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44
243. 마법사 >
오두막 앞 공터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북적북적했다. 해적 섬 이벤트에 참가했던 요정과 엘프, 푸른 사자 정원사 일행이 모두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중이었다.
정원 식구가 매일 식사하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해나가 준비한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공터 중앙엔 바비큐를 위한 거대한 모닥불이 지펴져 있었다. 모닥불 주위엔 푸른 사자 정원사가 불러낸 골렘이 고기와 야채가 꿰어진 왕 꼬치를 굽고 있었다.
태주는 시끌벅적한 공터 한곳에 앉아서 클리너로 도도를 닦아 주고 있었다. 윤이 나게 닦아주는 한편 붉은 껍질에 흠이 생기진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심하게 흔들린 것에 비해 다행히 도도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정원사, 그만 살펴도 돼. 내가 설마 알을 다치게 뒀겠어?”
“아칸, 조용히 하세요.”
“쳇. 알도 재밌어했다니까.”
“그래도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알았어. 그만 기분 풀어. 정원사가 자꾸 째려보니까 모린도 가까이 안 오잖아.”
태주는 그건 자기가 째려봐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모린이 그에게 다가가지 않는 건 자신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아칸서스가 이상한 몰골이어서 그런 것이었다.
아칸서스의 모습은 정원에선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는 아이가 곁으로 다가오지 않을 정도로 기괴했다. 그러니 모린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탓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대체 해변에 무슨 함정들을 심어 뒀던 건지….’
해나를 피해서 모래밭을 이리저리 구른 아칸서스는 본인이 설치한 함정을 본인 몸으로 모두 사용했다. 그 결과 드래곤의 흰 거체에는 여러 가지 색이 엉망으로 칠해져서 얼룩덜룩했다. 그뿐 아니었다. 찐득한 타르 같은 것도 묻어 있었고, 곳곳에 보기 흉한 털과 이끼가 자라 있었다.
“그거, 몸에 묻은 거랑 자란 거요. 인간화하면 사라지지 않아요?”
“훗! 내가 그렇게 어설픈 마법을 걸어 뒀을 것 같아? 변신 마법을 써도 이 함정의 효과는 그대로야. 이건 12시간이 지나야지만, 사라지는 거라고.”
“아, 예.”
“그나저나 그 알은 왜 부화를 안 하는 거야? 정원에 온 지도 꽤 됐잖아?”
“그렇긴 하지만…. 도도가 알로 있고 싶다면,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태주는 품 안의 알을 쓱쓱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처음엔 부화가 늦는 것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번 나오면 다신 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도도가 한 번뿐인 알 시기를 마음껏 누리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알의 상태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아주 건강하니, 조금 늦어도 괜찮았다.
‘어지간히도 예뻐하는군. 알인데도 저렇게 애정을 퍼부으니, 애가 나올 생각을 안 하지.’
아칸서스는 정원사가 알한테 하는 다정한 말을 듣다 혀를 찼다. 알이어도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붉은 껍질이 보석 같다. 건강하기만 하면, 다른 건 다 괜찮다. 정원사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알에게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작은 소리로 간지러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인간이 보호자인데도 안정적으로 잘 자라는 알이 신기했는데, 정원사가 알을 대하는 모양새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원사는 바위만큼 튼튼한 알을 인간 아기라도 되는 양, 보듬고 있었다. 알을 소중히 여기지만, 때때로 귀찮아하는 드래곤 보다 더 지극정성이었다.
“정원사, 알은 그만 보고 노래나 한 곡 연주하지? 파티에 음악이 없어서 되겠어?”
“아! 그렇죠? 알겠어요. 흥겨운 곡으로 한 곡 연주할게요.”
아칸서스의 말이 맞았다. 그가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이벤트를 도중에 중지시킨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니 바비큐 파티라도 손님들이 즐길 수 있게 해야 했다. 태주는 머릿속으로 흥겨운 연주곡들의 목록을 떠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
태주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주방에 가서 음식을 냉장고에 챙겨 넣었다. 펜션에서 견우와 같이 지내기 때문에 정원의 음식을 챙겨 오는 걸 자제할 생각이었는데, 해나를 말리기 쉽지 않았다. 특히 한동안 태산이가 아이 모습으로 지내는 걸 알게 된 후엔 더 그랬다. 덕분에 그는 도둑처럼 조용히 움직여서 냉장고를 채워야 했다.
“태주 씨?”
“으앗! 깜짝이야.”
“하하하. 놀라셨습니까?”
“어휴, 쿠첼. 간 떨어질 뻔했어요. 너무 일찍 일어난 거 아니세요? 혹시 또 밤새우셨어요?”
“조금 찾아볼 게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엷은 빛에 의존해서 주방에서 움직이던 태주는 갑자기 조명이 켜지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말을 건 상대가 주방에 들어올까 걱정하던 견우가 아닌 쿠첼루스였지만, 하마터면 기껏 챙겨 온 요리를 엎을 뻔했다.
“오늘도 화려한 음식들이군요.”
“하하하. 그게 파티 준비한다고 사 놓은 재료가 남아서요.”
“항상 잘 먹고 있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그럴게요.”
그가 직접 태블릿으로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었지만, 쿠첼루스는 종종 이렇게 그에게 말을 전해 달라 부탁했다. 정원으로 보내는 메시지를 확인해야 할 희가 예전만큼 책 조각상을 잘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쿠첼, 뭐라도 드실래요?”
“수프 종류도 있습니까?”
“네. 치킨 수프랑 소고기 스튜 두 가지 있어요.”
“치킨 수프로 하지요.”
금세 데운 치킨 수프에 부드러운 빵과 치즈가 식탁에 차려졌다. 그 외에 따뜻한 샐러드 종류와 과일도 꺼내 놓자, 제법 풍성한 아침 식탁이 되었다. 단지 그릇이 펜션에 비치된 그릇인 게 아쉬웠다. 요리는 못 하지만, 예쁘게 차려서 대접하기 좋아하는 태주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엊저녁에 김정훈 감독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를 하셨었죠?”
“아아. 김은혜 선배랑 했던 얘기요?”
“네. 태주 씨는 사기를, 김은혜 씨는 주식을 의심하셨죠. 제가 살펴보니 김정훈 감독이 보유한 자산에 특별한 변동은 없었습니다.”
“쿠첼…. 대체 그걸 어떻게?”
“크흠. 대신 일신상에 문제가 있더군요.”
일신상의 문제? 쿠첼루스의 앞에 앉은 태주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김정훈 감독도 이제영 감독님처럼 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닙니다. 열흘 전쯤에 실종 신고를 했더군요.”
“실종 신고요? 혹시 납치인가요?”
쿠첼루스의 설명을 들은 태주는 제일 먼저 아동 납치를 떠올렸다. 김정훈 감독은 상업 영화를 여러 편 성공시킨 감독이었다. 최근에는 예전만큼 작품 활동이 활발하진 않았지만, 모아둔 재산이 꽤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하진 않을 터였다.
“아니요, 납치는 아닙니다. 정말로 실종 신고입니다. 김정훈 감독은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실종 신고입니다.”
“어?”
“촬영이 시작하기 얼마 전 경찰서에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신고했습니다.”
“아버지요?”
그렇다고 대답한 쿠첼루스가 김정훈 감독의 가정사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그는 어려서부터 홀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대학 입학 시기 즈음에 상경한 이후로 쭉 혼자 살다가 몇 년 전부터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김정훈 감독의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얘기는 태주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아이든 어른이든 가족이 실종된 상황에 제정신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역시도 그런 일을 당하면,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김정훈 감독의 이상한 태도가 이해되기도 했다.
“김정훈 감독의 아버지는 꾸준히 약만 드시면 괜찮은 경증 치매 증상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크지 않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답니다.”
“저런….”
“치매 노인 실종 수색의 골든 타임은 24시간입니다. 그 이상 넘어가면 장기 실종이 되기 쉽답니다. 보호소나 수용 시설과의 연계도 잘 되지 않아서 찾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헛! 김정훈 감독님이 실종 신고를 촬영 시작하기 며칠 전에 했다고 하셨죠?”
“네. 지금으로부터 한 열흘 전쯤입니다.”
열흘 전쯤이면 크랭크 인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였다. 그 시기 김정훈 감독은 촬영지의 세트나 일정은 물론이고 촬영 전반적인 사항을 점검하느라 눈코 들 새 없이 바빴을 것이다. 제정신으로 일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감독님한테라도 촬영을 부탁하시지….”
“최근엔 촬영을 빨리 끝내고 서울로 가서 아버지를 찾다가 아침에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지금 감독을 교체할 수 있습니까?”
“무리죠. 이미 촬영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처음 실종 당하셨을 때도 교체는 무리였을 거에요.”
감독을 교체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테지만, 스케줄을 늦추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작품의 총 러닝 타임 400분 중 태주의 출연 시간은 300여 분 정도였다. 대략 80% 비중으로, 출연진 중 분량이 제일 많았다. 그래서 그의 경우 처음부터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았지만, 다른 배우들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다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후우. 실종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되겠군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네? 아니, 아니에요. 제 일도 아닌걸요.”
“태주 씨 일이지요. 촬영이 엉망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직접적으로 자신을 돕는 일이라면 쿠첼루스의 도움을 감사히 받겠지만, 이번 건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김정훈 감독과는 친분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업무 외의 대화는 나눈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태주는 김정훈 감독의 처지에 연민도 동정도 느꼈지만, 선뜻 돕겠다는 말도 그에게 도와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돕지 않으면서 남에게 도움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제 일도 아닌 일로 쿠첼루스가 고생하길 바라지 않았다.
“태주 씨 답지 않군요. 평소에는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직접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만 아니라면 쿠첼이 김정훈 감독을 도울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요.”
“그래서 그래요. 저 때문에 괜한 수고를 하시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하하. 제가 돕는 건 김정훈 감독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야 그렇게 되겠지만, 저는 태주 씨를 돕는 겁니다.”
쿠첼루스는 태주 씨의 작품이 잘될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욕심 없고 배려심이 넘치는 태주는 항상 이렇다. 자신이나 2호는 그가 가진 힘이었는데, 매번 그 힘을 쓰는 걸 망설였다. 자신과 2호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는 것은 알지만, 가끔은 답답했다.
“저와 2호, 주변 사람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라 무당 선우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주저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김정훈 감독을 돕는 일이 무리라고 여겨졌다면,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태주 씨, 저는 태주 씨를 돕는 게 좋습니다. 혹시 저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헉! 아니에요. 쿠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요.”
태주는 우울한 척 말하는 쿠첼루스에게 당황해서 다급하게 부정하는 말을 쏟아냈다. 쿠첼루스와 같이 살게 된 이후, 한순간도 정말로 단 한 순간도 그가 도움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태산이를 돌봐 준 것도 그렇지만, 곁에서 지지해 주고 조언해 주는 그는 언제나 든든한 가족이었다. 태주는 정원에선 해나에게, 현실에선 쿠첼루스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서, 지금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큼. 연기도 잘하시는 분이 이런 표정에 당황하시기는.’
쿠첼루스는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에 생긴 뜻밖의 기회였지만, 그동안 쭉 태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미안한 마음이 들게끔 자극적인 말도 조금 섞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주는 자기 사람에겐 지나치게 배려심 넘치는 성격이라서 이 정도는 자극해야 했다.
“어휴, 쿠첼. 정말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하하. 태주 씨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헐.”
“사실 실종자를 찾는 일 정도는 저에겐 힘든 일이 아닙니다. 수십, 수백을 동원해서 수색할 필요도 없이, 실종자의 물건과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간단하게 찾아낼 수 있답니다.”
‘마법사니까요.’
쿠첼루스의 마지막 말은 너무 작아서 태주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쿠첼루스의 마법사니까요, 라는 말에 잠깐 멍해졌다.
마법을 쓰는 모습도 자주 보고, 그 효과를 체험한 적도 많았는데도 마법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그는 쿠첼루스가 경찰이나 병원, 노숙자 쉼터나 보호소 같은 곳의 자료를 해킹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김정훈 감독님 모르게 일을 처리하길 바라십니까?”
“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필요한 재료가 집에 있어서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김정훈 감독님이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제가 알고 있다고 알려지면 신경 쓰실 것 같아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쿠첼루스는 이번 일을 의뢰할 흥신소 직원들을 떠올려 봤다. 그들과의 연은 태주의 스토킹 의뢰라는 안 좋은 일이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만족스러운 거래 관계였다. 아니, 사실 그들은 충실한 그의 수족이었다.
흥신소 직원들, 특히 태주를 스토킹하는 의뢰를 받고 직접 실행한 남 실장의 팀원은 자신의 심술로 제대로 의뢰를 해결하지 못했었다. 그의 심술은 스토킹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이어졌었다. 만약 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지방의 한 민간 시설에 있지 않았다면, 쿠첼루스는 여전히 그들에게 심술을 부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더 부탁하실 일은 없습니까? 예를 들면 모 영화의 지방촬영 스케줄이라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헛! 대체 그걸 어떻게….”
“하하하.”
‘마법사니까요.’
작게 속삭이면서 쿠첼루스는 태주의 폰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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