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85
285. 태산이의 비밀 >
하얀 물거품이 길게 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달린 2호는 태산이와 거대한 물고기 앞에 멈춰 섰다. 2호의 파란 눈이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 거대한 동체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지느러미의 주인은 조그만 아이의 손에 잡혀 있었다.
길고 두꺼운 몸을 가진 상어는 자신의 지느러미를 잡은 아이를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상어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려 할 뿐이었다. 오히려 지느러미를 쥔 아이가 그런 상어의 진로를 태주 쪽으로 틀고 있었다.
“산 손을 놓으십시오 ”
“앙대. 태쭈 돌고대야.”
“돌고래가 아니고, 상어입니다.”
“탕어?”
“네.”
태산이는 돌고래가 아니라고 들었지만, 상어의 지느러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제 손에 잡힌 사냥감은 전에 본 영상의 돌고래랑 비슷했다. 만약 돌고래가 아니더라도, 길쭉하고 동그란 몸의 커다란 물고기는 태주 선물로 아주 좋아 보였다.
“태주 씨는 상어를 무서워합니다.”
“앙?”
“보십시오. 상어를 피해서 해변으로 갔습니다.”
“앙. 아라떠.”
한번 잡은 사냥감, 아니, 선물을 놔주기 아쉬웠지만, 태주가 무서워하니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지만, 놔줘야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다 가시지 않았다. 도로록. 파란 눈이 굴렀다.
“아앙.”
2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상어 등 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아이 몸을 붙잡았다. 아이가 내려가려고 바둥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옆구리에 끼고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상어의 몸을 섬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냈다. 상어는 반항하지 않고 그의 손길에 따라 바뀐 진행 방향으로 헤엄쳐갔다.
“호야, 산아. 괜찮아?”
“괜찮습니다.”
“갠차나. 태쭈, 무셔떠?”
“뭐?”
-톡톡!
2호를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해 해변에 올라와 있던 태주는 곧 겁 없는 꼬맹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품 안의 온기에 안도하기도 잠시, 태주는 말간 얼굴로 괜찮다며 그의 어깨를 다독이는 작은 손에 얼이 빠질 뻔했다.
“갠차나. 앙 무셔.”
“….”
“사니가 지켜 주께.”
“…어휴. 그래, 고마워.”
상어의 등장으로 물놀이의 흥이 깨져 버렸다. 태주는 물놀이를 접고 호박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아이를 내려 주고, 제가판 모래 구덩이 안을 뒹구는 더미를 안았다.
더미를 안자마자, 잃어버릴세라 남은 손으로 태산이 손을 찾아 쥐었다. 찰나였지만, 떨어뜨렸던 온기를 되찾자 마음이 놓였다.
“모래뱀상어였습니다.”
“모래뱀상어?”
“국제 보호종입니다.”
“헉!”
“연안에도 종종 나타나는 상어로 흉포한 외형에 비해 순한 성격입니다.”
태주는 제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오는 태산이를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이 꼬맹이를 구한다고 자칫 국제 보호종 상어를 쓱싹할 뻔했다. 흔적도 남기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내내 양심에 걸렸을 게 분명했다.
‘이 겁 없는 꼬맹이를 어이할꼬.’
어릴 적 겨우 두 달 남짓 됐을 때도 정원을 침범한 슬라임 킹에게 겁 없이 덤비더니, 그 성향이 시일이 꽤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양이로 위장하고 있을 때도 아이 모습을 흉내 내고 있을 때도 태산이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아마도 그의 작은 호랑이는 알에서 나올 때 겁을 전부 두고 나온 모양이었다.
태주는 세상 겁날 것 없다는 듯 행동하는 꼬맹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앞날이 깜깜했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 그가 싫어하는 행동은 자제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본인이 해 볼 만하다 판단되면 우선은 저지르고 봤다.
“귀국 후에 훈련 강도를 높이겠습니다.”
“아! 그것도 괜찮겠다. 운동에 에너지를 다 쓰면 애먼 짓이 좀 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난 자연 다큐멘터리를 골라서 보여 줘야지.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잘 나온 편으로 보여 주면, 깨닫는 게 있겠지. 그럼 만용을 부리는 것도 줄지 않을까?”
“….”
2호는 태산이에게 어떤 상황이 닥쳐도 헤쳐 나올 수 있는 무력을 길러 주겠다는 의도로 꺼낸 얘기였지만, 태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2호는 자신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고쳐 주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안심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해서였다.
*
“냐아앙.”
“사니. 아아.”
“하하하. 이게 마지막이야. 알았지?”
“아라떠. 아아.”
욕실에서 나온 태주를 반겨 주는 것은, 요리 중인 연우에게 매달려 음식을 조르는 태산이와 더미의 목소리였다. 한 녀석은 조리대 위에서 냥냥거리고 한 녀석은 연우의 다리에 찰싹 붙어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그가 씻겨서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태주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수건들을 주워 세탁실에 가져다 두고 새 수건을 챙겨서 주방으로 갔다.
“꼬맹이. 머리 잘 말려야지.”
-꿀꺽!
“다 머거따. 사니. 아아.”
“하하하. 산아, 좀 이따 같이 먹어야지.”
조리대 위 그릇 안에 삶은 닭의 살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요리에 쓰려고 살만 발라 놓은 것인데, 두 녀석은 연우한테 졸라서 그걸 얻어먹고 있었다.
태주는 조리대 위를 홈쳐보는 아이의 머리를 수건으로 쓱쓱 문지르면서 메뉴를 물었다.
“뭐 만들어?”
“초계 쌀국수요. 한국이었으면 쌀쌀해서 닭칼국수를 했겠지만, 여긴 더워서 초계 쌀국수가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초계 쌀국수. 맛있겠다.”
“사니 아아.”
“하하하. 이러다 산이 그릇엔 고기 하나도 없겠다.”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온 꼬맹이 녀석은 배가 많이 고픈지 닭고기 그릇에서 눈을 못 떼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아이가 안 되어 보였지만, 태주는 단호하게 안아 들고 침실로 데려갔다.
연우의 요리를 방해하면 할수록 식사가 늦어지는 건 당연지사. 바다에서 놀고 와서 배가 고픈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태주가 아이 머리를 말려 준 뒤 옷을 입혀서 나왔을 때는 과일을 따러 갔던 태우와 호, 이 층에서 쉬던 쿠첼루스까지 모두 식당에 모여 있었다.
“형 빨리 와. 면 불어.”
“어. 갈게.”
식당은 호박 집의 둥근 병을 따라 이어진 방 중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태주는 호박 집 중앙의 둥근 거실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와! 쌀국수만 한 게 아니네?”
“산이랑 쿠첼 형은 고기 좋아하잖아.”
“앙. 꼬티!”
태우가 주방에 없다 했더니 뒤뜰에 있는 바비큐 그릴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나 보다. 식탁 위에 먹기 좋게 구워진 갈비와 고기가 잔뜩 꽂힌 꼬치가 쌓여 있었다.
“형, 그런데 이 섬 원래 고양이 섬이야?”
“응?”
“나 고기 굽는데, 고양이 엄청 몰려 왔어. 열 마리도 넘더라.”
“크흠.”
“아, 하하. 쿠첼 갈비도 드셔 보세요. 국수랑 잘 어울려요.”
태우의 질문에 고양이들의 정체를 아는 쿠첼루스와 태주가 멋쩍게 눈을 마주쳤다. 태주는 급하게 음식으로 화제를 돌렸다. 고양이 정체를 설명하기엔 난감한 부분이 많아서였다.
호박 섬엔 쿠첼루스가 데려다 놓은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다. 섬 뒤쪽 바스테트 신상을 세워 둔 곳 근처에, 그가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온 고양이들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가끔 그 고양이 중 호기심 많은 몇 마리가 호박 집 근처까지 오곤 했는데, 태우가 본 고양이가 그 아이들이었다.
“크흠. 그런데 태우야. 너 학교는 어떻게 할 거야?”
“형, 나 그냥 군대 가려고.”
“왜? 대학원은?”
“그건 나중에. 지금도 늦었는데, 더 늦게 가면 좀 그럴 것 같아.”
지금까지 태우는 입대를 계속 늦춰 왔었다. 처음 통지를 받았을 때가 한창 미튜브 구독자가 늘어나는 시기라서 연우 혼자 채널을 운영하기 힘들어서였다.
동생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게 아쉬웠지만, 사실 그도 대학 진학을 멋대로 그만둔 전적이 있어서 뭐라 할 수 없었다. 그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연우 넌 괜찮아? 미튜브 혼자 할 수 있겠어?”
“괜찮을 것 같아요.”
“괜찮아, 형. 우리도 준비는 꽤 해 뒀어. 외주 편집자도 계약했고. 콘텐츠 기획이 문젠데, 그쪽은 찬성 형한테 기획자를 소개받기로 했어.”
“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형한테 얘기해. 알았지?”
“네.”
다원 보육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아니면, 따로 연락하지 않는 그와 다르게, 동생들은 찬성과 꾸준히 만나고 있었다. 각자의 채널에 번갈아가며 게스트로 출연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하더니 이번 일도 도움을 받기로 한 듯했다.
태주는 동생들과 자주 만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다만 현실은 마음과 달랐다. 신경을 쓰고 싶어도 촬영으로 몇 달 보내고 나면, 동생들 생활이 바뀌어 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더 걱정되고 미안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둘 다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그럼 호 형은 헬기도 조종할 수 있는 거예요?”
“네.”
“와! 호 형 진짜 대단하다. 섬 들어 올 때 호 형이 배 몬 것도 놀랐는데.”
“그럼 내일 바다낚시도 호 형 배 타고 가는 거예요?”
“네. 제가 몰 겁니다.”
바다낚시? 그가 속으로 동생들을 대견하다 칭찬하는 사이, 내일 일정이 정해지고 있었다. 태주는 동생들의 선택에 혀를 찼다. 스노클링, 수상 스키, 스쿠버다이빙 등등.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낚시를 고르는가 말이다.
‘에이. 난 섬에서 화단이나 가꿔야겠네.’
낚시는 몸 쓰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재미를 붙이지 못한 거의 유일한 레저 스포츠였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서 몇 시간씩 촬영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는 그였지만, 물고기가 낚이길 바라며 몇 시간 동안 찌만 보는 낚시는 아무리 해도 지겨웠다. 내일은 섬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 할 듯했다.
*
호박 섬에서 보내는 첫날 밤. 태주는 날카로운 눈으로 태산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반드시 태산이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물건을 숨기는지 밝혀낼 생각이었다.
‘물건을 숨기는 데가 있을 텐데….’
현실과 정원 양쪽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닌, 평범한 물건은 정원에 가져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잠들기 전에 아공간의 물건을 한 곳에 정리하곤 했다.
태산이 역시 정원에 가기 전에 가져갈 수 없는 물건을 정리해야 했다. 전원주택에서는 자기 방과 창고에 숨기는 것 같았는데, 다른 곳에선 어디에 숨기는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호텔에서 머물 때도 그렇고 대체 어디에 숨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고. 피곤하다.”
태주는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눈치 빠른 꼬맹이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잠시 온몸을 늘어뜨리고 편하게 누워 있던 그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회사에서 온 연락은 없고. 다른 연락은… 별거 없네.”
출발 전에 열흘간 해외에서 휴가를 보낼 거라고 얘기해 둬서 그런지, 회사에서 온 연락은 없었다. 다른 연락들은 평범하게 안부를 묻는 것들이었다.
‘모래뱀상어라고 했던가?’
그는 스마트폰을 잡은 김에 낮에 태산이 손에 잡혔던 상어를 검색해 봤다. 어떤 상어이길래, 태산이 같은 아이 손에 잡히는 건지. 상어의 정체가 궁금했다.
모래뱀상어는 상어 중에서 최초로 보호종으로 지정된 상어였다. 신체 구조상 인간을 한입에 삼키기 힘들고, 2호의 설명대로 흉포한 외형과 달리 온순한 성격이었다. 다만 국제적인 보호종이라서 그런지 몸값이 무척 높았다.
“…1억?”
‘2호가 바다 위를 달려서 구하려던 게 혹시 상어는 아니겠지?’
상어의 몸값을 알자, 살짝 의심이 들었다.
태주가 모래뱀상어의 높은 몸값에 놀라는 사이 태산이 움직였다. 아이는 능숙하게 커다란 자루 두 개를 목줄에서 꺼내, 침대 아래쪽 태주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켜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는 태주의 위로 덮쳐들었다.
-털썩!
“잡았다! 요놈.”
“꺄하하.”
“아이고. 우리 산이 이제 무거워서 형이 못 들겠다.”
“아앙. 사니 앙 무거.”
놀라게 하려고 덮치는 아이를 받아 안은 태주가 엄살을 피웠다. 무겁지는 않았지만, 흥분하면 힘 조절을 잘못하는 아이라서 조심하게 하려는 의도가 섞인 엄살이었다. 그러나 그의 배 위에 앉아서 통통 몸을 튕기는 걸 보면 그다지 효과는 없는 듯했다.
태주는 장난스레 더 세게 몸을 튕기는 꼬맹이의 볼을 양손으로 잡았다. 손에 눌려 톡 튀어나온 입술 덕에 그렇지않아도 혀짧은 발음이 옹알이처럼 들렸다.
“하딩망.”
“킥.”
귀여운 항의에 태주의 장난은 금세 끝났다. 그는 여전히 그의 배 위에 앉은 아이를 당겨 안아, 달래듯이 등을 톡톡 두드렸다. 아직 잠자기엔 이르지만, 잠이 많은 아이는 이렇게 등을 두드려주면 곧잘 잠들곤 했다.
‘꼭 안고 있어야지. 오늘은 목줄에 뭐가 있나, 반드시 확인해 봐야지.’
태산이가 물건을 숨기는 곳을 알아내지 못할 것 같자, 방법을 바꿨다. 물건을 숨기러 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목줄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태주는 그가 그런 계획을 세우기 전, 아이와 장난을 칠 때, 진즉 바닥에 놓인 자루가 사라진 것은 알지 못했다.
태주가 아이를 품에 안고 재우면서 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호박 집안을 가로지르는 존재가 있었다. 작고 하얀 두 존재는 자루를 입에 물고 낮에 본체가 봐 둔 지점을 향해 사뿐사뿐 가볍게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본체가 부여한 임무를 완수한 둘은 건물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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