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68
268. 전원생활 >
해나의 말이 끝나자 협회의 두 사람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태주는 긴장감 도는 분위기에 옆자리에 있던 태산이를 끌어와 안았다. 분위기가 무거워져서라기보단 꾸벅거리는 아이 고개가 테이블에 부딪힐까, 걱정되어서였다.
“아앙.”
“쉬이. 괜찮아. 형이 안은 거야.”
그는 칭얼대는 아이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주위를 살폈다. 협회의 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이었고, 차갑게 말을 뱉었던 해나는 차를 따르고 있었다. 날카로운 말이 나가지 않게, 차를 마시며 할 말을 고르려는 모양이었다.
-호로록! 탁!
“내가 묻고 싶은 건. 이레귤러의 처리를 어떻게 할 거냐는 거야. 협회에 여유가 차고 넘치는 모양인데, 이젠 슬슬 결론을 내야 하지 않겠어?”
“음….”
“기능성 씨앗인지 따위를 만들어서 뿌릴 정도인데, 설마 아직도 결론을 못 냈다고는 하지 않겠지.”
“….”
비비적비비적! 태주는 태산이 등을 두드리던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좀 전에 본 것이 현실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서였다. 그는 해나가 내려놓은 찻잔을 뚫어지게 봤다. 없었다. 좀 전까지 잘 붙어 있었던 찻잔의 손잡이가 해나가 내려놓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나 손에 묻은 가루가 손잡이는 아니겠지? 그렇겠지?’
그는 해나의 손에 묻은 하얀 가루는 못 본 척하기로 했다. 레이디를 위하는 신사라면 사라진 찻잔의 손잡이 정도는 못 본 척할 줄 알아야 했다. 손잡이가 사라진 찻잔에서 힘겹게 눈을 돌린 태주가 대화에 집중했다.
“협회에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레귤러와 정원사 씨는 같은 지역에 있어.”
“헉! 그런!”
“전에는 활동 지역이 달랐지만, 얼마 전부터는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어. 뭘 그렇게 놀라? 두 사람은 원래 활동하던 분야가 같아서 만날 가능성이 컸었어.”
“후우. 사실 이미 이레귤러에 대한 처분은 결정된 상태입니다.”
이레귤러의 힘이 봉인된 뒤에도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었다. 회의 결과는 우선 이레귤러를 협회로 소환하는 것이었다. 대마법으로 모든 흔적을 지우자는 의견에는 여전히 찬반이 나뉜 상태였지만, 정원사의 차원에서 이레귤러를 치우는 일엔 전원 찬성했다.
“현재 길잡이를 수배 중입니다.”
“아직도 수배 중이라고?”
“요원이 본인의 힘을 지닌 채로 정원사님의 차원에 가려면, 그만한 자격을 가진 길잡이의 안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런 길잡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너무 늦는데….”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상대는 길잡이입니다. 길잡이에게 시간이란 상대적인 것이라서 저희로선 재촉 외엔 방법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수많은 차원을 이동하는 길잡이에게 시간의 가치는 크지 않았다. 길잡이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 차원을 빈번하게 여행하고, 가끔은 시간을 건너뛰며 차원을 여행하거나, 차원 전체의 시간이 되돌려진 곳을 다니기 때문이었다. 정원사 협회에서 수배한 길잡이 역시 정원사 협회 소속 차원 한 곳의 알 수 없는 시간대를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수배가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길잡이들이 의뢰를 받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본인의 의지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어딘가에 얽매여서 정해진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길잡이가 정원사 협회 소속 차원을 여행 중이라는 제보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의뢰를 넣었습니다만, 아직 회신이 없습니다.”
“그럼 다른 길잡이라도 찾아봐야지.”
“연락이 닿은 다른 길잡이 두 명에게도 의뢰 요청을 보냈습니다만…. 한 명은 임무 중이었고, 한 명은 휴가 중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길잡이들 인력난은 참….”
“길잡이가 찾아오는 즉시 이레귤러 검거에 나설 예정입니다.”
길잡이를 수배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해나의 찌푸린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봉인 인장을 사용하고 정원 시간으로 벌써 일 년도 넘은 상태였다. 협회 나름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중이었지만, 늦장 대응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어서였다.
“일 처리 속도 하고는…. 쯧!”
“죄송합니다.”
태주는 해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차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아니, 그녀에게 미안한 얼굴로 품 안의 태산이를 다독이고 있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나서야 맞는 일이었는데, 협회 사람들을 보고도 이레귤러 건 처리를 물어볼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레귤러도 따지고 보면 용병 협회 소속이잖아. 그쪽 범죄자기도 하고. 왜 그냥 두는 거야? 그쪽 협회 임원이라면 차원을 넘는 건 쉬울 텐데.”
“그런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나의 타박에도 변명 없이 사과하던 이나타와 요원 S가 표정을 굳혔다. 그들은 도움을 주는 일이든, 범죄자 양도든,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원사 협회의 영역에 다른 협회의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그런 전쟁광들을 평화로운 이곳에 들일 계획은 앞으로도 없습니다.”
“하긴. 협회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맞습니다. 일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죄송하지만, 다른 협회의 인물이 우리 협회 영역에 발을 들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했어. 그래도 가능하면 서둘러 달라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짐하듯이 말을 뱉은 이나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나는 이번에는 그런 둘을 말리지 않았다. 대신 태주가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나타 씨, 기능성 씨앗은 언제 상점에 등록되나요?”
“저희가 협회로 돌아가서 대상 우편을 발송한 뒤 바로 등록할 겁니다.”
“진짜요?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협회 공문에 나온 씨앗보다 종류가 훨씬 다양하니, 여러 종류를 시험해 보십시오.”
“그럴게요. 안녕히 가세요.”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정원사님.”
태주는 아이를 보듬어 안고 협회 사람들을 배웅했다. 꾸벅꾸벅 졸더니, 그새 쿨쿨 자고 있었다. 어찌나 달게 자는지, 안고 있는 그도 잠이 올 것 같았다. 밤 줍기를 시켜 준 뒤엔 울타리를 마저 세울 생각이었는데, 느긋하게 낮잠을 잔 뒤에 해야 할 것 같았다.
*
아침 일찍 일어난 태주는 거실 창밖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겨우 해가 떴을 뿐인데 벌써 한낮처럼 열기가 느껴지는 듯해서였다. 한여름의 더위가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었지만, 영화 촬영은 이제 겨우 반이 지난 상태였다. 앞으로 두 달은 더 촬영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태주, 이꺼.”
“이리 와. 해 줄게. 물 마셨어?”
“앙. 마셔떠.”
“한 시간만 타고 와. 아침 먹어야지.”
“앙. 아라떠.”
처음 자전거를 타던 날 보호 장비를 채워 주었더니, 자전거를 탈 때마다 스스로 보호 장비를 챙겨 왔다. 태주는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무릎 보호대를 채워 준 뒤 헬멧의 버클을 잘 끼워 주었다.
그가 2호의 손을 잡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아이 모습을 잠시 지켜 보고 있을 때, 쿠첼루스가 2층에서 내려왔다. 쿠첼루스는 아침에는 보기 드문 상쾌한 모습을 한 채 거실 창 앞으로 다가왔다.
“산이는 자전거 타러 갔습니까?”
“네. 좀 전에 호랑 같이 나갔어요.”
“이 더위에 기운도 좋군요.”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서 괜찮을 거예요. 그나저나 쿠첼 무슨 일 있어요? 오늘 표정이 무척 밝은데요.”
“아아. 어제저녁에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분 좋은 소식? 태주는 궁금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쿠첼루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은 대부분 그가 구하려는 오래된 물건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골동품을 좋아하는 태주는 그런 물건을 쿠첼루스가 가져올 때마다 같이 구경하곤 했다.
“혹시 전에 얘기했던 파피루스를 구했어요?”
“아! 그건 아직입니다. 원본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워낙 귀한 물건이라….”
“그래요? 파피루스가 아니면 무슨 소식이었어요?”
“전에 박태경 감독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피해 보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작사에서 피해 보상을 했다고요? 정말요?”
“예. 어제저녁에 액션 스쿨 소속 장 팀장님이 사고 영상 보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알려 줬습니다.”
“정말 잘 됐어요.”
제작사에서 사고를 당한 단역 배우뿐 아니라, 당시 촬영에 동원된 액션 스쿨 소속 배우들에게도 소정의 피해 보상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쿠첼루스는 피해자들이 무사히 보상을 받았다는 얘기에 기뻐하는 태주와 마주 웃었다.
사실 쿠첼루스는 얼마 전부터 주문이 실패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6개월이 넘어가도록 악몽의 효과가 나오지 않는 듯해서였다. 마법진은 잘 작동하고 있었는데, 제작사도 박태경 감독도 피해자들을 찾지 않아서 그 효과를 의심했었다.
‘독한 인간들! 뭐, 날 번거롭게 만들지 않은 건 마음에 들지만….’
쿠첼루스는 본인은 악몽으로 반년 넘게 괴롭히고, 효과가 별로 없다며 다른 마법을 쓰려고 고민하던 것은 까맣게 잊고, 제작사와 박태경 감독을 독하다 욕했다. 쿠첼루스는 사고의 책임자들을 독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독하고 집요하기로는 마법사인 그가 최고였다.
“아! 쿠첼 혹시 이거 필요하세요?”
“무슨 티켓입니까?”
“이건 마차 호박 소환권이고요. 이건 그 호박을 호박 집으로 개조할 수 있는 티켓이에요.”
“호박이요?”
“네. 정원에서 이벤트로 받은 건데 쓸 사람이 없어서요. 이것도 마법 아이템이니 연구에 쓰시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쿠첼루스는 마법 아이템이라는 말에 반색하며 티켓을 받아 들었다. 태주는 그런 쿠첼루스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를 비롯한 정원 식구 모두 관심이 없던 물건이었는데, 쿠첼루스가 너무 좋아해서 양심이 찔리는 느낌이었다.
“이 티켓 한 장에 모든 개조 재료의 소환 술식에 변환 술식까지 들어가 있는 겁니까?”
“아마도요. 다른 재료 없이 티켓만 있어도 개조가 되는 거니까요.”
“대단하군요. 대체 몇 개의 마법 술식이 쓰인 건지,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을 정돕니다.”
“하, 하하. 아침 드시고 연구해 보세요.”
정원에서 애물단지 취급받던 티켓이었는데, 그나마 한 사람이라도 좋아해 주니 다행이었다. 태주는 티켓에 시선을 고정하고 정신없이 살펴보는 쿠첼루스를 보다, 정원에서 티켓을 사용하려다 그만둔 상황을 떠올렸다.
*
“여기보다 더 넓은 곳이요?”
“응. 정원사 씨 여기보다 두 배는 넓은 곳이어야 할 거야. 아까 협회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잖아.”
“두 배…. 마차 호박이 정말 그렇게 클까요?”
“그때, 출품할 때 마차 호박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았어. 아마 두 배가 맞을 거야.”
“알았어요. 다른 데로 옮겨서 해봐요.”
태주가 적당한 공터를 찾아 출품했던 마차 호박을 소환하려고 할 때였다. 해나가 급하게 그를 말렸다. 잠시 후 더 넓은 곳을 찾아가는 태주의 뒤를 요정 숲에서 돌아온 희와 제피르, 태산이와 단단 등 정원 식구 전원이 따랐다.
-소환 위치를 표시합니다. 소환 범위에서 물러나십시오.
시스템 경고음이 울린 뒤에 나타난 범위는 모두의 예상을 넘어선 대단히 넓은 범위였다. 마법진으로 표시된 소환 범위는 오두막의 두 배가 넘는 넓이와 3층에 가까운 높이였다. 협회 사람과 해나의 말대로 마차 호박은 출품할 때보다 두 배는 더 커진 상태였다.
“우와! 크다.”
“진짜 크다. 이거 소환해도 정원은 괜찮은 건가?”
처음 마차 호박이 자랐을 때도, 지진이 난 듯 정원의 땅이 흔들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의 마차 호박보다 두 배는 커진 호박을 소환하려 하고 있었다. 정원이 괜찮을지 걱정이 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흐응. 난 호박 집을 몇 번 본 적 있어서, 그다지 궁금하진 않아. 난쟁이 중 몇몇 부족은 호박 모양 집을 짓고 생활하거든. 물론 우리 마차 호박만큼 큰 건 아니지만.”
“…흠.”
“정원사 씨. 소환 취소하고 현실로 가져가서 쓰는 건 어때?”
“지금 다들 호박 집을 보려고 모였는데요?”
“그건 나중에 다 같이 요정 숲에 가서 보면 되지. 거기에도 호박 집을 짓고 사는 난쟁이가 있을걸?”
해나의 말에 희가 고개를 크게 여러 번 끄덕였다. 요정 숲 곳곳에 수많은 이종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 이들 중에 호박 집을 짓고 사는 난쟁이가 있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적 있어서였다.
“태주. 마차 호박은 태주가 써.”
“희. 그게, 나도 호박은 그다지….”
“호호호. 정원사 씨, 전에 외진 곳에서 촬영하면서 고생했었다며. 다음엔 호박 집 짓고 편하게 일하면 되겠네.”
“네? 순식간에 집이 생기면 현실에선 난리가 날 텐데요?”
“넣어 둬, 정원사 씨. 두면 다 쓸 데가 있을 거야.”
차라리 해나가 정원에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일행을 돌아봤지만, 일행 중 누구 하나 호박 집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태주가 소환이 취소된 마차 호박 소환권과 개조권을 흔들며 그런 일행의 시선을 끌어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일행은 요정 숲 나들이를 언제 할지 정하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요정 숲이 처음인 단단에게 어디가 재밌는지 설명하고, 같이 갈 곳을 고르느라 그를 신경 써 주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빠르게 캐치한 태주는 뒷주머니에 티켓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그런 일행의 사이로 조용히 끼어들었다.
“호오! 재밌군, 재밌어. 술식을 이런 식으로 바꿔서 쓸 수도 있었어.”
정원에서의 일을 떠올리던 태주는 쿠첼루스의 감탄에 정신을 차렸다. 쿠첼루스와 대화하고 정원 일을 떠올리는 사이에 시간이 꽤 지났는지, 창밖으로 태산이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신나게 달렸는지 아이 얼굴이 발그레했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태산이가 고개를 거실 쪽으로 돌렸다. 반짝반짝. 아침 햇살보다 더 빛나는 아이와 잠시 눈을 맞추며 웃던 태주가 이내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침 식사를 차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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