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9
279. 뜻밖의 보상 >
다나는 그 말 이후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걸어와 노란 끈에 칭칭 감긴 모린을 들어서 옆구리에 끼웠을 뿐이었다.
“으앙! 엄마.”
“쉬잇! 모린.”
“….”
“그, 다나, 여보. 무겁지 않아? 내가 안을까?”
“괜찮아.”
아칸서스는 다나에게 말을 붙이며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다나였지만, 그의 시선은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을 돌며 계속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게 옆구리에 끼인 모린을 어떻게든 되찾으려는 것 같았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태주는 다나의 뒤에서 애달픈 표정을 짓는 아칸서스를 도와주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필사적으로 다나의 손에서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을 응원하기로 했다.
“다나 씨, 오랜만에 오셨는데,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맞아. 오랜만에 정원사랑 만났는데 그냥 갈 거야?”
“오랜만이에요, 정원사님. 우선 아이를….”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차 먼저 마셔. 차 먼저.”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칸서스에게 시간을 벌어 준 것 같았지만, 역시 모린을 되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다나의 경계가 흐트러지기는커녕, 남편을 향한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정원사, 차. 차 좀 줘.”
“아칸. 정원사님께 무례하게 굴지 마.”
“커흠! 그런데 정원사 정원에 무슨 짓 했어? 정원이 왜 이리 난장판이야?”
“….”
태주는 잠시 차를 내주지 말까 고민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 건 알았지만, 어쩐지 짜증이 나서였다. 아니, 짜증보다 울컥하고 화가 치솟는 느낌이었다. 그가 인내심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면, 멱살을 잡았을 것 같았다. 아무튼, 괜히 도와준 기분이었다.
“아빠, 모린이 했어.”
“뭘?”
“모린이 집 지었어. 그랬더니 정원이 커졌어. 집이 부유 섬이래.”
“무슨 소리야?”
“그거, 주문서. 모린이 집 주문서 썼더니, 이렇게 됐어.”
“드래곤 레어 주문서? 이놈 자식! 그게 어떤 물건인데.”
태주가 울컥한 기분을 가라앉히고 질문의 답을 정리하는 사이 모린이 먼저 나섰다. 범상치 않은 주문서라서 많이 혼나지 않게 좋은 말로 감싸 주려 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다. 모린은 정원을 망친 건 자신이라며 제 나름대로 태주를 감싸고 있었다.
정원에 벌어진 변화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파악한 다나는 바로 태주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이와 잘했네, 못했네, 떠드는 아칸서스와 다른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죄송해요, 정원사님. 폐를 끼쳤습니다.”
“아니에요. 오늘 일은 뜻밖의 사건인걸요. 평소엔 정원 식구들하고 잘 어울리고, 배려도 해주는걸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리 감싸 주실 필요 없어요.”
“아니, 아니에요. 아이들은 장난치고 실수하고 하면서 크는 게 정상이에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걸요. 스케일이 커서 놀라긴 했지만, 괜찮아요.”
태주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얘기했지만, 다나의 죄송스러운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그 표정 그대로 손을 들어 그때까지 아이를 붙들고 시끄럽게 떠들던 아칸서스를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얼음이 떨어질 것처럼 차가운 얼굴이 되었다. 정원의 변화가 심각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살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분위기로 정원을 둘러본 다나가 어떤 말을 꺼낼지, 정원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저 산이 레어군요.”
“그런 것 같아요.”
“레어. 이곳에도 부화할 아이가 있었죠?”
“다나! 여보, 설마! 그건 아니지?”
“엄마!”
“조용. 레어는 그 아이한테 주세요.”
경악한 얼굴의 아칸서스와 눈이 커진 모린,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말렸지만, 다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이라는 단어 하나로 둘의 입을 다물게 한 뒤, 드래곤 레어는 도도의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잉. 모린이 집인데.”
“그게 어떤 건데….”
“아칸. 어차피 그 아이는 나중….”
“잠깐. 그 얘기는 너무 이르잖아.”
“이 기회에 말씀드려.”
“어휴! 맘대로 해.”
아칸서스가 포기한 듯 의자에 걸터앉자, 다나가 조심스럽게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녀가 꺼내려는 얘기는 남편인 아칸서스와 예전부터 상의해오던 일이었다. 만약에 도도가 혼자가 되었을 때 독립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두 사람의 아이로 데려오자는 얘기였다.
‘만약’이라는 단서를 걸었지만, 두 사람은 도도가 부부의 아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드래곤은 부화도 오래 걸리지만, 부화하고 나서의 성장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도도가 정원사가 같이 있는 동안 독립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혹시 기분 나쁘셨나요? 저희가 쓸데없는 걱정을….”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어차피 정원사는 일찍 죽잖아. 인간이니까.”
“아칸!”
“크르릉!”
“왜? 난 사실만 말했는데?”
아칸서스는 전형적으로 말 한마디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인물이었다. 좀 전 다나의 얘기를 들었을 때는 배려와 고마움이 느껴졌는데, 아칸서스가 몇 마디 보태자 태주는 다시 울컥 치미는 화가 느껴졌다.
그는 뱃속에서 열기가 솟는 것 같았지만, 일단 참았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다나에게 대답을 돌려주어야 했다.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운 제안인걸요.”
“다행이에요.”
“다나 씨, 그래도 역시 레어는 받을 수….”
“됐어. 그냥 받아. 어차피 그 알이 성룡이 되면 레어를 지어 줄 생각이었어. 의외의 타이밍이긴 하지만, 미리 선물하는 셈 치지 뭐.”
“아칸?”
“뭐? 왜? 어차피 정원사는 마법도 못 쓰잖아. 레어가 그냥 건물만 지으면 되는 건 줄 알아? 온갖 마법이 다 쓰이는 건물이라고. 나 정도 되는 드래곤이 아니면 짓지도 못하는 거거든 그게.”
얄밉다. 대범하게 드래곤 레어를 양보하는 아칸서스가 내뱉는 말들은 분명히 옳은 설명이고 그에게 득이 되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얄미움이 더해졌다. 계속 듣다가는 자신이 이렇게나 속이 꼬인 사람이었나 하고 의심하게 될 것 같았다.
-퍽!
“커헉!”
“아빠 나빠!”
“모, 모린. 이 녀석….”
“태주 놀리지 마. 나빠.”
태주는 머리로 제 아빠의 배를 박아 버린 모린이 덕분에 빈정이 상한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태산이는 아이 모습인 채로 연신 목을 울리고 있었고, 제피르는 앞발로 테이블 위를 긁고 있었다. 틈이 보이면 뿔로 받을 듯한 모습이었다.
정원의 식구들이 모두 아칸서스에게 흉흉한 기세를 보일 때였다. 모린의 박치기에서 회복된 그가 아이의 팔을 붙들었다. 정원 식구들 만큼 흉흉한 기세였다.
태주가 그대로 아이를 혼내려는 것 같은 아칸서스를 말리려던 순간이었다. 하얀빛이 모린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이동 주문서가 발동되었다.
‘이동 주문서? 대체 언제?’
태주를 비롯한 정원의 식구들이 모린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는 것과 다르게 다나는 즉시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아칸서스가 아이를 혼낼 것처럼 해 놓고 이동 주문서를 사용해서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
“아칸서스!”
“미안! 그래도 모린을 장인어른한테 맡기는 건 반대야!”
“그럴 거면 제대로 돌봤어야지.”
“제대로 돌봤어. 애가 장난 좀 쳤다고 장인어른한테 보내는 건 너무 하잖아.”
“지금 이게 장난이야?”
자신의 행사를 방해당한 다나는 침착, 냉정, 이성적이라는 태주의 평소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평가를 바꾸기 충분했다.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한 다나는 상당히 무서운 존재였다. 아칸서스가 왜 그녀가 화내는 걸 겁냈는지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콰아앙!
“으악! 다나, 진정해. 날 죽일 셈이야?”
“닥쳐! 당장 어디로 보냈는지 말해!”
“닥치면 어떻게 말해?”
“아칸서스!”
두 사람이 살벌하게 싸우는 곳은 정원의 확장된 구역이었다. 갈색의 자갈만 가득한 곳으로, 두 사람이 말싸움을 시작하고 얼마 후 해나가 시끄럽다며 그쪽으로 던져 버렸다.
드래곤 레어를 같이 구경할 모린이 사라졌다. 긴 하루에 지친 태주는 요란한 소리가 울리는 내내 현실로 돌아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
오늘도 수중 신을 촬영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태주는 현실로 돌아온 것이 반가웠다. 에어컨 찬 바람에 식혀진 시트 안에서 따끈한 태산이를 안고 일어나는 것도 반가웠고, 해나의 요리를 챙겨 넣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반가웠다.
현실의 일상이 반가울 정도로 이번 정원 방문은 정말 너무 피곤했다. 아칸서스 가족을 돌려보낸 뒤 해나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느낀 것은 그뿐이 아닌 것 같았다.
‘한동안 아칸서스 가족 방문을 거부하자고 했었지.’
그는 해나의 그 제안에 순간 혹하는 걸 느꼈지만, 결국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원을 얻은 이후로 손님의 방문을 거절한 적도 없을뿐더러, 그럴 마음도 일절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칸서스 가족은 소란스럽긴 했지만, 활기가 넘치고 유쾌했다. 때때로 모린하고 티격태격해도 희나 태산이도 같이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아마 해나 역시 말만 그렇게 한 걸 수도 있었다.
“냐아아.”
“태산이 깼어? 졸려? 형 씻는 동안 더 잘래?”
“냐앙.”
“그래. 더 자. 이따 밥 먹을 때 깨워 줄게.”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켠 태산이는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원에서 피로가 쌓인 것은 그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태주는 편한 자세를 잡으려 등을 비비적대는 태산이 다리를 잡고 쭉쭉 펴 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씻고 일 층으로 내려온 태주가 주방에서 아침으로 먹을 것들을 덜고 있을 때였다. 깨우기도 전에 태산이가 주방으로 내려와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는 태산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평온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진심으로 반가웠다.
*
박재우는 앞에 선 경호팀 팀장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다. 큰 키에 탄탄한 근육질의 팀장은 그런 그의 시선을 묵묵히 받고 있었다. 팀장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변명하기엔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수가 너무 컸고, 상대적으로 맡은 일은 쉬웠기 때문이었다.
이태주의 감시를 맡은 아시아계 경호원들의 연락이 끊긴 지 만 하루가 지났다. 박재우는 처음 그 보고를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고용한 경호원들에게 주는 보수만 해도 유망한 중소기업의 연간 매출과 비슷할 정도였다.
“단체 실종? 어떻게? 한국처럼 안전한 곳에서 그게 가능해? 그것도 최고 수준의 경호원들이?”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답답하니까, 말 좀 해 봐.”
“사태 파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휴우. 알았어. 그만 나가 봐.”
비록 감시 장소가 시내에서 좀 떨어진 촬영 스튜디오라곤 하지만, 한낮에 행인도 꽤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경호 팀 1개 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알아본 결과 이태주와 일행은 그 일이 벌어질 당시 스튜디오에서 촬영 준비에 한창이었다.
‘분명 이태주한테 무언가 있어.’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이태주의 동향을 살폈지만, 실체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태주도 이태주의 가족, 지인도 모두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은 전혀 찾지 못했다.
“재우.”
“어?”
“이태주에게 신경 쓰는 건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어.”
“마크?”
“재우, 넌 지금까지 내가 본 배우 중에서 최고야. 난 그런 네가 이태주를 왜 신경 쓰는지 이해할 수 없어.”
박재우의 매니저 마크가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로 박재우 같은 배우가 어째서 한국의 어린 배우를 신경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생각에 박재우가 지금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같은 작품을 촬영 중인 한국의 톱 배우들이었다.
박재우는 그들과 여전히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기 역할만 해내면 문제없는 일이라지만, 촬영장 분위기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업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배우들이라, 관계 개선을 하는 게 더 이익이었다.
“재우, 난 네가 그런 배우보다 지금 촬영하는 영화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
마크는 박재우의 안색을 살피면서 말을 마쳤다. 최근 박재우는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안정된 상태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얼마 전처럼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예민하고 난폭하지 않았다.
박재우가 안정된 뒤로 마크는 과거 그와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처럼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박재우의 기분 변화에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지금은 상태가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돌변할지 몰라서였다.
“…알겠어. 그래도 경호원들이 사라진 이유는 확인하고.”
“그건 당연하지. 내가 팀장하고 같이 알아볼 테니, 이제 영화에 집중해.”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나가 봐.”
박재우의 방을 나서는 마크의 표정이 밝았다. 그는 박재우와 이렇게 평범하게 대화하는 현실이 무척 기뻤다. 이 정도만 되어도 같이 일하기 나쁘지 않았다. 그는 부디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길게 이어지길 바랐다.
그런 그의 생각과 다르게 방에 남은 박재우의 눈빛은 살벌했다. 마크의 걱정을 잘 알지만, 그의 의견대로 이태주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는 없었다. 이태주는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이었다. 경호원 1개 조를 치워 버린 일로 확신했다. 이태주는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치워야지. 좀 더 은밀하게, 혹은 좀 더 과격하게.’
그렇게 결정했지만, 박재우는 한동안은 이태주를 건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또 자신이 감시한 것이나, 주변을 캤던 일의 흔적도 모두 치우게 할 생각이었다. 그는 상대가 안심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안심이 방심으로 이어지는 순간 확실하게 제거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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