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39
238. 태주의 불만 >
이른 아침부터 전원주택이 부산스러웠다. 평소처럼 아침을 먹은 태주가 촬영장으로 가기 전에 태산이와 놀아 주느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가족 전부가 동원되어서 차에 짐을 싣느라 부산스러운 것이었다. 가족들은 분주히 이사라도 가는 것처럼 여러 개의 트렁크와 박스를 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산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으니까, 목줄에 넣지 말고 여기 상자에 넣자.”
“아앙.”
“물건 다 넣고 나면 상자에 이름 쓸까? 산이가 ‘산이 상자’라고 쓸래? 아니면 형이 ‘산이 상자’라고 쓸까?”
“사니!”
“응. 그럼 상자에 물건 넣은 다음에, 무슨 색으로 이름 쓸지 고르고 있어, 알았지?”
“앙.”
빌린 펜션이 독채형에 담장도 있는 곳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완벽히 차단된 곳은 아니었다. 물건을 목줄이나 아공간에 수납했다가 꺼내는 것을 들키는 날엔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 태주는 목줄에 물건을 넣겠다 고집부리는 아이를 살살 달랬다.
“쿠첼.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거기서 삼 주 가까이 지내야 하는데요?”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머리 좀 식힐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 상자는?”
“새로 구매한 캣타워요. 더미라도 캣타워는 필요할 것 같아서요.”
드라마 촬영 전에 가족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태주가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몇 편의 광고와 화보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드라마 관련 미팅과 촬영 전 잡힌 여러 차례의 리딩에 참석하자, 도저히 가족 여행을 갈 시간이 나지 않았다.
매번 그의 사정 때문에 일정을 취소하는 걸 태주가 미안해하자, 쿠첼루스가 드라마 촬영지 근처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했다. 드라마의 지방 촬영지인 안동은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촬영 중 시간을 내지 못해도 쿠첼루스와 태산이가 즐길 것이 많았다. 그래서 태주는 쿠첼루스의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다 챙겼습니까?”
“네. 부족하면 거기서 사면 되니까요. 상자에 산이가 이름만 적으면 출발할 수 있어요.”
“마치시면 바로 출발하시죠. 뒤따라가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오세요.”
쿠첼루스와 대화를 마치고 가자, 색색의 들쭉날쭉한 크기의 글자들이 상자에 쓰여 있었다.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태산이가 2호의 도움을 받아 상자에 쓴 이름들이었다.
“상자에 이름 전부 썼어?”
“앙.”
“산이 이름은 무슨 색깔로 썼어?”
“쬬코리. 꺄하.”
“초콜릿 색으로 썼어? 잘했어.”
2호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를 들어 시트에 앉힌 뒤, 벨트를 채워 주며 말을 걸자 웃음기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태주는 아이의 즐거워하는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무겁게 마음을 누르던 짐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쿠첼루스, 2호, 태산이까지 가족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지만, 번번이 약속을 미루게 된 그는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래도 이런 방향으로 가족 여행을 대신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촬영지는 유명한 관광지에 계절별로 축제도 개최하는 곳이었다. 이번 촬영 기간에도 얼음 축제가 개최된다. 눈썰매장도 있고, 체험 코스도 많으니 아이가 지루해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중간중간 휴게소도 들러가며 세 시간 정도를 달려서 숙소에 도착했다. 태주 일행이 한동안 묵을 숙소는 안동호 옆에 지어진 곳이었다. 본채와 별채 모두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주변에 건물도 많지 않아서 타인의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산이 호수로 산책 갈래?”
“호뚜?”
“응. 정원에서 연못 많이 봤었지? 아주아주 큰 연못 같은 거야.”
“앙. 가자.”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인지, 시간이 꽤 여유로웠다. 직접 운전하고 온 쿠첼루스와 다르게 태주는 운전이나 짐 정리를 2호에게 맡겨서 체력도 그대로였다. 촬영 전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상태였다.
“매니저님은 스타일리스트 팀과 점심을 드시고 오신답니다. 가시죠.”
“쿠첼은?”
“숙소에서 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끼리 다녀오자. 여기 나들이길이 상당히 잘 되어있어. 가자.”
정원에서 구매한 방한 기능 아이템을 착용해서 추위에 대한 대비는 마쳤지만, 태주와 태산이는 모자와 목도리 같은 방한용품을 착용했다. 추운 날씨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꽁꽁 싸매고 나왔는데도, ‘연예인인가?’ 하고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래도 얼굴까지 가리고 나온 보람이 있었는지, 다가와서 누구누구 아니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태주와 태산이는 오랜만에 마음껏 돌아다니며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
의 촬영은 간단한 고사를 치른 뒤에 시작되었다. 처음 촬영하는 장면은 겨울이 배경인 드라마의 후반부 6화의 한 장면이었다. 촬영 장소는 호숫가에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었다. 한겨울 찬바람에 버석거리는 갈대 소리가 무척 스산한 장소였다.
세자와 그 일행은 백성을 버리고 부임지를 이탈한 관리와 양반들이 탄 배를 쫓고 있었다. 역병에 걸린 시신을 불에 태우라는 권고를 무시하고 친지의 시체를 배에 실은 그들이 다른 지방으로 병을 퍼트릴까, 모두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세자 일행은 관리들이 탄 배를 추적하던 도중에 한 마을에 들른다. 관리들이 탄 배를 수소문하는 세자 일행에게 배를 목격했다 얘기하며, 마을 사람 몇 명이 안내를 자처한다. 마을 사람들은 주저하면서도 세자 일행을 강변의 갈대숲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연 태도를 바꿔 세자 일행을 에워싼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좌초한 관리들의 배에서 물건을 약탈했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약탈한 배가 군선인 것을 알게 된 후, 죄를 덮기 위해 추격해 온 세자 일행을 죽여 입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놈들 모두 미친 게냐?”
“우리는 이미 죄를 지은 몸입니다. 나라님 재물에 손을 댔으니, 밝혀지면 목이 잘릴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게냐?”
“나리들만 없으면, 아무도 우리의 죄를 모를 것입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당장 무기를 내리지 못할까!”
세자는 죄를 덮기 급급해서 더 큰 재앙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이 답답했다. 당장 시신을 찾아내 목을 베지 않으면, 살아남고자 나라님의 물건에 손을 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재앙이 닥쳐올 것이었다. 그들이 살인 멸구로 지키려는 마을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터였다.
“저하, 해가 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시신은 어디에 있느냐? 죄를 묻지 않을 터이니, 어서 시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
“…”
“어서!”
“지금. 지금 밟고 계십니다.”
“흡.”
마을 사람들은 불순한 의도를 가졌지만, 제대로 일행을 안내했다. 세자 일행이 지나온 길 아래에, 지금 밟고 서 있는 땅 아래에 관리와 양반들의 시신이 묻혀있었다. 세자 일행을 죽여 이곳에 묻고 증거를 없애려던 의도였는지, 험한 모습으로 죽어있던 사람들을 향한 일말의 애도였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르릉.
“살고 싶다면 무기를 들어라. 무기를 들고 저들의 목을 치거라.”
들썩거리는 땅속에서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세자가 마을 사람에게 일갈을 날렸다. 코앞에 닥친 위기도 모른 채 여전히 자신들을 해칠 고민을 하는 이들이 답답했다. 그런 그들과 다르게 괴물의 정체를 아는 세자 일행은 모두 무기를 뽑아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컷.
숨을 참으며 긴장한 모습으로 사방을 경계하던 태주가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풀었다. 꽤 길게 이어진 장면이었다. 호숫가라 찬바람에 슬슬 체온이 식고 있었는데, 컷이 빠르게 나와서 다행이었다. 이제 구도를 변경해 몇 번 다시 촬영하면 그걸로 오늘 촬영은 끝이었다.
카메라와 조명의 조정을 마쳤는지, 배우들에게 준비하라는 신호가 왔다. 태주는 걸치고 있던 패딩을 미나에게 건네고 갈대숲 입구에 다시 섰다. 이제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컷, 마을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는 컷, 돌변한 상황에 세자가 화를 내며 다그치는 컷 등을 구도를 바꿔가며 반복해서 찍어야 했다.
오후 시간을 통으로 촬영에 쓴 태주가 분장실로 돌아왔다. 바로 분장을 지우고 정리해야 했지만, 태주는 두꺼운 패딩과 그때까지 쓰고 있던 갓만 벗은 뒤 그대로 의자에 앉아 버렸다. 나머지 의상을 벗는 걸 도우려던 스타일리스트가 당황한 표정으로 미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스타일리스트뿐 아니었다. 수년간 곁에서 태주를 봐 온 견우와 미나도 모두 평소와 다른 태도에 당황하고 있었다.
“태주야?”
“….”
“태주야?”
“….”
‘매니저님 촬영 중에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요. 아무 일 없었습니다.’
견우와 미나, 스타일리스트 팀 스태프가 자신을 걱정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태주는 도저히 직전에 마친 촬영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 전 갈대숲의 촬영이 오케이를 받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컷을 많이 가져가는 감독이라고 하지 않았나? 대체 감독은 그런 장면들 어디에 만족을 한 거지?’
갈대숲에서 태주와 같이 촬영한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의 기준이 높아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가 보기엔 배우들이 전혀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조연 배우들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경력만큼이나 충실한 연기력으로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그가 불만을 가진 것은 마을 사람들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한 나라의 세자와 그 일행을 죽여서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연기를 할 수 있지?’
이미 관리와 양반의 재물을 약탈한 그들과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려면 반드시 세자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극도의 굶주림에 죄를 지었고 그걸 덮으려면 다시 죄를 지어야 하는 극한 상황이었는데, 그 배우들에게선 그런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아마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곁에 서서 그들을 상대했던 다른 배우들도 모두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표정에선 비장함도 비통함도 보이지 않았었다. 대사에선 막바지에 몰렸지만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들어있지 않았었다. 어떻게 그런 연기로 오케이 사인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태주 씨 의상 갈아입으시죠.”
“…후우. 네.”
태주는 견우의 재촉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생각에 빠진 자신 때문에 분장실 안의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견우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모두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미나의 스태프는 그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미안해요.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요.”
“무슨 일인데?”
“아니에요. 혹시 누나네 팀 저녁 약속 있어요?”
“약속은 없는데, 왜?”
“그럼 저희 펜션 가셔서 같이 드세요. 바비큐 준비해 뒀어요.”
“오케이. 자, 정리하자.”
성에 차지 않는 촬영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이런 장소에서 경솔하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태주는 말을 돌리기 위해 준비해둔 바비큐 얘기를 꺼냈다. 속으론 이제 겨우 촬영 첫날이니 김정훈 감독이 사람들 기를 살려 주려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
펜션에 같이 가는 인원이 늘었다. 태주의 분장실 바로 옆 분장실을 사용하는 이남진과 그의 스태프들이 추가된 인원이었다. 그는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퍼지는 복도를 훔쳐보다가 스태프들에게 딱 걸렸다. 여자 네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느라 굳어버린 이남진을 태주가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서 구해주었다.
“와! 숙소 넓다. 촬영장이랑 가까운 곳에 이런 데가 있었어? 여기서 전부 묵는 거야?”
“아뇨. 누나들은 제작사에서 잡아 준 호텔에서 묵고요. 저랑 가족들, 매니저님만 여기 묵어요.”
“그럼 저쪽 별채는 비워 두는 거야?”
“열흘쯤 뒤에 동생들이 와서 쓰긴 할 건데, 그전까진 비워 둘 것 같아요.”
바비큐를 위해 팬션 마당으로 들어서던 이남진의 눈이 빛났다. 촬영장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위치, 비어 있는 넓은 별채, 유한 성격의 주인 태주까지. 머무르기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숙박비를 반반씩 내자고 하면 받아 주려나?’
제작비가 풍족해서인지, 제작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의 질은 꽤 괜찮았지만, 이남진의 마음은 펜션에 머무는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지내기는 여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호텔이 낫겠지만, 그는 복작복작한 이곳의 분위가 마음에 들었다.
“태주. 까아하!”
현관문을 열고 펜션에 들어서자마자 종소리 같은 맑은 웃음소리가 태주의 귀에 꽂혔다. 촬영장에서 느꼈던 찝찝함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 같았다. 그는 신발을 벗기 무섭게 폴짝 뛰어서 안기는 아이를 안아 들고 뺨에 입을 맞췄다.
“다녀왔습니다. 산이 재밌게 놀았어?”
“앙. 팅구랑 노라떠.”
“친구?”
“주차장 건너에 산이 또래 아이가 묵기 시작했습니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나서 오후 내내 같이 놀았습니다.”
쿠첼루스가 거실 한복판에 놓인 테이블에 음식을 차리며 오후에 만난 친구에 관해 알려 줬다. 주차장에서 만난 젊은 부부의 아이가 태산이와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된 어른들은 이것저것 정보를 교환했다. 아이와 가 볼 만한 관광지, 아이가 하기 좋은 체험 프로그램 등등. 그러는 사이 태산이와 친구는 탐색을 끝내고 같이 놀고 있었다.
“산이 친구랑 같이 놀았어? 재밌었겠네.”
“꺄하하.”
태주가 아이를 품에 안고 오후 일과를 듣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바비큐를 준비했다. 거실과 이어진 테라스의 바비큐 그릴에서 고기를 굽고, 쌉 채소를 씻고, 작은 그릇에 반찬을 덜어 놓았다.
“고기가 익기 전에 초밥을 먼저 드시죠.”
“초밥! 초밥, 진짜 오랜만이다.”
“회도 있습니다. 천천히 드십시오.”
“와아! 얘들아 얼른 와서 앉아. 뭘 빼고 그래?”
“빼긴 뭘 뺐다고 그러세요, 실장님.”
미나는 아직 쿠첼루스와 데면데면한 스타일리스트 팀을 테이블로 불렀다. 미나의 부름에 쭈뼛거리며 다가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이번엔 그걸 보던 태산이가 나섰다. 태산이는 태주의 품에서 빠져나와 앉을 자리를 찾던 이남진의 손을 붙들었다.
“이디와.”
“어? 애기야.”
“하하하. 남진 형 이리 오세요. 산이가 같이 앉고 싶은가 봐요.”
“그래? 흐흐흠. 내가 애기들한테 인기가 좀 좋은가 봐.”
“그런가 봐요. 어서 앉으세요.”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첫 대면인 사람이 여럿인 상황에서 자신을 이끌어 주는 상대가 있는 것은 반가웠다. 그게 비록 갓 여섯 살이 된 애기라도 말이다. 이남진은 조막만 한 애기 손에 이끌려 태주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펜션에서 하는 바비큐 파티는 오랜만이었다. 내일도 예정된 촬영 때문에 술을 마실 순 없었지만,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오늘 촬영은 어땠습니까?”
“아직은 김정훈 감독님 스타일을 잘 모르겠어요. 남진 형, 형 전에 김 감독님이랑 같이 작업한 적 있어요?”
“어, 있어. 조연으로.”
“어땠어요? 그때도 오늘처럼 촬영 속도가 빠른 분이셨어요?”
“전혀 달랐어. 그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찍으셨는데….”
김정훈 감독에 관해서 얘기하는 이남진 역시 찝찝한 표정이었다. 회귀 전 태주만큼이나 이남진도 배우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었다. 그도 오늘 배우들의 연기가 타협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도 태주처럼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남진도 아직은 감독의 촬영에 관해 논하기 이르다고 여기는 듯했다. 실제로 촬영을 시작하고 이제 겨우 하루 지났을 뿐이었다. 아직은 문제를 제기하고, 불만을 말할 시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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