핏 보면 카페나 원 테이블 레스토랑 같았다.
“형, 진혁 형님 어디까지 오셨대?”
“거의 다.”
“골목 안쪽이라 찾기 어려우실 텐데.”
“내비 있잖아. 괜찮아.”
처음 그는 장소만 몇 시간 빌리려고 했었다. 진혁이 도착하면 배달 음식을 시켜서 동생들과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 진혁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라 특별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건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작업실에 방문하는 게 진혁이라는 걸 안 순간, 태우와 연우의 동작이 빨라졌다. 조금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던 소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부족한 의자를 아래층에서 들고 올라오는 등. 둘은 손님 맞을 준비에 정신없었다.
-딩동!
“왔다. 내가 문 열어 줄게.”
진혁은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2층으로 올라가면서 의아해하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전원주택에서 사는 태주가 낯선 장소로 그를 초대해서였다. 게다가 주택가 인근의 낮은 상가 건물들이 세워진 장소는 태주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초대 받은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가 왜 자신을 이곳으로 불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카페처럼 차려진 2층은 굉장히 아늑하고 편한 분위기였다. 가구도 전등도 하다못해 테이블 가운데 놓인 소품도 주인이 공들여 꾸민 듯 보기 좋았다.
“들어오세요.”
“우와! 여기 뭐야? 무슨 가게야?”
“가게는 아니고요. 동생들 작업실이에요.”
“카페 같은데 작업실이야?”
“네. 동생들이 미튜브에서 채널 운영하거든요.”
그 말에 동생들에 대한 진혁의 호감이 폭발했다. 크리에이터에 도전하는 예능을 오랫동안 찍었던 그는 할 얘기가 무척 많았다. 그는
동생 둘이 직접 기획부터 편집까지 한다는 얘기에 쌓아 뒀던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요리하는 동생들 곁에 붙어서 한참 질문을 해댄 진혁은 밥을 먹기 전인데 이미 배부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혁이 동생들 곁에 붙어서 열심히 편집 팁을 얻고 있는 동안 태주는 태산이와 태산이 더미, 밤이 셋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태산이 녀석은 그가 챙겨 온 간식을 제 것인 양 생색내며 더미와 밤이에게 주고 있었다.
– 찰각!
‘크윽! 귀여워라. 아이와 강아지, 고양이라니.’
셋이 노는 걸 방해할 듯해서 사진을 많이 찍진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셋이 뒤엉켜 놀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동 카메라로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카지. 가티 머거야지.”
“멍!”
“냐앙!”
“아이 차카다.”
태주는 태산이가 더미와 밤이를 타이르고 칭찬하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발음은 부정확했지만, 말투도 억양도 모두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셋이 놀던 걸 지켜보던 그는 동생들이나 진혁이 보진 않았는지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셋은 요리와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지금 태산이가 내 흉내를 내는 거야?’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태주는 자신의 말투를 흉내 내는 아이 모습이 뿌듯하고 귀여운 한편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 모습에 앞으로 행동이나 말을 더 조심해야겠다 다짐했다.
“태쭈, 이꺼.”
“산아, 태산이랑 밤이 이미 많이 먹었어. 더 먹으면 배 아파.”
“아파?”
“응. 이제 배부를 거야. 간식은 나중에 주자.”
“앙.”
“하하하. 착하다, 우리 산이.”
태산이는 더미와 밤이가 잘 먹는 게 좋았는지 그새 간식 한 봉지를 전부 먹였다. 그는 간식 봉지를 하나 더 열어 달라는 태산이를 너무 많이 먹이면 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로 달랬다. 그의 말을 이해했는지 얌전히 간식 봉지를 내려놓는 아이가 대견했다. 지난 한 달의 휴가가 의미 있었던 듯했다.
태주와 잘 지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짜증이 늘었던 태산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휴가 동안 쭉 같이 시간을 보낸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겨우 한 달이었지만, 그 사이에 어휘도 풍부해지고 인내심도 생겼다.
“산이 날아 볼까?”
“꺄하하.”
그의 말을 잘 따라 준 태산이를 높이 들어 비행기를 태워 주자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몸을 살짝 던졌다가 받아 주자 자지러지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둘의 발치에선 더미와 밤이가 난리였다. 한 녀석은 그의 다리를 타고 오르려 하고, 한 녀석은 궁금한지 두 발로 콩콩 뛰고 있었다.
둘은 잠시 그렇게 놀다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까치집이 된 태산이 머리도 정리해 주고, 계속 매달리는 더미와 밤이도 쉬게 해 줄 생각이었다. 태산이를 무릎에 앉히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정리해 주고 있을 때였다. 그의 폰에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태쭈 ‘여보떼요.’ 해.”
“으음.”
“왜에?”
“모르는 번호라서.”
“모드는 버노?”
그의 폰으로 직접 연락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견우나 우 팀장을 통한 뒤에야 연락이 오는 편이었다. 낯선 번호로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낯선 번호라 받지 않았지만, 상대는 끈질겼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태주니? 나 김은혜야. 왜 전화를 안 받니? 두 번이나 하게 하고 말이야.
“김은혜 선배님?”
-응. 너 어디니? 나 여의도거든. 너 지금 어디 있니? 오늘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예?”
김은혜는 말을 할 때 빠르게 쉴 틈 없이 쏟아 내는 편이었다. 태주는 익숙하지 않은 그녀의 화법에 끼어들지 못하고 대답만 겨우겨우했다. 그는 정신없는 김은혜의 말에 얼결에 마포에 있다고 대답하고 작업실 위치도 알려 줘 버렸다.
그리고 십 분 뒤 김은혜를 동생들의 작업실에서 맞이했다.
“어머! 여기 무슨 레스토랑이야?”
“예?”
“전에 원 테이블 레스토랑 갔었거든. 거기보다 여기가 분위기 더 좋다. 나 마포 몇 번 왔었는데, 이런 데가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와 봤을 텐데. 넌 이런 좋은 곳을 왜 알리지도 않니? 혹시 독점하려고? 나만 아는 가게 뭐 그런 거야?”
“아니요. 여기 레스토랑 아니에요.”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데 레스토랑이 아니야? 왜 영업 안 해? 지금 당장 오픈해도 될 정도인데?”
“여긴 동생들 작업실이에요.”
“정말? 무슨 일 하는데? 혹시 요리 연구가 그런 거야? 그러고 보니까, 전에 요리사 역할 했을 때 수업받던 곳이랑 좀 비슷한 것 같다. 거기도 딱 이런 분위기였는데.”
아직 김은혜는 동생들이나 진혁과 인사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방문을 반기던 세 사람은 이미 조리대 뒤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태주는 요리를 막 끝낸 세 사람이 다시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는 걸 이해하기로 했다. 그 정도로 김은혜의 수다는 부담스러웠다.
“선배님, 저는 무슨 일로?”
“아! 여기가 너무 괜찮아서 잊고 있었네. 별건 아니고 선생님이 너랑 꼭 같이 작업을 하라고 하시잖아. 그래서 대체 뭘 보시고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애랑 작업하라고 하시나 궁금해서 보러 왔어.”
“선생님이요?”
“응. 너도 한 번 만난 적 있을 거야. 내가 내일부터 화보 때문에 유럽에 가야 하거든. 그다음에는 미국에서 일이 있어서, 한동안 한국에 들어오기 힘들 것 같아서 말이지. 시간이 오늘밖에 없었어. 갑작스러워도 네가 이해해.”
“예? 예. 그런데 선생님이라는 분은?”
선우 선생님. 김은혜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있는 요리들을 훑어봤다. 태주는 그제야 자신의 다리를 붙들고 있던 태산이가 어느새 동생들 곁에 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김은혜의 수다에 그한테서 잘 떨어지지 않는 아이까지 자리를 피해 버렸다.
“선우 선생님이요? 혹시 어떤 분이신지요?”
“전에 너 탐정 박수 찍을 때 만났다고 하시던데, 기억 안 나? 그때 신당 세트 자문해 주시러 가셨다가 너 봤다고 하시던데.”
“아! 그 선생님.”
“어. 내가 두 작품 중에 뭐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거든. 그런데 선생님이 네가 하는 작품을 하라고 하시지 뭐야. 무조건 그게 이득이라고.”
“음.”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모르지?”
김은혜는 자연스럽게 테이블 의자를 하나 꺼내더니 그녀가 선우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만신과의 일화를 풀어 놓았다. 처음 미국에 갈 결심을 하게 된 계기부터 작품 선택에 도움을 받거나 회사를 옮길 때 도움받은 얘기를 한참 동안 떠들었다.
“선생님이 기회 되면 신당에 들러 달라고 하시더라.”
“저요?”
“응. 뭐라더라? 뭔가가 바로잡아졌다고만 하셨는데.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는 못 들었어.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은 너 외엔 본 적 없다고, 겨우 한시름 덜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넌 알겠니?”
“아니요.”
무당 선우는 몇 년 전에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이었다. 당시 강한 신의 가호를 받는다는 얘기를 듣긴 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런 얘기보다 더 신비로운 일을 매일 겪는 중이라서였다. 여랑 작가에게 굉장히 용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었다.
‘설마 박재우의 시스템을 봉인한 일을 말하는 건가?’
다른 사람이 박재우의 일을 알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몰랐다. 마법사인 쿠첼루스와 같이 사는 태주였다. 쿠첼루스처럼 그가 모르는 특별한 힘을 무당 선우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 맞다. 선생님이 전해 줄 것도 있다고 하셨었는데. 너한테 꼭 필요하게 될 거라고 가지러 오라고 하셨어. 시간 내서 한번 들러 봐.”
“네. 그럴게요.”
“그런데 우리 밥 언제 먹니?”
“예?”
“음식 다 준비된 지가 언젠데 계속 떠들고 있어? 이 탱글탱글한 새우 살 좀 봐 봐. 면은 또 어떻고? 딱 먹기 좋게 삶아지고 소스도 알맞게 배었잖아. 당장 먹어야지 뭘 보고만 있어? 이렇게 정성 들인 음식을 그냥 식힐 거야?”
폭풍 수다를 쏟아 내는 그녀를 조용히 시키려면 음식을 먹이는 게 최선이었다. 태주는 멀찍이 피해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그는 세 사람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걸 무시하고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김은혜의 수다를 혼자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꾸물꾸물 움직인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곧 식사가 시작되었다.
역시 연예인은 실제로 겪어봐야 알 수 있었다. 방송에선 그렇게 지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의 김은혜였는데, 실제로는 지독한 수다쟁이였다. 그녀의 입은 음식을 먹는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 내던지 식사 시간이 마치 벌칙 게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태주는 두 달 뒤에 시작할 촬영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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