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64
264. 자전거 >
이제영 감독의 영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하기 시작하고 한 달 뒤, 같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영화 역시 촬영을 시작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톱 배우들과 대형 제작사, 유명 감독 그리고 월드 스타가 합류한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었다. 거기에 실제 배경이 된 하시마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에 수천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할 계획까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그 영화가 모두 독차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실제 영화 촬영 현장은 그런 조명을 받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영화 내용이나 배경이 무거워서는 아니었다. 주연 배우들 사이에 감도는 불편한 공기가 가장 큰 이유였다.
“안녕하세요.”
“…”
박재우에게 인사를 하던 스태프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촬영이 시작된 후로, 아니, 그 전의 연습 단계에서부터 박재우가 인사를 받아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그의 인사만이 아니었다. 박재우는 동료 배우들의 인사 역시 받아 준 적이 없었다.
아니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촬영 스태프들은 대놓고 그를 탓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보다 성질이 더러운 배우도 많았고 그보다는 수개월째 감량하느라 배우들이 무척 예민한 상태여서였다.
‘그렇다고 재수 없는 게 있어지는 건 아니지만…. 힘들어도 다 같이 잘해 보자고 으쌰으쌰 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수백억이 들어가고 작업량도 많고 작업의 어려움도 큰 작품이긴 했지만, 앞으로 촬영은 6개월 가까이 남은 상태였다. 이제 시작이니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 선 상태를 유지하며 6개월을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촬영 현장은 시작부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였다. 배우들의 집중이 깨지지 않게, 실제로는 배우들의 비위가 상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움직이는 게 원칙이었다.
“마크.”
주차장에서부터 분장실 의자에 앉을 때까지 말 한마디 없던 박재우는 주변에 그의 사람만이 남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마크를 부르는 박재우의 목소리는 빛이라곤 한 줄기도 들지 않는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어둡고 서늘했다.
그런 박재우의 곁으로 물병을 든 마크가 다가왔다. 그는 차갑게 식은 물병을 따서 박재우가 잡기 편하게 건네며 곁에 섰다.
“응, 재우. 무슨 일이야?”
“그건 어떻게 됐어?”
“그거?”
“투자 건.”
“…음. 거절당했어.”
물을 마시던 자세 그대로 박재우는 마크를 노려봤다. 이태주의 영화와 소속사에 투자하려던 계획은 애초부터 가능성이 크지 않았었다. 제작사 쪽도 소속사 쪽도 대표의 출신이 재벌이었기 때문에 거절당했을 때도 기분은 나빴지만,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피닉스 스튜디오에서 투자 제안을 거절한 것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골드 코인의 주인이 나라는 얘기도 했어?”
“했다고 들었어.”
“그런데도 거절했단 말이야?”
“진정해, 재우.”
“어떻게!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 주연 배우가 출연 중인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걸 거절당한 상황인데!”
이 영화에 수백억의 제작비가 들어가긴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게 뻔했다. 육칠천 명에 달하는 엑스트라의 인건비만 해도 하루에 수 억이었다. 엑스트라 동원 신이 하루 만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못해도 일주일은 써야 하는 상황에 자신의 투자를 거절하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진정해. 곧 촬영에 들어가야 하잖아.”
“후우! 이유가 뭐래?”
“그 조건 때문인 것 같다고 들었어.”
“어떤 거?”
“그거. 편집에 조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
“빌어먹을!”
조언이라고 순화된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편집에 간섭하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만약 박재우 측의 요구가 단순한 투자 제안이었다면, 피닉스 스튜디오에서 흔쾌히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의 투자는 조건부 투자였다. 편집에 관여하게 해 달라는.
그것은 나성안 감독의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이었다. 피닉스 스튜디오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얘기였다. 평범한 투자자도 아니고 주연 배우가 투자자로 나서서 편집에 영향을 끼치는 일을 자존심 센 나성안 감독이 용납할 리 없었다.
“지금이라도 이 영화를 그만두는 게 어때?”
“….”
애초부터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크가 위약금을 내고 영화에서 하차하자고 제안했지만, 박재우는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보기엔 차라리 위약금을 내는 게 이곳에 반년을 묶여 있는 것보단 나았다.
게다가 영화 촬영이 끝났다고 주연 배우의 할 일이 모두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 편집이 끝나고 개봉할 때쯤 해서 홍보를 위해 다시 시간을 내야 했다. 이런저런 홍보 방송에 출연하려면 몇 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일 모두 박재우에겐 손해였다.
“나는 재우, 네가 왜 이렇게 한국 영화 출연을 고집하는지 모르겠어.”
“그건….”
“알아. 한국은 네 고향이고, 네가 한국에 애정을 품고 있다는 건. 하지만 굳이 널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는 곳에서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그것도 할리우드의 수많은 감독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말이지.”
“….”
마크의 말이 합리적이라는 건 박재우도 알고 있었다. 앞으로 이 작품에 묶여 있을 시간을 따져보면 위약금을 물고 하차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차한 후에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작지 않았다.
한국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에 비교해서 작다고 하지만, 상업 영화 시장이 충분히 활성화된 곳이었다. 이 작은 나라에서 한 해에만 백 편 가까이 상업 영화가 제작되고 있었다. 그 중엔 해외 영화제에 꼬박꼬박 초대받는 감독의 영화도 있었다.
‘지금 하차하면 한동안, 아니, 수년간은 한국 영화를 못 찍게 될 게 분명해.’
친하게 지낼 마음은 여전히 들지 않았지만, 지금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이 한국의 톱 배우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들은 그가 무명이었을 때도 월드 스타라고 불리는 지금도 톱 배우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톱 배우로 불릴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 시점에 그가 하차해서 촬영이 ‘올 스톱’ 된다면, 그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앞길에 장애물을 놓으려 들 터였다. 그게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귀찮기는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박재우, 그가 바라는 영화에 출연하지 못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지금 그만둘 수는 없어.”
“하지만….”
“지금이라도 촬영을 그만두는 게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 나도 만약 앞으로 한국 영화에 출연할 계획이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그만뒀을 거야.”
“재우. 다음에 또 한국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야? 차라리 저번에 DK코믹스에서 제안한 시리즈에 출연하는 게 어때?”
“아니, 그건 좀….”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들의 위상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제작사들의 동양인 배우 선호도는 높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그에게 히어로로 합류하지 않겠냐는 DK코믹스의 제안은 분명 좋은 제안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
DK코믹스의 히어로 영화가 쫄딱 망할 예정이어서였다. 그 영화는 거의 모든 평론가에게 혹평을 받고, 수익도 별로였다. 그리고 그 영화는 타임스지가 선정한 올해 최악의 영화 TOP 10 안에 당당하게 랭크될 예정이었다.
‘거기 출연할 바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내년에 촬영할 그 영화에 출연하는 게 백배 낫지.’
그 히어로 영화 시리즈에 출연해서 수년간 묶여 있느니,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그 영화에 출연해서 전 세계 각종 영화제에 참석하는 게 나았다. 그 영화감독의 눈에 드는 게 쉽진 않겠지만, 자신의 연기력이라면 가능성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똑똑!
“메이크업 받으실 시간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박재우와 마크는 촬영 준비를 위해 분장실에 도착한 스타일리스트 팀 때문에 대화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크는 박재우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차를 권하긴 했지만, 마크 역시 내심으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받아들여도, 받아들이지 않아도 모두 불이익이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더 나은 선택은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후우! 어린애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군. 그래도 확실히 배우는 배우야. 마음에 들지 않아도 촬영은 하겠다니.’
마크가 느끼기에도 박재우는 예민하고 까칠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시 좋은 배우였다.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곁을 지킬 만한 가치가 있었다.
*
태주는 모처럼 맞은 휴일에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촬영에도 지치지 않는 듯, 기운차게 물건을 챙기고 있었다.
“앞치마는 이걸로 되겠지. 고무장갑도 껴야 하나?”
“대체 뭘 하시려고 그런걸….”
쿠첼루스는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밀크티인 태주가 주방에서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꺼내 드는 모습에 놀랐다. 그는 만약 태주가 요리하려고 그 두 가지를 찾는 중이라면, 나서서 말릴 생각이었다. 태주는 고생하고 주방은 초토화되는 결과를 맞이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태산이 방 좀 정리하려고요.”
“아!”
“아니, 아니에요. 태산이가 정원에서 제 물건을 뭘 가져왔나, 보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굳이 왜 앞치마를…. 평소처럼 청소 주문서를 쓰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이. 이건 좀 민망한데요. 그게요….”
태주는 낮은 목소리로 그가 오래간만에 맞이한 휴일에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듣는 쿠첼루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고 있었지만, 태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말썽쟁이 녀석이 언제 들이닥칠지 신경 쓰는 중이라서였다.
“어린이날을 그냥 보낸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하하하.”
“산이 장난감은 언제 그렇게 늘어난 건가요?”
“크흠! 그건 저도 잘….”
쿠첼루스에게 향하는 태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구 생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한 마법사의 말은 신빙성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이 천재 마법사가 인터넷 쇼핑 중독에 매일 도착하는 택배 상자를 여는 걸 취미 삼은 지 오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선물을 해 주고 싶어도 살 수가 있어야지. 이미 전부 가지고 있으니. 뭘 해 줘야 할지 모르겠잖아.’
어린이날에 같이 시간을 보내 주지 못해서, 선물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하지 못했다. 태산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무슨 메카드 같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면, 그런 캐릭터 장난감을 사 주면 될 텐데, 애니메이션을 안 보니 그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장난감을 사 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태산이 방 안에 그도 사기 힘든 고가의 장난감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보석으로 치장된 목마에 예술품에 버금가는 인형의 집. 장인이 만든 게 분명한 오르골에 아직은 태산이가 어려서 연주하지도 못할 고악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놓여 있었다.
“정리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쿠첼은 좀 쉬세요. 요새 제대로 주무시는 거 맞아요?”
“크흠!”
“어휴! 운동하시라는 말은 안 할게요. 식사 잘 챙기시고 잠이라도 충분히 주무세요.”
“그러겠습니다.”
평소 잔소리를 하는 편이 아닌 태주였지만, 쿠첼루스만 보면 잔소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피로한 게 눈에 보일 정도인데도 매일 밤을 새우는 그가 걱정되어서였다.
태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져서일까, 쿠첼루스가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하고 재빠르게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 쿠첼루스의 보기 드문 잽싼 모습에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마법사는 신기하단 말이야. 지금 반응만 보면, 내가 연구실도 치우자는 말을 하려던 걸 알아차린 것 같단 말이지.”
그는 앞치마를 입은 김에 쿠첼루스의 연구실도 치워 주겠다고 나설 생각이었다. 그것을 핑계로 쿠첼루스의 연구실 구경도 하고, 쉬게도 하고. 그러나 일거양득인 계획을 꺼내 놓기도 전에 상대가 도망가 버렸다.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태주는 연구실 정리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도전해 보자고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그대로 장난감 창고, 태산이 방으로 올라갔다.
“이 똥고양이 녀석이!”
손에 들린 스웨터는 태주가 좋아하는 옷이었다. 넉넉한 품에 브이라인이 깊게 파인 이 스웨터는 명품 옷을 고집하는 성격이 아닌 그가 직접 사러 갈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 스웨터가 발톱에 잔뜩 긁혀서 보풀이 가득 일어난 상태로 손에 들려 있었다. 태주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 스웨터를 태산이 침대 위에 올려 두었다. 이미 되돌리긴 늦었으니, 가지고 놀라고 줄 생각이었다.
커다란 상자에 종류별로 장난감을 나눠 담다 발견한 그의 물건들이 꽤 되었다. 정원에서 가져온 것도 있었고 전원주택의 옷장이나 서재에 두었던 물건도 있었다.
“동의보감 약재 편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정원에서 약초학 기술을 올릴 때 참고하려고 사 둔 책이었는데, 그게 태산이 침대 밑에서 나왔다. 또 태산이 옷장에선 정원에서 그가 챙겨 줬던 육포와 비스킷 등의 간식이 나왔다.
“자전거는 없네?”
로고만 봐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자동차 회사의 어린이 전동차도 있었고, 드론과 무선 자동차도 여러 대 있었지만, 자전거는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도 있는데, 자전거가 없는 게 이상했지만, 좋은 소식이었다.
태주의 머릿속으로 태산이가 자전거를 타고 그가 뒤에서 잡아 주는 그림이 그려졌다. 햇빛 찬란한 오후의 정원에서 다정하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며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하는 그의 얼굴이 환했다.
“흐흐흠. 정리는 이쯤하고 자전거를 사러 가 볼까나.”
자전거를 사러 마트에 가야 한다는 핑계가 생기자마자, 태주는 앞치마를 벗어 버렸다. 정기적으로 청소 주문서를 써 주기 때문에 정리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솔직히 재밌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방 안 가득 너부러진 장난감에서 단호하게 눈을 돌렸다.
*
-휘익! 휘이익!
차 안에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퍼졌다. 트렁크에 실린 자전거가 마음에 든 태주가 부는 휘파람이었다. 태산이가 자전거를 선물 받고 좋아할 것을 떠올리자, 저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그러나 잠시 후 집에 도착한 그가 본 것은 볼이 퉁퉁 부은 태산이였다. 선물을 받고 놀라길 바라서 2호한테 맡겨 놓고 다녀왔더니, 하얀 볼 가득 심술이 차 있었다.
“산아, 이거 봐 봐.”
“흥!”
“착하지. 이리 와 봐. 형이 산이 주려고 선물 사 왔어.”
“텬물?”
“응. 자, 이게 뭐게?”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내린 태주가 손잡이 옆에 달린 벨을 울렸다. 따르릉!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태산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전거는 어린이용 자전거답게 눈에 잘 띄는 흰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태주는 언제 삐졌냐는 듯이 다가와서 자전거를 건드려 보는 태산이 머리에 헬멧을 씌워 줬다. 2호까지 나서자 순식간에 아이의 팔다리에 보호 장비가 채워졌다.
“산아, 타 봐. 형이 잡아 줄게.”
“앙.”
태주는 태산이가 안장에 앉을 때까지 자전거를 잡아 줬다. 사실 이 자전거는 보조 바퀴를 붙일 수 있는 자전거였지만, 그는 일부러 보조 바퀴를 땐 상태로 가져왔다. 이렇게 그가 자전거를 잡아 주면서 같이 시간을 보낼 욕심에서였다.
“핸들 잘 잡았지? 땅을 발로 찬 다음에 페달을 밟는 거야. 차고 밟기.”
“타고 발끼.”
“옳지. 형이 붙잡고 있을 게, 산이가 땅 차 봐.”
“앙!”
태산이가 땅을 밀 듯이 발로 차고 페달을 밟았다. 아이의 동작에 맞춰 자전거가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태주는 그런 자전거의 안장 아랫부분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면서 쫓아갔다.
“꺄하!”
“산이 재밌어?”
“앙, 재미떠.”
“하하하.”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였다.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위치에 돌아온 태주가 태산이를 자전거에서 내려 주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산아, 물 마시고 타자.”
“아아.”
“안 내리고 마실 거야?”
“앙.”
“킥. 그래. 그럼 형이 먹여 줄게.”
자전거가 무척 마음에 든 듯, 아이는 자전거에서 내리는 걸 거부했다. 물 마시자는 얘기에 두 발로 단단하게 땅을 디딘 채로 입만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에 태주는 웃으면서 물병을 입에 대 주었다.
“이번에는 좀 더 빨리 달려 볼까? 형이 잘 잡고 있을게.”
“아앙! 태주, 갠차나.”
“응?”
“이제 사니 혼자 탈 뚜 이떠.”
“…형이 안 잡아 줘도 돼?”
“앙!”
5분. 태산이가 자전거에 적응해서 혼자 정원을 쌩쌩 가로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5분이었다. 태주는 꺄하하 상쾌하게 웃으며 정원을 도는 태산이를 멀뚱히 서서 지켜봤다. 그가 그렸던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라도 태산이는 운동은 시키지 말아야겠다. 너무 반칙이야.’
태주는 혼자서도 잘 타는 모습이 기껍긴 했지만, 그의 손길이 거절당한 건 조금 슬펐다. 제대로 잘 크고 있다는 신호였지만, 아이가 품을 벗어나는 것 같아서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즐겁긴 했지만, 아이의 성장이 반갑지만은 않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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