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36
235. 다정한 시간 >
마법 삽을 작동시켜 놓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태주는 차를 한잔 우려서 소파에 앉았다. 진하게 퍼지는 차 향을 맡자, 아침부터 재미없는 영화를 보느라 소모한 기력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렇게 느긋하게 차를 한잔 다 마신 후 다시 공사 현장으로 복귀했다.
“어?”
없었다. 개천 근처부터 수로를 파기 시작했던 마법 삽이 안 보였다. 태주는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봤다. 수 미터 정도 파낸 흔적이 남은 것을 보면 마법 삽을 사서 공사를 시작한 일이 꿈은 아니었다.
-뿌드득!
“이놈 자식! 이태, 합!”
태주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부르려다 급하게 입을 닫았다. 파낸 흙더미 위에 찍힌 작은 발자국을 보면 범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꼬맹이 녀석이었지만, 그는 그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다른 사람이 그가 부르다만 이름을 들었는지 확인했다.
‘못, 못 들었겠지? 큰일 날 뻔했네.’
주변에 아무도 없던 것에 안도한 태주가 슬금슬금 공사 현장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조용히 상점으로 가서 마법 삽을 한 자루 다시 샀다. 상점에서 마법 삽을 사는 도중에도 보는 사람이 없는지 예민하게 살피면서 샀다.
“에효. 똥고양이 녀석 때문에 이게 무슨 우스꽝스러운 짓이야.”
그는 첩보전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시선을 피해서 움직였던 자신의 행동이 우스웠다. 이게 무슨 심각한 문제라고, 그걸 감춰 주려 첩보원 행세를 한 게 어이없었다.
‘됐다. 꼬맹이 녀석이 모르고 벌인 일로 오해받는 것보단 낫지.’
태산이는 장난기도 많고 가끔 말썽도 부리는 아이였지만, 정원 식구를 누구보다 아끼는 아이였다. 아직 아기였을 때도 자신을 지켜 주겠다고 나섰을 정도였다. 그런 녀석이 단단의 둥지를 짓는 일을 고의로 방해했을 거라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단단의 둥지 설계도를 그릴 때도 자리에 없었고, 나중에 따로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니었으니, 단단의 둥지를 짓는 중이라고는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아마 마법 삽이 혼자 움직이는 게 신기해 보였거나 재밌어 보여서 가져갔을 것이다.
태주는 허락 없이 물건을 가져간 일은 나중에 타이르기로 했다. 그는 새로 사 온 마법 삽의 작동 범위를 다시 설정하고 잠시 지켜보다 자리를 옮겼다. 해가 지기 전에 활터에서 활쏘기 연습을 잠시 할 생각이었다.
그날 저녁 오두막 현관 앞에서 태주는 목을 길게 빼고 정원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사위가 어둑어둑해진 시간이었는데, 말썽쟁이 녀석이 돌아오지 않아서 찾는 중이었다.
“이 녀석이 대체 어딜 간 거야?”
“정원사 씨, 제피르한테 부탁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냥 제가 한 번 더 둘러보고 올게요. 오후에 희랑 신나게 놀았나 보더라고요. 저녁 먹자마자 꾸벅꾸벅 졸아서 희랑 같이 자라고 보냈어요.”
“마법 등불들도 안 움직이는 걸 보니 길가엔 없나 본데.”
“태산이 굴이랑 바위틈 좀 다시 보고 올게요.”
“응. 다녀와.”
태주가 돌길로 올라서자 마법 등불들이 몰려왔다. 등불들은 그의 주변을 돌며 환하게 길을 밝혀 주었다. 탁탁 신발이 돌길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불안한 느낌을 지우려 노력했다.
지금까지 태산이는 사고를 치고 몰래 숨는 일을 여러 번 했었다.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숨어 있다가 슬그머니 나타나서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떨었었다. 그러면 태주는 화를 내려던 것도 잊고 태산이가 부리는 화해의 애교를 받아들였었다.
‘못된 녀석! 오늘은 화도 안 났는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안 나오는 거야.’
돌길을 따라 바위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체험 돔을 설치한 후로 이쪽 길을 걷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꽈르릉! 태주는 여전히 요란한 천둥소리에 번쩍번쩍 번개가 치는 체험 돔 방향으론 시선을 주지 않고 바위틈으로 다가갔다.
해나는 바위틈에 태산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했지만, 이곳에 와 보니 가능성 없는 얘기였다. 이곳은 요란한 천둥소리 때문에 태산이처럼 소리에 예민한 아이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중을 날던 마법 등불을 잡아채서 바위틈 사이로 밀어 넣어 보았다.
“역시 없네. 태산이 굴로 가봐야겠다.”
예상대로 굴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해나 말대로 들락거린 흔적은 있었지만, 바위틈을 보물 창고로 이용한 것 같진 않았다. 만약 이곳을 다시 보물 창고로 쓸 생각이었다면, 태산이가 아끼는 장난감이나 육포 자루가 있어야 했는데, 바위틈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태주는 바위틈을 살펴본 후 그대로 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도 먹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는 녀석을 빨리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걸음 속도가 무척 빨랐다. 그는 정원의 안전은 믿고 있었지만, 태산이의 활동적인 성격은 믿지 않고 있었다.
태산이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장애물을 들이받으며 돌진하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과한 걱정일 수 있지만, 다리를 다쳐서 돌아오지 못하는 중일 수도 있었고, 간식 먹는 걸 잊어서 배가 고파 쓰러졌을 수도 있었다.
“여기도 없네. 이 녀석이 정말. 대체 어딨는 거야?”
태주는 태산이가 평소 잘 다니는 곳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자주 숨던 관목 아래도 모두 훑어봤고, 잘 올라가는 나무 위도 살펴봤다. 그렇게 이곳저곳 정원을 뒤지다가 바위 무더기 사이에서 겨우겨우 말썽쟁이를 찾아냈다.
“태산아! 왜 그래? 다쳤어?”
바위 무더기는 예전에 태산이가 잘 놀던 곳이었지만, 주변 나무들의 키가 자라서 시야가 가려진 뒤론 잘 가지 않던 곳이었다. 태주는 푸른 사자 정원사가 선물한 바위 무더기 중턱,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붙어있는 틈에 끼어 있는 태산이를 발견했다.
그는 태산이가 바위에서 떨어진 줄 알고 한달음에 바위를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바위를 오르느라 미끄러질 뻔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바위 사이에 구겨져 있는 작은 몸이 걱정되어서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태산아!”
-고로롱.
“태산아?”
-피유우.
“크흠. 자니?”
-짭짭짭.
급하게 바위들을 타고 올라가서 품에 안은 녀석은 깊이 잠들었는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안아 들었는데도 여전히 고로롱거리며 자고 있었다.
태주는 낮에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다행히 그의 모습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는 어둠이 붉어진 얼굴을 가려 주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태산이는 바위에서 내려오는 동안 꽤 흔들렸는데도 쿨쿨 잘 자고 있었다.
“에이. 얄미운 녀석. 너, 인마. 형이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그는 짭짭짭 입맛을 다시면서 자는 태산이를 잘 추슬러 안고 오두막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주는 조금 전의 행동이 민망했는지 타박하는 말을 연신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전혀 달랐다. 태주는 태산이가 편히 잘 수 있게 한쪽 팔론 몸을 단단히 받쳐 주고 다른 팔론 등을 살살 쓸어 주는 중이었다.
*
오두막으로 돌아온 태주는 잠든 태산이를 침대에 내려 주려다 깜짝 놀랐다. 태산이 온몸이 흙투성이였기 때문이었다. 하얀 솜방망이는 흙물이 들어서 제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발톱에도 흙이 가득 껴있었고, 턱에서 가슴, 배로 이어지는 부분도 전부 흙색이었다.
“헉! 꼬질해. 꼬질꼬질.”
‘마법 삽도 가져간 녀석이 왜 이리 흙투성이야?’
태주는 바위 무더기에서 오두막으로 오는 동안 엉망이 된 자신의 셔츠를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잠깐 사이에 흰 셔츠가 태산이 몸에서 묻은 흙으로 황토색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 길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기 시작했다. 태산이는 도저히 그냥 재울 수 없는 상태였다.
-주르륵!
‘독한 녀석. 이렇게 하는데도 안 깨다니.’
흙물을 빼느라 꽤 힘을 줘서 샴푸를 하는 중에도 태산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깨기는커녕 따뜻한 물이 마음에 든 듯 아예 몸에서 힘을 빼고 잠을 청하는 통에 물에 빠질까 긴장하면서 씻겨야 했다.
빠직! 태산이 몸에 따뜻한 물을 끼얹는 태주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잠든 태산이 녀석이 꼬리로 튕긴 물을 얼굴에 맞아서였다. 잠이 깨서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자는 중에 저도 모르게 꼬리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태주는 여러 번 물을 갈아 주며 씻긴 태산이를 수건으로 둘둘 말아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태산이가 깨면 먹일 간식을 챙겨 오는 동안에도 말썽쟁인 쿨쿨 잘 자고 있었다. 그는 수건으로 부드럽게 몸을 닦아 주며 한숨을 쉬었다.
“냐아아.”
침대 위 한쪽에서 맥없는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본을 보던 태주는 미약한 그 소리에 집중이 탁하고 풀려 버렸다. 태산이 녀석한테서 들을 거로 상상도 못 해 본 울음소리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협탁에 올려 둔 짜 먹는 간식으로 손을 뻗었다.
“착하지. 태산아 이거 먹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건너뛴 녀석은 입에 간식을 대어 주자마자 걸신들린 듯이 먹어 치웠다. 순식간에 한 봉지를 다 먹은 녀석이 부족한지 ‘냐아아.’ 한 번 더 울음소리를 내었다. 태주는 한 봉지를 더 까서 다시 입에 대어 주었다.
태산이는 간식 두 봉지를 연이어 먹고 나서야 기운이 나는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느릿하게 기지개를 켜더니 태주의 옆구리에 붙어서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목줄에 넣어 준 육포는 어쩌고 쫄쫄 굶고 다니는 거야, 응?”
“냐아앙.”
“밥 안 먹고 돌아다니니까, 힘이 하나도 없잖아.”
“냐앙.”
“어휴. 다음부턴 그러지 마. 알았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태주는 그러려니 했다. 배가 고파서 쓰러진 녀석을 대답하라고 다그치기도 뭐해서였다. 그는 기운을 차린 태산이를 안고 일어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밥을 먹이고 재울 생각이었다.
태주의 팔에 안긴 태산이는 좀 억울했다. 배가 고파서 쓰러진 것도 맞긴 하지만, 태주 말대로 쫄쫄 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목줄에 챙겼던 육포도 먹었고, 굴에 숨겨뒀던 과자도 먹었지만, 먹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여서 지친 것이었다.
“냐앙냥냥.”
“응? 소고기는 별로야?”
“냥!”
“왜 그래? 오리고기 꺼내 줘?”
“냐아앙.”
점심으로 육포 많이 먹었다고 말했지만, 태주가 알아듣지 못했다. 태산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그가 답답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오리고기를 꺼내 줬으니 얌전히 있기로 했다.
잘게 자른 오리고기 한 접시를 후다닥 해치운 태산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노곤한 게 눈을 감으면 바로 다시 잠들 것 같았다.
“으이구. 얼굴에 다 묻히고 먹었네. 아이고, 눈곱 좀 봐.”
“냐앙.”
“킥. 다시 방으로 가자. 자야지.”
“냐아앙.”
“왜? 안아 줘? 안 걸을 거야?”
“냐아앙.”
태주는 우선 태산이 눈에 낀 눈곱을 떼어 주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입가를 닦아 주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앞발로 쓱쓱 눈곱을 떼어 내고 얼굴도 닦던데, 태산이 녀석은 아기 때부터 그가 해 줘 버릇했더니, 매일 그냥 다니고 있었다.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은 태산이 녀석이 그를 따라 걷지 않고 그릇 앞에서 울기만 했다. 주방까지 안겨 오더니, 방까지도 안겨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유독 어리광이 심한 밤이었지만, 태주는 바라는 대로 품에 안고 움직였다.
-부스럭.
“태산아 이거 같이 보자.”
“냐앙.”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태주는 다시 자려는 태산이를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그 자세로 단단의 둥지 설계도를 꺼내 들었다. 그는 침대 위에 펼쳐 둔 설계도의 한 부분을 짚으면서 개천에서 물을 끌어오는 풀이라고 설명했다.
두둥! 태주의 설명을 들은 태산이 눈동자가 요란하게 떨렸다. 힘을 빼고 늘어져 있던 태산이 몸도 순간 단단하게 굳어 버렸다. 그는 그 반응으로 요 말썽꾸러기가 정말 상황을 모르고 마법 삽을 가져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주는 그런 태산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정원 식구들을 아끼는 태산이가 단단의 둥지를 만드는 중인 걸 알고도 가져갈 리 없었다. 몰래 가져간 것은 옳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일을 훈계할 생각은 없었다. 훈육은 한 번에 한 가지라는 원칙을 지켜야 했다.
“단단 둥지는 천천히 만드는 중이야. 여러 가지를 만들어야 하거든.”
“…냐아.”
“이제 자자. 늦었다.”
복잡한 얼굴. 태주는 털북숭이 고양이 얼굴에서도 표정이 읽히는 게 재밌었다. 제가 한 짓이 무슨 일을 방해한 건지 깨달은 태산이 얼굴은 아주 복잡했다. 어리광부리며 매달리던 천진한 얼굴이 ‘나 고민 있어요.’ 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태주는 예전에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솔직하게 얘기하고 사과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었다. 기억력이 좋은 녀석이니, 곧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을 것이었다.
*
아침 일찍 태산이는 새로 파던 굴로 향했다. 고양이로 위장한 몸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입구를 지나면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원랜 겨우 몸의 방향을 틀수 있을 정도로 작은 굴이었는데, 하루 만에 몰라볼 정도로 커져 있었다. 모두 어제 가져온 마법 삽 덕분이었다. 굴 안에 놓인 삽자루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태산이 눈에 아쉬운 빛이 짙게 서렸다.
“앙!”
마법 삽은 대단한 물건이었다. 태산이 앞발로 온종일 판 것보다 마법 삽이 몇 시간 판 게 더 많이 팠을 정도였다. 놀라운 작업 속도에 덩달아 신이나 탈진할 때까지 땅을 팔 만큼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이었지만, 돌려주어야 했다. 단단의 둥지를 만드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태산이 마법 삽의 자루를 꽉 쥐었다.
“단단. 앙!”
태주는 눈을 뜨자마자 허전한 품을 제일 먼저 느꼈다. 밤새 품에서 잠들었던 태산이 녀석이 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태산이는 현실에선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정원에선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아침 좀 든든히 먹이려 했더니, 그새 사라졌네.”
오늘도 어제처럼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닐 것 같아서 아침이라도 든든히 챙겨 먹일 생각이었는데,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대체 어딜 그렇게 헤매고 다니는 것인지. 이렇게 일찍 나갈 줄 알았으면, 저녁에 깼을 때 미리 간식을 챙겨 줄 걸 그랬다.
태주는 아쉬운 마음에 자리에 없는 태산이를 잠시 탓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씻기 전에 마법 삽의 작동 범위를 다시 설정하고 올 생각이었다. 슬리퍼를 갈아 신고 오두막 문을 열었을 때였다. 아이로 변한 태산이가 삽자루를 쥐고 오두막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 산아?”
“태쭈.”
“응. 산이 어디 갔다 왔어?”
“이꺼.”
“마법 삽. 형 주는 거야?”
“앙. 떤물.”
선물? 태주는 ‘원래 형 거잖아’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 않고 참았다. 태산이가 가져간 물건을 자발적으로 다시 가져오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호들갑스럽게 칭찬할 필요는 없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마법 삽을 챙겨온 아이를 야단칠 필요도 없었다.
“고, 고마워.”
“이꺼 단단 둥지 해.”
“응. 이걸로 단단 둥지 잘 만들어 줄게.”
“앙!”
그는 마법 삽을 돌려준 게 아쉬운지 눈을 떼지 못하는 태산이 머리를 칭찬 대신 쓰다듬어 주었다. 제 욕심을 누를 정도로 단단을 좋아하는데, 다른 정원 식구들에게 오해받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마법 삽을 태주에게 선물한 태산이가 다시 정원의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계속 지켜보면 다시 마법 삽에 욕심이 날 것 같아서 바로 돌아간 것 같았다. 꼬맹이가 모르고 한 일을 덮어준 후 잘한 일인지 고민하던 태주는 모든 고민을 털어 버렸다.
마법 삽 두 자루를 사용하자, 단단의 둥지를 만드는 공사에 탄력이 붙었다. 태주는 공사 현장에서 마법 삽이 빠르게 파고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아침 준비를 위해 오두막으로 가던 해나가 다가왔다.
“어머! 정원사 씨 값이 비싸다고 고민하더니 두 자루나 샀어?”
“크흠. 그게….”
“공사 속도는 빠르네.”
“그, 그렇죠?”
“그래도 두 자루나 산 건 과소비 같은데.”
“워, 원, 원 플러스 원이에요.”
“응?”
태주는 태산이가 마법 삽을 가져갔던 일을 감춰주려다 당황해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익숙하지 않은 거짓말을 하느라 말도 더듬고 얼굴도 뜨거워졌지만, 그는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속으론 해나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들을 열심히 떠올렸다.
“원 플러스 원?”
“네? 네, 네. 원 플러스 원이요.”
“상점에서 그런 세일을 하다니 신기하네.”
“헙. 그, 신기하죠. 네.”
“호호호. 운이 좋았는걸, 정원사 씨.”
해나는 정원사씨의 서툰 거짓말과 버벅대는 행동 때문에 그가 무언가를 감추려 한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아마도 지금도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마법 삽과 관련된 일일 게 분명했지만,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 그의 어색한 말과 태도가 모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은 고기 요리로 할까?”
“고기요? 좋아요.”
“호호호.”
고기를 좋아하는 누군가를 염두에 둔 질문을 건네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해나는 솔직한 정원사 씨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 웃고 말았다.
조용한 정원의 아침에 해나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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