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35
234. 단단의 둥지 만들기 >
빙판 전투 신 이후로도 한참 동안 이어진 영화는 복수에 성공한 사람이 터덜터덜 현장을 떠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가 기억하던 대로 영화는 마지막까지 극적인 반전이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장면은 없었다.
영화 엔딩 장면이 지나고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태주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가 확인하려던 추모사가 올라올 차례였다.
-별이 되신 배우 박찬주 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조의를 표하는 추모사를 읽은 태주가 혀를 찼다. 관용적으로 쓰는 별이 되었다는 표현이었지만, 어쩐지 께름칙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무명 배우로 생을 마감한 고인의 추모사에 절대로 별이 되었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박태경 감독의 영화는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후우! 아직 시간은 있으니, 방법은 천천히 고민해 보자.”
태주는 재생이 끝난 플레이어를 끄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사고는 지금 당장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로 돌아가서 촬영 일정이나 장소를 수소문해 본 후,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회귀 전 사고를 당하는 배우의 이름을 알아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호호호. 그런 게 좋아?’
‘이히히. 응, 해나.’
‘히이이잉.’
그가 거실에서 영화를 확인하는 사이 해나를 비롯한 정원의 다른 식구들은 오두막 앞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재밌는 일이라도 있는지 연신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주는 양손을 들어 뺨을 몇 번 조몰락거렸다. 곧 얼굴을 마주할 정원 식구들이 걱정하지 않게, 굳은 표정을 푸는 중이었다.
-끼익!
“무슨 재밌는 얘기 중이에요?”
“응? 정원사 씨, 확인 끝났어?”
“네. 그런데 지금 뭐 하세요, 해나?”
“이히히, 태주.”
“응.”
“우린 설계도 그리는 중이야.”
오두막 문을 열고 나서자, 오두막 앞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원 식구들이 보였다. 다들 테이블 위에 펼쳐진 종이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테이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무얼 하는지 묻자, 설계도를 그리는 중이라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설계도?”
“응. 단단의 둥지 설계도야.”
“호호호. 정원사 씨 진화석을 구하려고 모은 DP가 그대로 남았잖아. 그걸로 단단의 둥지를 새로 짓기로 했어.”
“네? 그런 거라면 제가 DP를 낼게요. 제가 고용하고 있는걸요.”
“단단. 단단.”
“태주, 단단이 괜찮대. 자기가 내고 싶대.”
단단이 살 곳을 직접 짓고 싶다고 말했지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단단은 정원의 일꾼으로 고용된 상태였다. 살 곳을 제공하는 것은 정원사인 태주의 의무였다. 그렇지 않아도 허술한 둥지가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아니야. 그건 모아 뒀다가 단단을 위해서 써야지.”
“단단.”
“단단, 단단이 살 둥지는 내가 해 줄게 ”
“단단.”
“얼마나 그렸어요? 저도 보여 주세요.”
해나가 그리고 있는 단단의 둥지는 지금 사는 둥지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크기도 훨씬 크고 여러 가지 시설도 들어 있었다. 특히 개천의 물을 둥지 안쪽까지 끌어와서 작은 풀을 만든 건 그가 보기에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풀이 있어서 좋네요. 요샌 물의 정령이 항상 같이 있으니까요.”
“호호호. 이젠 이 아이가 정원 식구 같다니까.”
– ♩♪♬♬♩♪
“풀 테두리 한쪽은 경사로 만들죠.”
“오! 그거 괜찮네. 그러면 단단이 다니기 편하겠어.”
풀 경사 외에도 태주는 온돌처럼 단단이 자는 곳 바닥에 발열석을 넣자고 제안했다. 온돌은 추위를 많이 타는 단단을 위해서 전부터 고민하던 것이었다.
둥지 안에 둘 장식은 각자 하나씩 단단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희는 보물 상자, 태주는 인디언 텐트, 해나는 먹이 그릇 등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 외에 물의 정령이 가지고 놀 장난감과 청결 마법이 걸린 커다란 쿠션도 사기로 했다.
“이 설계대로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요.”
“흐음. 이걸 마법주문서로 만들 수 없나?”
“마법주문서? 아! 레시피! 상점에서 파는 레시피 말하는 거죠?”
“맞아, 레시피. 레시피를 찢어서 건설되게 만들 수 있으면 편할 텐데, 아쉽네.”
“음. 그러려면 마법에 레시피 제작 기술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무리네.”
“무리죠.”
해나의 말대로 설계도를 레시피로 만들면 순식간에 단단의 둥지를 지을 수 있을 테지만, 무리였다. 정원에는 레시피로 만든 설계도에 마법을 걸어 줄 사람이 없었다.
“수고해, 정원사 씨.”
“헛! 네, 그럴게요.”
“이히히. 태주 희가 도와줄까?”
“하하하. 아니야. 괜찮아, 희. 애들이랑 놀고 있어.”
“단단. 단단.”
“기대해, 단단. 멋지게 만들어 줄게.”
해나와 그의 대화를 들었는지 단단이 미안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갈색 털로 바뀐 뒤 더 순해진 단단이었다. 태주는 그런 단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최근 단단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이 잦았다. 매번 눈을 감고 손길을 즐기는 단단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쓰다듬고 있었다.
사실 둥지가 세워질 위치의 땅을 파고 다지는 일을 빼면 그다지 힘든 일은 없었다. 설계도의 둥지가 지금 사는 둥지보다 훨씬 컸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은 방만 한 크기였다. 다년간의 노동으로 숙련된 노동자가 된 태주 혼자서 만들어도 충분했다.
“자, 이제 가서 놀아.”
“응. 태주 이따 봐.”
“응. 어라? 우리 태산이는 어디 갔지?”
희와 제피르는 물의 정령과 놀 생각인지 단단과 개천 쪽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배웅하던 태주는 허전함을 느꼈다. 복슬복슬한 하얀 털의 말썽쟁이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얘는 또 어디서 뭘 하길래 혼자만 안 왔었지?”
“호호호. 얼마 전부터 바위틈을 다시 들락거리던데. 아마 거기 있을 거야.”
“태산이 보물창고요? 거기 도도한테 넘겨준 게 아니었어요?”
“도도는 이제 그쪽으로 안 가니까. 그나저나 정원사 씨, 뭘 확인하려 했던 거야? 표정이 심상치 않았었어.”
“그게 무슨 일이냐면요.”
태주는 회귀 전에 있었던 사고를 설명했다. 지금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지만,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큰 사고였다. 그는 그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을 액션 스쿨에서 본 얘기를 해나에게 들려주었다.
“사고를 당하는 사람을 확인했으니, 그 일을 못 하게 막으면 되지 않겠어?”
“음. 그게 제가 그런 말을 꺼낼 입장은 아니라서요.”
“응? 왜? 호의로 그만두라 권하는 건데.”
“영화 배역이라는 게 정말 얻기 힘든 거거든요. 저처럼 소속사가 있거나 인맥이 있는 배우들은 배역을 쉽게 얻지만, 그렇지 않은 배우들은 정말 힘겹게 얻거든요. 그래서 그만두게 하기 쉽지 않아요.”
뒤를 받쳐 주는 소속사나 인맥이 없는 배우가 영화 배역을 따내는 일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오디션조차 제대로 열지 않는 드라마보다는 그나마 영화가 나은 편이었지만, 배역을 얻기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영화의 경우 주연과 조연을 정해두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오디션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다. 정말 찾기 힘든, 키가 2m 가까이 되는 장신이나, 특별한 재주가 필요한 배역이 아닌 이상은 단역까지 정해진 경우도 많았다.
“사실 저도 데뷔 초반에만 오디션을 봤어요. 이후의 작품은 모두 회사로 캐스팅 제안이 온 것 중에 골랐어요.”
“세상에! 정원사 씨 얘기 대로라면 단역 하나를 두고 몇백 명이 경쟁한다는 얘기잖아.”
“네, 가끔은 한 배역에 몇천 명도 응시해요. 치열하죠. 실제로 오디션에서 뽑는 비율은 전체 배역의 5%로도 되지 않는데도요. 대부분의 역할은 미리 배우를 정해 두고 아주 작은 배역만 오디션으로 뽑는 거죠. 그러니 아마 제가 그만두라 말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흐음. 그러면 수습을 잘하는 방법밖에 없겠는걸.”
“그렇죠.”
현실로 돌아가면 액션 스쿨에서 만난 배우들에게 안전에 주의하라 경고하자 다짐했었다. 드라마 촬영 전에 잡힌 인터뷰에서도 안전에 관해 얘기할 생각이었지만, 아마 그것으론 사고를 막기 힘들 것이다. 해나의 말대로 사상자가 생기지 않게 수습을 잘하는 게 최선이었다.
“정원사 씨 표정이 여전히 심각한데, 혹시 걱정거리가 더 남았어?”
“음. 그건 아니고요. 어쩐지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호들갑을 떠는 것도 같고, 또 남의 일에 제가 괜히 나서서 오지랖을 부리는 것도 같아서요.”
“호호호. 정원사 씨, 뭘 그런 걸 신경 써. 정원사 씨가 지금 하려는 일이 무슨 이득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 남을 짓밟거나 해치는 일도 아니고, 그렇지?”
“그건 당연히 아니죠. 전 그냥 안타까워서 나서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나아. 괜히 머뭇거리다가 후회하느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라고.”
“역시 그렇죠?”
“응. 해나 말을 들으라고. 인명에 관련된 문제잖아. 그런 일에 오지랖 좀 부린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태주는 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명이 걸린 일에 망설이다 후회와 미련을 남기느니, 해나 말대로 우선 저지르는 게 나았다. 물론 해나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당연히 나설 생각이었다.
일말의 망설임까지 털어 버린 태주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뤄 뒀던 정원 일을 할 시간이었다. 오전 중으로 정원 일을 마치려면 쉴 시간이 없었다.
“해나, 설계도는 제가 챙길게요.”
“응.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고.”
“괜찮아요. 상점에서 봐 둔 물건이 있거든요. 정원에서 쓰기엔 좀 과한 것 같아서 구매를 망설였는데, 이번 기회에 사려고요.”
“무슨 물건?”
“마법 삽이요. 크기도 자유자재로 변하고요, 삽질도 자동으로 설정할 수 있는 거예요. 범위도 지정할 수 있고요.”
“괜찮은 물건 같은데.”
“하하하. 그거 믿고 자신 있게 나선 것도 있어요.”
마법 삽은 가격은 좀 나가지만, 쓰임새가 괜찮은 물건이었다. 잘 팔리는 물건이었지만, 공급도 충분해서 아공간 아이템과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바로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태주의 정원은 대공사를 난쟁이와 아칸서스가 대신해 줘서 마법 삽을 살 필요가 없었다. 구획 정리는 난쟁이들이 정령의 힘으로, 폭포와 개천은 아칸서스가 마법으로 도와주어서 여태까지 구매를 미루고 있었다.
*
정원 일을 마친 태주는 개천 근처를 걷고 있었다. 옆구리에 둘둘 말린 설계도를 끼고 손에는 번쩍이는 마법 삽을 든 채였다. 그는 단단의 둥지가 들어설 적당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원래 둥지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이 좋겠지?’
단단의 둥지는 산책로의 안쪽 나무 사이에 있었다. 이번에는 둥지를 개천 가까운 곳에 지을 생각이었다. 개천에서 물을 끌어다가 풀을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에,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드는 게 힘들 것 같아서였다.
“아니지. 어차피 땅은 마법 삽이 파 주잖아. 가까이 짓자.”
단단의 둥지가 오두막과 멀어서 좀 불편했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니, 가끔은 일이 있을 때 단단을 부르는 것을 잊기도 했었다. 만약 오두막 가까이에 둥지를 지어 준다면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태주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우선 삽질 범위 설정 먼저.”
마법 삽에는 두 개의 버튼이 있었다. 작동과 정지 버튼이었는데, 두 버튼을 같이 누르면 작동 범위를 설정할 수 있었다. 태주가 버튼 두 개를 동시에 누르자 마법이 발동되었다.
마법 삽의 효과는 꽤 직관적이었다. 빛의 선 위에 빨간색 공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그 빨간색 공을 원하는 위치로 옮겨서 마법 삽의 작동 범위를 정할 수 있었다.
“오! 위치를 지정하면 공이 깃발로 바뀌는 거구나. 재밌다.”
둥지까지 이어질 수로 위치를 정하자 마법 삽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마법 삽이 붉은색 공이 깃발로 바뀐 범위 안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파고 지나갔다.
태주는 신기한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가 공사 현장을 떠났다. 수로의 길이가 긴 편이라서 작업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였다. 그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오두막에서 쉬다 시간 맞춰 나올 생각이었다.
태주가 오두막 방향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태산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산이는 태주가 오두막 방향으로 간 게 맞는지 조심스레 뒤를 따르며 확인했다. 오두막으로 간 것이 맞았다. 태주가 한동안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태산이 걸음이 빨라졌다.
-다다닷!
빠른 속도로 마법 삽의 공사 현장에 돌아온 태산이 그대로 마법 삽 쪽으로 달려갔다. 태주의 뒤를 확인하고 온 그사이에도 마법 삽은 멈추지 않고 작동하고 있었다.
“앙!”
사람이 다가오자 잠시 작동을 멈춘 마법 삽을 향해 태산이가 다가갔다. 태산이는 신기한 마법 삽이 도망가지 못하게 두 손으로 꽉 쥐고 요리조리 살펴봤다. 작동, 정지. 태주가 잡았던 부분에 써진 글자였다. 그리고 태산이도 잘 아는 글자였다.
“아앙! 이꺼.”
-꾹!
마법 삽의 정지 버튼을 누른 태산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최근 태산이는 새로운 굴을 찾고 있었다. 예전에 도도에게 줬던 바위틈 굴을 되찾았지만, 그곳은 이미 사람들에게 들킨 곳이었다. 조금 더 은밀하고 넓은 굴이 필요했다.
괜찮은 후보지가 몇 곳 있었다. 푸른 사자 정원사가 선물한 바위 무더기 뒤편도 괜찮았고, 오두막 정 반대편 담벼락 근처의 나무 아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원래 있던 굴이 너무 작아서 넓히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점이었다. 특히 바위 무더기 아래는 땅이 단단해서 더 힘들 것 같았었다. 그러나 자동으로 땅을 파주는 이것만 있으면 새로운 굴을 쉽게 팔 수 있었다.
“이꺼 사니 떤물하자. 태쭈, 고맙뜹니다.”
태산이는 멀리 오두막에 있는 태주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마법 삽자루를 꼭 쥐고 바위 무더기 쪽으로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쿵쿵쿵 빠르게 뛰었다. 달리는 중이라서 그런 것인지, 좋은 물건을 얻어서 흥분해서 그런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태산이 달리던 중 손에 쥔 마법 삽을 흘깃 돌아봤다. 마법 삽은 날이 이빨처럼 뾰족한게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이었다. 마법 삽을 든 태산이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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