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40
239. 피곤한 촬영 >
태주와 이남진이 그들만 아는 의미를 담은 시선을 교환하는 사이로 미나의 탄성이 들려 왔다. 돌아보자, 어느새 그녀의 무릎에 올라앉은 태산이의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더미 녀석은 미나가 집은 회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냐아아. 귀여운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쿠첼, 태산이 회 먹여도 괜찮아요?”
“네, 조금이라면 괜찮습니다.”
“호호호. 태산이 이거 먹고 싶었어?”
“냐아앙.”
-챱챱!
“맛있어? 진짜 잘 먹네. 자, 하나 더 먹어.”
태산이 더미 녀석은 제 본체와 모든 게 같았다. 더미를 소환하는 게 태산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먹는 것도 노는 것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여서 가끔은 더미라는 걸 잊고 태산이 대하듯 하게 된다. 지금 연어를 집어 주는 미나는 제 무릎 위의 태산이가 더미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형은 그럼 촬영 내내 서울이랑 왕복하는 거예요?”
“어. 몇 주만 고생하면 되니까.”
“그건 그렇죠. 이 뒤는 전부 수도권에서 촬영하니까요.”
“네 촬영은 3월 중순에 끝나지?”
“네. 대부분 그때 끝나요. 왕궁 신 하나만 4월에 잡혀 있어요.”
드라마 속 세자는 지지 세력이 없어서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세가 출신 대신과 중전에게 핍박을 받는 역이었다. 태주가 촬영할 장면 중에는 봄꽃이 피는 시기, 역병의 원인을 조사하겠다며 궁을 나서는 장면이 있었다. 4월에 잡힌 촬영은 그 장면을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일정에 관해서 얘기하는 사이 태산이는 더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나의 무릎에 앉아 선홍색 연어를 먹으며 가릉가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태산이 제 양손을 쳐다봤다. 왼손은 꼬치, 오른손은 소시지가 꽂힌 포크를 들고 있었다. 남는 손이 없었다.
미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조각낸 연어를 더미에게 먹이고 있었다. 맛있는지 꿀떡꿀떡 잘 받아먹는 더미가 귀여워서 저절로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나가 본인의 식사도 잊고 연신 연어를 조각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옆자리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응?”
“사니, 아아.”
“어머! 산이도 연어 줄까?”
“앙! 아.”
미나는 산이의 입에 연어 한 조각을 넣어 주었다. 작은 욕심쟁이는 양손에 쥔 먹을 걸 포기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냠냠, 꿀꺽하더니 다시 입을 벌렸다.
“맛있어? 더 줄까?”
“앙! 아아.”
“냐앙!”
“사니 머짜. 저디 가.”
“냥!”
미나의 옆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연어를 차지하기 위한 태산이와 더미의 신경전이었다. 태산이가 입을 벌리고 미나에게 다가가려 할 때마다 더미가 앞발로 후려쳤다. 물론 더미의 방해를 그대로 당할 태산이도 아니었다. 태산이는 더미가 앞발로 칠 때마다 팔꿈치로 더미를 미나의 무릎에서 밀어냈다.
“이런! 산아, 이리 와. 형이 줄게.”
“아앙.”
“착하지. 미나 누나도 맛있는 거 먹어야지.”
“앙!”
태주는 제가 소환한 더미와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를 불렀다. 미나는 귀엽게만 보는 것 같았지만, 그는 두 녀석의 실랑이 때문에 그녀가 제대로 식사를 못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태산이가 얌전히 그에게 와서 안겼다.
그는 무릎에 앉은 아이 입에 연어를 넣어 주다 손을 보고 웃고 말았다. 태산이는 그와 미나의 사이를 오가는 와중에도 꼬치와 소시지를 꼭 쥐고 있었다. 연어가 마음에 드는지 금세 삼키고 다시 입을 벌리는 작은 욕심꾸러기의 식탐이 꽤 귀여웠다.
즐거운 시간은 찰나와 같이 흐른다더니,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저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사람들은 내일 있을 촬영을 위해 저녁 식사만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
태주와 단단한 체격의 중견 배우는 산길의 초입에 말을 타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낙향한 의원이 머무는 장소를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의원은 역병의 단초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왕을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괴물로 만들었다고 의심하는 권신과 공범이었다. 세자는 그가 가진 진료 기록을 얻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것이었다.
“워어. 워어.”
“괜찮으세요?”
“워어. 괜찮아, 괜찮아. 촬영에 익숙한 녀석이라 금방 진정할 거야.”
태주는 여전히 불안한 듯 귀를 뒤로 눕히고 있는 말에게 테이밍 기술을 썼다. 특별히 무슨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말과 교감하며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만 전했다. 그런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중견 배우가 탄 말이 곧 진정됐다.
“선배님 촬영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어, 괜찮아. 이제 진정됐어.”
말도 진정됐고 감정도 다잡았다. 태주는 멀찍이 떨어진 촬영진에게 준비됐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잠시 후,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고 태주와 중견 배우는 천천히 말을 몰아 지정된 구간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구나.”
“뭐가 말입니까?”
“너무 고요하지 않으냐? 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저하. 저쪽에 인가가 보입니다. 혹시 이 의원이 거하는 곳이 아니온지요?”
“가 보자. 이럇!”
의원이 살던 건물이 앞에 있는 듯 말을 달려 나가는 모습이 숲길 신의 마지막 컷이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서인지, 롱 샷 촬영을 끝내고 바스트 샷과 풀 피겨 샷으로 이어지는 촬영도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중견 배우나 태주나 감정선을 흩트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반복하는 촬영엔 이골이 난 배우였다. 덕분에 두 사람의 오전 촬영은 아주 순조롭게 끝났다.
태주는 어제와 다른 매끄러운 촬영에 기분이 풀렸다. 중견 배우는 리딩할 때도 느꼈었지만, 연기가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는 말을 달리면서도 발성이 흔들리지도, 대사를 말할 타이밍을 놓치지도 않았다. 괜히 온갖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아니었다.
은 주간 촬영과 야간 촬영의 비율이 비슷했다. 게다가 야외 촬영도 많고 군중 신도 많아서 촬영 난도도 높은 편이었다. 남아 있는 갈대숲 촬영도 야간 촬영에 군중 신이었다. 괴물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장면과 세자의 스승이 나타나 도움을 받는 장면이었다.
태주는 갈대숲에서 어제와 같은 분장을 하고 괴물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상대 역시 어제와 같은 단역 배우들이었다. 그 단역 배우들의 어깨너머로 덮쳐드는 괴물을 바라보고 놀라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상대 배우의 연기가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컷. 오케이.
‘이게 오케이라고? 괴물이 등장하기도 전에 미리 놀라고 있는데?’
편집으로 살리려면야 살릴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단역 배우에게 올바른 디렉션을 주고 다시 찍으면 충분할 일인데,
김정훈 감독이 왜 이런 장면에 모두 오케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태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부지불식간에 불만을 말하지 않게 입술 안쪽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태주가 느끼는 짜증은 마을 사람 역할의 단역 배우들을 제외한 모두가 느끼는 것이었다.
‘모르겠다. 이제 겨우 이틀째니….’
빼곡하게 들어찬 갈대 때문에 땅이 조금씩 들썩이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좀 전까지 세자 일행을 살해해서 죄를 덮을 생각만이 머릿속이 가득했었다. 볼 수도 없는 등 뒤의 땅이 들썩이는 것에 놀랄 이유가 없었다.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오늘도 그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그보다 서너 배는 더 긴 경력을 가진 선배 배우들도 가만히 지켜보는데, 이제 갓 육 년 차에 접어든 그가 나서는 것은 경우가 아니었다.
이후의 촬영은 지난 촬영과 마찬가지로 인내심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태주는 컷이 끝날 때마다 다른 반응이 나오길 기대하며 김정훈 감독의 기색을 살폈지만, 바라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김정훈 감독이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진 촬영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겨우 이틀 촬영했을 뿐이었지만, 다른 촬영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 한겨울 호숫가에서 하는 액션 신도 힘들었지만, 그보단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태주는 지친 기색을 힘겹게 감추며 스태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촬영장을 벗어났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괜찮아요. 매니저님은요?”
“저도 괜찮습니다.”
“호도 있으니까, 중간중간 쉬다 오세요.”
“정말 괜찮습니다. 저야 잘 챙겨 입고 있지 않습니까.”
견우는 자신이 입은 패딩을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태주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한 패딩이었다.
그런 견우의 모습에 태주는 고개만 저었다. 견우는 자신이 걱정하는 게 추위가 아닌 피로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일까, 추위에 얼었던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분장실에 도착한 태주는 어제처럼 늦장 부리지 않고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밤중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벌써 11시였다. 그의 내일 콜타임은 아침 8시였다. 밤샘 촬영이 일상인 다른 곳보단 낫지만, 그래도 서두르지 않으면 얼마 쉬지 못하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미나 누나, 화장은 숙소에 가서 지울게요. 다들 이만 들어가세요.”
“고마워. 이거 챙기고. 클렌징 순서는 문자로 보냈어. 순서대로 지워, 알았지?”
“네. 먼저 들어가세요. 누나들 내일 봐요.”
“응. 내일 보자.”
클렌징 물품이 든 파우치를 태주에게 건넨 스타일리스트 팀이 빠져나간 후 태주도 곧바로 분장실을 나섰다. 호숫가라 바람이 차서 그런지, 그는 펜션에서 기다릴 아이의 체온이 그리워졌다. 따끈따끈한 태산이를 품에 안고 조잘조잘 늘어놓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태주의 걸음이 급해졌다. 그는 태산이가 잠들기 전에 어서 펜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주차장엔 그런 그를 방해하는 인물이 있었다. 펜션에서 묵게 해 달라는 부탁을 위해 기다리던 이남진과 그의 매니저였다.
“태주야.”
“남진 형?”
“저기 태주야. 혹시 괜찮으면 나도 너희 펜션에서….”
“남진 형, 일단 타요. 할 얘기 있으시면 펜션에 가서 하시고요. 뭐 하시면 주무시고 가세요.”
“그, 그럴까?”
도착한 펜션에서 태주는 바라던 대로 아이를 품에 안고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잠들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태산이 눈은 말똥말똥했다. 쿠첼루스의 설명으론 꼬맹이는 저녁을 일찍 먹고 그가 오기 전까지 푹 잠을 잔 모양이었다.
“떨매 슈웅 해떠.”
“썰매가 그렇게 빨랐어? 산이 안 넘어졌어?”
“앙. 안 너머져떠. 사니 슈웅 죠아.”
“하하하. 그랬어? 형 금요일에 쉬는데, 썰매 타러 또 갈까?”
“앙. 까아하.”
태산이는 어제 오후 만난 친구 가족과 근처의 눈썰매장에 다녀왔다. 체력 좋은 꼬맹이가 초저녁 낮잠을 길게 잘 정도로 신나게 놀고 온 것 같았다. 눈썰매 얘기를 하는 도중 다시 흥이 돋는지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얘기를 듣길 잠시, 저녁 내내 그를 불편하게 했던 감정들이 자취를 감췄다.
*
펜션 앞 산책로를 쭉 따라서 걸으면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관광객을 위한 산책 코스로, 도착 첫날 길 입구까지 태산이와 다녀왔었다. 그러나 촬영하는 게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극이라, 아마도 산책로를 통해서 촬영장으로 가는 일은 없을 듯했다.
견우가 모는 차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은 드라마 스태프와 출연진으로 복잡했다. 여러 대의 분장 버스에 들락날락하는 배우들과 그런 그들을 통제하는 반장이 지르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쪽 천막이 단역 배우들이 대기하는 곳인가요?”
“네, 두 채 모두 단역과 보조 출연자들의 대기 장소입니다.”
“그렇군요.”
이지명 대표의 드림쉽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도 단역 배우들에 대한 처우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단역 배우를 한여름 땡볕이나 한겨울의 추위에 그대로 방치하는 곳이 많은데, 천막이나마 대기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대기실에서 대기할 수 있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저들도 모두 촬영장 옆에서 투입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낡고 해진 옷을 입은 채, 공들여 한 분장이 지워질까 편히 앉지도 못하면서.
“매니저님, 저 촬영 시작하면 마트에 다녀와 주실래요?”
“필요하신 게 있습니까?”
“네. 음료수랑 간식거리 좀 부탁드려요. 음료수 중에 한방 음료, 쌍화탕? 갈근탕? 그런 거 있잖아요. 감기 예방에 좋은 거요. 그것 좀 저쪽 천막으로 보내 주세요. 촬영진한테도 돌리고요.”
“알겠습니다.”
제작비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단역들의 쉴 곳을 제공하는 외에도 이번 작품은 여러 곳에서 꽤 합리적으로 촬영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촬영 스태프의 인원을 여유롭게 투입하고, 작업 일정도 주 5일 근무로 짜여 있었다.
배우들의 촬영 스케줄도 나름 여유로운 편이었다. 기상 변화나 촬영지 변경 같은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태주의 스케줄은 삼사일 촬영 후 이틀을 쉬는 일정이 쭉 이어진다. 덕분에 휴일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겼다.
‘전체 70회차, 내가 출연하는 건 48회차. 사극에 지방 촬영이라는 조건을 따져 봐도 다른 촬영보다 여유로운 편이야.’
드라마 제작에는 편당 최소 6~7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방 촬영이 많은 사극의 경우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드라마 제작진의 근무 시간은 규정 시간인 52시간은 물론이고 권고 시간인 68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런 업계 상황에 외주 제작사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주 68시간을 지키겠다는 것은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견우의 뒤를 따라 분장실로 이동하면서 태주는 계약 당시 제작사에서 장담한 대로 주 68시간 촬영이 부디 잘 지켜지길 바랐다.
그리고 김정훈 감독님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촬영하기를 바랐다. 촬영이 빨리 끝나는 것은 좋지만, 그것도 정상적인 촬영일 때의 경우였다. 지금처럼 대충대충 넘기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딱 이번 주까지만 지켜보자. 그러고도 바뀌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 보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엉망인 작품이 추가되는 걸 용납할 생각이 없는 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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