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59
259. 이름 >
-차르르륵!
“좋아요. 아! 지금 표정 너무 따뜻하다.”
화이트 스크린 앞의 피사체가 마음에 든 듯 사진작가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화보 작업이 마음에 든 것은 태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달 만에 하는 작업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집중도 잘되고 의상 콘셉트에 맞는 분위기나 표정도 쉽게 나왔다. 모델이 의상을 잘 살려서인지, 분위기도 좋았고 나온 결과물은 더 좋았다. 덕분에 화보를 찍는 내내 기분 좋은 열기가 현장에 가득했다.
“휘유! 작업이 이렇게 빨라도 되나? 벌써 마지막 의상이잖아!”
태주가 갈아입고 나온 의상을 보는 사진작가도 화보 촬영을 총괄하는 에디터도 감탄하고 있었다. 얼마나 촬영이 스피디하게 진행되는지 아직 스튜디오 예약 시간도 남았는데, 마지막 의상을 촬영할 순서였다.
패션모델 이상으로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배우는 괜히 수년간 섭외 순위 1위를 유지하는 게 아니었다. 유려한 동작이나 섬세한 표정 모두 의상과 잘 어우러져 보정 없이 바로 실어도 될 정도였다. 본업이 배우라서인지 의상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실력이 무척 뛰어났다. 그것에 비하면 빛나는 외모는 덤 수준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남은 인터뷰도 잘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태주는 마지막 의상 촬영이 끝난 뒤, 인터뷰도 탈 없이 깔끔하게 끝마쳤다.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 이후에는 회사로 가서 지환이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는 이제영 감독의 부탁을 들어줄 차례였다.
“연습실로 바로 가시겠습니까?”
“네, 그래야죠. 지금 바로 가도 연습 끝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아직 중학생인데, 일찍 들어가게 해야죠.”
“알겠습니다.”
견우는 회사로 차를 몰면서 태주를 태우고 회사로 가는 일이 꽤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방 촬영이 많아서 태주가 회사에 들를 시간이 없었다. 출연 계약을 제외한 업체 미팅이나 회의 모두 그 혼자 다녀오고 태주는 촬영장 인근에서 머물면서 컨디션 조절에 힘썼었다.
“사무실이 아니라 연습실로 가는 거긴 하지만, 회사에 들르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렇긴 합니다.”
“한동안 사극은 자제해야겠어요. 내년에 시즌 2 찍고 나면, 좀 더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고 싶어요.”
“그러셔야죠.”
견우는 태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와 회의를 한 적은 없었지만,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길 바라고 있었다. 연달아 사극을 한 덕에 사극 전문 배우로 이미지가 고착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만약 태주가 얼굴뿐인 배우였다면 한 가지 장르에서라도 독보적인 위치에 서도록 유도하겠지만, 그는 그런 배우가 아니었다. 연기력이 얼굴에 가려져 저평가 받는 중임에도 동년배 중에선 독보적인 연기력이란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런 재능을 한 장르에 국한할 이유가 없었다.
워낙 연기력이 좋아서 회사에서는 태주에게 건네는 대본의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그가 싫어하는 호러나 서스펜스 조차도 대본만 좋다면 거르지 않고 건네고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태주는 도전을 망설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싫어하는 장르여도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면 꽉 잡을 정도로 똑똑하기도 했다. 촬영장에서 괴물 분장한 배우를 보고 후회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
소속 배우들 대부분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다 보니, 회사에 있는 연습실은 쓰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의 연습실을 쓰기보단 본인이 편한 장소, 집이나 혹은 따로 마련한 개인 연습실에서 연습했다.
덕분에 연습할 공간이 필요했던 지환이에게 흔쾌하게 빌려줄 수 있었다.
“지금 어, 어디로 가는 거예요?”
“놔 주세요. 안 갈래요. 집에 갈래요.”
“아악! 왜 이러세요?”
태주는 지환이의 집중을 깨지 않도록 조용히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환이가 연기하는 부분은 학교 수업 도중 군인들이 들어와서 강제로 어린 학생들을 트럭에 태우는 장면이었다.
1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은 학교로 들이닥친 군인들의 억센 손길에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수송선에 태워진다. 의 동생 역시 마찬가지. 수업 도중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일본으로 연행된다.
‘잘하네. 감정이 과하게 들어간 몇몇 부분만 덜어 내면 될 것 같아.’
다시 봐도 어린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연기였다. 어쩌면 환경의 영향일 수도 있었다. 저렇게 남의 눈치를 보며, 위축되고 주눅이 든 연기를 사실감 있게 하는 것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태주는 이내 고개를 저어서 머릿속을 비워 냈다. 그저 지환이의 관찰력이 뛰어나고 대본 이해도가 남다른 것일 수도 있었다. 개인사를 들은 적도 없으면서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태주는 속으로 지환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벽에 등을 기댔다. 지환이의 연습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좀 편한 자세로 기다려도 될 것 같았다.
“앙. 태쭈, 사니 다녀오께.”
연습실을 나간다고 말했지만, 태주의 반응이 없었다. 태주가 지환이를 보느라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태산이는 가볍게 넘겼다.
태산이는 태주가 연기 연습하는 모습을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었다. 연기 연습을 할 때의 그는 지환이 이상으로 집중하는 편이었다. 아주 소란스러운 상황이 아닌 한 그의 집중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앙. 쬬코리.’
태산이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태주의 회사, 트리즈는 태산이가 어릴 적부터 뻔질나게 드나들어 안방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굳이 태주와 같이 움직이지 않아도 돌아다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츄릅.
‘사니, 가자.’
태산이는 회사에 들르면 항상 가는 곳인, 최 대표의 방으로 가기로 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최 대표의 방을 생각하자 침이 나왔다.
책상 서랍과 책장위, 그리고 냉장고에 간식이 있었다. 호랑이 모습일 때 먹을 수 있는 것과 아이 모습일 때 먹을 수 있는 것이 종류별로 골고루 준비되어 있었다. 태산이가 침을 꼴깍 삼키고 계단을 내려갔다.
-타박, 타박.
“….”
계단을 내려가는 일에 집중하느라 태산이는 자신의 뒤로 누군가 조용히 따라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졌는지, 폴짝폴짝 뛰어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 아이의 뒤를 2호가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태주가 연습하느라 모를 거라는 건 아이의 착각이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돌봐 온 태주가 아무리 집중했다지만, 태산이한테서 모든 신경을 거둘 리 없었다. 그저 지환이의 연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었을 뿐이었다.
-스윽!
“앙?”
운이 나쁘게도 최 대표의 사무실엔 주인이 없었다. 태산이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책장, 티 테이블, 책상. 초콜릿 바, 초콜릿 상자, 츄르 상자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저에게 주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태산아, 형 물건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 물건은 맘대로 가져가면 안 돼. 태산이가 다른 사람 물건을 막 가져가면 형은 굉장히 슬플 거야. 너무 슬퍼서 태산이를 열 밤은 못 볼지도 몰라.’
“아앙!”
태산이 손이 초콜릿 앞에서 조물조물 쥐었다 펴졌다. 욕심은 초콜릿을 어서 집어 입에 넣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태주의 당부가 머릿 속에 맴돌고 있어서였다.
초콜릿과 태주를 저울에 놓고 잠시 고민하던 태산이가 힘없이 몸을 돌렸다. 손만 뻗으면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 해서 애가 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주를 열 밤 못 보는 건 초콜릿을 못 먹는 일보다 힘들었다.
-꼴깍!
태산이 다시 침을 삼켰다. 태산이는 최 대표가 준비해 둔 고급 초콜릿으로 향하려는 고개를 힘겹게 문으로 돌렸다. 그리고 조금 무거운 걸음으로 익숙한 사람들, 매니지먼트 부서 직원들이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사고 치면 막을 생각으로 뒤따라 왔던 2호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태산이가 다른 사람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 대지 않고 참는 모습을 본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태산이가 잘 참았다고 태주 씨한테 얘기해야겠군.’
실망해서 무겁게 발을 옮기는 태산이는 알지 못했지만, 칭찬을 적립하고 있었다. 지금은 태주가 바쁘지만, 태산이가 집에 도착한 후엔 그에 따르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앙! 사니 와떠!”
“어머! 산아, 언제 내려왔어?”
“아까 와떠.”
“산아 마침 잘 왔어. 안 그래도 산이 오면 주려고 이거 사 놨는데. 이거 산이 줄까?”
“앙. 주떼요.”
“호호호. 여기, 잘 받아.”
“앙. 고맙뜹니다.”
굳이 태주가 챙겨주지 않아도 태산이가 알아서 보상을 잘 챙기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
태산이가 직원들의 귀염을 받으며 간식을 챙기는 동안, 태주는 지환이와 연기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배역이 가지고 있는 목표, 대사가 무슨 목적을 가진 것인지, 등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짚어보고 있었다.
태주는 지환이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지환이는 그의 생각보다 더 깊게 영화의 배경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영 감독에게 영화 배경 자료를 받아 공부했다더니, 그것 외의 자료도 스스로 찾아본 것 같았다.
“지환이 너 공부 진짜 많이 했구나.”
“…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아 둬야 할 것 같았어요.”
“잘했어. 배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배역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거든. 그럼 다시 얘기해 볼까? 일본인이 다 떠난 텅 빈 섬에 남은 성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성구는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섬을 나갈 방법을 찾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감시당하며 갇혀 있었지만, 이젠 아니니까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맞아. 하루아침에 일본인들이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나라면 바로 탈출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아. 아마 평소랑 같은 행동을 할 거야. 왜 그럴까?”
“…음. 감금당하고 억압당하는 상황이 너무 오래되어서요?”
“응. 난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된 상황이라서 무언갈 새로운 걸 하는 것보다 낯선 상황에 겁을 먼저 집어먹을 것 같다고 생각해. 아까도 말했지만, 네 해석이 틀린 건 아니야. 내 해석이 정답도 아니고. 알지?”
마지막 말은 태주의 진심이었다. 대본 안에는 그가 읽어 낸 상황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었다. 그의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해석 중 한 가지일 뿐이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배우에 따라서 해석은 천차만별일 수 있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은 지환이가 그보다 더 좋은 해석을 해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의견을 여러 해석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끔 얘기했다. 괜찮은 의견이라면 받아들이고, 전혀 공감할 수 없다면 흘려버리길 바랐다.
“제가 봐도 그 장면에선 낯선 상황에 겁먹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성구는 형의 과보호를 받으면서 자라서 상황 판단이 좀 느린 편이니까요.”
“그래. 그럼 다음 장면에 관해 얘기해 보자. 여기서….”
태주는 대화에 눈을 빛내며 대화에 집중하는 지환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한편으론 대체 이런 애가 회귀 전엔 자신을 왜 그렇게 적대했는지 궁금했다.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는 절대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은데,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왜 이런 재능을 가지고 그런 기획사와 계약을 했는지 궁금했다.
‘회귀 전에 척진 사람 중에 내가 먼저 척을 진 사람은 몇 없는데…. 그 안에 김지환, 아니 그때는 김지한이었지. 김지한은 분명히 그런 경우가 아니었고.’
회귀 전엔 전원주택에 사는 지금보다도 더 연예인 지인이 적었었다. 당시엔 작품 활동은 꾸준히 했지만, 사적인 친분을 나누는 연예인은 거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연예인 모임 같은 곳엔 잘 나가지 않지만, 그때는 더했었다. 같이 작품을 하는 동료 배우와의 술자리도 잘 가지 않는 편이었다.
당시의 그는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예능은 출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혼자서 조용히 휴가를 즐기거나 차기작에 필요한 교육을 받으러 다녔었다. 회사에서도 그의 그런 성향을 잘 알고 있어서 공식 행사 외엔 다른 일도 잡지 않았었다.
‘내가 기억 못 할 정도의 트러블이라….’
행사에 초대될 때 불편한 상대도 초대받은 걸 알고 거절한 일은 몇 번 있었다. 그런 일은 흔한 일이었고, 다른 연예인도 종종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아니라면 작품 선택을 도와 달라고 부탁받은 걸 거절한 일 정도였다. 회귀 전 그런 부탁은 거절이 일상이어서 딱히 기억해 두지도 않았다.
그 외엔 촬영에 상습적으로 늦거나 사고 친 조연의 기를 죽인 일이 몇 번 있었다. 물론 그때도 대놓고 욕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촬영 중 연기로 압박하거나, 존재감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상대가 카메라 앞에서 혼신을 다하지 않고는 시선을 받지 못하게 했었다.
“태주 형?”
“아! 미안. 계속해 봐.”
“네.”
태주는 자신과 얘기한 부분을 바로 적용해 연기해 보이는 지환의 재능에 감탄했다. 몇 달 사이에 발성도 호흡도 안정적으로 바뀌어서, 예전 연극 무대에서 느꼈던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얻은 힌트를 바로 적용하는 순발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정도로 순발력이 좋은 건, 아마 지환이가 직전의 연습에서 보여 준 것 이상으로 많은 톤의 발성을 준비하고, 많은 상황을 가정해서 연습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린 배우의 열정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집에 태워다 줄까?”
“어, 그게….”
“왜?”
“내일 토요일이라서요. 연습 조금만 더 하고 가면 안 될까요?”
“내가 본 것만 두 시간이 넘는데 더 하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지금 꼭 해 봐야 할 게 있어요.”
아무래도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감을 잡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태주는 연습실을 한 번 돌아봤다. 연습실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시설은 괜찮았다. 회사 건물 내에 있는 곳이라 보안도 괜찮았고, 난방도 괜찮았다.
“10시까지만 하고, 돌아갈 때 택시 타고 가겠다고 하면 허락할게. 택시비는 형이 줄게. 그렇게 할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태주는 열심히 하는 지환이의 모습에서 자신의 데뷔 초기 모습을 떠올렸다. 회귀 전 데뷔 초기엔 정말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 잠자는 시간을 빼곤 모두 연습에 쏟았었다. 지환이의 모습이 딱 그때의 자신 같았다.
용돈 겸해서 차비의 몇 배 되는 현금을 넉넉하게 쥐여 주고 태주가 연습실을 나섰다. 마음 같아선 연습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저녁을 먹이고 싶었는데, 그럴 정신이 없어 보였다. 지환이는 어렵게 잡은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이 그쪽에 쏠린 상태였다.
‘정말 열심이네. 그때 그 단역들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야. 맞아, 저런 모습이 정상이지.’
소속사도 없는 신인이 영화조연 자리를 얻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연기 실력이 좋아도 절대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그러니 이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도 사실 전혀 과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정한선 감독님의 독립 영화 버스킹 촬영 현장에서 위아래 구분 못 하고 설치다 쫓겨난 단역 배우들과는 180도 다른 태도였다. 아니, 그런 배우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지환이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아! 단역!”
정말 우연이었다. 회귀 전에도 알아내지 못했던 이유를 떠올린 것은. 태주는 일행을 찾으러 내려가던 계단참에 멈춰 서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회귀 전에 자신이 했던 일을 천천히 되새겨 봤다.
‘그 단역. 촬영 시간에 늦어서 쫓아낸 단역 배우. 이후 내 촬영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그 배우가 지환이었어.’
본명으로 활동하기 힘들어서 김지한으로 이름을 바꿨던 모양이었다. 김지환, 자신이 직접 제작사로 연락해서 영화에서 빼라고 했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이제야, 수십 년이 지나서야 생각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