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58
258. 박재우의 분노 >
태주는 자신이 태산이와 펫뿐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약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혼도 못 내고 가끔은 짓궂은 장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쿠첼루스는 정말로 물러도 너무 물러 보였다.
쿠첼루스는 연구를 망친 태산이와 더미 녀석의 처분을 넘겼더니, 혼을 내기는커녕 연구실에 위험한 물건이 많아 다칠 수도 있었다고 걱정만 늘어놓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엔 그가 연구실의 문이 잘 닫혔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고까지 얘기했다.
‘어휴. 저러니 태산이 녀석이 매일 상전처럼 굴지.’
사실 본인도 쿠첼루스와 그다지 차이가 없었지만, 태주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게 저녁의 소동이 일단락 지어지고 얼마 후, 태주가 향이 좋은 차를 한 잔 우려서 느긋하게 마시고 있을 때였다. 말썽쟁이 녀석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복도로 나가는 게 보였다.
그는 소리도 기척도 없이 조용히 움직이는 하얀 녀석의 움직임에 감탄하며 뒤를 따라갔다. 좀 전에 사고를 쳤으니 또 치진 않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믿음이 아주 크진 않았다. 더욱이 움직이는 방향이 쿠첼루스의 연구실이 있는 방향이라서 더 그랬다.
-탕탕탕.
아이로 변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느끼길 잠시, 아까처럼 연구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좀 전에 연구실에서 그런 사고를 쳐 놓고도 참 당당한 녀석이었다.
태주가 아이를 말릴까 고민하는 사이 연구실 문이 열리고 쿠첼루스가 나왔다. 그 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태주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태산이는 자신의 앞에 선 쿠첼루스를 잠시 올려다보더니 목줄에서 돌돌 말린 주문서 뭉치를 꺼냈다. 뭉치에서 한 장을 풀어낸 후, 잠시 고민하다 다시 한 장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쿠첼루스에게 당당하게 내밀었다.
“꾸체. 자, 바다.”
“아! 복원 주문서군요.”
“앙.”
“고맙습니다, 산. 그래도 다음에는 그러면 안 됩니다. 다칠 수도 있어요.”
“앙, 아라떠.”
태산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꽤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태주는 쿠첼루스의 연구실에서 물건을 떨어뜨려서 깨뜨린 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더미 녀석이 떨어뜨렸다면, 아마 태산이는 모른 척했을 것이다. 제가 떨어뜨렸으니, 미안한 마음에 저걸 주는 것이었다.
그보단 복원 주문서를 주면서 합의를 하는 모양새가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저런 합의를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모습이었다.
태주는 합의금 아니, 합의 물품이 어디서 났을지 떠올리고 얼굴을 구겼다. 따로 용돈을 받는 녀석이 아니니, 앙큼한 꼬맹이가 넘기는 물건의 주인이 누구일지는 뻔했다.
‘해나의 요리를 가져오느라 매일 수수료를 내다 보니, 태산이 목줄은 신경을 못 썼어. 대체 뭘 얼마나 가져온 거야?’
태주는 나중에 태산이의 방을 뒤져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아이 방은 문을 열기도 겁날 정도로 장난감이 쌓여서,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부터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저 정기적으로 청소 주문서만 써주는 중이었다.
태산이 녀석도 평소엔 태주의 침실과 드레스룸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곳은 자주 들어가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거의 장난감 창고 신세였다.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지, 뭐를 그리 숨겨 두었는지, 다음 휴일에 탈탈 털어 볼 생각이었다.
*
태주는 오늘도 어김없이 외투를 입고 자신을 따라나서는 꼬맹이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요 꼬맹이의 적응력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좋았다. 태산이는 이미 촬영장 적응 100%를 달성한 상태였다.
태산이는 심심하면 견우나 2호의 손을 잡고 촬영장 외곽을 돌아다니고, 졸리면 세워 둔 왜건에 들어가서 한잠 자고 나왔다. 어른들이 간식을 챙겨 주지 못할 정도로 바쁠 때는 스스로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 먹을 정도였다.
“태쭈 가자.”
“그래.”
태산이가 부르는 산토끼 노래를 들으며 출근한 촬영장은 어제와 분위가 사뭇 달랐다. 언젠가 봤던 술렁이는 촬영장처럼 술렁이고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분장실로 향하는 태주는 끊임없이 소란스러운 현장에 질리는 느낌이었다.
“태주야, 기사 봤어?”
“네? 무슨 기사요?”
“한창석 감독 기사.”
“무슨 내용인데요?”
“내가 전에 말했던 거. 한창석 감독이 시즌 2 연출 맡을지도 모른다는 얘기.”
“아! 그 일 때문에 촬영장이….”
촬영장의 스태프나 배우들 분위기가 술렁거린 이유가 있었다. 김정훈 감독보다 더 유명한, 절대로 드라마 연출은 맡을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연출을 맡았다는 기사를 봐서였다.
태주도 한창석 감독의 연출 계약 소식에 놀란 건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곧 연출 기회를 얻지 못한 조감독에게 흘러갔다.
역시 입봉 감독이 맡기에 시즌2는 너무 큰 프로젝트였다. 만약 이게 평범한 TV 드라마였거나, 저예산 상업 영화 정도였다면, 조감독님도 기회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꽤 안타까웠다.
“시즌 2는 내년에 촬영하지?”
“네.”
“설마 또 여기서 하진 않겠지?”
“여기서 할걸요?”
“에효.”
한숨은 태주도 쉬고 싶었다. 대본상에선 괴물들에 맞서 싸우면서 시즌 1이 끝난다. 시즌 2는 그 장면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시작될 테니, 이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촬영할 터였다. 추위와 불편함을 다시 겪어 가면서 말이다.
“다음 시즌 찍을 때는 저도 준비를 좀 해야겠어요.”
“무슨 준비?”
“작년 여름에 썼던 모터홈이요. 그거처럼 최고 등급의 모터홈은 무리겠지만,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모터홈이라도 구해 두려고요. 그 정도만 되어도 쓸 만하지 않겠어요?”
“충분히 쓸 만하지. 여긴 주차장도 넓어서 미리 양해만 구해 두면 괜찮을 거야.”
“할리우드에서 괜히 트레일러를 쓰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써 보니까 알겠어요. 상당히 편해요.”
미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특히 아이와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태주에게 모터홈은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산이와 태산이가 촬영장에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지만, 편하게 쉴 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게다가 아이가 안전한 곳에서 지낸다면, 보호자인 태주도 더 안심할 수 있었다.
“태주야, 너 광고 많이 찍어야겠다. 돈 벌어야지.”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미 일정 잡혀 있어요.”
“호호호. 하긴. 매니저님이 요새 괜히 바쁜 게 아니었지.”
“그렇죠.”
이번 작품을 촬영하는 내내 회사에선 간단한 인터뷰 일정조차 잡지 않았었다. 지방 촬영도 많고, 출연 분량도 많아서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그를 배려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겨울 촬영이 끝나면 한 달 동안 촬영이 없었다. 이 기간에 태주는 밀어 두었던 광고와 화보, 인터뷰 등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두 사람은 한창석 감독의 시즌 2 연출 계약 얘기에서 한참 벗어난 화제였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한참 동안 떠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가발을 쓰고 초췌한 얼굴로 분장하는 동안 분장실 안은 여러 가지 얘기로 시끌시끌했다.
*
태주의 분장실이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면서 준비를 하는 것과 다른 살벌하고 난폭한 기운이 도는 곳이 있었다. 한창석 감독의 연출 계약 기사를 확인하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드러내는 박재우의 숙소가 그곳이었다.
-콰장창!
“아아악! 빌어먹을 이태주!”
태블릿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 낸 박재우가 고함을 질렀다. 보기 싫은 한창석 감독의 기사가 나왔던 화면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당장은 스케줄 때문에 한창석 감독이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해도 출연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가 이태주와 작품을 하는 게 열받았다.
“왜? 왜 또 이태주야! 왜 이태주한테 가는 거난 말이야! 아아악!”
한창석 감독은 코인을 사용해서 자신에게 호감을 지니게끔 조종해 둔 사람이었다. 그가 이태주에게 관심이 큰 것은 알았지만, 자신의 조작으로 더는 그럴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었다. 촬영 후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난 적은 없지만, 겨우 삼 년 만에 다시 이태주와 작업을 하려 들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평생 영화감독으로 산 사람이 이태주 때문에 드라마 연출을 한다고? 젠장!”
박재우는 한동안 손에 잡히는 방 안의 물건을 모두 던지며 성질을 부렸다. 쿠션, 책, 꽃병 가리지 않고 헉헉거릴 때까지 집어 던지던 그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감량하느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성질을 냈더니 머리까지 어지러운 것 같았다.
“빌어먹을! 어떻게 그 새끼랑 관련된 건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이태주를 조사해도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이혼한 부모와 소원한 사이라는 것 빼고 흠을 찾을 수 없었다. 데뷔 전 과거를 털어 봐도 문제 삼을 게 없었다. 데뷔 전부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려서인지, 원래 그런 놈인지, 꼬투리 잡힐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데뷔 후에도 마찬가지, 개인 스태프나 촬영 스태프나 차별 없이 친절하게 대해서인지 그를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도움을 받고 칭찬하는 사람만 수두룩했다.
‘지 앞가림이나 할 것이지. 오지랖은.’
이태주 관련 루머를 뿌리는 일도 그랬다. 아무리 루머라도 사진 한 장이라도 있어야,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뿌릴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집구석에 꿀이라도 발라 놓았는지, 촬영장을 나서면 바로 집으로 가서 나오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어린 나이에 큰돈을 번 배우라서 세금 같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파 봤다가 모두 덮어 버렸었다. 탈세는커녕 감추어져 있던 기부금 내역만 주르륵 쏟아져 나와서였다. 그런 것을 괜히 루머로 흘려서 남 좋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해외 활동이라도 하면 기회 봐서 처리할 텐데….”
지난해 여름에 찍은 드라마의 해외 반응이 굉장히 좋았는데도 그 흔한 해외 팬미팅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이태주가 해외에 나갔다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 아니, 남들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한국보다 자유로운 해외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운 과거의 선택이 안타까웠다.
-똑똑!
“재우, 들어가도 괜찮아?”
“후우. 들어와.”
박재우의 방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멎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마크가 문을 두드렸다. 오늘도 박재우의 훈련 스케줄은 꽉 차 있었다. 차기작으로 선택한 나성안 감독의 을 위한 훈련이었다.
마크는 오늘 박재우가 화가 난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우선 그를 달랬다. 촬영까지 이제 두 달이 안 되게 남은 상태였다. 아무리 박재우가 액션에 능숙하더라도, 다른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훈련을 빠지게 둘 순 없었다.
“재우, 점심 먹고 훈련 가야 해.”
“젠장!”
“어제도 빠졌잖아. 오늘은 꼭 가야 해.”
“알았어.”
“어서 준비해. 여긴 내가 정리할게.”
점심이라는 단어를 들은 박재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량을 위해서 먹는 제한식은 맛이 끔찍했다. 고급 와인과 스테이크를 즐기는 그의 취향과는 백만 년 정도 떨어진 식사였다. 그런 음식을 촬영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반년은 더 먹어야 했다.
박재우는 다이어트 식단과 액션 훈련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인벤토리의 아이템으로 쉽게 체중을 조절할 생각으로 선택한 영화였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감량이고 훈련이고 모두 스스로 해야 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을 스스로 할 때마다 그는 이태주가 원망스러웠다.
“휴우.”
-Trrr.
마크는 자신의 말에 따라 박재우가 순순히 욕실로 사라진 뒤 한숨을 내쉬었다. 할리우드나 유럽에 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한국에 온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안 그래도 예민한 상태였던 박재우는 감량을 시작한 뒤로 시시때때로 성질을 부렸다. 물건을 부수는 것은 일상이었고, 훈련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같이 출연하는 한국의 유명 배우들 사이에선 벌써 안 좋은 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네, 한 시간 뒤에 청소 부탁해요. 장식품들은 같은 것으로 다시 채워 주세요.”
워낙 자주 청소와 물품 교체를 요구해서일까, 처음과 다르게 담당 직원이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직원은 정중하게 알겠다는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이태주. 대체 뭘까? 이태주의 뭐가 그렇게 재우를 화나게 하는 걸까?’
박재우와 별도로 마크 역시 이태주를 조사했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결과 역시 박재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태주는 스타가 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고, 그걸 잘 활용해서 이른 시간에 톱스타가 된 배우였다. 외모, 실력, 소속사, 운까지 모두 잘 맞아서 빠르게 큰 경우였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자신의 배우 박재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국의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고 바로 해외로 진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연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그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영화 한 편으로 명실공히 월드 스타가 되었다.
“마크, 준비 끝났어, 뭐해?”
“창밖 좀 구경했어. 빠뜨린 건 없지?”
“없어. 있어도, 뭐….”
“필요하면 말하라고. 뭐든 대령할 테니.”
“하하하. 알았어. 필요하면 마크, 네게 말할게.”
마크는 경호원들에게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돌아선 박재우의 뒤를 따랐다. 그는 자신을 앞서가는 박재우의 뒷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명품 슈트를 걸치고 최고의 조향사가 특별히 제작해 준 향수를 뿌린 그는 누구보다 빛이 났다.
박재우는 지금까지 마크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완벽한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신경질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박재우는 인물, 능력, 재력 중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크는 이런 자기 배우의 앞을 막는 상대는 누가 되었든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