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46
245. 폭설 >
남 실장은 책상 위에서 ‘nuclear launch detected’라는 알람이 울리자 경기하듯 몸을 떨었다. VIP 고객이었지만,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고객의 지정 알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알람을 듣고 안색이 바뀐 것은 남 실장만이 아니었다. 오피스텔에 모여 있던 팀원들도 모두 그와 같은 반응이었다.
“실, 실장님 빨리 확인해 봐요.”
“맞아요. 전 그 고문 당하기 싫어요. 빨리 봐 봐요.”
“알았어. 지금 보니까, 그만 재촉해.”
폰을 확인하는 남 실장의 동작은 팀원들이 재촉하지 않아도 무척 빨랐다. 그 역시 팀원들이 말하는 고문 아닌 고문이 무서웠다. 아니, 아주 징글징글했다. 그렇다고 거부하기엔 한 푼이 아쉬운 처지라 이 핵폭탄 고객님이 그 의뢰를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태주 배우님 스토킹 의뢰를 받아 가지고….’
핵폭탄 고객님이 의뢰한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들 때 정식으로 들어오는 의뢰는 그도 그의 팀원도 질색하는 것이었다. ‘이태주 배우님의 드라마 전편 정주행 10회’. 팀원들과 드라마를 보는 모습을 모두 촬영해서 보내야 했다. 이런 의뢰를 고문이라고 부르면 아마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욕할지도 몰랐지만, 그들에겐 정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이 지독한 고객님은 중간에 졸면 정주행 횟수로 쳐주지도 않았다. 팀원이 모두 모여서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전부 봐야 했다. 처음 이 의뢰를 받았을 때는 괜찮았다. 오피스텔에 모여서 재밌는 드라마를 느긋하게 보는 의뢰인데, 좋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될수록 피로감은 말도 못 했다. 이태주 배우님의 출연 작품당 수십 번을 정주행한 결과, 이젠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팀원 전부가 통으로 외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 의뢰를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의뢰비도 의뢰비지만, 무슨 방법을 쓴 건지 거절한 경우에는 끔찍한 악몽에 며칠씩 시달려야 했다.
‘우리 태주 씨를 스토킹할 정도로 좋아하시니, 즐겁게 보실 수 있겠지요?’
보안 코드를 입력하는 남 실장의 눈은 매섭고 손길은 날쌨다. 그는 1초라도 빨리 이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처음 고문 아닌 고문 의뢰를 받았을 때 들었던, 핵폭탄 고객님의 대사가 귓가에 다시 들릴 것 같아서였다.
‘이름 김대철, 나이 74세, 사는 곳은…. 뭐지? 쓰던 물건을 가져오라고?’
“무슨 의뢰예요?”
“물품 입수.”
“설마 또 이태주 배우님 해외 굿즈 사 오라는 건 아니죠?”
“아니야. 다른 사람이야. 자주 사용하던 물건을 여러 개 가져오라는데?”
“그분이 그런 의뢰를 그냥 하실 분이 아니잖아요. 이상한 자료나 도구 찾는 거 아니면, 거의 이태주 배우님 덕질에 필요한 의뢰를 하시는 분인데.”
흥신소의 남 실장과 팀원들은 핵폭탄 고객님의 이해할 수 없는 의뢰를 여러 차례 처리했다. 지방이나 해외 오지를 돌며 이상한 나뭇조각이나 낡은 서적을 구하는 의뢰는 그러려니 했다. 콜렉터의 취향은 다양하니까.
그러나 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의뢰는 같이 사는 이태주의 덕질에 필요한 것들을 구해 오는 일이었다. U20 팬 미팅 굿즈 구해 오기, 광고하는 화장품 포스터 얻어 오기 등등. 예전 스토킹 의뢰와는 결이 달랐지만, 하는 일은 비슷했다.
“하긴, 이유 없이 이런 의뢰를 넣을 분이 아니지. 의뢰 대상 가족 관계 먼저 확인해 봐, 직업이랑. 조금이라도 이태주 배우님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면 지급으로 처리한다.”
“네.”
남 실장은 이태주 관련 의뢰를 늦장으로 처리했다가 겪은 소름 돋는 일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 신입 교육 건이 겹쳐서 일처리가 늦었었다. 고의도 아니었는데, 융통성 없는 고객님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의뢰를 해결할 때까지 오피스텔 정가운데에 서 있는 처녀 귀신의 환상과 같이 지내야 했다. 소복 차림의 처녀 귀신 환상은 24시간 내내 갈라진 목소리로 시간을 읊어 댔다. 사라지지도 멈추지도 않는 환상 때문에 겨우 구한 신입은 첫 의뢰를 맡기도 전에 그만둬 버렸었다.
“실장님! 지급이에요.”
“뭐?”
“이태주 배우님 촬영하시는 드라마 총감독 아버지예요. 실종된 사람이요.”
“일어나! 옷 입어. 주소는 확인했지? 가자.”
“네.”
남 실장은 처녀 귀신 환상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이미 물리도록 봐서 모두 외운 ‘이태주 배우님의 드라마’를 또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은 남 실장 팀의 팀원 모두 같았다. 그들은 외투에 한쪽 팔만 겨우 끼워 넣은 채 오피스텔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실종자가 평소 자주 입던 옷과 매일 사용하던 빗, 여분의 돋보기안경이 쿠첼루스 앞에 놓였다.
*
의원에 변고가 생긴 것을 안 후,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소문하던 세자와 무장은, 의원 소속 의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산에서 역병 치료제에 쓰일 약초를 찾아 헤매는 의녀를 찾아간다.
이 장면은 괴물로 변한 사람들의 습격을 받기 바로 직전의 장면으로 길잡이 역인 이남진과 합류하기 전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무장 역의 중견 배우와 태주, 김은혜 세 사람은 촬영 전 동선 체크를 위해 한 편에서 카메라와 조명 등이 세팅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남진이는 돌아갔어?”
“네. 숙소에서 쉰다고 가셨어요.”
“피곤하면 쉴 것이지, 뭐 하러 촬영장에 들르긴 들러. 그리고 들렀으면 얼굴이나 보이고 갈 것이지. 매니저한테 간식만 보내는 건 뭐야?”
“선생님 대본 보시는 것 보고 그냥 왔다던데요.”
“촬영 하루 이틀 하나? 얼굴 잠깐 본다고 못 할 연기도 아닌데….”
중견 배우는 추위에 몸이 굳지 않게, 제자리에서 연신 몸을 움직이면서 나지막하게 이남진의 타박을 늘어놓았다. 진짜로 괘씸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보내준 간식에 대한 감사 인사를 얼굴 보고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쯧, 저 양반이 또 저러네. 어쩌려고 저러는지.”
“음.”
처음엔 태주가 곁에 있어도 아무 말 않던 중견 배우가, 며칠 같이 촬영을 하자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그의 옆에서 김정훈 감독이 촬영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고 폰 화면만 보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실종자 제보 게시판.’
김정훈 감독이 뻔질나게 확인하는 것은 주식 그래프도 토토 결과도 아니었다. 실종된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 둔 실종자 제보 사이트였다. 쿠첼루스가 이미 확인했지만, 여전히 제보는 하나도 없었다.
수색 중인 경찰이 확보한 유일한 단서는 감독님 집 앞 폐쇄 회로에 찍힌 어르신의 외출 사진과 도로 앞 사거리에 서 있는 사진뿐이었다. 실종 직후 공개 수사로 전환하고 제보를 받았으면 수색에 진전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감독님은 업무에서 몸을 빼기 힘든 상황이었다.
“선생님 핫 팩 더 드릴까요?”
“핫 팩? 허! 됐다. 이미 안쪽에 많이 붙였어. 너는?”
“저야 이미 완전무장했죠.”
“다들 마찬가지지만, 넌 특히 감기 걸리지 마라. 어린애랑 같이 지내잖아. 조심해.”
“네, 그럴게요.”
혀를 차며 짜증을 드러내던 중견 배우는 태주가 말을 돌리자, 헛웃음 소리를 내더니 그냥 그에게 맞춰 주었다. 아직 세팅이 끝나지 않아서 스태프들이 현장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중견 배우인 그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었지만, 괜한 말이 돌 빌미를 줄 필요는 없었다.
굳이 중견 배우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김정훈 감독의 성의 없는 태도를 이미 많은 사람이 본 상태였다. 여기에 배우 경력이 긴 그까지 나서서 문제가 불거지게 돕지 않아도 상황은 충분히 심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촬영 중인 배우들에겐 알리지 않은 방안을 제작사나 소속사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매니저님이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야. 우 팀장님이나 대표님도 마찬가지고. 김윤선, 정한선 두 선배님이랑 친한 배우도 많으니, 매니저님을 통한 게 아니더라도 상황은 이미 회사로 전해졌다고 봐야 해.’
쿠첼루스가 김정훈 감독님의 아버지를 찾아낸다면, 이런 어수선한 상황도 금세 수습될 것이다. 재촬영을 하든, 편집으로 촬영분을 살리든, 모두 그의 소관은 아니었다. 제작사와 회사 간의 얘기가 오고 간 뒤에야 그에게 결과가 전해질 터였다. 그는 그때까지 본인의 촬영에만 집중하면 됐다.
“얘! 이태주!”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동선 확인하라잖아.”
“아!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고. 가자. 동선 빨리 확인하고 바로 촬영하자. 추워 죽을 것 같아.”
중견 배우와 대화를 나눈 후, 딴생각에 빠져 있던 태주의 이름을 김은혜가 크게 불렀다. 오후엔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대로 점점 낮아지는 기온에 그녀의 마음이 급했다.
오늘 김은혜의 촬영 분량은 많지 않았다. 세 사람이 얼음 계곡에서 만나서 약초와 의원 건물에 숨겨져 있던 시체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만 찍으면 끝이었다.
반면 태주는 그 뒤에도 밤까지 촬영에 예정되어 있었다. 세 명의 대화 장면을 찍은 후, 얼음 계곡으로 그녀를 찾으러 가는 장면, 세자와 무장이 야영하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이쪽에 뒤돌아서 땅을 긁는 동작을 하고 계시면, 세자랑 무장이 접근할 겁니다. 앞쪽은 동굴 그늘이 지니까, 걸어오다 여기서 멈출 겁니다. 이해하셨죠?”
“네.”
배우들은 조감독이 가리키는 위치를 잘 기억했다. 섭외된 곳은 얼음 계곡이라는 장소에 걸맞게 아름답지만, 무척 추운 곳이었다. 위치를 잘 기억해서 한 번에 촬영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위치 확인을 마친 세 배우가 지정해 준 곳에서 대기하자, 곧 감독님의 촬영 신호가 떨어졌다.
-탁. 탁. 탁.
산을 오르느라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는 세자와 무장이 동굴 입구에 섰다. 얼어붙은 계곡물을 뒤로하고 선 그들 앞에는 얼음 기둥이 곳곳에 세워진 동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둑어둑한 동굴 안쪽에서 땅을 찍는 소리가 울려왔다.
세자와 무장이 눈을 마주쳤다. 소문만 듣고 오른 초행길인데도 목적지에 제대로 찾아왔다. 난장판이 된 의원의 생존자인 의녀가 있는 곳이 여기였다. 그 의녀 외에 저런 소리를 낼 사람은 얼음 계곡에 없었다.
“저하. 제 뒤에 계십시오. 위험합니다.”
“저 여인의 옷. 죽은 의녀들과 같은 옷이다.”
세자는 제 앞을 가리며 보호하는 무장의 어깨너머로 여인의 행색을 살폈다. 약초를 캐느라 쪼그려 앉은 여인의 뒷모습만 보였지만, 의녀 특유의 앞치마를 걸친 게 보였다.
세자의 말을 듣고 잠시 의녀의 모습을 확인한 무장이 빼 들었던 검을 다시 넣었다. 그리고 세자를 뒤에 두고 앞으로 나서, 여전히 호미질에 여념이 없는 여인을 불렀다.
“여봐라, 네가 이 의원에서 일하던 의녀가 맞느냐?”
“….”
“잠깐 나와 보거라. 괜찮다. 잠깐 나와 보래도.”
무장의 호출에 의녀의 동작이 멎었다. 그녀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뒤로 돌아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 밖으로 나온 의녀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입고 있는 의복은 피와 알 수 없는 얼룩으로 더러웠고, 그것은 의녀의 손과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퀭한 눈에 시퍼렇게 언 입술의 의녀는 며칠은 못 잔 모양새였다.
“이 의원은 어디에 있느냐? 어서 말해 보거라.”
“…의원님은 안 계십니다. 그날 밤, 화를 피하지 못하셨습니다.”
“화를 피하지 못해? 그 말은 이 의원이 죽었다는 말이더냐?”
“…모두 그 약초. 보라색 꽃이 피는 그 약초 때문입니다.”
“뭐라?”
“한양의 변고도 의원의 병자도 그 약초 때문에 그리되었다고 의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양의 변고. 세자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부왕 전하의 신상에 일어난 변고는 알려지지 않게 쉬쉬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방의 일개 의원에서 일하는 의녀가 알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 의원이 한양, 궁궐로 불려 갔던 것이 사실이었다.
“의원의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이 한양의 변고와 관계있더냐?”
“의원의 사람들이 죽은 것은 어찌 아십니까? 혹시 그 사람들을 보신 것입니까?”
“그래. 보다 뿐일까. 시신들을 관아로 보내서 조사 중이다.”
“예? 관아요? 안 됩니다.”
“뭐가 말이냐?”
“그 사람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막아야 합니다. 해가 지면 살아나서 사람들을 해칠 것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의원 건물 대청마루 밑에 숨겨 둔 시신을 관아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은 의녀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의녀는 세자의 질문에 답하긴커녕 초조한 목소리로 막아야 한다는 말만 연신 되뇌고 있었다. 그녀는 무장이 막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관아로 달려갈 기세였다.
-오케이. 컷.
세자의 의심스러운 얼굴과 의녀의 다급한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에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들려 왔다. 태주와 두 배우는 그 소리를 듣고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곧 시린 손발을 풀기 시작했다.
“어후! 춥다.”
“혹시 눈이 내리는 건 아니겠죠? 강원 지방은 아침부터 눈이 오는 중이라고 뉴스에서 보긴 했는데….”
“눈 내리면 촬영 못 할 텐데.”
“오후 촬영은 괜찮지 않을까요? 어려운 장면도 아니니, 눈 내리기 전에 후다닥 찍으면 될 것 같아요.”
“힘들어 보이는데….”
중견 배우는 태주의 의견에 회의적인 대답을 내놨다. 잠시 촬영이 멈춘 사이에 김정훈 감독은 다시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갈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준비 결과를 바로바로 확인해야 할 김정훈 감독이 계속 저런 상태라면 어쩔 수 없었다.
“눈이다.”
“쯧쯧쯧.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군.”
드라마든 영화든 촬영 현장에는 사건 사고가 흔했다. 기자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애교일 정도로 다양한 사건이 발생한다. 기상변화도 그런 사건 중 하나였다. 폭우, 폭설, 강풍 등은 야외 촬영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재난이었다.
얼음 계곡을 두 사람이 오르는 장면은 부감샷이었다. 하늘에서 계곡을 오르는 두 사람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그 장면 때문에 일부러 풍광이 아름다운 곳을 섭외했는데, 이런 날씨라면 오늘 촬영은 접어야 했다.
그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틀 동안 멈추지 않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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