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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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쓰윽!
태주는 한쪽에 펼쳐 놓은 종이를 슬쩍 보고 다시 호미로 땅을 팠다. 쪼그리고 앉은 그의 옆에는 씨앗 자루들이 작은 수레에 실려 있었다. 그 씨앗 자루에서 알록달록한 씨앗 하나를 집어 구멍에 넣고 흙으로 메우는 손길이 능숙했다. 그렇게 한참 씨앗을 심은 그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쪽은 다 심었네. 다음 칸은 보라색 식물 구간이네.”
마법 실험실 건물 근처 바닥에 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인식 마법 주문서를 적용할 수 있는 범위와 꽃을 심을 위치를 그려 둔 선이었다. 건물을 중심으로 선이 그어진 범위가 꽤 넓었다. 그곳을 전부 채우려면 시간도 품도 많이 들 것 같았는데, 그걸 하는 태주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파파파팍!
“하하하. 이야, 우리 태산이 너무 잘한다.”
“냐앙!”
“잘했어. 거기는 이제 형이 씨앗 심을게. 태산이는 다른 데 파 줘.”
“냐아앙.”
태주에게 믿음직한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도를 무척 아끼는, 장난기는 좀 있지만, 체력도 좋고 땅 파는 속도도 빠른 동료였다. 그는 작고 하얀 동료가 구멍을 파 둔 구간으로 옮겨 가, 노란색 꽃이 피는 식물의 씨앗을 하나씩 넣었다.
-쓰윽. 쓰윽.
“흙도 태산이가 덮을 거야?”
“냐앙.”
“너무 멋있다. 나중에 도도가 정말 좋아할 거야.”
“냐아앙.”
“잘했어. 우리 태산이 너무 대단하다.”
화단을 가꾸는 일에 하나도 관심 없는 녀석이 벌써 삼십 분이 넘도록 땅을 파고 있었다. 그 정도로 태산이는 제가 구한 도도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태주는 도도를 위해 주는 태산이의 마음이 기특해서 구멍의 위치나 깊이가 애매한 걸 모르는 척 씨앗을 넣어 주었다.
그렇게 둘이 오전 시간을 잠깐 들이고, 다시 태주가 혼자 오후의 몇 시간을 투자하자 모든 씨앗을 다 심을 수 있었다.
*
달콤한 냄새를 폴폴 풍기며 요정 숲에서 돌아온 희와 제피르, 향신료가 들어간 해나의 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아이 모습으로 바꾼 태산이, 물의 정령을 불러낸 단단과 해나까지. 정원의 모든 식구가 태주의 손을 보고 있었다.
“이제 쓸게요.”
“태주 어서어서. 희 너무 기대돼.”
“호호호. 정원사 씨 어서 써 봐.”
“네.”
태주는 정원 식구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바로 쥐고 있던 각인 주문서를 사용했다. 이미 주문서의 적용 범위를 알고 있던 탓인지, 넓게 퍼지는 마법진이 전처럼 놀랍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감상과 다르게 주문서의 효과는 놀라웠다. 무분별하게 사방을 경계하던 식물들이 주문서를 사용하자 일제히 사용자인 태주를 바라봤다. 주인이 있는 방향으로 꽃봉오리와 가지가 방향을 틀었다.
-범위 내 기능성 식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기능성 식물이 적아를 식별합니다. 조건을 설정하십시오.
-아군 조건 1:
-아군 조건 2:
인식 주문서를 쓰자마자 주르륵 올라오는 메시지에 잠시 당황했지만, 태주는 차분하게 아군과 적군의 조건을 설정했다.
조건 설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는 간단하게 정원 소속의 일꾼과 펫, 정원사 협회 소속의 임원과 우편 배달원 등을 아군으로 설정했다. 적군 역시 간단히 다른 시스템에 소속된 자 또는 정원 소속 생물이나 기물을 공격한 자로 설정했다.
“어머! 식물들이 얌전해졌는걸.”
“간단하게 설정했어요. 나중에 조건을 추가할 수 있다고 해서요.”
“태주 이제 다가가도 괜찮아?”
“응. 이제 가까이 가도 괜찮을 거야.”
“이히히. 가 보자.”
연금술사들의 손길이 닿은 식물이라서 그런지, 도도의 마법 실험실 주위에 심은 식물들은 평범한 모습이 아니었다. 훨씬 더 화려하고 훨씬 더 튼튼해 보였다. 특히 꽃나무보다 열매가 맺히는 식물들이 더 크고 튼튼했다.
“우와! 예쁘다.”
“응. 장미 넝쿨이 특히 예쁘다.”
“태주, 내일 모린이 초대하자.”
“그럴까? 모린이 초대해서 건물 안도 꾸밀까?”
“응. 이히히. 재밌겠다.”
태주는 개인적으로 건물을 담쟁이 넝쿨이 뒤덮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장미나 베리 종류의 넝쿨이 울타리를 덮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떨어진 공간에 만든 아치나 조형물을 덮는 건 괜찮았는데, 오두막이나 정원 입구를 덮는 건 별로였다.
그렇지만 그는 도도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개인 취향은 잠시 미뤄 두고 마법 실험실 벽 근처에 덩굴장미를 심었다. 화려한 색을 좋아하는 도도를 위해 흰색, 분홍색, 붉은색 등을 골고루 섞었다.
“정원사 씨, 이 열매 먹을 수 있는 거야?”
“네. 먹을 수 있대요. 그런데 아마 저흰 못 먹을 거예요.”
“왜?”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불타오른대요.”
“불탄다고? 뭐 그런 이상한 열매가 다 있담.”
“하하하.”
해나가 가리킨 주먹만 한 열매는 껍질이 붉은색으로 반들거리는 게 상당히 먹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불 속성을 다룰 줄 아는 능력자가 아닌 이상은 먹을 수 없었다. 그냥 먹으려 들었다간 화상을 입을 수 있었다.
다른 기능성 식물의 열매들도 비슷비슷했다. 보기엔 좋았지만, 맛보려면 쉽지 않은 난관을 통과해야 했다.
“호호호. 그래도 도도는 먹을 수 있겠네.”
“그럴까요? 나중에 도도가 먹을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어요.”
제가 땅을 팠던 위치를 돌아보는 태산이, 높이 날아올라 건물 전체를 구경하는 제피르, 물의 요정과 단단을 이끌고 특이한 식물을 만져 보는 희. 정원 식구들은 새로 생긴 화단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정원 식구들이 구경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정원에 이동문이 열렸다.
“응? 이동문?”
“해나? 무슨 일이에요?”
“정원에 누가 왔, 모린이네. 왜 혼자지? 심부름 왔나?”
“모린이요? 아칸 심부름 왔나 보네요.”
정원에 생겨난 기척의 주인이 모린이라는 얘기에 태주의 기대감이 올라갔다. 예전 진화석 정제액을 모린에게 들려서 보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했다. 치료제도 부피가 큰 물건이 아니니 아이에게 배달 심부름을 시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태주가 모린이 도착한 오두막 앞 공터로 마중을 가려고 할 때였다. 다다다다.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모린이 퍽 소리와 동시에 그의 품에 안겼다.
“커흡. 모, 모린이 왔니?”
“으앵. 태주우.”
“왜, 왜 그래?”
“우에엥!”
태주는 품에 안겨서 고개도 들지 않고 우는 모린이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뻔뻔할 정도로 솔직하고 장난스러운 아이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우는지, 걱정이었다. 그는 놀라지 않은 척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모린을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모린이가 왜 그럴, 억!”
-퍼억!
“저디 가!”
“으앙!”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방해꾼의 등장으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모린과 태주가 붙어 있는 꼴을 용납할 수 없던 태산이의 묵직한 공격이 원인이었다.
“헉! 이 녀석! 모린일 밀면 어떡해!”
“저디 가. 사니 꺼야.”
“싫어. 모린이 태주랑 있을 거야. 산이가 가.”
“앙대! 저디 가.”
“싫어. 산이가 가. 이익!”
용호상박. 태주는 지금 벌어지는 싸움에 그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서로를 밀어내는 두 녀석의 힘이 상당했다. 성인 남성인 그가 힘을 주어 버티는 중인데도 둘에게 치여 이리저리 밀렸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는 두 녀석 사이에서 1분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땅!
“히이잉!”
“태주, 괜찮아?”
시기적절하게 제피르가 그에게 보호막을 씌워 주었지만, 어쩐지 좀 전보다 더 부끄러워졌다. 아직 어린 두 아이 사이에 끼어서 휘청대다, 정원에서 제일 작은 제피르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 듯했다. 아니 그보단 한 손으로 그를 들어 두 아이 사이에서 꺼내 준 해나가 하는 말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녀석들! 정원사 씨가 종이처럼 팔랑거리는 거 못 봤어? 해나가 뭐라고 했지? 정원사 씨를 대할 땐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그랬어.”
“잘 아네. 정원사 씨는 약하니까, 난폭하게 굴면 안 돼. 알겠지?”
“앙.”
태주는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현실에 있을 때는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던 그였다. 항상 일행을 이끌거나 결정을 내리는 위치였는데, 정원에만 오면 처지가 뒤바뀌었다. 정원에서 그는 아이보다도 우선 순위의 보호 대상이었다.
비록 그의 자존감이 조금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어쨌든 두 아이의 싸움이 멎은 건 다행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그제야 모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헉! 모린아. 대체 무슨 일이….”
“우애앵. 태주우.”
“어리광쟁이. 여태 잘만 싸워 놓고 우는 시늉은.”
“모린이 어리광쟁이 아니야!”
“그래그래. 모린이 어리광쟁이 아니야. 얼룩덜룩 못난이야.”
“으아앙! 이모 나빠.”
우는 척하며 태주에게 다가가던 모린이 방향을 바꿨다. 그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것보다 얄밉게 놀리는 이모에게 화풀이하는 게 더 급한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해나는 그런 화풀이는 전혀 받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놀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모린을 피해 다녔다.
태주는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사이 모린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해나가 괜히 얼룩덜룩하다고 놀린 게 아니었다. 모린은 페인트칠이라도 하다 온 것처럼 온몸에 색색의 염료 비슷한 것을 묻히고 있었다.
“호호호. 덤빌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이익!”
“그나저나, 모린아. 그게 대체 무슨 꼴이니?”
“히잉. 그게….”
모린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의 아칸서스는 공방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아칸서스는 원래도 마법 물품 만드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라 공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요사이는 모린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잊을 정도였던 듯했다.
결국엔 제 아빠가 놀아 주지 않아 잔뜩 심통이 난 모린이 아칸서스의 보물 창고를 터는 장난을 쳤다. 몸이 얼룩덜룩하게 물든 것은 보물 창고의 상자를 열다 함정에 당해서였다.
“아빠 치사했어. 두 개는 풀었는데, 세 개였어.”
“호호호. 방어 마법 아직 안 배웠어?”
“배웠어. 그런데 무효화됐어.”
“저런! 안타까워라. 이모한테 그럴 때 쓰는 회피 기술이 있는데, 가르쳐 줄까?”
“응. 가르쳐 줘.”
“해나, 사니도.”
태주는 어느새 사이좋게 해나한테 붙어서 회피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두 아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모린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 아칸서스가 무서운 함정을 설치해 두진 않았겠지만, 위험한 장난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의견이 다른 것 같았다.
‘해나. 회피 기술 말고 침투 기술은 왜 설명하는 거예요? 제피르는 왜 또 거기서 설명을 듣고 있는 거야? 어딜 침투하려고….’
태주는 진지하게 침투 기술과 회피 기술을 배우는 정원 식구들 때문에 나오려는 한숨을 힘겹게 참았다.
*
그날 저녁 태주는 마법 실험실 현관 손잡이를 잡은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가구도 없는 곳에서 모린을 재우는 게 내키지 않아서였다.
“정말 여기서 잘 거야?”
“응. 모린이 여기서 희랑 잘래.”
“이히히. 태주 걱정하지 마. 재밌을 거야.”
“어휴. 그래. 화로 조심하고. 자다가 무서우면 오두막으로 오는 거야. 알았지?”
“응. 알았어.”
태주가 2층에서 떨어진 후 마법 실험실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희와 모린이 마법 함정도 함정과 어울렸던 음산한 느낌의 가구도 모두 치웠었다. 그나마 마법 등은 남겨 두어서 어둡진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꿈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정원에 방어 기능이 있는 식물이 지키는 마법 실험실이었다. 괜한 걱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손잡이를 놓고 몸을 돌렸다. 오두막으로 가기 전에 둘이 잘 텐트와 담요, 화로 등을 한 번 더 확인할 요량이었다.
“태주, 진짜 아빠한테 연락 안 했지?”
“진짜 안 했어.”
“진짜진짜?”
“진짜진짜.”
“히히. 알았어.”
태주는 모린의 부탁대로 진짜로 아칸서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공방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아칸서스에게 연락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해나를 통해서 모린이 정원에 있다는 소식을 다나에게 전했다. 그러니 연락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잠자리 확인을 끝내고 마법 실험실을 나서는 태주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아칸서스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 여러 번 묻는 모린이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도 묻더니, 잠자리를 봐 주는 좀 전에도 연락 여부를 묻는 게 좀 수상했다.
사실 그것 외에도 수상한 점은 더 있었다. 잘 곳으로 오두막이 아닌 방어 식물이 둘러싼 마법 실험실을 택하고, 아칸서스를 아군으로 등록하는 걸 적극적으로 말린 점이었다. 아마도 말썽쟁이 모린이 알리지 않은 다른 장난도 치고 정원으로 도망 온 것 같았다.
“에효.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온 건지….”
-샤삭! 샤삭!
“와아! 너희 지금 강아지 같았어. 신기해라. 흠흠! 우리 희랑 모린이 자는 동안 잘 지켜 줘. 부탁해.”
-샤삭! 샤삭!
이번에도 말을 알아들은 듯, 식물이 또 움직였다. 기능성 식물이라더니, 종류가 다른 펫을 키우는 느낌이었다. 태주는 마법 주문서 덕분이지만, 기능성 식물이 자신을 주인이라 여겨서 잎이나 줄기를 흔들며 아는 척하는 모습이 상당히 귀엽게 느껴졌다.
‘기능성 씨앗이 항상 매진되는 이유가 있었네. 이렇게 예쁘고 애교도 부리는 식물인데, 누가 마다하겠어.’
생각지도 못한 식물의 애교에 태주는 모린이 몰래 아칸서스와 다나를 아군으로 등록하려던 일을 잊고 말았다.
그날 저녁 모린이의 잠자리를 봐주고 왔다고 질투하는 태산이를 달래며 놀아 줄 때였다. 창밖으로 정원 등불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이어서 두두두두 콩 볶는 소리와 피슈웅 미사일이 날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뭐야?”
“냐냥!”
처음 듣는 낯선 소음이 정원의 적막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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